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거시기하지만…”
  • 광주=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4.05.2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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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장현 전략공천’으로 뒤숭숭한 광주 민심 탐방

‘약무호남 시무국가.’ 광주 공항에 내리면 바로 볼 수 있는 문구다.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는 뜻으로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남긴 말이다. 이순신 장군 못지않게 지금 호남, 특히 광주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새정치연합) 대표일 것이다.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새정치연합 소속 각 지역 광역단체장 후보들의 윤곽이 정해졌다. 그러나 모두 구민주당 인사들이고 ‘안철수 진영’ 인물은 찾아볼 수 없다. 안철수 사람으로 전북도지사에 도전했던 강봉균 전 장관도 송하진 전주시장에게 두 배 이상의 표차로 밀리며 고배를 마셨다.

“안철수가 광주를 우습게 본 것”

안 대표 입장에서는 자신의 경쟁력을 입증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합당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서도 이번 선거에서 순수 안철수 인물이 자치단체장에 진출해야 한다. 새정치연합 지도부가 무리하다는 비판을 받으면서까지 윤장현 후보를 광주시장 후보로 전략공천한 이유다. 하지만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시민들은 “광주를 무시하는 처사”라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고 있다. 오랫동안 선거를 준비해온 강운태 시장과 이용섭 의원은 “낙하산 후보를 인정할 수 없다”며 탈당 출마를 선언했다. 게다가 ‘후보 단일화’까지 합의했다. 윤 후보도 손 놓고 있을 수 없다. 두 후보가 그들만의 리그를 펼칠 동안 부지런히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광주는 과연 강운태·이용섭을 포기하고 안철수 대표가 새 정치를 펼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인가. 시사저널은 5월15~16일 이틀간 광주를 방문해 동요하는 광주 민심을 살펴보고 선거 판세를 전망해봤다.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과 광주시장 후보(왼쪽부터 무소속 이용섭·강운태 후보, 맨 오른쪽 새정치연합 윤장현 후보)들이 5월15일 5·18민주묘지를 참배한 후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장현 후보의 선거 캠프는 광주 고속버스터미널 맞은편에 위치한 무등산타워에 들어섰다. 터미널과 백화점이 있어 광주에서 가장 유동 인구가 많은 곳 중 하나다. 이곳에서 윤 후보와 다방면으로 인연을 맺어온 인사들이 그를 돕고 있었다. 특히 시민단체 출신이 많았다. 윤 후보가 걸어온 길을 가늠케 하는 부분이다. 윤장현 지지 선언을 했던 광주 지역 새정치연합 의원들 보좌진도 지원 사격을 위해 내려와 캠프에 합류해 있다. 지역 민심을 잘 알고 여러 번 선거를 치러본 베테랑들로 선거 경험이 부족한 시민단체 출신들이 놓칠 수 있는 부분을 보완한다. 캠프장은 조영택 전 의원이 맡았고 윤 후보와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알려진 정찬용 전 청와대 인사수석도 지근거리에서 돕고 있다.

상대 후보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은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준비하고 있다. 우선 ‘윤장현’이라는 인물에 대해 상대 측에서 네거티브 전략을 펼 만한 요소들을 취합해 대응을 준비했다. 일종의 내부 검증이다. 검증은 공적인 영역부터 개인사까지 다양한 부분에 걸쳐 이뤄졌다.

윤 후보 캠프는 아직까지 상대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를 펼치지 않고 있다. 전략 공천으로 사나워진 지역 민심을 예의 주시하는 눈치다. 그러나 결정적일 때 강운태·이용섭 후보에게 한 방을 먹일 만한 무기도 함께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상대 측 후보 단일화가 이뤄지고 선거운동이 시작된다면 마냥 웅크리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의지다.

윤 후보 캠프의 고민거리는 상대 후보의 움직임보다는 오히려 동요하는 민심이다. 지금도 광주 시내 곳곳에 윤 후보 전략공천을 비판하는 현수막이 기습적으로 내걸리고 있다. 캠프 측에서는 “상대 후보 측 단체에서 주동하는 것”이라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될 사람 밀어주는 ‘전략적 표심’이 관건

본지 현지 취재 결과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시민들이 적지 않았다. 전남대학교 교정에서 마주친 한 대학생은 “후보가 누구든 간에 전략공천과 새 정치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며 반감을 드러냈다. 특히 기존에 윤 후보를 지지했던 이들 중에서도 전략공천 자체에 대해선 비판적 시각을 보내는 사람이 있다는 점이 심상치 않았다. 윤 후보를 호의적으로 평가하는 지역 의료인 임 아무개씨(33)도 “윤장현씨가 좋은 사람이긴 하지만, 기습적 전략공천은 광주 시민을 무시한 잘못된 처사다. 결국 안철수가 광주를 우습게 본 것”이라고 말했다.

