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회장님들 ‘날아다니는 호텔’ 경쟁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4.04.02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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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정몽구·구본무 회장 전용기…더블침대·샤워실·주방·회의실 갖춰

지난해 5월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으로 향했을 때, 그 뒤를 따라 각 그룹 오너 전용기가 모두 이륙하는 이색적인 분위기가 연출됐다. 공군기를 제외하고 국내에 등록된 항공기는 모두 623대(헬리콥터 포함). 이 가운데 항공사의 사업용이나 임대용을 제외한 자가용 비행기(전용기)는 160대(항공기 72대, 헬기 85대, 활공기 3대)다.

국내 재벌그룹 가운데 전용기를 보유한 곳은 삼성·현대기아자동차·LG·SK·한화그룹 등 5곳(대한항공 제외)이다. 삼성은 그룹사 가운데 유일하게 전용기를 2대 보유하고 있다. 1996년 전용기(팔콘900, 프랑스 다소)를 구입했지만 한 번 기름을 넣고 날 수 있는 항속거리가 5600㎞밖에 되지 않아 대륙 간 이동은 어려웠다. 미국과 한국에 각 1대를 두고 사용해오다 매각하고 2000년 항속거리가 긴 항공기(글로벌 익스프레스 BD-700, 캐나다 봄바디어)로 교체했다. 이 비행기는 2006년과 2012년 같은 기종으로 바꿔 현재에 이르고 있다.

ⓒ 각 항공기 제작사
삼성은 2002년 조금 더 고급 기종(737 BBJ, 미국 보잉)을 구입했고, 2008년 같은 기종으로 교체했다. 737 BBJ는 이건희 회장이, 글로벌 익스프레스는 이재용 부회장 등이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18인승 보잉 737과 12인승 글로벌 익스프레스 등 전용기 2대를 삼성테크윈에서 관리·운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현대차·SK 곧 새로운 전용기로 교체

현대자동차그룹은 2009년 삼성과 같은 기종(737 BBJ)을 들여왔다. LG그룹은 현대차그룹보다 1년 앞서 전용기를 사들였다. 2003년 제작된 중고 14인승 항공기(G550, 미국 걸프스트림)를 2008년에 들여왔다가 2011년 같은 기종으로 교체했다. 삼성의 글로벌 익스프레스 기종과 비슷한 규모다. SK그룹은 2009년 LG와 같은 기종을 들여왔다. 한화그룹은 2006년 제작된 중고 19인승 비행기(737 BBJ)를 2010년에 들여왔다.

국내 기업들이 전용기를 도입한 것은 20년밖에 되지 않는다. 국내에 전용기를 들여온 기업은 쌍용그룹이 최초다. 김석원 당시 쌍용그룹 회장은 1991년 캐나다산 항공기(챌린저)를 도입했으나 외환위기를 맞아 매각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세계 곳곳을 종횡무진 다녔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도 1990년대 초 이 기종을 보유했지만 그룹이 해체되면서 매각했다. 조중훈 전 한진그룹 회장은 1995년 당시 170억원을 들여 14인승 전용기(4-SP, 미국 걸프스트림)를 들여왔고, 2007년 전용기 임대사업용으로 활용한 후 매각했다.

현재 그룹사들이 보유한 전용기는 세 가지 기종이다. 삼성·현대차·한화는 737 BBJ, LG·SK는 G550이다. 글로벌 익스프레스는 다섯 그룹사 가운데 삼성만 보유하고 있다. 737 BBJ는 전 세계에 150대 정도 팔린 베스트셀러다. 보잉사가 737 기종을 비즈니스용으로 개조한 항공기인데, BBJ란 ‘보잉, 비즈니스, 제트’라는 영문 머리글자다.

보잉사는 747, 777, 787 기종도 VIP급으로 시장에 내놨지만 국내 그룹사가 그보다 한 단계 낮은 737 BBJ를 전용기로 이용하는 이유는 1996년부터 운항해서 그 안전성이 증명됐기 때문이다. 또 대통령 전용기(747기종)에 급을 맞춘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룹 관계자는 “대통령은 수행원이 많으니 747기가 필요하고, 기업은 20명 이하에 맞는 기종을 타는 것이 모양새가 알맞다”고 에둘러 말했다.

