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경엔 심해 잠수 구조 장비 아예 없다
  • 김지영 기자 (abc@sisapress.com)
  • 승인 2014.05.14 14:1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월호 사고’ 또 터져도 속수무책…1년 전 해경 내부 보고서 입수

재난과 사고는 다르다. 사고는 예방이 어렵다.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게 사고다. 하지만 모든 사고가 재난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사고가 일정 규모 이상의 피해로 이어지는 게 재난이다. 그런 점에서 재난은 예측 가능하다. 사고와 달리 재난은 예방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사고와 재난을 가르는 것이 바로 구조작업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대형 참사로 이어진 것 역시 마찬가지다. 해경의 구조 실패가 3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재난으로 이어졌다.

구조자 0명. 세월호가 침몰한 지 3주가 지났다. 하지만 지금까지 해경은 단 한 명의 실종자도 구해내지 못했다. 생존자 172명(5월8일 오후 2시 무렵 기준)은 엄밀히 말하면 해경이 구조한 게 아니다. 세월호가 침몰하자 스스로 바다에 뛰어든 이들이다. 사고 현장에 도착한 어선들이 이들을 바다에서 구해냈을 뿐이다. ‘안전과 통합의 사회’라는 박근혜정부의 국정 과제는 구호에 그쳤다.

구조자 0명. 세월호가 침몰한 지 3주가 지나도록 해경은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했다. ⓒ 해양경찰청 제공
해경, 1년 전 잠수 장비 교체 필요성 인지

해경은 사고 현장에서 왜 이렇게 무기력했을까. 재난 발생 시 컨트롤타워 부재, 시행조차 못하고 공무원 책상에만 쌓인 3000건의 재난 매뉴얼 등이 지금까지 밝혀진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해경에는 심해 침몰 사고가 났을 때 필요한 구조 장비 자체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시사저널은 ‘심해 침몰 사고 발생 시 해양경찰의 대응 방안’이라는 해경 내부 보고서를 입수했다. 이 보고서는 남해지방해양경찰청 특수구조단 신 아무개씨가 세월호 사고가 나기 1년 전인 지난해 3월20일 작성했다. 보고서 내용은 이렇다. ‘현재 해양경찰 122 구조대에서 보유하고 있는 싱글 스쿠버 잠수 장비로는 30m 이상의 수심에서 수중 탐색 및 구조 작업이 매우 어렵다. 30m 이상의 수심에서 발생한 해저 침몰 사고에서 신속하게 실종자를 수색하고 인명을 구조하기 위해 첨단 잠수 장비의 도입이 필요하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기 1년 전에 이미 해경은 심해 침몰 사고가 발생할 경우 현재 보유한 장비로는 구조 작업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고서가 나온 지 1년이 지났다. 하지만 해경은 지금까지 첨단 구조 장비를 구비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세월호 침몰 사고 해역에서 해경 특수구조단과 해군 UDT 및 SSU 요원, 민간 구조업체 등 633명(5월9일 기준)이 민·관·군 합동 구조팀을 구성해 수색 작업을 펼치고 있다. 이 중 해경 특수구조단은 스쿠버 잠수(Self Contained Underwater  Breathing Apparatus·SCUBA) 기술로 구조를 하고 있다. 일상에서 흔히 보는 잠수가 바로 스쿠버 잠수다. 잠수사가 물속에서 공기통을 휴대하고 다니면서 호흡하는 잠수 기법이다. 

하지만 이 보고서에는 스쿠버 잠수로는 수심 30m 이상 심해 침몰 사고에서 구조 작업이 매우 어렵다고 지적됐다. 이 보고서에는 “스쿠버 잠수는 ‘마티니 효과’라고 하는 부작용이 나타나 더 깊이 잠수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잠수 기법이 필요하다”고 적시되어 있다. 수심 30m 이상 물속에서 질소를 호흡하면 마치 술을 마신 것처럼 나른함, 집중력 장애, 안전에 대한 부주의 등을 느끼게 되는 것을 ‘마티니 효과’라고 한다. 스쿠버 잠수사가 등에 메는 공기통은 산소 21%와 질소 79%로 구성돼 ‘마티니 효과’가 나타날 우려가 크다고 보고서에 쓰여 있다.

