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푸드 ‘갑질’로 공정위 피소됐다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4.04.16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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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업체, 수십억대 피해 입었다며 제소…2011년 회장 취임 후 최대 위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해 5월 공정거래위원회에 피소된 사실이 시사저널 취재 결과 확인됐다. 계열사인 롯데푸드(전 롯데삼강)가 협력업체인 ㅎ사를 부당하게 압박해 손실을 입혔다는 내용이다. 시사저널이 단독 입수한 공정위 진정서에는 롯데푸드의 횡포 내역이 구체적으로 언급돼 있다. 그룹 신문고에 민원을 제기하고, 신 회장 앞으로 내용증명도 보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고 한다.

진정서에 따르면, 롯데푸드는 2004년 충남 아산에 위치한 ㅎ사와 빙과류 납품 계약을 체결했다. 롯데푸드의 공장이 서울 영등포구에서 충남 천안으로 이전한 직후였다. 당시 롯데푸드의 협력업체는 강원도 강릉과 전남 장성 등에  있었다. 협력업체에서 생산한 제품을 천안 공장으로 옮긴 후 대리점에 납품해야 했던 만큼 물류 부담이 상당했다. 롯데푸드는 물류비 절감 효과가 있는 ㅎ사에 물량을 몰아주는 조건으로 단독 거래를 요청했다. ㅎ사는 거액의 은행 대출을 받아 ‘맞춤형’ 생산 설비도 갖췄다. 하지만 롯데푸드가 약속을 어기고 기존의 물량마저 줄이면서 수십억 원의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 ㅎ사의 주장이다. ㅎ사의 대표 전 아무개씨는 공정위에서 “롯데푸드의 약속만 믿고 기존 거래업체도 모두 정리했다”며 “남은 것은 회사 부도와 함께 신용불량자 딱지뿐”이라고 밝혔다.

2013년 5월24일 정당한 사유 없이 국회에 불출석한 혐의로 약식기소됐다가 정식재판에 넘겨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 공판에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롯데푸드 믿었다가 부도나게 생겼다”

ㅎ사는 2010년 거액을 투자해 제작한 생산 장비라도 되사줄 것을 요청했지만, 이마저도 거절당했다. 성능이 회사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전씨는 “성능 테스트 과정에서 롯데푸드 직원들이 몰려와 기계 제작이나 제품 생산 노하우마저 빼앗아갔다”며 “성능 테스트를 앞두고 양측 직원 3명만 참석하기로 약속을 했다. 그런데 롯데푸드에서 30여 명이 몰려와 설비를 뜯어보고 생산 과정도 촬영해 갔다”고 말했다.

롯데푸드 측의 주장은 다르다. 롯데푸드의 한 관계자는 “ㅎ사에서 제안한 설비 매입 가격은 회사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수준이었다”며 “성능 또한 내부 기준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매입을 고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사에서 물량을 몰아주기로 약속했다는 ㅎ사의 주장 또한 근거가 없다고 말한다. 이 회사 관계자는 “ㅎ사가 먼저 납품 제안을 했고, 2009년 ㅎ사가 일방적으로 거래 중단을 우리 회사에 통보해 왔다”며 “지금까지 협력업체에 대한 부당한 요청이나 압력은 전혀 없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본지 취재 결과는 달랐다. 롯데푸드가 ㅎ사를 찍어내기 위해 조직적으로 압박을 한 정황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롯데푸드 생산지원실은 2010년 2월 ‘외주 중·장기 운영안’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문건에는 ‘2011년부터 외주업체를 5곳에서 4곳으로 줄이고, 2010년 12월까지 ㅎ사가 HACCP(해썹) 인증을 받지 못하면 운영 중단을 통보한다’고 언급돼 있다. 해썹이란 식품의 원재료 매입부터 제품 생산, 유통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해 요소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마련한 인증 제도다. 식품업체는 매출이나 종업원 수에 따라 단계적으로 해썹 인증을 받아야 한다. 롯데푸드 측은 “ㅎ사의 인증 마감이 2010년 12월이었다. ㅎ사에 해썹 인증을 종용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며 “성수기를 앞두고 제품을 안정적으로 수급하기 위한 대책 마련 차원이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충남 아산시청에 확인한 결과 ㅎ사의 해썹 인증 기간은 2012년 12월까지였다. 원청업체가 협력업체에 대해 기본적인 정보조차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문제로 지적된다. 전씨는 “문건이 작성된 2010년 2월 전후로 롯데푸드는 두 차례 임원 회의를 개최했다”며 “당시 회의에서는 ㅎ사를 협력업체에서 배제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까지 논의됐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 근거로 ‘ㅎ사 대신 ㅇ사를 검토했지만 회사 물량을 소화할 수 없었다. 새로운 업체 검토 중’이라고 언급돼 있는 임원 회의록을 공개했다.

