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마님, 쪼그려 앉아 있기 넘 힘들어
  • 박동희│스포츠춘추 기자 ()
  • 승인 2014.04.16 16:1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프로야구단 포수난 ‘허덕’…야구계의 ‘이공계’ 체계적 육성해야

“야구의 기본이 뭔지 알아? 캐치볼이야. 서로 주고받아야 해. 그런 의미에서 야구는 만담일지 몰라.”

지난 2월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한화 김응용 감독이 기자에게 한 말이다. 김 감독은 평소 젊은 선수들에게 캐치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야구의 가장 기본인 캐치볼을 잘해야 여타 기술을 터득할 수 있고, 팀원들 간의 믿음과 신뢰도 더 돈독해진다고 믿는다.

정작 김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은 다음이었다. 김 감독은 “지난해에 비해 우리 팀 투수진은 강화됐는데 여전히 포수진은 취약하다”며 “공을 던지는 투수가 좋고 그 공을 받는 포수가 나빠선 절대 강팀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 감독의 말처럼 좋은 투수가 나오려면 뛰어난 포수가 뒤를 받쳐줘야 하는 법. 안타까운 건 한화뿐만 아니라 신생팀 KT를 포함한 10개 구단 대다수가 포수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강민호는 4년간 총액 75억원(계약금 35억원, 연봉 10억원)의 조건으로 롯데 자이언츠와 FA 계약을 맺었다. ⓒ 연합뉴스
한국 프로야구의 포수 계보

한국 프로야구사에서 훌륭한 포수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1980년대 삼성 투수진을 리드했던 이만수(현 SK 감독)는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와 타격 3관왕에 오를 만큼 뛰어난 타력을 과시하며 KBO 리그의 대표적 포수로 각광받았다. OB(두산의 전신)의 조범현과 김경문은 타격은 뛰어나지 않았지만 훌륭한 투수 리드와 정확한 송구로 ‘수비형 포수’의 대명사로 꼽혔다. 1990년대 초반엔 LG 김동수(넥센 코치)가 최고 포수로 등극했다. 김동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건실한 수비와 완벽한 블로킹, 날카로운 타격으로 골든글러브를 7번이나 수상했다.

고졸 선수 출신의 박경완(SK 2군 감독)은 피나는 훈련으로 쌍방울 안방마님 자리를 꿰찬 후 현대로 이적해 한 시즌 40호 홈런과 4연타석 홈런을 기록하며 이만수의 뒤를 잇는 ‘홈런왕 포수’로 자리매김했다. 박경완의 라이벌로 등장한 진갑용(삼성)도 한 시대를 풍미한 최고 포수였다. 진갑용은 ‘투수 위주의 편안한 리드’와 ‘공격적인 공배합’으로 삼성의 젊은 투수들을 업그레이드시켰고 삼성에 6번이나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안겼다. 2000년대가 박경완-진갑용 라이벌 전성시대였다면 최근엔 강민호(롯데)-양의지(두산)가 라이벌 구도를 형성 중이다. 문제는 강민호·양의지 이후 주전 포수를 꿰차는 건 고사하고 1군에서 백업 포수로 뛰는 젊은 포수들도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4월10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에서 넥센의 용병인 로티노가 포수 마스크를 쓴 것은 포수난의 상징적인 사건이다. ⓒ 뉴시스
포수난 가중되는 이유들

4월11일 현재 KT를 제외한 9개 구단 주전 포수의 나이는 평균 30.7세다. 차일목(KIA)이 33살로 가장 많고 김민수(한화)가 23세로 가장 어리다. 많은 야구 전문가가 “포수는 1군 주전 포수 5년 차 이상인 30대 초반이 전성기”라고 말하는 걸 고려하면 올 시즌 KBO(한국야구위원회) 리그 주전 포수들은 매우 이상적인 연령대일지 모른다.

강민호만 봐도 알 수 있다. 한국 나이로 30세인 강민호는 지난 시즌이 끝나고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취득하며 롯데로부터 4년에 75억원(구단 발표액)을 받는 대박 계약을 일궈냈다. 하지만 강민호를 제외하곤 과거 박경완처럼 리그를 압도할 만한 특급 포수가 보이지 않는다는 평이 많다. 특히 20대 초·중반의 젊은 포수는 여전히 눈에 띄지 않는다. 설령 있다손 쳐도 그들은 대부분 2군 리그에서 뛰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포수난뿐만 아니라 포수를 하겠다고 나서는 아마추어 야구선수들도 드물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젊은 포수들의 성장세가 더딘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포수’라는 포지션의 어려움이다. 포수는 다른 야수와 달리 쪼그려 앉은 채 수비를 해야 한다. 포수가 유독 발목과 무릎 그리고 허리 부상에 시달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게다가 송구량도 많다. 한 경기에 서너 명의 투수가 던지는 투구 수 합계는 200개 내외. 포수는 투수의 공을 받아 다시 투수에게 던져줘야 하는 포지션이기 때문에 200개 내외의 공을 송구해야 한다. 만약 1, 2루 주자가 도루라도 감행한다면 있는 힘껏 송구해야 하기에 팔꿈치와 어깨에 전달되는 압력이 상당하다. 한여름에 10kg 이상 되는 포수 장비를 모두 착용하고 경기에 임해야 하는 것도 곤욕이다. 선수들은 “그나마 육체적 어려움은 참을 수 있다”고 말한다. 정작 유소년 야구 시절부터 포수를 기피하는 건 취업난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구단의 백업포수인 B는 “1군 엔트리 26명 가운데 대개 투수는 12명, 내야수는 7명, 외야수는 5명”이라며 “포수는 고작 2명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사실이다. 인천 동산고 시절 정상호(SK)는 초고교급 포수로 불렸다. 듬직한 체구와 강한 어깨로 2001년 SK에 입단할 당시 2, 3년 안에 1군 주전 포수를 꿰찰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2003년 박경완이 현대에서 SK 유니폼으로 갈아입으며 정상호는 2010년까지 박경완의 백업포수로 지내야 했다.

아마추어 야구계의 포수 교육 부재도 포수난 현상을 가중시키고 있다. 김민수는 “영남대에 다닐 때까지 포수와 관련된 기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며 “중학교 때부터 줄곧 독학으로 포수 수업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배터리 코치를 둔 고교·대학 야구부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고질적인 포수 기근 현상을 개선하려면 우선 아마추어 야구계에 대한 지도자 지원이 절실하다. 조범현 KT 감독은 2012년 KBO 육성위원장을 맡아 전국 고교 야구부를 돌며 전문적으로 포수들을 지도한 바 있다. 조 감독은 “나 같은 프로 출신 포수 지도자들이 순회 코치를 맡아 꾸준히 전국 초·중·고·대학 야구부를 돌며 포수 유망주들을 지도한다면 아마추어 포수들의 실력이 몰라보게 늘 것”이라고 강조했다.

어렸을 때부터 멀티 포지션을 맡는 것도 한 방법이다. 박재홍 MBC SPORTS+ 해설위원은 “학생 선수일 때 포수뿐만 아니라 내·외야 포지션을 하나 더 맡아 훈련한다면 설령 포수로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해도 야수로 입단할 수 있을 것”이라며 “부상 확률도 그만큼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행히 요즘 초·중학교 야구부엔 포수 자원이 늘어나고 있다. 오랜 포수 기근으로 ‘포수 포지션이 프로나 명문대 야구부에 입단할 확률이 높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조 감독은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포수 자원이 많아진다손 치더라도 특급 포수 유망주는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며 “야구계가 똘똘 뭉쳐 ‘포수 살리기’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