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어딨는 거야, 어른들만 다 살았어”
  • 진도=김지영 기자 (abc@sisapress.com)
  • 승인 2014.04.21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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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실종 학부모들의 분노…시스템 고장 난 대한민국의 민낯

국가 시스템은 재난 상황에서 빛이 난다. 하지만 지금 전남 진도에는 시스템이란 게 없다. 사고 현장에는 사실을 확인할 최종 책임자도, 구조를 지휘하는 총책임자도 보이지 않는다. 거대한 사고 앞에서 정부는 무능했고 무력했다. 구조에 대한 기본적인 매뉴얼도, 실종자 가족 및 민간 조력자 통솔 능력도 없었다. 언론은 유언비어를 전파하는 장본인이었다. 기자의 펜과 마이크는 ‘진실’이 아니라 무수한 ‘오보’를 전했다. 방송 카메라는 구조 현장이 아닌 실종자 가족을, 생존자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진도에선 믿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국가 시스템이 무너진 이곳 진도의 차가운 공기를 메우는 건 실종된 자식 이름을 부르는 애끊는 부모들의 울음소리뿐이었다.

위기관리 컨트롤타워가 없다

4월16일 밤 10시쯤 진도실내체육관. “내가 00에게 못다 한 얘기가 많은데….” “네네, 제가 다 전달해드릴게요.” 자식의 이름을 부르며 울다 쓰러진 학부모를 응급대원이 달래며 혈압을 재고 있다. “니가 여길 어디라고 와! 이 XXX야! 당장 내 새끼 찾아와!” 고성과 함께 한 남자가 다급하게 몸을 피한다. 학부형이 쫓아간다. 그러곤 남자를 향해 주먹을 날린다. 주먹은 남자의 몸에 닿지도 않은 채 허망하게 떨어졌다. 그사이 남자는 체육관 입구로 줄행랑을 친다.

4월16일 오후 진도군 팽목항에서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구조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체육관 강단 아래 세워진 흰 천막에선 난상토론이 한창이다. “교감선생님께서 출발해도 된다고 전화가 왔었습니다.” “당신은 누군데?” “전 교장입니다.” “당신은 왜 살아 있어? 이 XX야!” “전 학교에 남아 있었고, 교감이 학생 인솔자입니다.” “교감은 살았어?” “네.” 교감이 살았다는 소리에 여기저기 욕 소리가 들린다. “X발, 어른들만 다 살았어!”

 “책임자 불러와! 책임자!” 학교 관계자가 강단 위에서 마이크로 방송한다. “지금 이곳에 있는 해양경찰청 국장님, 소방방재청 관계자님, 강단 앞으로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방송이 두 번 나갔다. 아무도 오지 않는다. “다 어딨는 거야? X발!”

 천막 한편에서는 책상 위에 널브러진 종이를 뒤적이는 가족들 손길이 바쁘다. 종이에는 학년, 반, 이름, 연락처가 적혀 있다. “이거 생존자 명단이에요?” 목소리가 떨린다. “아뇨. 실종자 명단이래요.” 털썩! 학부모가 주저앉는다. “몇 학년 몇 반이세요?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기적을 바랄 뿐입니다.” 기적을 말하는 학부형 입에서 술 냄새가 난다.

 기자가 수첩을 꺼내자마자 누군가 수첩을 낚아챈다. “적지 말라고요! 저리 가요. 가!” 수첩을 사수하려는 기자와 남자 사이에 승강이가 벌어졌다. 기자의 수첩은 한참 후에 돌려받았다. “제발 오보만 내지 말라고요, 네? 다 구출했다면서요? 다 거짓말이었잖아요?” 분노로 목소리가 떨렸다.

 밤 11시께. “2-3반 000의 학부모님 계시나요? 배 안에 살아 있다는 카톡이 왔답니다.” 살아 있다는 소식을 한 학부모가 마이크로 전달한다. 하지만 000의 부모가 나타나지 않는다. “000의 부모님 연락처 아시는 분 연락 좀 해주세요. 아이가 살았다고!” 욕설이 튀어나온다. “배 안에 있는데 왜 아직 안 구하는 거야? X발!” “해경은 절대 바다 안에 안 들어간답니다. 지금 구조 현장에 있는 우리 민간 잠수부가 그럽니다.” “정부를 믿읍시다. 해군 특수 잠수대도 투입됐다면서요?” 이 말이 끝나자마자 “너 누군데 가지 말라는 거야?” “저도 실종자 가족입니다. 손가락 저리 치워요!”