공은 공정위로 넘어갔다. 공정위 경쟁과의 한 관계자는 “조사 중인 사건에 대한 언급은 곤란하다. 조사가 마무리 단계인 만큼 조만간 결론이 날 것으로 본다”고 대답했다. 롯데그룹 측은 “신동빈 회장과 공정위 조사는 무관하다. 계열사와 협력업체의 다툼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4월8일 인사 사고가 발생한 서울 잠실 제2롯데월드 공사 현장. ⓒ 시사저널 박은숙
롯데그룹이 사면초가에 몰렸다. 현직 백화점 사장이 연루된 납품 비리 의혹과 제2롯데월드 인사 사고에 이어, 협력업체에 대한 ‘갑질’ 논란까지 불거진 것이다. 평소 정도경영과 상생을 외치던 신동빈 회장의 입지도 좁아들 수밖에 없다.

롯데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롯데쇼핑은 올 초 국세청으로부터 600억원대의 추징금을 부과받았다. 롯데카드의 경우 고객 2600만명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터졌다. 2011년 2월 그룹의 대통을 물려받은 신동빈 회장이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롯데홈쇼핑의 납품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의 칼날이 갈수록 매서워지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는 4월10일 납품업체 1곳과 비리에 연루된 임직원 사무실 등 3곳을 추가로 압수수색했다. 비리에 연루된 납품업체는 8곳,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은 곳은 18곳으로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롯데홈쇼핑 전·현직 간부 3명이 검찰에 구속됐다. 검찰은 현재 횡령한 돈의 일부가 신헌 롯데백화점 사장(전 롯데홈쇼핑 대표)에게 흘러간 정황을 포착하고 추가 수사에 나선 상태다. 일부 언론은 그룹의 2인자인 이인원 롯데쇼핑 부회장의 연루 의혹까지 보도했다. 검찰은 조만간 신 사장을 소환해 조사를 벌일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임직원들의 비리 의혹이 그룹 상층부로 옮겨가는 모양새다.

롯데그룹은 4월7일 롯데홈쇼핑 비리 의혹과 관련한 해명 자료를 냈다. 그룹 차원에서 전 계열사 및 사업부문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 롯데홈쇼핑 임직원의 비리 관련 보고를 받은 신동빈 회장은 크게 화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며 그룹 차원의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롯데그룹의 한 관계자는 “부정행위가 적발되면 엄벌하고 업무 시스템을 개선해 비리가 발생할 수 있는 구조 자체를 뜯어고치겠다는 (신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인원 부회장의 연루 의혹 보도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해당 언론사에 대한 법적 대응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5월 롯데푸드로부터 피해를 입었다며 신동빈 회장 등을 공정위에 제소한 협력업체의 진정서. ⓒ 시사저널 박은숙
홈쇼핑 비리·제2롯데월드 사고 등 악재 잇따라

계열사 비리로 추락한 이미지 회복과 함께 사태의 조기 수습을 꾀했던 신 회장의 노력은 허사가 됐다. 4월8일 제2롯데월드 공사장에서 발생한 사고 때문이다. 12층 공사장에서 작업을 하던 황 아무개씨가 튕겨져 나온 배관에 머리를 맞고 사망했다. 그렇지 않아도 제2롯데월드를 둘러싼 사고가 적지 않았다. 지난해 6월에는 43층에서 작업을 하던 근로자 1명이 숨지고 5명이 부상을 입었다. 롯데가 세계 최초로 도입했다고 자랑하던 ‘무교체 자동 상승(ACS) 거푸집’의 붕괴가 원인이었다. 올해 2월에는 공사장 47층 용접기 보관함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5월에 백화점과 복합쇼핑몰을 임시 개장하려던 신 회장의 계획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서울시도 현재 제2롯데월드의 안전사고와 교통 관련 대책을 주문하며 임시 개장 불가 의견을 명확히 하고 있다. 지난 2월 화재가 발생했을 때는 직접 안전 실태를 점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불과 두 달여 만에 또다시 인사 사고가 나면서 “5월 임시 개장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신 회장은 올 초 롯데건설 대표를 김치현 그룹 정책본부 운영실장으로 교체했다”며 “대표 교체 이후에도 제2롯데월드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고민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5년 제2롯데월드 완공도 큰 차질을 빚게 됐다. 공사가 진행될수록 안전성 논란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서울시장 예비후보)은 층수를 다시 검토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특히 서울공항은 2008년까지 비정밀(ASR) 레이더와 정밀(PAR) 레이더를 통해 항공기 착륙을 유도해왔다. 지상에 있는 관제사는 ASR 레이더를 통해 활주로 방향을 알려준다. 항공기가 활주로 연장선상에 도착하면 PAR 레이더를 통해 항공기의 착륙을 유도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당시 이명박 정부는 2009년 제2롯데월드 건립을 최종 승인하면서 ASR 착륙 절차를 포기했다. 안규백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항공 안전 장비를 추가했다 해도 관련 장비가 이상을 일으키거나 비상 착륙 시에는 대안이 없다”고 지적했다(시사저널 1250호·1258호 참조).

