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박인근 일가 부활한다
  • 부산=김지영 기자·안성모 기자 ()
  • 승인 2014.04.30 16:4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너무나 당연한 얘기다. 죗값은 제대로 치러야 한다. 그래야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다. 군사 정권 시절 형제복지원은 현실에 존재한 지옥이었다.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보다 못했다. 부랑인으로 낙인찍힌 사람에게 그곳은 악마의 소굴이나 다름없었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잔혹함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하지만 죄를 지은 이들에게 제대로 된 벌이 내려지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형제복지원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박인근 원장 일가는 세간의 비난을 뒤로한 채 부활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시사저널은 복지 재벌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꼼수를 부리고 있는 형제복지원의 오늘을 취재했다.

 


군사정권 시절 천인공노할 만행이 자행된 ‘형제복지원’의 박인근 원장 일가가 부활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시사저널의 단독 취재 결과 이들은 부산시 기장군에 위치한 ‘실로암의 집’을 매각한 후 부산시 북구 덕촌동 산 30-1번지 임야(2만6087㎡)와 20-4번지 대지(1252㎡)로 이전하겠다는 계획서를 지난해 4월 부산시에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두 필지 모두 2만7339㎡(약 8285평) 규모다. 실로암의 집은 형제복지원의 후신인 ‘느헤미야’(재단)가 운영하는 복지시설이다.

형제복지원 후신인 ‘느헤미야’ 법인이 운영하고 있는 중증 장애인 생활 시설 ‘실로암의 집’(위 사진). 부산 북구 덕촌동 일대(아래 사진)로 이전을 추진 중이다. ⓒ 시사저널 박은숙
2011년 11월 한국감정원의 평가에 따르면 실로암의 집 재산 가치는 72억원에 이른다. 반면 덕촌동으로 이전하려고 하는 새 복지시설의 경우 토지만 기부채납하면 시설 건립비용과 운영비를 국가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다. 수십억 원에 달하는 돈을 챙기면서 파렴치한 범죄로 낙인찍힌 과거 행적을 ‘세탁’하겠다는 의도로 여겨진다.

형제복지원의 후신인 ‘형제복지지원재단’은 올해 2월 법인 명칭을 ‘느헤미야’로 변경했다. 형제복지원의 인권 탄압 실태가 다시 세상에 알려지자 ‘형제’라는 단어가 아예 들어가지 않은 이름으로 바꿔치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보다 앞선 지난해 4월 재단이 운영하고 있는 중증 장애인 생활 시설인 실로암의 집 토지와 건물을 매각하고 덕촌동 일대로 이전하겠다는 계획서를 부산시에 제출했다.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은 전두환 정권 당시 내무부 훈령에 따라 부랑자를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연고가 없는 장애인, 고아, 일반 시민 등을 불법으로 감금해 강제 노역, 구타, 학대, 암매장한 사건이다. 지금까지 공식 확인된 사망자만 513명에 이르러 ‘한국판 홀로코스트(대학살)’로도 불린다. 아직도 수많은 피해자가 육체적·정신적 후유증을 겪으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그런데 가해자인 재단은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현재 유일하게 운영하고 있는 시설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세간의 비난을 피하는 데 급급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형제’ 빼고 ‘느헤미야’로 법인명 세탁

박인근 원장은 2011년 4월 재단 대표이사에서 공식적으로 물러났다. 대신 셋째 아들 박천광씨가 그 자리에 앉았다. 올해 2월 박씨가 대표이사에서 사임하고 홍 아무개씨가 대표이사직을 이어받았지만 재단 운영의 실질적인 권한은 박씨가 여전히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단이 법인 명칭을 느헤미야로 정한 데는 이유가 있어 보인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느헤미야는 평신도 지도자로 예루살렘 총독을 지낸 인물이다. 100여 년 넘게 답보 상태이던 예루살렘 성벽 중건을 불과 52일 만에 이뤄내 유대교 재건에 앞장선 것으로 평가받는다. 박씨로서는 느헤미야가 아버지의 유산을 재건하기에 최적의 이름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실제 재단은 올해 초 느헤미야로 이름을 바꾸기 위해 이사회를 열었다. 시사저널이 확인한 이사회 회의록에는 ‘이전의 좋지 않은 이미지로 법인이 타격을 받아 더 나은 이미지로 개선하기 위해 느헤미야로 이름을 추천한다’는 대목이 나와 있다. 당시 이사회에 참석한 이들은 박씨 일가의 측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사 7명 중 2명이 외부 이사인데 올해 2월 선임된 외부 이사 한 아무개씨는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다른 외부 이사 1명은 현재 공석이다.

