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간 비었는데 ‘뻥 공약’ 춤춘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4.04.16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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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기 여야 후보들 대형 토건 공약…사업 추진 예산 50조원 필요

경전철 사업에 1조원대 예산을 쏟아부은 용인시는 살림이 거덜 나서 빚더미에 앉았고, 멀쩡한 문학경기장을 놔두고 새로운 경기장을 짓느라 2조원을 퍼부은 인천시는 예산 대비 채무 비율이 가장 높은 지자체로 평가받았다. 지자체장이 선거 공약을 무리하게 추진하며 혈세를 낭비한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나쁜 전례가 6·4 지방선거를 통해 재현될 전망이다. 실천하기 어려운 약속을 남발하고 있어 선거 후 ‘재정 폭탄’이 예고된다. 특히 각 당 내부 경선 및 여야 본선 맞대결이 치열할 것으로 전망되는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여야가 내놓은 선심성 공약에 필요한 예산만 얼추잡아도 50조원에 육박한다. 당선을 위해 선심 쓰듯 내던지는 후진국형 선거 공약이라는 비난이 거세다.

ⓒ 시사저널 박은숙·이종현
서울시장 후보들, 수십조 토건 사업 공약

새누리당의 정몽준 서울시장 예비후보는 용산을 국제업무지구로 개발하겠다는 공약을 앞세웠다. 과거 총사업비 30조원 규모로 추진하다가 지난해 최종 무산된 이 사업을 다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정 후보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각 부지를 한꺼번에 일괄 개발하는 기존 통합 개발 방식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철도 정비창 부지와 서부이촌동 부지 등 구역을 3~4개로 나눠 단계적으로 추진할 것”이라며 “권역을 어떻게 나눌지는 차차 연구해보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용산 개발 외에도 은평-강북-도봉 북한산 벨트 친환경 관광특구 조성, 동부간선도로 일부 지하화, 경전철 공사 추진, 서울-칭다오·상하이 뱃길 등의 공약을 내세웠다. 대규모 예산이 필요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 대다수라서 공약을 실천하는 데 필요한 금액을 추산하기조차 어렵다. 정 후보 측은 “중앙정부와 서울시 재정이 5 대 5가 되도록 하거나 민자 유치 방안 등을 고려해 서울시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공약 실천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는 방법은 나중에 생각해보겠다는 말이다. 박홍근 새정치민주연합(새정치연합) 의원은 성명서를 통해 “정 후보의 용산 국제업무지구 재추진 공약은 가장 나쁜 제2의 뉴타운 ‘먹튀’ 공약”이라며 “정 후보의 사재를 다 털어 넣어도 성공하기 어려운 사업”이라고 혹평했다. 새정치연합 소속 박원순 시장도 최근 TV에 나와서 “용산 문제를 조금만 더 연구하면 그런 말을 안 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서울시장 재선에 도전장을 낸 박 시장은 ‘영동권 종합발전계획’을 발표했다. 서울 강남 동쪽 지역(코엑스와 잠실 지구)을 묶어 MICE(기업 회의, 인센티브 관광, 국제회의, 전시회) 산업의 중심지로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박 시장은 “서울은 세계 컨벤션 5대 도시라는 위상에 걸맞지 않게 마이스 산업 시설이 부족하다”며 “이번 계획은 강남을 국제 업무 및 마이스 산업의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서울 도시기본계획의 구체적 실현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이 계획대로라면 서울 강남의 노른자위 땅으로 손꼽히는 한국전력 본사 부지가 전시·컨벤션 시설과 국제 업무, 관광숙박시설 등으로 조성된다. 2조원 넘는 서울의 마지막 개발 부지여서 세간의 주목을 받아온 곳이다.

박 시장이 이 계획을 내놓자마자 서울 강남 지역 유권자의 표심을 노린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여당 지지도가 높은 그 지역의 민심을 사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새누리당 소속 김황식 예비후보 측은 “박 시장 취임 후 서울시에 복지는 사라지고 이벤트만 남았다”며 “각종 일회성·선심성 복지 이벤트를 남발하고, 재원 확보 대책은 마련되지 않아 빚내서 복지를 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 후보는 비강남권 발전 공약을 내걸었다. 과거 강남권 개발에만 치중한 탓에 강남 이외의 지역은 상대적으로 홀대를 받아왔다는 것이다. 예컨대 강남구와 금천구·서대문구 비강남권의 상업 지역 면적만 비교해도 13배 이상 차이가 난다는 게 김 후보 측의 추산이다.

그는 시청에서 강남까지 대중교통으로 40분 걸리는 시간을 10분으로 단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전철 분당선 연장을 조기에 착공하고 시청-강남역 그리고 경복궁-은평 뉴타운을 이어서 서울 북쪽에서 남쪽을 지나 성남까지 한 축으로 연결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필요한 예산 확보 방안은 확정되지 않았다. 김 후보 측은 “중앙정부와 협조를 통한 해결도 있고 민자 유치로 재정을 확보하겠다는 대강의 방향은 나와 있으며 구체적인 비용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최준필·임준선
버스·철도 사업에 목숨 건 경기도지사 후보들

