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신사옥 자재 중국산으로 바꿔치기됐다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4.04.09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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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변경해 수십억 차익…리베이트 가능성

한국전력공사(한전) 전남 나주 신사옥 건립이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시공사인 대우건설 컨소시엄이 설계도대로 공사를 하지 않고 있다는 의혹이 내부에서 제기됐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등 사정 당국에도 관련 민원이 접수됐다. 한전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3월 초 공사 현장 관계자로부터 민원이 접수됐다”며 “감사원에서 사건을 이첩 받아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한전과 대우건설 컨소시엄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기자가 만난 회사 관계자들은 “현실적인 문제로 일부 자재나 공법이 바뀐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발주처와 시공사, 설계업체의 협의를 거친 만큼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일부 업체가 공사에서 배제되자 악의적으로 루머를 퍼뜨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기자는 3월부터 한전 신사옥 건설에 깊이 관여한 인사들을 만나 취재를 벌여왔다. 이 과정에서 일부 시공사가 설계 변경을 통해 수십억 원의 공사비를 줄인 사실을 확인했다. 발주처인 한전이 줄어든 공사비만큼 후속 처리를 해야 정상이다. 하지만 한전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설계 변경에 따른 추가 수익은 고스란히 시공사에 돌아갔다.

ⓒ 연합뉴스
감사원, 청와대에서 이첩받아 조사 중

현재 90% 정도 공사 진척률을 보이고 있는 창호 공사가 한 예다. 이건창호는 올 초 97억원에 한전 신사옥의 창호 공사를 수주했다. 1~3층은 스틱 공법, 4~31층은 유닛 공법으로 시공하도록 설계도에는 명시돼 있다. 이건창호는 당초 설계도를 무시하고 건물의 측면과 뒷면을 스틱 공법으로 시공했다. 스틱 공법이란 자재를 현장에서 하나씩 조립해 설치하는 방법이다. 공장에서 조립된 패널을 붙이기만 하는 유닛 공법보다 설계가 단순하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이건창호는 설계 변경을 통해 공사비를 30% 정도 절감했을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한 협력업체 관계자는 “이건창호가 97억원에 입찰할 때부터 업계에서는 17억원 정도 손해가 날 것으로 봤다”며 “저가 입찰에 따른 손해를 메우기 위해 설계 변경을 했고, 발주처인 한전 역시 아무런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한전 측은 “설계도대로 유닛 공법을 고수할 경우 열효율에 문제가 있었다”며 “발주처와 설계사, 시공사, 감리가 모여 논의한 끝에 설계를 변경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컨소시엄 주관사인 대우건설 측도 “회사 입장에서는 공사를 빨리 끝내는 것이 좋다”며 “설계 문제로 유닛 공법을 고수할 수만은 없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달랐다. 유닛 공법은 설계가 복잡하기 때문에 대형 빌딩에서 주로 사용된다. 설계도대로 공장에서 찍어 나오기 때문에 약간의 오차가 공사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전이 설계 변경을 허락한 이유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현장 관계자는 “한전 고위층을 만나 여러 차례 문제를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정상적인 현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특히 설계 변경을 통해 줄어든 공사비의 행방이 묘연하다. 한전과의 협의를 통해 공사비를 다운시켰다면 입찰가에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장에서는 리베이트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현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이건창호는 현재 한전 자회사들이 추진 중인 8곳의 창호 공사에도 참여하고 있다”며 “나머지 현장 역시 상황이 비슷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한전 신사옥을 둘러싼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신사옥은 지하 2층, 지상 31층 규모로 연면적 9만3222㎡(2만8200평)에 달한다. 예정대로 8월에 준공되면 전남·광주 지역에서 가장 높은 랜드마크 건물이 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친환경 기술도 도입됐다. 기획 및 설계 단계부터 에너지 절감 기술과 자재가 사용됐다. 태양광·지열·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를 이용해 에너지 자급률을 42%까지 끌어올릴 예정이다. 미국친환경협회(USGBC)의 최고 등급인 ‘플래티넘 인증’을 받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하지만 천문학적인 사옥 건립 비용이 문제가 됐다. 사옥 건립 초기인 2012년 한전의 부채는 54조원대에 이르렀다. 2008년부터 5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부채율은 2008년 63%에서 2012년 133%로 두 배 이상 높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3000억원(부지 포함)에 이르는 사옥 건립에 나서면서 초호화 논란을 빚었다. 일부 국회의원은 “아방궁 신사옥 건립에 앞서 경영 합리화 대책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전·대우건설 “절차상 문제 없다”

한전은 꼼수를 썼다. 입찰 시 공사금액 평가 비중은 20% 수준이 일반적이다. 한전은 공사금액 비중을 50%로 조정했다. 예상 공사비보다 1000억원 정도 적게 써낸 대우건설 컨소시엄이 공사를 수주했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문제 역시 저가 수주에 따른 후유증이라고 현장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한전 신사옥에서 새로 채택한 이중 바닥재 공사 역시 논란이 일고 있다. 기존 건물의 공조 시설은 천장에 붙어 있다. 한전은 신사옥을 설계하면서 공공기관 최초로 하부 공조 방식을 채택했다. 에너지 절감을 위해 미국 T사의 이중 바닥재를 사용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대우건설은 중국에서 생산되는 A사의 자재로 이중 바닥재를 바꿔치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우건설과 T사의 국내 에이전트인 B사는 그 이유에 대해 반대 논리를 펴고 있다. 대우건설 측은 “T사 제품을 구입하기 위해 국내 에이전트와 접촉했지만 단가를 너무 높게 불렀다”며 “A사 제품에 대한 성능 테스트 결과 문제가 없어 교체했다”고 설명했다. 발주처인 한전의 승인 역시 받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 B사 측은 “대우건설이 처음부터 단가를 정해놓고 그 수준에 맞춰 납품하도록 종용했다”며 “납품업체 사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한전은 지난 3월 T사와 별도로 대우건설이 요청한 A사 제품을 최종 승인했다. 하지만 대우건설은 이보다 한 달 전인 1월 말 미국 T사에 “A사 제품을 결정했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B사 관계자는 “한전과 대우건설 간에 밀약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라며 “발주처의 현장 감독관에게도 문제를 제기했지만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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