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무당파’가 승패 가른다
  •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 교수 ()
  • 승인 2014.05.21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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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밉지만 야당도 못 믿겠다”…세월호 참사 따른 지방선거 향방

셰익스피어는 <줄리어스 시저>에서 “잘못은 별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에게 있다”고 말했다. 선거도 하늘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정한다. 선거를 이해하려면 하늘의 별 대신 구도·인물·정책을 봐야 한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구도다. 지난 수개월간 야당이 기대했던 ‘정권 심판론’은 맥도 추지 못했다. 박근혜정부 출범 1년 만에 치르는 선거라 그랬다. 대통령 지지율의 고공비행 때문에 여당 우세는 당연시되었다. 여당 지지층도 견고하게 결집됐다. ‘콘크리트 지지율’은 철옹성처럼 보였다. 그런데 온 국민을 슬픔에 젖게 만든 세월호 참사로 모든 것이 급변했다.

원래 선거가 다가오면 부동층으로 불리는 무당파가 감소하는 게 일반적인 추세다. 그런데 지금은 정반대로 증가하는 양상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야당이 반사이익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민은 여야 공동 책임이라고 인식한다. “정부가 잘못했다”고 보면서 “야당은 도대체 뭐 한 거야”라고 생각한다. 특히 젊은 층에서 무당파가 늘어나고 있다. 여성의 무당파 경향이 강하다. 40대와 50대 초반의 민심도 흔들리고 있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등을 돌리고 있다. 수도권의 반전이 심상치 않다. 특히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의 지지율이 급락했다. 막내아들의 ‘미개 국민’ 글 파문은 불난 데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다.

4월29일 안산 단원구 초지동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희생자 공식 합동분향소. ⓒ 시사저널 구윤성
아직 무당파는 투표장에 갈지 주저하고 있다. 야당 지지를 결정한 것은 더욱 아니다. 결국 투표 막바지까지 민심은 요동칠 것이다.

지방선거에서 정책이 선거 쟁점이 될 가능성은 작다. 2010년 지방선거에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내건 ‘무상급식’이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했지만, 2014년 지방선거에서는 ‘무상버스’ 공약이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오히려 세월호 참사로 여야가 함께 ‘안전’을 강조하면서 공약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여당은 ‘개발’, 야당은 ‘복지’를 강조하고 있지만 선거가 코앞에 다가와도 유권자를 사로잡는 매력적인 공약은 없다. 

이런 조건에서 무당파의 향배를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정치학에서 ‘무당파(independent voter)’는 정치 이념과 당파성보다 후보와 이슈에 따라 투표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에 비해 한국의 무당파는 기존 정당 체제에 대한 반감이 강하지만, 뚜렷한 이념과 가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2012년 12월7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무당파의 정치적 이념 성향은 보수 17.4%, 중도 45.5%, 진보 25.6%로 나타났다. 무당파와 중도층이 상당수 겹치기는 하지만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선거에서 증가하는 무당파는 정치에 무관심하고 투표장에 나타나지 않는 사람들이 아닌 경우도 많다. 정치적 관심이 높고 투표 의향도 강한 ‘행동하는 무당파’의 비중도 증가하고 있다. 2012년 대선을 돌아보면, 무당파는 새누리당 재집권보다는 정권 교체를 일관되게 지지했다. ‘안철수 현상’의 진원지도 바로 무당파였다.

2012년 10월6일 KSOI 조사에 따르면 ‘정치 개혁’과 ‘경제민주화’를 잘할 후보로 안철수 후보가 1위를 달렸다. 무당파가 볼 때 문재인 후보는 ‘정치 개혁’과 ‘민생 대통령’ 이미지를 갖지 않았기 때문에 무당파를 끌어들일 수 없었다. 대선이 뜨거워지면서 무당파의 상당수는 ‘행동하는 무당파’로 변화했지만, 야권 단일화 과정에서 크게 실망해 상당수가 이탈했다. 결국 무당파의 선택은 박근혜와 문재인으로 양분됐다. 변화에 대한 욕구가 높은 무당파를 야당이 흡수하지 못한 것이 최대 패인이었다.

무당파, 보수와 진보 중간 아니다

2014년 지방선거 판세는 무당파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특히 무당파의 향배가 유동적인 서울에서 그들의 선택이 선거 결과를 결정지을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무당파는 기성 정당에 대한 거부감은 강하지만, 상대적으로 정책과 대안에 관심이 높다는 점이다. 2012년 대선에서 무당파는 여당에 등을 돌렸지만, 야당의 ‘정권 심판론’도 지지하지 않았다. 야당이 무당파를 확실하게 포용하지 못한 것은 ‘좌클릭’ 노선의 문제보다 확실한 대안 세력의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무당파의 규모는 30~40% 수준이다. 무당파를 구성하는 주요 계층은 서울과 PK(부산·경남·울산) 지역, 20~40대, 대학생 이상 고학력층, 중간 이상 소득층, 화이트칼라, 학생층 등이다. 흔히 ‘산토끼’라고 불리는 무당파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기회주의적 무당파’라는 편견이 나타난다. 이들은 스윙보터(swing voter, 이슈에 따라 움직이는 유권자)의 변종으로 간주된다. 심지어 무당파가 정치적 무관심으로 투표 참여율이 낮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이들은 정말로 ‘개념 없이’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사람들일까. 이는 절대적으로 오해다.

필자는 수년간 사회학자로서 KSOI 소장을 맡아 다양한 여론조사 결과를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무당파는 일정한 정치적 선호와 정치적 관심을 가진 계층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무당파는 정치에서 뭔가 새롭게 바뀌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기존 정당은 자신을 대변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무당파는 안보부터 경제까지 일관되고 체계적인 정치 이념에서 벗어나 ‘이념적 혼합’이 다수를 이룬다. 주요 이슈별로 보면, 무당파의 대북정책은 긴장보다 평화,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폐지보다 시행, 재벌 개혁은 방임보다 규제, 복지 정책에서는 축소보다 확대에 가깝다. 이런 점에서 무당파의 노선은 보수와 진보의 중간이 아니다. 무당파의 지지를 얻기 위해 중도의 포지셔닝으로 이동하는 것보다 정책의 일관성과 현실성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정책을 실행하는 정치적 지도자의 능력이 관건이다.

정치를 혐오하면서 정치인의 역량을 기대하는 역설이야말로 무당파의 특성이다. 결국 아무리 세월호 참사로 여당이 침몰해도 야당이 민생의 구체적 대안을 가진 준비된 수권 정당이라는 점을 보여주지 못하면 무당파의 마음을 얻지 못할 것이다. 여당의 무능을 비판하면서도 야당을 믿지 못한다면 결국 투표장에 나오지 않을 것이다. 잘못은 무당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정당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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