LG와 SK가 선택한 G550은 737 BBJ보다 한 단계 낮은 기종이다. 삼성의 글로벌 익스프레스와 비슷한 규모다. 외형보다 운영 경비 등 내실을 우선 따지는 기업 문화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한화는 삼성과 현대차와 같은 고급 기종을 중고로 구입해 사용 중이다.

그룹사마다 선호하는 전용기가 다르듯이 운용 방식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삼성은 항속거리와 안전을 중시한다. 항공기 수명은 보통 20~30년이지만, 삼성은 6년마다 전용기를 교체한다. 2008년 도입한 737 BBJ를 올해도 같은 기종으로 바꿀 예정이다. 이 비행기의 항속거리는 본래 8500㎞여서 인천-LA(9500㎞) 운항이 어렵다. 이 비행기는 미국에서 연료탱크 7개를 추가로 장착해 항속거리를 1만2700㎞로 늘렸다. 뉴질랜드로 옮겨 실내 개조 작업과 도색까지 마치고 한국으로 갈 날만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더블침대·샤워실에 창문 있는 화장실까지

삼성의 새 전용기는 미국 LA에서 뉴질랜드 오클랜드까지 13시간 7분 54초에 주파해 동일 기종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보잉사는 지난해 9월17일 “삼성전자가 매입한 비행기가 1만479㎞를 논스톱으로 주파해 동일 기종 비행 속도 세계신기록을 수립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2만1000파운드 연료를 싣고 출발했고, 오클랜드에 도착했을 때 약 8000파운드 연료가 남았다고 덧붙였다. 1시간당 1000파운드꼴로 연료를 소비한 것인데, 삼성 전용기는 21시간 연속 비행할 수 있는 셈이다.

삼성 전용기의 정식 모델명은 737-7EG인데, EG(Electronic Giant)는 보잉사가 삼성에 부여한 코드명이다. 보잉은 1950년대부터 마케팅 일환으로 고객이 주문한 항공기에 고객에게 맞는 고유 코드명을 부여하고 있는데 삼성에는 ‘전자 거인’이라는 코드명을 부여한 것이다.

현대차는 삼성과 똑같은 기종으로 교체하기로 했다. 미국 항공기 전문 매체들에 따르면, 현대차는 내부 개조를 삼성 전용기보다 더 고급스럽게 할 가능성이 있다. 2012년 미국 업체와 계약을 맺고 현재 내부 개조 작업 중이다. 현대차 전용기는 도색 작업 등을 거쳐 이르면 올해 하반기, 늦어도 내년에 국내에 들어올 전망이다.

LG의 전용기(G550)는 삼성보다 낮은 등급이지만 가장 멀리 비행할 수 있다. 인천에서 미국 플로리다 올랜도까지 1만3500㎞를 14시간 30분 만에 주파한 기록을 갖고 있다. SK는 해외에 사업장이 많지 않지만 신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전용기를 도입했다. 기존 전용기(G550)를 올해 A319(에어버스)로 바꾸기로 하고 현재 내부 개조 작업 중이다. SK그룹 관계자는 “새 비행기의 인도 일정은 잡히지 않았지만 올해 말 국내로 도입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용기는 구매하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내부를 개조할 수 있다. 라운지, 침실, 욕실, 주방, 회의실, 체육실, 의료 장비실 등을 만들 수 있다. 그룹 총수들이 이용하는 전용기 내부 모습은 외부로 유출된 바 없다. 그러나 몇 해 전 삼성이 전용기(737 BBJ)를 팔았는데, 그 비행기를 사서 임대하는 미국 회사가 밝힌 내용을 보면 국내 그룹 전용기의 내부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삼성은 855억원짜리 비행기에 보조 연료탱크를 부착하고 실내를 개조하는 데 약 300억원을 들였다. 보통 225억원 선이라는 실내 개조 비용보다 30%가량 더 들인 셈이다. 149인승을 16인승으로 개조한 비행기의 단면도를 보면 조종석 뒤편에 12개 좌석이 있다. 거의 180도로 펴지는 침대 겸용 좌석이며, 좌석마다 개인 모니터가 붙어 있다.

그 뒤에는 싱크대와 마이크로 오븐 등을 갖춘 주방이 위치한다. 그 다음에 더블침대와 욕실을 갖춘 마스터룸이 있다. 욕조는 없지만 샤워 시설과 화장실이 있다. 또 여러 명이 식사할 수 있는 식탁과 소파도 있으며 전면에는 대형 HDTV 두 대가 설치돼 있다. 그 뒤쪽에 있는 거실에는 마주 보고 있는 좌석 4개가 있고 개인용 탁자가 딸려 있다. 거실 전방에 대형 TV가 설치돼 있어 회의나 프레젠테이션 공간으로 활용된다. 좌석은 침대로도 사용할 수 있다.