또한 보고서는 스쿠버다이빙이 산소 독성 현상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58m 이상의 물속에서 산소로 호흡하면 시야가 흐려지고 구토·현기증·경련 등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세월호가 침몰한 맹골수도는 평균 수심 40m 이상이다. 일반적인 스쿠버 장비로는 구조 작업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세월호 구조 작업에서는 보고서가 1년 전에 지적한 대로 ‘테크니컬(Technical) 잠수’로 구조를 했어야 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테크니컬 잠수는 스쿠버 잠수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개발된 고도의 기술 잠수로 ‘나이트록스(Nitrox)’ ‘트리믹스(Trimix)’ ‘재호흡기(Rebreather)’ 등이 있다. 테크니컬 잠수 기법을 활용할 경우 수중 체류 시간이 길어지게 된다. 잠수를 하다 보면 수압차로 인해 몸속에 질소가 쌓여 물속에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 수면 위로 올라와 질소를 배출해야 한다. 이를 감압이라 한다. 감압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잠수병(감압병)에 걸려 생명이 위험해진다.

테크니컬 잠수 기술은 일반 스쿠버 잠수 방식에 비해 감압을 하지 않고 수중에 체류할 수 있는 한계 시간이 길다. 일례로 수심 30m에서 테크니컬 잠수 기술 중 하나인 나이트록스로 잠수할 경우 최대 40분까지 감압 없이 잠수할 수 있다. 스쿠버 잠수인 공기 잠수보다 15분이나 더 오래 수중 작업이 가능한 것이다.

1년 지나도록 첨단 잠수장비 구비 안 해

하지만 현재 해경에는 보고서가 지적한 테크니컬 구조 장비가 전무했다. 보고서에 구비하라고 나온 나이트록스 장비, 트리믹스 장비, 이동용 고압 챔버, 포화 잠수 장비(다이빙벨)를 현재 해경은 전혀 보유하지 않고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 초기 해경이 물속에 10분 정도밖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유족들의 항의는 비단 급한 조류 탓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일반 스쿠버 잠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오래 수중 구조 작업이 가능한 ‘표면 공급식 잠수(Surface Supplied Diving System)’도 해경은 해당 장비가 없어 하지 못하고 있다. 표면 공급식 잠수는 잠수사들이 바지선 공기 공급 장치에서 호스(에어호스)를 통해 공기를 공급받는 기술이다. 해군 UDT·SSU 요원, 장비를 갖춘 민간 구조대들은 표면 공급식 잠수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해경은 또 보고서가 지적한 수중 탐색을 위한 첨단 장비도 구비하지 않았다. 보고서에 나온 수중 탐색 장비 중 측면주사음탐기(SONAR)를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지만, 이는 이미 2013년에도 보유하고 있던 것이다. 원격수중탐색장비(ROV)·자율무인잠수정(AUV)·수중CCTV·수중로봇 모두 갖고 있지 않았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6일째가 돼서야 ROV가 투입되긴 했지만 이마저도 미국산이었다. 첨단 잠수 장비가 구비되지 않은 탓에 해경은 잠수사에게 첨단 잠수 장비를 통한 ‘텍 다이빙(Tec Diving)’ 훈련도 시키지 않았다. 텍 다이빙 역시 보고서에서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내용이다. 해경이 심해 수색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해경은 “전문 수중 구조단인 해경 특수구조단이 지난해에 창단돼 자리 잡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며 “예산도 부족해 첨단 장비를 구입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해명했다. 해경은 예산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여수 해양경찰교육원 내 39만3759㎡(약 11만900평) 사격장 부지에 145억원짜리 골프장을 준공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