윤 후보 캠프도 이를 알기에 고민이 많다. 우선 당원과 지지층에 윤장현이라는 인물이 광주를 떠난 적이 없고 묵묵히 광주를 위해 일해온 인물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전략공천의 당위성을 알리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광주 지역의 노련한 두 정치 거물 강운태·이용섭 후보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두 후보 측은 윤 후보가 낙하산 후보임을 강조하며 합심해 비판에 나섰다. 정확히 표현하면 비판의 과녁은 윤 후보가 아닌 안철수 대표와 새정치연합이다. 이 후보 측은 대형 현수막에 ‘안철수의 새 정치는 죽었습니다’라고 써놓았고 명함에 ‘광주는 낙하산 후보를 싫어합니다’라고 적었다. 강 후보 캠프는 ‘짓밟힌 광주의 자존심 시민 여러분과 함께 찾겠습니다’라고 적힌 초대형 현수막을 내걸었다.

이용섭·강운태 후보는 서로를 겨누던 화력을 윤장현이라는 공동의 적에게 집중하고 있다. 5월15일 이 후보는 “그동안 날을 세워왔던 강 후보와 갑자기 입장 차를 좁히고 손을 잡을 수 있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전략공천이라는 더 큰 적이 나타난 만큼 작은 경쟁은 잠시 멈출 수 있다. 윤 후보는 안철수·김한길의 후보이지, 시민의 후보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강 후보 측도 “단일화라는 것이 1등 후보를 이기기 위해 2, 3등 후보가 해야 되는 것인데, 왜 3등 후보를 이기기 위해 1, 2등 후보가 단일화를 논의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전략공천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5월14일 윤장현 광주시장 후보가 캠프를 찾아온 지지자를 만나고 있다(왼쪽 사진). 윤장현 후보 전략공천에 대한 비판이 담긴 강운태·이용섭 후보의 현수막. ⓒ 시사저널 엄민우
윤 후보에 대한 광주 시민의 지지는 안철수 대표에 대한 지지와 상관관계를 갖는다. 그런 점에서 최근 안 대표에 대한 광주 지역의 민심은 이번 선거 결과를 점쳐볼 수 있는 바로미터다. 윤 후보 측에서는 “2002년 대선 경선 때 광주는 동교동계(김대중계) 적자인 한화갑이 아닌 부산에서 온 노무현을 밀어줬었다”며 희망적 분석을 내놓았다. 광주 시민은 야권 인물 중 향후 대권을 잡을 만한 인물이라면 아낌없이 성원을 보내준다는 것이다. “광주에선 중학생도 정치를 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광주 시민의 투표는 지역색을 띠면서도 동시에 전략적인 선택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전히 야권의 강력한 대권 후보인 안철수 대표가 자신을 지지한다는 점은 다른 후보에게는 없는 윤 후보만의 강점이다. 한편 강 후보 캠프 측은 “최근엔 안철수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가 많이 떨어진 것으로 안다”며 극복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친다. 선거가 본격 시작되면 안 대표는 지난 대선 때처럼 광주를 자주 찾아 지지를 호소해야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될 것으로 보인다.

“중앙 지원 있으면 윤 후보 인지도 오를 것”

광주 현지에서 윤장현 후보는 인물 됨됨이에 대한 평은 좋은 반면, 두 후보에 비해 조직과 인지도 면에서 밀리고 있다. 지역 오피니언 리더들 사이에선 유명 인사지만 광주에서 만난 택시기사나 일반 시민들에겐 ‘강운태·이용섭’에 비해 윤장현이라는 인물에 대한 인지도는 낮은 편이었다. 세월호 정국이 적극적으로 얼굴을 알리고 다녀야 할 윤 후보에겐 매우 불리한 상황을 만들었다. 그러나 향후 당 주요 인사들의 지원이 이뤄진다면 이 점은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윤장현 지지층은 보고 있다. 캠프 외곽에서 윤 후보를 지원하는 그와 가까운 한 지역 인사는 “박지원 전 원내대표도 윤 후보와는 가까운 사이다. 막상 선거가 시작되면 지원해줄 가능성이 크고 중앙의 지원이 있으면 인지도 문제는 쉽게 극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나가야 윤장현 이긴다니까” 


강운태 시장과 이용섭 의원의 후보 단일화는 ‘개문발차’ 식이다. 일단 단일화 원칙에 합의하고 그 방법에 대해선 향후 논의를 통해 정하는 방식이다. 양 캠프에서 2명씩 차출해 단일화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논의를 하고 있다. 후보 간에도 직접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방법을 조율하고 있다. 그러나 합의에 이르기가 예상보다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자가 실제 두 후보 측을 찾아 단일화 방식에 대해 질문한 결과, 그 대답이 전혀 다르게 나타났다. 이용섭 후보 측에선 강력하게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 방식을 주장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이 후보 측이 강운태 후보를 앞서고 있다는 점이 작용한 결과다. 반면 강 후보 측은 후보자 간 양보를 통한 합의 방식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입장이다. 강 후보 캠프의 한 인사는 “여론조사 방식은 둘 중 한 명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다. 후보자끼리 양보하고 합의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 방식”이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두 후보가 단일화를 하면 지방선거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있을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최근 새정치연합에서는 “단일화 과정에서 패배한 표를 흡수한다는 점에서 3자 대결보다 오히려 양자 대결이 유리하다”는 내부 보고서를 내놓았다.

두 후보 간 단일화가 성사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강운태 후보 캠프의 한 관계자는 “단일화가 안 될 가능성도 3할 정도는 된다고 보고 진행하고 있다. 3자 대결이 되더라도 계속 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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