재단을 관리·감독해야 할 주무 관청은 이 같은 법인 명칭 변경을 아무런 제지 없이 허가했다. 사회복지법에 따르면 사회복지법인이 이름을 포함해 정관을 변경할 경우에는 해당 시·군·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기장군청은 2월17일 재단의 법인 명칭을 승인했다. 기장군청 복지지원실 관계자는 “법인이 이미지 쇄신을 위해 법인명 변경을 신청했고 크게 하자가 없어 그대로 승인했다”고 밝혔다. 부산시청 장애인복지과 관계자는 “시에서는 기장군청이 허가한 대로 승인을 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2011년 ‘도가니 사건’으로 유명한 사회복지법인 ‘우석’이 문제가 된 ‘인화학교’의 명칭을 ‘서영학교’로 변경하려고 하자 광주시가 불허한 것과 대조된다.

법인 명칭 변경은 박 원장이 예전부터 과거에 저지른 범죄 사실을 숨기기 위해 이용한 꼼수 중 하나로 지적받아왔다. 재단은 1987년 형제복지원 사건이 터지자 이듬해 법인 명칭을 ‘재육원’으로 바꿨다. 이때도 ‘형제’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지금의 느헤미야가 될 때까지 여러 차례 ‘명의 세탁’이 있었다. 형제육아원(1965년)→형제원(1971년)→형제복지원(1979년)→재육원(1988년)→욥의 마을(1991년)→형제복지지원재단(2001년)→느헤미야(2014년) 등이다.

1987년 박인근 원장 일가는 주례동에 있던 ‘형제복지원’(사진)을 팔고 기장군 산비탈에 ‘실로암의 집’을 지었다. 200억원이 넘는 매각 대금은 각종 수익 사업에 쓰였다. ⓒ 뉴스뱅크이미지
무담보 재산 ‘실로암의 집’ 매각 추진

재단은 느헤미야로 이름을 바꾸기에 앞서 지난해 4월 기장군 정관면에 있는 실로암의 집을 매각하고 재단이 소유하고 있는 북구 덕촌동 일대로 이전하겠다는 계획서를 부산시에 제출했다. 실로암의 집은 재단이 보유한 부동산 중에서 유일하게 거액의 담보가 잡혀 있지 않은 재산이다. 한국감정원이 2011년 11월에 평가한 재단 보유 부동산의 가격은 모두 합쳐 221억원이다. 이 중 실로암의 집을 제외한 다른 부동산은 상당 금액의 담보가 잡혀 있다.

부산시 사상구 괘법동에 있는 ‘사상해수온천’은 현재 IBK저축은행에 가압류돼 부산지방법원이 임의 경매 결정을 내려둔 상태다. 울산시와 경주시에 위치한 10여 곳의 토지도 가압류 상태에 있다. 부산시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재단의 부채는 181억원이다. 이 가운데 63억원은 수익 사업 시설을 증축한다는 명목으로 부산저축은행에서 장기 차입한 데 따른 이자다. 시간이 흐를수록 부채 규모는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박민성 부산사회복지연대 사무처장은 “현재 재단은 장기 차입에 따른 이자가 계속 불어나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다”며 “박 원장에게서 물려받은 사회복지법인은 규제를 받고 있어서 마음대로 유용할 수 없기 때문에 실로암의 집을 이전한다는 명분으로 이를 처분해 매각 대금을 챙기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실로암의 집 매각에 전문 브로커도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재단 이사 중 한 명이 브로커를 통해 시설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고 들었다. 매각이 성사되면 브로커는 수수료로 2억원을 챙기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재단이 실로암의 집을 기장군에서 북구로 이전할 경우 박인근 일가는 돈을 전혀 들이지 않고도 새로운 복지시설을 운영할 수 있게 된다. 현행법에 따르면 사회복지법인이 토지를 기부채납 형식으로 국가 및 지자체에 환원하면 시설 설립 및 운영비를 국가 및 지자체가 보조금 형식으로 지원한다. 재단이 보유한 북구 땅을 부산시에 기부채납하면 부산시가 세금으로 새로운 사회복지 시설을 지어준다는 얘기다. 여기에 매년 지급되는 국고보조금으로 시설을 운영할 수도 있다.

실제 재단은 그동안 실로암의 집에 거의 투자를 하지 않았다. 최근 3년간 실로암의 집 세입·세출 결산보고서를 살펴보면 예산의 99%가 국고보조금이다. 법인 전입금은 2010년 370만원, 2011년 0원, 2012년 2936만원에 불과하다. 반면 올해 예산으로 잡힌 보조금은 15억3000여 만원에 이른다.

