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4.06.03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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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대 독립성, 40~50대 돈, 60대 건강

1970년대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62세 정도였다. 위생 환경, 영양 섭취, 질병 예방에 대한 인식이 낮았던 이 시기에 장수는 최고의 기원이었다. 2013년 평균수명은 남자 78세, 여자 85세다. 이른바 100세 시대에 돌입한 요즈음 단순히 오래 산다는 의미는 퇴색했고, 건강 장수에 관심이 커졌다. 대한민국의 최고 부자인 올해 72세의 이건희 삼성 회장이 최근 심근경색으로 입원하면서 건강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건강 장수에 대한 관심은 많아졌지만 실제 건강한 삶을 위한 노력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화이자제약이 여론조사 기관인 입소스에 의뢰해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가 나왔다. 이를 보면 건강에 대한 관심에 비해 노력이 부족하다는 점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연령대별로 건강에 대한 인식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나이를 먹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20~30대는 독립성, 40~50대는 돈, 60대는 건강을 꼽았다. 젊은 시절 건강의 중요성을 실감하지 못한 채 중년을 맞다 보니 이미 건강이 악화돼 진료비 등 돈이 필요하며, 그 이후에야 건강의 중요성을 깨닫는 것이다. 한경혜 서울대학교 노화고령화사회연구소 교수는 “100세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준비도 중요하지만, 신체와 정신 건강은 개인의 미래는 물론 국가 재정과도 직결되는 만큼 ‘건강하게 나이 들기’를 위한 개인적·사회적 대비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
20~30대 “건강 중요성 피부로 못 느껴”

직장생활 5년 차인 이범희씨(32)는 종종 친구나 직장 동료들과 함께 노후 준비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주요 내용은 건강보다 돈이다. 그는 “노후에 건강은 중요하지만 아직 건강보다 경제적인 불안을 더 크게 느낀다”며 “그러다 보니 건강관리는 뒷전으로 밀려나 신경을 못 쓰고 있다”고 말했다.

20~30대는 신체적·사회적 활동이 왕성한 시기다. 한편으로는 흡연·음주·스트레스에 시달리기 십상이다. 꾸준한 운동은 고사하고 건강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이도 드물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특히 30대는 다른 연령대에 비해 건강 상태가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령대 남성은 다른 연령대의 남성보다 담배를 자주 피우고 운동을 하지 않아 비만율이 높다. ‘격렬한 운동’을 하는 사람은 15.2%에 불과하며, ‘중간 정도의 운동’을 하는 사람도 5.7%로 낮았다. ‘건강을 자신한다’는 30대는 17.3%에 그쳐 다른 연령대에 비해 가장 낮았다. 김영식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과거 노년층에서 발병하던 고지혈증·고혈압·당뇨 등을 최근에는 젊은 층에서 쉽게 볼 수 있다”며 “이런 질환은 한번 생기면 평생 치료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고 합병증도 심각한 만큼 20~30대의 건강관리는 향후 50년 이상 가장 큰 자산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40~50대 “실제 나이보다 어려 보이고 싶다”

신동욱씨(53)는 “딸들이 시집가면 아내와 둘만 남는다. 일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 공백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도 역시 모르겠다. 아직 활동하고 교류할 수 있는 에너지가 있지만 사회적으로 격리되는 것 같아 불안하다”고 말했다. 신씨는 얼마 전 친구가 심장마비로 돌연사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젊을 때부터 즐겨왔던 술과 담배를 끊기로 했고, 몇 년 동안 받지 않았던 건강검진을 다음 달 받을 계획이다.

40~50대는 암과 심장혈관 질환에 대한 걱정이 커지는 세대다. 젊었을 때 좋지 않은 생활습관이 누적되면서 질병에 걸릴 위험도가 급증한 탓이다. 이 세대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갱년기가 찾아오는 시기다. 호르몬의 변화로 정신적·신체적으로 어려움을 경험할 수 있어서 몸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전문의를 찾아야 한다. 건강 문제에 직면했지만 이 세대의 65.6%는 ‘자신은 실제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성 10명 중 6.5명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신체적 건강을 유지하는 사람은 37.1%에 불과했다. 젊어 보이고 싶지만 식습관 개선, 운동 등을 통해 건강을 유지하는 사람은 절반도 안 되는 셈이다. 권현철 삼성서울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돌연사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는 급성 심근경색의 위험은 50대에 절정을 이룬다”며 “술, 기름진 음식, 흡연 같은 나쁜 생활습관에 빠진 사람이라면 심근경색 외에도 뇌졸중·협심증 등 치명적인 혈관 질환에 걸리기 쉬운 부류에 속한다. 평소 콜레스테롤과 혈압을 점검하면서 건강을 챙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60대 “뒤늦게 건강의 소중함 깨달아”

유도광씨(62)는 얼마 전부터 소일거리를 하며 젊은 사람 못지않게 진취적인 삶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은퇴 후 막막하고 우울한 나날을 보내기도 했지만, 지금부터가 인생의 시작인 것 같다. 다만 예전보다 병원을 찾는 횟수가 늘어났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기억나지 않으면 혹시 치매는 아닌지 은근히 걱정된다. 매일 아침에 걷기 운동을 하지만 체력이 하루아침에 좋아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노인으로 치부되던 60대는 ‘꽃중년’이라고 불릴 정도로 건강한 삶을 유지한다. 건강관리를 잘하고 있는 50대는 37.1%, 60대는 34.3%로 나타났다. 그러나 노화가 진행되면서 신체적 질환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시기인 것도 사실이다. 한경혜 교수는 “건강하게 나이 들기 위해서는 신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건강이 중요하다. 60대는 나이를 먹으면서 얻는 긍정적인 측면을 바라보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세대”라고 말했다.

국민 13% “나이 먹는 것이 두렵다”

젊을 때부터 건강을 관리하지 않은 결과는 빤하다. 이는 수치로도 나타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매년 회원국의 건강지표를 발표한다. 지난해 보고서(OECD Health at a Glance 2013)를 보면, 한국은 암으로 인한 사망률이 인구 10만명당 290명(남성)으로 회원국 평균(277명)보다 많다. 뇌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은 79명으로 역시 회원국 평균(68명)보다 많고, 성인 당뇨 유병률도 7.7%로 회원국 평균(6.9%)보다 높다.

나이 듦에 대한 인식 변화가 요구되는 시기다. 그러나 국민 대다수는 나이를 먹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민의 13%만이 나이 듦을 긍정적으로 인식했다. 피부에 주름이 잡히고,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건강을 잃는 것에 대한 깊은 두려움이 투영된 것이다. 한경혜 교수는 “한때 동안(童顔) 열풍이 불면서 젊게 보이는 것에 대한 관심이 강했지만, 지금은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는 시기라서 건강하게 나이 드는 것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이를 먹다 보면 갖가지 질병에 시달린다. 한국인이 가장 걱정하는 질병은 치매(39.4%), 암(22.8%), 심장혈관 질환(14.1%)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60대는 치매를 가장 두려운 질환으로 꼽았다. 특이한 점은, 40~50대보다 20~30대에서 치매를 걱정하는 비율이 더 높다는 것이다. 젊은 층은 암이나 심장혈관 질환의 두려움에 아직 직면하지 않은 반면, 사회활동이 왕성한 중년층은 잦은 야근, 회식, 불규칙한 생활로 건강에 대한 우려가 강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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