초고속 인터넷망, 위성라디오, 위성전화, CD·DVD 플레이어, 플레이스테이션3 등이 설치돼 있다. 위성방송을 수신할 수 있어 언제나 세계 각국의 방송을 시청할 수 있다. 짐 싣는 공간도 14.9㎡나 된다. 화장실에도 창문이 있어 쾌적한 공간을 연출한다.

삼성이 이번에 교체할 비행기에는 디지털 베니어 기술이 도입됐다. 나무나 대리석을 사용하지 않고도 시각적으로 나무나 대리석 느낌을 낼 수 있도록 하는 특수 기법으로 항공기 등에 이 기술을 사용해 중량을 줄이는 대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낼 수 있다.

이 비행기는 연기 탐지 및 화재 진압 시스템, 객실 고도 하향조정 설비 등을 추가로 장착했다. 고도 4만1000피트에서 날아갈 경우 객실에서 느끼는 고도는 8000피트로 설계됐지만, 이 설비를 장착함으로써 체감 고도를 6500피트로 낮췄다. 승객은 훨씬 안락하게 느낀다고 한다.

항공기 값만큼 많이 드는 유지 비용

호화로운 전용기에서 총수들은 무엇을 할까. 2006년부터 3년 동안 전용기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한 승무원은 “그룹 회장들의 공통점은 밑줄까지 쳐가며 책을 읽는다는 점”이라며 “경영 서적과 동양 고전을 주로 읽는다”고 말했다.

삼성 등이 보유하고 있는 737 BBJ는 세부 모델에 따라 가격은 450억~900억원에 이르고, 글로벌 익스프레스는 600억원대, G550은 500억원대다. 전자 장치 등 옵션은 별도고, 여기에 실내 개조 비용을 더하면 1000억원을 훌쩍 넘는다. 운용 비용도 만만치 않아 기종에 따라 다르지만 연간 50억~200억원에 이른다.

만일 개인이 전용기를 1시간 이용한다면 그 비용은 1300만원 정도 든다. 미국에서 전용기 임대사업을 하는 업체가 밝힌 바로는, 서울과 뉴욕을 왕복하려면 4억원 이상이 필요하다. 이외에도 출발-도착 공항 이용료, 출발-도착 국가의 이민 및 세관 수속 대행 비용, 조종사와 승무원의 지상 체류 비용, 음식 비용, 위성전화 사용료, 인터넷 사용료 등이 추가되므로 실제 전세기 이용자는 임대료 못지않게 많은 부대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500억원짜리 전용기를 10년 동안 유지하려면 항공기 가격만큼의 비용이 별도로 든다”며 “전용기 한 대에는 승무원과 정비사 등 스태프만 20명 정도가 근무한다”고 설명했다.

한 번 뜰 때마다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이 드는 만큼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전용기는 주로 그룹 총수들이 이용한다. 이 때문에 ‘총수 전용기’라고 불린다. 총수가 업무가 아닌 개인 용도로 전용기를 사용하면 송사에 휘말리기 십상이다. 최근 한 그룹사 전용기가 하와이 등 휴양지를 방문한 일로 논란이 빚어진 적이 있다. 또 한 그룹은 ‘초긴축 비상 경영’을 선언한 상황에서 최고급 전용기를 들여와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기업에 전용기는 필수품

그럼에도 전용기는 사치가 아니라 자산이다. 세계 무대를 뛰어다녀야 하는 경영진에 시간은 곧 돈이기 때문이다. 일반인에게 휴대전화처럼 기업 경영진에 전용기는 필수품이다. 현대차가 미국 등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게 된 배경 중 하나가 정몽구 회장의 전용기를 이용한 신속한 현지 경영이라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2013년 러시아·슬로바키아·체코·독일 등 유럽 4개국의 해외 사업장을 순회하는 데 걸린 기간은 3박 5일이었다. 전용기가 있어서 가능한 일정이었다. 일반 항공사를 이용하면 8~9일은 걸린다. 2010년 당시 LG상사 구본준 부회장이 천연가스 사업을 위해 전용기로 8시간 만에 투르크메니스탄에 도착했다. 민항기를 이용하면 이틀 이상 소요되는 거리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계열사 임직원의 해외 출장이 활발해 1년의 절반 이상은 운항하고 있다”며 “그룹 전용기의 공식 명칭도 아예 ‘업무용 비행기’로 바꿨다”고 말했다.