부산시는 현재 재단의 이 같은 계획에 ‘불허’ 방침을 밝힌 상태다. 부산시 장애인복지과 관계자는 “실로암의 집 이전 계획은 법인을 정상화하기 위해 재단이 자구책으로 내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산시가 법인 정상화 방안을 제출하라고 요구하자 재단이 실로암의 집 이전 계획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부산시는 ‘시설 이전’이 아니라 ‘법인 청산’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땅 기부채납하면 건설·운영비 국가가 지원

하지만 지역 시민사회에서는 부산시의 이 같은 입장 표명을 곧이곧대로 믿지 못하는 분위기다. 한 복지 관련 시민단체 관계자는 “박인근 원장이 2005년에 개인 명의로 담보도 없이 부산시에 50억원의 장기 차입을 신청했을 때도 처음에는 부산시가 불허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박 원장의 뜻대로 장기 차입을 허가했다. 시설 이전 역시 마찬가지다. 1차적으로 불허했을 뿐 나중에는 재단 뜻대로 이전할 수 있도록 해줄지 지켜봐야 알 일”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부산시가 재단에 장기 차입을 허가한 이력을 살펴보면, 2005년 4월 부산시는 박 원장이 요청한 50억원의 장기 차입을 상환 계획이 미비하다며 불허했다. 하지만  2005년 6월에 15억원, 9월에 30억원, 2008년 6월에 15억원의 장기 차입을 허가했다. 총 60억원으로 애초 박 원장이 신청한 50억원보다 10억원 더 많은 금액이다.

여기에다 이번 실로암의 집 이전 계획은 18년 전 실로암의 집이 현재 위치로 자리를 옮겼을 때를 떠올리게 한다. 재단이 1996년 부산시 사상구에서 지금의 기장군으로 이전하겠다고 했을 때 기장군청은 일곱 차례나 반려를 했다. 중증 장애인 시설을 경사가 심한 산에 설치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재단은 1997년 행정심판까지 끌고 가 산림에서 대지로 용도를 변경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1998년 부산시가 직권으로 건축을 허가해 준 것이다.

더욱이 2000년 기장군청은 실로암의 집 건축 면적을 기존 1464㎡에서 1888.5㎡로 넓혀서 허가를 해줬다. 거동도 잘 못하는 중증 장애인이 거주하는 실로암의 집이 산비탈에 세워진 것이다. 그 결과 2002년에는 산사태로 실로암의 집에서 생활하던 중증 지체 장애인 4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이번에 실로암의 집을 이전하겠다고 한 북구 덕촌동 일대도 산이다.

조민정 실로암의 집 원장은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중복 장애를 앓고 있는 1~2급 장애인들이라 방만 옮겨도 구토를 할 정도로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만약 이전하게 되면 절반은 아마 제대로 생활조차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실로암의 집 이전 계획에 대한 입장을 듣기 위해 현재 재단 대표를 맡고 있는 홍 아무개 대표이사와 전화통화를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박인근 일가, 유력 정치인 집안과 친분” 


박인근 일가가 형제복지원 사건 이후에도 정부 지원금으로 사회복지 시설을 운영하고 수익 사업을 한다며 수백억 원을 대출받을 수 있었던 것은 지역 정·관·재계의 두터운 인맥이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부산의 한 유력 정치인 집안과 박 원장이 오래전부터 가깝게 지내왔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형제복지원 사정을 잘 아는 지역 인사는 “박 원장이 개인 명의로 담보도 없이 수십억 원의 돈을 대출받고 부산시가 장기 차입 요청을 허가해준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당시 저축은행 최고위 인사들은 물론 유력 정치인 집안과 친분이 두텁다는 얘기가 나돌았다”고 전했다.

부산시 공무원들과의 유착설도 끊이지 않았다. 재단의 장기 차입금과 재산 매각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자 부산시는 2012년 8월, 10일 동안 특별점검에 들어갔다. 법인 재산인 부동산과 스포츠센터 매각 대금이 개인 용도로 사용되고, 수익 사업인 사상온천에서 거액의 돈이 박인근 일가에게 빠져나가는 등 비리 사실이 드러났다.

실로암의 집 내에 실로암교회를 운영 중인 것도 문제가 됐다. 부산시장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이 교회는 2013년 1월까지 운영됐는데 강사로 초청된 인사 중에는 부산시 고위 공무원이 여럿 있었다고 한다. 또 박 원장의 막내딸이 결혼을 할 때도 부산시 공무원 상당수가 축의금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겉으로는 문제를 지적하면서 안으로는 유착하는 이중 행태를 보인 것이다.

부산시는 특별점검을 벌인 후 관리·감독 부실을 이유로 시청 공무원 9명을 징계 조치했다. 해당 징계 대장을 통해 확인한 결과 견책 2명에 훈계 7명이었다. 승진이나 수당에서 불이익이 있을 수 있는 정도의 가벼운 징계다. 이마저도 취소 조치가 내려졌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당시 견책을 받은 공무원들이 소청심사위원회에 징계 처분이 부당하다며 구제를 요청했고 소청심사위원회가 이를 받아들여 징계는 없었던 일이 됐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