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문 박차고 나올 때 비로소 출구가 열린다”
  • 조철│문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5.14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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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성 3부작 펴낸 고전평론가 고미숙

‘동의보감의 눈’으로 세상을 보던 고전평론가 고미숙씨(54)가 한국인의 몸에 밴 근대성을 통해 현대인의 삶을 통찰했다. 고씨는 최근 ‘근대성 3부작’이라는 타이틀로 한국의 근대에 천착한 <계몽의 시대> <연애의 시대> <위생의 시대>를 잇따라 펴냈다. 이 3부작은 지금 한국을 제대로 알려면 한국의 근대를 잘 이해해야 한다는 주제에 따라 연구한 결과물이다.

고씨는 3부작에 대해 뭉뚱그려 설명했다. “인간 중심주의, 민족 그리고 계몽적 지식과 교육 등등. 이 항목은 여전히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다. 자본의 고도화와 더불어 조금씩 얼굴과 몸매를 바꿔간다. 이 지배를 수락하는 한 새로운 가치의 생성은 불가능하다. 계보학적 탐색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북드라망
고씨가 탐사하는 한국 근대성의 기원, 그 첫 번째 권은 ‘근대적 시공간’과 ‘민족’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살펴보는 <계몽의 시대>다. 고씨는 근대성을 탐사한 이유에 대해 “우리 삶의 비전을 탐구하려면 무엇보다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지적 기반 혹은 앎의 배치를 정확히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저자는 한국에서 근대적 지식의 토대가 구축되는 기원의 장인 근대계몽기로 돌아가 ‘독립신문’ ‘대한매일신보’ 등 당대의 신문 자료를 통해 근대성이 생성되는 현장을 포착한다.  ‘기원의 장’으로 돌아가 그 기호가 탄생하는 현장을 잡으려 한 것이다. 고씨는 “그 기호가 자명한 것이 아니라 우발적으로 돌출한 것임을 목격하는 것이 이 책이 겨냥하는 지점”이라고 설명한다.

“근대는 기차와 함께 시작됐다”

“근대는 기차와 함께 시작됐다”고 말하는 고씨는 기차가 지나가는 공간에는 ‘사이 공간’이 없음에 주목한다. 엄청난 크기와 빠르기로 처음 그것을 보는 이들을 두려움과 경이로 몰아넣은 기차는 산과 산 사이를 연결할 만큼 모든 공간을 단일화한다.

전근대 사회에서 이질적이었던 공간에 철로가 놓이면서 동질화되고, 목적지를 향해 산도 뚫고 강도 건너가는 기차의 저돌성은 곧 삶의 패턴이 됐다. 현대인이 당연시하는 가치, 예컨대 ‘둘러가는 것보단 직선이 효율적이고, 시간은 곧 돈이고, 따라서 목표에 최대한 빨리 도달하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이라는 인식이 기차가 놓이는 순간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졌다는 것이다. 근대에 수학이 부상하게 된 배경에 자연의 소외, 곧 인간 중심주의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자연의 모든 이질성이 제거되고 모든 것이 숫자로 환원된다는 것은 인간이 자연의 지배자로 우뚝 선다는 것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두 번째 권 <연애의 시대>에서 고씨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이른바 근대계몽기에 여성과 똥의 공통점으로 ‘재발견’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차이가 있다면, 농경의 필수 자원으로서 대접을 받았던 똥은 하루아침에 ‘문명 개화의 적’으로 그 지위가 격하된 반면, 서구의 남녀평등론의 유입으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국민’의 지위를 점하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이 그런 지위를 얻기 위해선 조건이 있다. 지식과 애국심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여성이 낳고 기를 미래의 국민 구성원의 ‘어머니’라는 지위로서 호명됐기 때문이다.

고씨는 근대 들어 ‘음녀’라 해서 단죄하고 성적으로 정결한 여성과 그렇지 않은 경우라는 이분법이 만들어진 점을 지적한다. 이는 근대계몽기를 넘어 1920년대에 이르러 ‘순정과 애욕’이라는 이분법으로 새롭게 태어났다고 설명한다.

“성이 범람할수록, 또 멜로드라마의 홍수 속에서 사랑의 찬가가 울려 퍼지면 퍼질수록 욕망은 한층 왜소해지고 삶은 수동화되어간다. 사랑과 성에 대해 말해질수록 사랑하는 능력, 오르가슴을 느끼는 능력은 점점 더 하강하는 이 역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것은 성에 대한 인식론적 구도가 여전히 근대계몽기의 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때문이 아닐까.”

“근대성에서 벗어날 출구 찾아야”

마지막 권 <위생의 시대>에서는 우리의 몸이 어떤 과정으로 위생관념을 체화했고 결국 청결강박증에 빠지게 됐는지를 탐색한다. 고씨는 “그렇게 씻어댔음에도 아토피는 물론이고 각종 피부 질환이 기승을 부리는 이유를 살펴보기 위해, 자연스러운 생명 활동이 아닌 의료 기술로써 우리의 신체를 관리하고 보완해주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를 다시 생각해보기 위해서”라고 취지를 설명한다.

3부작을 통틀어 고씨는 영화 <설국열차>의 한 장면을 빌려 근대성을 극복하는 법을 얘기한다. “열차의 옆문을 열고 나오면 설원이 펼쳐진다. 생존자인 ‘꼬마’는 북극곰과 마주친다. 눈앞에 생명과 야생의 대지가 펼쳐진 것. 그렇다. 근대성 안에서는 근대를 벗어날 길이 없다. 옆문을 박차고 나올 때, 즉 그 중심에서 ‘외부’를 사유할 때 그때 비로소 출구가 열릴 것이다. 이 책 또한 ‘출구 찾기’의 일환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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