경기도지사 선거전에서는 유독 교통 관련 공약이 핵심으로 떠올랐다. 이는 부동산 경기 침체로 개발 공약이 예전처럼 주목받기 어려운 데다 수도권 신도시 유권자의 표심을 얻으려면 교통 공약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경기개발연구원 조사에서도 경기도민 4명 중 1명꼴로 도로 혼잡, 철도 부족, 대중교통 등 교통 문제를 경기도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경기도지사에 도전장을 낸 새정치연합 김상곤 예비후보는 무상 버스 정책을 내놓았다. 돈 걱정 없이 버스를 이용하도록 버스공영제를 도입하겠다는 의미다. 버스를 공공 서비스로 보고 경기도가 버스를 운행하는 제도다. 김 후보는 “버스를 무상화하면 도민의 버스 이용률을 높여 승용차 인구를 흡수함으로써 혼잡 비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며 “경기도민이 가장 고통스럽게 생각하는 교통 문제에 우선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복지 방안으로 무상 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세상에 공짜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일부 여론조사에서 경기도민 10명 중 7~8명꼴로 무상 버스 공약은 현실 가능성이 없다고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상 버스를 운행하려면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고, 그 재원을 마련하려면 그만큼 다른 복지를 줄이거나 세금을 더 거둘 수밖에 없음을 과거 선거를 통해 숱하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벌써 도민들 사이에서는 ‘세금 버스’라는 비판이 나온다. 최근 경기도에서 조사한 바로는, 버스공영제를 시행하면 요금으로만 연간 1조6000억원이 투입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대로라면 도지사 임기 4년 동안 6조원 이상이 드는 셈이다. 버스공영제를 실시하려면 버스회사를 인수해 공사(公社)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수조 원의 예산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게 경기도의 분석이다. 이 공약은 야당 내 경쟁 후보들로부터도 비난의 대상이 됐다. 새정치연합 김진표 후보는 “김 전 교육감 스스로 ‘말꾼’이 아닌 ‘일꾼’으로 정치를 지향한다고 했지만, 무상 버스야말로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말꾼의 공약”이라고 지적했다.

대신 김 후보는 G1X(경기하나철도) 구축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서울 지하철 2호선처럼 경기도를 하나로 연결하는 순환철도망을 갖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서울과 경기도를 잇는 1~9호선 전철을 우선 연결하고 그 기반 위에 경기도의 각 도시를 잇겠다는 설명이다. 그는 “기존 선로를 최대한 이용하면 7조3500억원 정도의 예산으로 건설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의원이 이 공약을 내세운 배경에는 출퇴근 시간 단축이 있다. 그는 경기도에서 서울까지 30~60분 이내에 도착한다는 이른바 3060 통근 시대를 주장해왔다. 그는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인구가 하루 125만명이고 그 가운데 119만명이 하루 1시간 이상 통근(왕복 2~3시간)으로 고통받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 경기도민에게 가장 시급한 교통 복지는 재테크가 아닌 시(時)테크”라고 말했다.

여당의 경기도지사 예비후보인 남경필 의원도 출퇴근 시간에 방점을 찍었다. 출퇴근 시간대에 경기에서 서울로 2분마다 출발하는 ‘굿모닝버스’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승객이 버스에 승차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평균 1분30초여서 버스 출발 간격을 2분으로 잡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도지사 임기 내에 출퇴근 시간대에 광역버스 총 179대를 신규 투입하겠다고 덧붙였다. 남 후보는 “10개 이상의 멀티 환승 터미널은 주차장·쇼핑몰·문화시설이 있는 신개념 환승 터미널로 인터체인지(IC) 주변 유휴 부지를 활용해 민간 자본으로 건립한다”고 설명했다. 예산은 연평균 790억원, 지사 임기 4년간 총 3160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여야 후보들 모두 예산 확보 방법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국민은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등 지자체장을 뽑는 것이지 건설업자를 원하는 게 아니다”며 “민선 5기(2010~2014년) 때 지자체가 내세운 공약을 모두 이행할 경우 900조원에 육박하는 예산이 필요한데 이 사업의 70%가 대규모 예산이 드는 토건 사업이었다.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표심을 사려는 후진국형 선거 공약만 꺼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자체와 지방 공기업의 부채를 합한 지방 재정 부채는 지난해 100조원을 넘어섰다. 이런 상태에서 치밀한 재정 대책이 뒷받침되지 않는 공약들이 현실화될 경우 지방 재정 악화는 불을 보듯 빤하다.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많은 지자체의 곳간에 ‘빨간불’이 켜져 있는 상태다. 2012년을 기준으로 예산 대비 채무 비율이 인천은 35.1%에 이른다. 2009년 2조4773억원이었던 인천의 부채 규모는 2012년 2조9309억원으로 3년 사이 5000억원가량 늘어났다. 2010년 시작된 민선 5기 들어 예산 대비 채무 비율이 악화된 곳은 대전·경기 등 9곳에 이른다.

“세금 낭비 사례, 랜드마크 건설 공약 대부분”

나라 곳간 사정이 이처럼 휑한데도 6·4 지방선거를 앞둔 예비후보들은 벌써 뭉칫돈이 필요한 토건 사업 중심의 공약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선거가 끝나면 지자체 재정 파탄이 이어질 공산이 크다. 대책 없는 공약으로 예산을 낭비하면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온다. 서울시는 2010년 지방선거 당시 공약으로 내건 ‘3무 정책’(무상보육·무상급식·무상의료)에 따라 보편적인 복지를 시행하다 보니 예산이 부족해 저소득층이 이용하는 초등학생 돌봄교실 혜택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선심성 법안 발의를 막기 위해 국회는 2012년 페이고(paygo) 법안을 발의했다. 페이고는 ‘번 만큼 쓴다’는 의미다. 그러나 2년이 다 되어가도록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역 발전과 주민 생활 편의를 위한 개발 공약을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 그러나 선거를 겨냥해 표만 얻으면 된다는 심사로 곳간 사정은 생각하지도 않은 채, 재원 조달 방안이 없거나 경제적 타당성이 없는 ‘공약(空約)’을 쏟아내는 태도는 마뜩찮다. 이광재 사무총장은 “2011년 세금 낭비 사례를 분석해보니 테마파크·산업단지 등 랜드마크 건설 공약이 대부분”이라며 “이는 예산에 대한 명확한 계산과 근거 없이 남발한 공약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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