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사람 머리 빌리고 짜내 <꽃보다 누나> 왔지요”
  • 정덕현│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4.03.26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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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석·서수민·김용범 등 스타 예능 PD, 집단 창작으로 예능 전성시대 열어

요즘 TV 프로그램의 꽃은 예능 쇼다. 화제나 주목도, 광고 효과 면에서도 여타 프로그램을 압도하고 있다. 예능 쇼가 주목받자 예능 PD도 스타가 됐다. 주목할 만한 것은 최근 성공한 예능 쇼일수록 집단 창작물에 가깝다는 점이다. 예능 스타 PD의 입을 통해 성공한 예능 쇼의 비밀을 들어봤다.

“프로그램을 잘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그것이 누구의 아이디어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게 바로 예능이다.” <1박2일>로 이목을 끌고 <꽃보다 할배> <꽃보다 누나>로 케이블에서조차 무려 10%대의 시청률을 이끌고 있는 나영석 PD는 끝없는 아이디어의 원천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이 말에는 현재의 이른바 스타 예능 PD라고 불리는 이들이 어떻게 탄생했는가에 대한 일단의 단서가 들어 있다. 일종의 겸손이겠지만 나영석 PD는 “나는 겉으로 드러나 있는 것일 뿐 실질적인 숨은 공로자가 예능판에는 늘 넘쳐난다”고 말했다. “교양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같은 경우에는 누가 만들었느냐는 저자 개념이 확실하다. 예능은 다르다. 기획회의 같은 걸 하다 보면 나중에 채택된 아이디어가 도대체 누구 입에서 먼저 나온 것인지 알 수 없게 될 때가 많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 PD든 작가든 자기 지분(?)을 요구하는 이들은 없다고 한다.

ⓒ tvN 제공
나영석 PD의 경우 지금의 자신을 만든 것이 KBS 신입 시절에 만났던 이명한 PD와 이우정 작가를 위시한 무수한 연출자와 작가들이라고 했다. 프로그램 전면에 나서 있는 자신보다 프로그램 뒤편에 서 있는 그들의 생각과 아이디어가 모여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 나 PD가 이른바 스타 예능 PD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이들과의 협업에서 성과를 발휘했다는 얘기가 된다. 누군가와 함께 작업한다는 것, 거기서 시너지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많은 예능 PD가 전하는 최근 예능의 성공 방정식이다.

천재에서 관리자로, 스타 예능 PD 전성시대

<응답하라> 시리즈로 연타석 홈런을 날린 신원호 PD 역시 이 예능 방식을 통해 드라마에서도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사례다. 본래 신원호 PD는 처음부터 드라마를 만들 생각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저 과거 KBS에서 했던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의 경험을 살려 새로운 시트콤을 시도해보려 했었던 것. 그런데 어느 날 송창의 PD가 그에게  드라마 작가를 붙여줄 테니 드라마 한 편 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을 했다. 본래 영화감독 되는 것이 꿈이었던 신 PD는 드라마에 관심이 많았지만 그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 이유는 드라마 작가를 붙이면 자신의 역할이 ‘찍새(?)’에 그치게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아예 새판을 짜서 시도하면 했지 드라마판에 겨우 발을 얹는 그런 일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송창의 PD가 이를 허용하면서 신원호 PD는 이우정 작가를 비롯한 예능 작가로 제작진을 구성해 작업을 했다. “대사 한 줄까지 회의를 통해 썼다”는 얘기는 왜 <응답하라> 시리즈가 남다른 호응을 거둘 수 있었는지를 말해준다. 그 역시 철저히 예능적인 협업을 통해 드라마를 성공시킬 수 있었고 스타 감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협업이 중요해지면서 제작진끼리나 제작진과 출연자 사이의 소통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성공의 관건이 됐다. <꽃보다 할배> 스페인 편에서 나영석 PD는 지금껏 그가 했던 것보다 깊숙이 프로그램에 개입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것은 나 PD가 가진 ‘프로그램은 모두가 함께하는 것’이라는 생각과 무관하지 않다. 찍는 사람 따로 있고 찍히는 사람 따로 있다는 생각을 깬 것은 이미 <1박2일> 시절부터 스태프가 출연자와 게임을 하는 과정을 통해 드러난 바 있다.

<꽃보다 할배>에서 나영석 PD는 아예 한 명의 출연자로서 기능한다. 카메라 안으로 들어와 용돈 지급을 놓고 협상하는 모습을 보이고 때로는 짓궂은 모습으로 짐꾼으로 가는 이서진을 자극하기도 한다. 현장에서 진두지휘하는 게 아니라 아예 프로그램 속으로 뛰어드는 것. 이렇게 하는 이유는 그가 출연자와의 충돌과 소통을 가감 없이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 소통의 과정이 너무나 진솔하기 때문에 때로 벌어지는 마찰도 시청자는 공감할 수 있다.

tvN , tvN , KBS ⓒ tvN·KBS 제공
집단 창작 방식으로 성과물 일궈내

나 PD의 소통 역할론은 회사 같은 집단으로 말하면 일종의 적극적인 조직관리의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이 조직관리의 성공 사례로 스타 예능 PD 반열에 오른 인물이 바로 <개그콘서트>를 정점까지 끌어올리고 한동안 조금씩 사그라지던 <1박2일>의 불씨를 다시 키워내고 있는 서수민 PD다. “<개그콘서트>의 힘은 아이디어도 아이디어지만 시스템에서 나온다.” 서수민 PD의 이 말대로 <개그콘서트>는 무대 개그에 경쟁 시스템을 더하면서 개그의 새로운 전성시대를 만들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해진 것은 그 경쟁 무대에 서 있는 100여 명에 달하는 개그맨을 관리하는 능력이다.

