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장 후보 경선 때문에 서울과 대구를 자주 오가는 새누리당 한 의원실 보좌관은 “대구 분위기가 참 묘하다. 한마디로 이상 기류”라며 이런 말을 했다.
“동대구역에서 택시를 타면 대부분 선거 이야기를 하는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새누리당 후보보다 김부겸을 이야기하는 기사가 많더라. 8명이나 되는 새누리당 대구시장 예비후보 이름은 잘 모르면서 김부겸이라는 이름은 친숙한 듯 ‘김부겸이가’ ‘부겸이가 말이야’ 하면서. ‘대구가 바뀌려면 미꾸라지를 풀어놔야 한다’느니, ‘그래도 그 친구(김부겸) 대구에서 뼈를 묻겠다는 심정인가 보네’ 하며 허허 웃기도 하더라. ‘여기가 새누리당 텃밭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40.42%. 지난 2012년 19대 총선 당시 대구 수성 갑에서 김부겸 민주당 후보가 거둔 성적표다. 10명 중 4명 이상은 김부겸을 찍었다. 상대는 새누리당 원내대표 출신의 거물급 중진 이한구 의원이었다. 김부겸 후보는 총선 패배 후에도 대구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3월24일 새정치민주연합 대구시장 후보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2008년 18대 총선 때 대구 수성 을에 무소속으로 도전해 “대구에 뼈를 묻겠다”고 했다가 낙선한 뒤 2010년 경기도지사로 출마했던 유시민 전 장관과 대조된다.
김부겸 후보는 대구 지역 곳곳을 다니며 “저는 어르신들이 생각하는 그런 빨갱이가 아닙니다”라고 읍소하고 있다. 신당 출범 이전 민주당을 향한 색깔론·종북론·빨갱이론을 차단하는 ‘통합 행보’다. 김 후보 캠프의 이헌태 대변인은 “대구 식자층 중에서는 아직도 ‘민주당은 빨갱이’라고 손가락질한다. 하지만 ‘김부겸은 이번에 (대구시장에) 돼야 한다’고도 한다. 김 후보가 (당과) 따로 분리된 느낌”이라며 “색깔 전쟁에서 벗어나야만 민생 공약 대결, 시민 행복 대결이 가능하다. 우리는 그것을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이 아닌 ‘김부겸 정책’으로 프레임하겠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3월24일 선거운동 첫 일정으로 ‘국가 수호’의 상징인 대구 앞산 충혼탑을 찾았다. 보통 야권 후보는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며 두류공원 2·28 학생의거기념탑부터 방문했다. 이런 패턴을 그가 깬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김 후보의 입에서 직접 “박정희 컨벤션센터를 건립하겠다”는 공약도 나왔다. 정치권 반응은 한마디로 ‘뜨악’이다. 새누리당 소속 단체장이 있는 대구시는 반겼고, 야권 우호 성향의 시민사회단체는 보수 표심 자극을 위한 쇼라고 비판한다. 김 후보는 청도 새마을운동 발상지,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결혼식을 올렸던 계산성당을 연결하는 관광 상품도 이야기했다. “광주에는 김대중 컨벤션센터가 있는데 왜 대구에는 박정희 컨벤션센터가 없느냐”는 김 후보는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상생과 화해가 필요하다”고 외치고 있다.
김부겸 후보를 향한 대구 정서의 변화 움직임이 심상찮은 데는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대구가 한국 정치의 중심지로 부활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깔렸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전략통으로 알려진 한 관계자는 “김부겸이 (대구에서) 치고 올라오는 것은 여권뿐만 아니라 야권에서도 대구 출신 대권 주자를 키워놓아야 한다는 필요성이 부각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구 출신인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 후보가 대구시장에 당선되거나 아주 선전하면 바로 새정치민주연합의 대권 주자로 급부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이명박·박근혜 5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TK(대구·경북)는 역차별 논란으로 지역 발전을 담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같은 고향에서 여야 지도자가 모두 나올 수 있는 구도가 만들어졌다”며 “하늘이 준 기회다. 우리는 이를 부각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김부겸 후보는 대구에 ‘절반의 인지도’는 확보해놓은 상태다. 한 번 출마했던 수성구에서는 오히려 김 후보가 다른 새누리당 예비후보들과의 일대일 가상대결에서 앞서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화이트칼라층이나 젊은 학부모가 많은 달서구 지역에서도 선전하고 있다. 서구·달성군 등 노년층이 많은 곳에서 인지도 상승 요인을 만들고, 언론 노출을 최대화해 대구 비전을 구체적으로 밝히면 승산이 있다는 분위기도 엿보인다. 김 후보 캠프의 기획·전략 관계자는 “일단 최대한 친절하게 간다. 종편 채널 등 (매체를) 가리지 않고 ‘김부겸의 생각’을 알리고 있다”며 “지금 나와 있는 여야 후보 모두를 합해도 김부겸같이 오랜 기간 대구 발전을 공부한 이가 없다”고 전했다.
여당 “잡아놓은 고기에 먹이 줄 필요 있나”
이런 가운데 새누리당에서는 전·현직 국회의원과 구청장 출신 등 8명의 후보가 경선 컷오프를 두고 고만고만한 싸움을 벌였다. 1,2차 컷오프에서 서상기·조원진 의원과 권영진 전 의원 그리고 이재만 전 구청장 등 4명이 경선 후보가 됐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누구 하나 크게 치고 나와 김 후보를 따돌릴 유력 후보로 조명받지 못하면서 지역에서조차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TK 출신의 새누리당 전략통 인사는 대구 상황에 대해 이런 말을 던졌다. “대구시장은 항상 중앙 정치권으로서는 부담이 없거나 쉽게 대할 수 있는 그런 만만한 사람이 됐다. 그게 대구의 가장 큰 문제였다. 그런데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역 여론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데도 당에서는 여전히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다. 잡아놓은 고기에 먹이를 줄 필요가 있느냐며….”
개혁적 성향을 가진 2030세대와 40대 중 합리적 보수층, 5060세대 중 중도층이 김부겸 후보의 주 타깃이다. 무엇보다 김 후보의 진정성을 엿본 일부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모여든다. SNS의 여론 확장성에 대해선 이미 검증이 끝났다. 페이스북의 ‘김부겸의 파란우체통’은 그야말로 팬 페이지다. 대구라는 고인 물에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이 개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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