전체 매출의 70% 이상을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LG는 전용기를 알차게 이용하고 있다. 2008년 도입한 전용기는 2년 동안 1100시간에 걸쳐 100만㎞(지구 25바퀴)를 비행했다. LG그룹 관계자는 “전용기는 LG전자·LG화학·LG디스플레이 등 해외 사업 비중이 높은 계열사 CEO와 주요 경영진의 해외 출장 시 주로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이 앞 다퉈 전용기를 도입하는 이유는 언제 어디로든 떠날 수 있다는 장점이 크기 때문이다. 현지에서 일정을 마친 뒤 비행기 시간을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귀국할 수 있다. 직항이 없는 오지에도 갈 수 있으며 대형 항공기가 아니어서 소규모 공항 이착륙이 가능하다. 운항 중 급유를 위해 중간에 기착할 경우, 공항 이용에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든다. 특히 중국·러시아 등은 기착료가 비싸기로 유명하다.

운항 중에 회의 등 업무를 볼 수 있고 출장 계획 수립과 일정변경 대응 등이 용이하다. 공항에서는 별도의 전용기 터미널을 이용하므로 번거로운 통관과 검색 시간을 줄일 수 있다. 특히 동선 자체가 기업의 영업비밀인 재계 총수의 프라이버시도 보장받을 수 있다.

기업 이미지 제고와 같은 부가적인 장점도 있다. 예컨대 바이어를 한국으로 데려올 때 전용기로 모셔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LG 관계자는 “전용기로 해외 여러 도시를 연결해 최고경영진의 장거리 출장 일정을 효율적으로 짤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 부호들은 어떤 비행기 타나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2000년 애플의 정식 CEO가 되면서부터 전용기를 이용했다. 그 전용기는 960억원이 넘는 걸프스트림사의 V모델이다. 이 모델은 투자의 귀재로 유명한 미국의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도 사용하고 있다. LG와 SK가 운용하는 비행기와 비슷한 규모의 비행기다.

세계 최고 갑부인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이용하는 전용기는 다른 세계 부호들에 비하면 소박한 편이다. 그의 전용기는 글로벌 익스프레스(봄바디어)로 삼성이 보유하고 있는 것과 같은 기종이지만 그 이전 모델이다.

세계 부호 9위까지 오른 적이 있는 인도의 무케시 암바니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 회장은 전용기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인물이다. 현재 그가 보유하고 있는 전용기는 3대로 삼성과 현대차가 보유 중인 기종(737 BBJ)과 팰컨 900EX(다소), A319(에어버스) 등을 갖고 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걸프스트림사의 IV를 이용한다.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의 동생이자 석유 재벌인 셰이크 만수르는 인수한 유명 축구단 선수들을 위해 2360억원 상당의 보잉 777기를 구입해 화제를 뿌렸다.


 
 

LG그룹이 보유한 헬리콥터 S-76c. ⓒ 시코르스키
그룹들은 해외 출장에 제트기를 활용하고 국내 출장에는 헬리콥터를 이용한다. 삼성서울병원(1대)을 포함해 삼성은 모두 5대의 헬기를 운용 중이다. 현대자동차그룹(2대), LG(1대), 포스코(2대), 대우조선해양(1대), 한화케미칼(1대), SKT(1대) 등도 헬기를 보유하고 있다.

대부분 미국 시코르스키사의 헬기(S-76 시리즈)를 사용한다. 항속거리 798㎞, 최고 시속 287㎞로 전국 어디든 한 번 주유로 도달할 수 있다. 무엇보다 미국 대통령이 이용하는 헬기로 유명세를 탔다. 기업들은 대부분 조종석 뒷좌석을 360도 회전하도록 개조했다. 삼성은 유로롭터(3대)와 아구스타웨스트랜드(2대)의 헬기를 이용하고 있다. SK그룹은 곧 새로운 헬기를 도입할 예정이다. SK그룹 관계자는 “지난해 국내 한 기업에서 헬기 사고가 있어 우리는 6월께 신기종을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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