재계 안팎에서는 “신동빈 회장의 ‘영토 확장’ 전략이 한계에 다다른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신 회장은 2011년 2월 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2004년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정책본부 본부장에 취임한 지 7년여 만이다. 이 기간 동안 롯데그룹의 몸집은 육중해졌다. 2004년 26조원이던 그룹 매출은 2012년 말 59조원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같은 기간 계열사는 41개에서 77개로, 종업원 수는 4만5000여 명에서 8만5000여 명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신 회장이 공격적인 인수·합병(M&A) 전략을 편 덕분이었다. 롯데손해보험(전 대한화재보험)과 GS마트·백화점, 처음처럼, 그랜드백화점, 하이마트 등 최근 10년간 롯데그룹이 M&A한 굵직한 기업만 20여 곳에 달한다. 납품 비리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롯데홈쇼핑(전 우리홈쇼핑) 역시 2006년 M&A를 통해 롯데그룹에 편입됐다.

신동빈 회장 리더십 도마 올라

하지만 커진 덩치에 걸맞은 내부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짙다. 한 M&A 전문가는 “롯데는 그동안 외형 확장 정책을 펴왔지만 특유의 폐쇄적인 조직 문화는 바뀌지 않았다”며 “최근 계속되는 내부 사고 역시 한 번은 겪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다”고 말했다.

롯데그룹의 자금 여력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국기업평가는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서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M&A와 점포 확장, 해외 진출 등으로 그룹 전반의 차입금 부담 증가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롯데그룹은 해마다 회사채 발행을 늘려왔다. 지난해에는 롯데시티호텔을 매각했고, 올해는 국내 백화점과 마트 18곳을 해외에 매각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롯데백화점 일산점과 부산 센텀시티점, 롯데마트 중계점 등 핵심 점포도 매각 대상에 포함됐다. 그럼에도 자금 사정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무리한 기업 사냥 탓에 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빠진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신동빈호’가 총체적 난국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주목된다.


“윗선 지시 받고 협력업체 내칠 빌미 조사” 
전직 롯데푸드 직원 증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롯데푸드의 공정위 제소 결과는 조만간 판가름 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가운데 “ㅎ사의 약점을 잡으라는 윗선의 지시가 있었다”는 전 롯데푸드 직원의 증언이 나와 주목된다. ㄱ씨는 2005년부터 6년간 롯데푸드에서 외주 담당으로 근무했다. 사건 당시에도 ㅎ사를 포함한 외주 담당이었기 때문에 공정위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그에 따르면 자신의 상사였던 김 아무개씨는 2009년 9월 자신에게 계열사의 내부 보고서를 건넸다. 롯데제과 생산기획팀이 협력업체 정리를 위해 2009년 9월 작성한 ‘협력업체 운영 개선안’ 문건이었다. 이 보고서를 참고해 ㅎ사에 대한 구체적인 정리 방법을 찾아보라는 지시였다.

시사저널은 지난 2월 롯데제과의 내부 보고서를 바탕으로 영세 외주 협력업체의 대대적인 정리 작업에 착수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A4용지 10장 분량의 보고서에는 단계별 협력업체 정리 시나리오뿐 아니라 예상 문제 및 대응 방안이 포함돼 있다. 정리 대상 업체 중에는 롯데제과 매출 의존도가 100%인 업체도 6곳이나 포함돼 있다. 거래가 종료되면 협력업체 사장은 물론이고 종업원도 거리에 나앉을 가능성이 다분했다(시사저널 1270호 참조).

ㄱ씨는 넘겨받은 문건을 바탕으로 ㅎ사에 대한 구체적 운용 중단 계획을 수립했다. 2010년 4월부터 9월까지 ㅎ사에 파견 나가 운용 중단의 빌미가 될 수 있는 문제를 찾았다. 그는 “한 협력업체는 롯데푸드의 지원으로 부도 위기를 넘겼다”며 “ㅎ사만 기계 설비를 지원해주지 않는 등 불합리한 점이 많아 여러 차례 시정을 건의했지만 묵살당했다”고 말했다. 

롯데푸드 측은 “협력업체에 대한 부당한 압박은 없었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한 전직 직원이 공정위에 확인서를 제출했다는 얘기는 전해 들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모른다”고 말했다. ㄱ씨가 윗선으로 지목한 김 아무개 본부장 역시 “확인되지 않은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말했다.

주목할 점은 또 있다. 시사저널이 지난 2월 롯데제과 협력업체 정리 문건을 보도할 당시 롯데제과 측은 “문제의 보고서는 결재가 나지 않고 폐기됐다. 외주업체 정리 작업도 실제로 진행된 것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ㄱ씨의 증언대로라면 이 문건이 계열사로 넘어갔고 협력업체를 정리하는 데 참고자료로 활용됐다는 얘기가 된다. 2000년대 후반부터 협력업체와의 상생이나 동반 성장을 외쳤던 신동빈 회장의 노력 역시 퇴색될 수밖에 없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신동빈 회장은 2008년 금융기관과 연계한 네트워크론을 통해 중소 업체에 100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며 “이런 구상은 신동빈 회장을 포함한 일부 경영진의 목소리였고 아래까지는 전파되지 않았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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