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생선 고등어가 ‘금등어’됐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4.05.21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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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오른 10마리 중 9마리 ‘수입산’…바다목장에서 대량 양식 가능

할인점이나 시장에서 맛있는 고등어를 고르는 요령은 가장 큰 놈을 고르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400g 이상짜리가 상품(上品)이다. 이런 고등어는 지방 함량(22% 이상)이 높아서 맛이 고소하고 간도 잘 밴다. 한국산 고등어는 지방 함량이 18% 내외다. 조금 비싸긴 해도 입에서 감칠맛이 난다. 지방이 적을수록 푸석한 식감이 난다. 이런 놈은 대부분 몸집이 작거나 치어(고도리)다. 특히 20g 이하짜리는 사료용이지만, 세 마리에 얼마 하는 식으로 우리 식탁에 오르기도 한다. 장사꾼 입장에서는 사료용보다 식용으로 팔아야 수십 곱절 많은 이문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치어는 잡지 않는 게 옳다. 맛도 맛이지만 어종 보호를 위해서도 그렇다. 그런데 치어를 솎아낼 재간이 없는 이유가 있다. 고등어는 수천만 마리가 무리 지어 다니는 까닭에 낚시로는 잡을 수 없다. 고등어 떼 주변을 배로 돌면서 그물을 치고 그물 밑 부분을 좁혀 무리를 가두는 식(선망)으로 잡는다. 그러다 보니 고도리만 따로 골라낼 수가 없다. 이는 매년 고등어 씨를 말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2011년 13만8000톤이던 고등어 어획량은 2012년 12만5000톤, 2013년 10만2000톤으로 급감하는 추세다.

고등어는 양식 안 된다는 고정관념 깨

잦은 어획으로 고등어가 충분히 살이 찔 틈이 없어서 상품 가치도 떨어진다. 5년 전만 해도 고등어 10마리 중 5~7마리는 상품이었지만 지금은 그 수가 1~2마리로 줄어들었다. 수입산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우리 식탁에 오르는 고등어 10마리 가운데 9마리는 노르웨이산이다. 관세청 수출입 무역 통계를 보면 노르웨이산 고등어 수입량은 2009년 7894톤에서 2013년 1만8750톤으로 5년 새 2배 이상 증가했다. 노르웨이는 세계 1위 고등어 수출국이다. 국내로 수입되는 고등어의 90%는 노르웨이에서 왔다.

당장은 수입산 고등어가 대체재 역할을 하겠지만 이대로 두면 가까운 미래에 한반도 연안에서 고등어 그림자도 보기 힘들지 모른다. 명태처럼 100% 수입하게 된다거나 현재 마리당 5000원짜리가 가까운 미래에 8000원으로 급등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언제부터인가 매년 4월에서 5월 사이 금어기(어족 자원 보호를 위해 어획을 금지하는 기간)에는 고등어를 잡지 않는다. 이 기간에 고등어 공급량이 줄어들고 가격은 급등한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일본산 고등어 수입이 금지되기라도 하면 고등어는 시쳇말로 ‘금등어’가 된다.

등 푸른 생선의 대표 주자인 고등어는 불포화지방산을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보리처럼 영양가가 높다고 해서 ‘바다의 보리’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 옛날부터 서민이 즐겨 찾는 고등어는 지금도 자반, 조림은 물론 훈제나 횟감으로 이용하는, 그야말로 국민 생선이다. 할인점에서 많이 팔리는 수산물 1~2위를 다툰다. 멸치, 오징어와 더불어 국내 3대 어종인 고등어가 사라지고 있어서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

바다목장에서 고등어를 기르는 방안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해상 양식장을 마련해 고등어를 키우는 방법이다. 성질이 급해서 가두면 쉽게 죽어버리는 탓에 고등어는 양식이 어렵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그러나 치어 때부터 양식하면 가능하다는 사실이 한 어부에 의해 밝혀졌다.

고등어 농사꾼이라는 별명이 붙은 유병서 아쿠아코리아 대표는 오래전부터 고등어 양식을 연구해왔고, 통영 욕지도 앞바다에 지름 20~25m, 수심 15m짜리 양식장을 차렸다. 고등어는 큰 무리를 지어 원을 돌 듯이 이동하는 생선이라서 양식장 모양을 원형으로 만들었다. 2003년 5톤에 불과했던 양식 고등어 생산량은 2013년 73톤으로 늘어났다.

일본·노르웨이, 고등어 양식 산업 꿈 키워

양식 고등어는 좋은 사료를 먹고 충분히 자란 후에 출하돼서 맛이 뛰어나다. 또 생선의 중금속 오염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자연산 생선은 어디에서 어떤 중금속에 오염됐는지 알 수 없다. 국내에는 통영과 제주도 두 곳에서 고등어를 양식하고 있다. 유 대표는 “다 자란 고등어를 양식할 수는 없지만 치어를 해상에 마련한 양식장에서 1년만 키우면 300~400g짜리의 품질 좋은 굵은 고등어를 대량 생산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고등어 양식은 세계적인 추세다. 생선의 나라 일본은 1999년부터 양식 고등어 협의체까지 만들어 양식 계획을 세웠고, 2004년 인공으로 수정란을 부화하는 기술도 쌓았다. 일본이 고등어 양식에 오랜 기간 공을 들이는 배경에는 유별난 일본인의 고등어 사랑이 자리하고 있다. 고등어 회는 옛날부터 일본 사람도 사서 먹기 힘든 고가 상품이다. 이런 이유로 고등어 두 마리를 뇌물로 바치는 행동에서 ‘사바사바’라는 속어가 생겼다는 설도 있다. 사바는 고등어를 뜻하는 일본어다. 지금도 일본에서 양식 고등어 가격은 자연산보다 비싸다. 적절한 시기에 영양이 풍부한 사료를 먹어서 상품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산업으로 일으키는 일에 타고난 일본인은 최근 양식 산업에 관심을 두는 분위기다. 심지어 자동차회사가 양식 산업에 손을 대고 있다. 일본 자동차회사인 도요타는 10여 년 전부터 참치 치어를 키우는 방법을 개발했고, 2010년부터 사업을 시작했다. 현재는 이 판을 키우기 위해 중국·페루 등에 있는 대형 양식장을 인수하고 있다.

고등어 무리에서 400g짜리가 40~50% 이상일 때만 고등어를 잡는 등 어장 관리에 철저한 노르웨이에서도 줄어드는 고등어 어획량이 고민거리다. 고민 끝에 이 나라도 최근 고등어 양식 산업에 시동을 걸었다.

문제는 가격이다. 양식 고등어는 아무래도 인력이나 사료비용이 들어서 자연산보다 비싸다. ‘국민 생선’이 비싸면 소비자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양식장이 늘어나서 가격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정부의 경제적·제도적 지원이 필요해 보인다. 유 대표는 “고등어 양식은 고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는 6차 산업(1·2·3차 산업을 복합한 산업)이라서 어업은 어렵지만 어촌은 살아갈 수 있다”며 “과거처럼 끼니를 때우기 위한 생선이 아니라 브랜드를 붙인 한국산 양식 고등어를 해외로 수출하는 산업으로 키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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