20㎞가량 떨어진 실내체육관과 구조 현장을 연결하는 사람 역시 실종자 가족이었다. 한 학부모가 구조 현장에 있는 학부모에게 전화한다. “상황이 어떠신가요?” “여기 아무것도 안 보여요. 배도 안 보여요.” 울먹이는 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체육관 전체로 울려퍼졌다. 한 학부모가 나섰다. “전 여자입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가 저기 갇혀 있습니다. 정부와 뉴스를 지금까지 믿었습니다. 우리 아이, 우리들이 구해냅시다.”

언론, 유언비어 퍼뜨리는 장본인

밤 11시50분 무렵. 기자는 실종자 가족들과 함께 구조 현장으로 가는 버스에 몰래 탔다. 기자 옆의 학부모가 큰 소리로 외쳤다. “여기 기자 한 명 몰래 탔네. 몰래 탔어.” 구조 현장으로 떠나는 실종자 가족 뒤로 ‘178명 잠수부대 투입’이라는 KBS 방송특보 자막이 뜬다. “거짓말! 실제 사고 현장에는 20명도 안 된답니다.”

 학부모 대표가 마이크를 들고 말했다. “지금 제 폰에 문자가 왔습니다. 우리 아이들 살아 있답니다. 제가 그대로 읽어드리겠습니다.” SNS상에 떠돌아다니는 카톡을 담담하게 읽어내려간다. 조용하던 버스에 울음소리가 터진다. 전화가 울린다. “응. 나 구조 현장 가고 있어. 페이스북에 남겼다는 보도가 떴다고?” 여기저기서 묻는다. “몇 반이에요?” “2-3반이래요.” “앞 반이라서 앞쪽에 탔나 보네.” 절망과도 같은 한숨소리를 토해낸다.

 밤 12시가 넘어 도착한 현장. 실종자 가족을 태운 버스에서 학부모들은 구조 현장에서 100m가량 전에 내린다. 구조 현장으로 가는 길목은 언론사 보도차량이 가득 메워 차량 진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언론사 차가 죽 세워진 길을 지나면 천막들이 일렬로 세워져 있다. 천막이 왜 거기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천막 안에 쌓인 컵라면, 밥, 응급용품 등으로 이 천막이 구호용 천막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정부 관계자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누가 정부 관계자인지 알 수가 없었다. 구조 현장을 지휘하는 목소리도, 실종자 가족들을 통솔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디가 중앙재난대책본부인지 알림판도 없다. 사람이 많이 몰려 있는 곳에 가면 누군가가 마이크 없이 구조 현장에 대해 말을 했다. “크게 좀 얘기해줘요. 여기 하나도 안 들려요!”

 “총책임자 누구야? 데려와! 누구냐고!” 실종자 가족이 서 있는 경찰에게 따져 묻는다. “왜 바다에 안 들어가는 거야? 살아 있다는데? 여기 왜 서 있는 거야 대체? 우리가 폭동 일으키면 다 잡아가려고 그러는 거야? 네 가족이 빠져 있다고 해도 이러고 있을래?” 경찰에게 삿대질하는 손이 떨린다. 이 와중에 실종자 가족 얼굴에 들이대는 방송카메라를 향해 실종자 가족 한 명이 외친다. “구조 현장을 찍으란 말야. 카메라 치워! 너네 가족이 죽어도 사진 찍을래? 시체를 찍지 말고 구조를 잘하고 있는지 감시를 하라고! 제발!” 실종자 가족의 절규가 차가운 공기를 가른다.

사고를 지휘하는 것도, 구조를 요청하는 것도, 생존 정보를 확인하는 것도 모두 실종자 가족 몫이었다. 사고가 난 진도의 상황은 시스템이 없는 대한민국의 민낯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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