ⓒ KBS 제공
서수민 PD는 이 조직관리에서 발군의 능력을 발휘했다. 일단 너무 많은 인원을 일일이 관리하기란 어렵다고 느낀 서 PD는 <개그콘서트>를 이끌 만한 선배 개그맨들에게 주목했다고 한다. 그가 맡았던 당시 최고 선배는 김준호·박성호·김대희였다. 일단 이 선배들이 바로 서야 후배도 따라올 것이라 믿은 서 PD는 그들이 짜오는 코너를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방식으로 조직을 이끌었다. 그러자 그들과 함께 코너를 하려는 후배가 늘어났고 자연스럽게 선후배가 함께 코너를 만들어가는 분위기가 생겼다는 것.

서수민 PD는 개그맨 각각의 특장점을 분류해 그들을 적재적소에 투입해 코너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를테면 ‘비상대책위원회’는 애초 김원효의 개인기가 코너의 전부였지만 여기에 김준현을 넣어 상황 연기를 되살리고 김준호를 투입해 현실 풍자를 강화하는 식이다. 또한 체계 없는 영세 매니지먼트 회사에 의해 잘나가던 개그맨이 중도에 무너지는 과정을 목도한 서 PD는 김준호에게 후배들을 위한 매니지먼트 회사를 만들어보라고 권유했다고도 한다. 결국 그로 인해 생겨난 것이 현재 김준호가 운영하는 코코엔터테인먼트다. 체계 잡힌 매니지먼트는 당시 <개그콘서트>를 통해 주가를 올리던 김준현 같은 개그맨이 광고계를 접수(?)하는 성과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어찌 보면 개그 프로그램과 조직관리는 상관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아이디어 그 자체보다 훨씬 중요하다.

나영석·신원호·서수민 PD의 사례처럼 스타 예능 PD의 탄생은 성공 프로그램에 힘입었다. 하지만 그 전에 이들은 모두 방송사라는 한 회사의 조직원이라는 점에서 그 안에서의 인간관계 또한 성공의 한 축을 차지한다. 재미있는 점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나는 과거에 일종의 조직 부적응자였다’고 토로한다는 것이다. 나영석 PD는 자신의 신입 PD 시절을 인간관계가 암담한 친화력 제로의 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그를 넘어설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제작 능력이었다. <산장미팅 장미의 전쟁>을 잘 만들어내고 호응을 얻기 시작하자 주위에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였다. 이것은 신원호 PD도 마찬가지다. 숫기 없는 이 남자는 심지어 예능이라는 분야에 대해서조차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공포의 쿵쿵따>가 주목받으면서 차츰 예능의 맛을 느꼈다고 한다. 서수민 PD 역시 당시에는 귀했던(?) 여성 PD로서 적응이 쉽지 않았지만 결국 프로그램의 성공을 통해 이를 이겨냈다고 한다.

이런 제작자형 PD와 달리 프로그램도 잘 만들고 조직에도 잘 적응함으로써 스타 예능 PD가 된 사례도 있다. <슈퍼스타K> <댄싱9> 등을 만든 김용범 PD, tvN을 성공적으로 출범시키고 Mnet을 맡아 <MAMA>를 기획해 CJ에서 유일하게 PD 출신으로 상무직에 오른 신형관 상무가 그들이다.

국내 첫 오디션 프로그램인 <슈퍼스타K>를 만들어낸 김용범 PD는 신입 시절 “PD를 그저 멋있는 직업으로만 알았다”고 회상한다. 대학 시절부터 죽 영상 분야를 준비해온 게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 회사에 들어와 할 수 있는 게 그다지 없었다는 것. 그래서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 투자였다고 한다. 사실상 회사에서 모든 것을 배웠다는 김용범 PD는 상사의 지적을 잔소리가 아니라 조언으로 받아들이고 거기서 나오는 새로운 장단점을 파악해 상사에게 보고하는 방식으로 일을 해나갔다고 한다. 이러한 성실성과 끈기로 <슈퍼스타K> 같은 대형 프로젝트를 맡게 됐다. 프로그램 기획에서 반드시 필요한 소통 또한 그는 처음부터 그다지 잘 해내지는 못했다고 한다. “처음 회의를 하는데 스마트폰 게임을 하는 친구가 있어 눈에 거슬렸다. 화를 내기도 했는데 나중에 결과를 보니 게임을 해도 자기가 할 역할은 다하더라. 일을 하는 방식이 달랐던 것뿐이다.” 중요한 것은 능력도 능력이지만 조직이 인정할 만한 성실성과 배움에 대한 자세라는 것이다.

이를 실제로 보여준 사례가 CJ E&M의 신형관 상무다. 김용범 PD가 가장 존경하는 PD라는 신형관 상무는 평PD에서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단 한 번도 상사의 지시를 거부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는 tvN이 처음 만들어질 때 ‘독한 승부사’ 기질을 발휘한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에는 잘 만드는 것도 중요했지만 보게 만드는 일이 더 중요했다. ‘독하게 일하자’가 회사의 모토였다.” 그렇게 3년 정도 지나면서 tvN은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지상파 콘텐츠를 압도하는 프로그램 퀄리티를 만들어내고 있다. <MAMA> 같은 글로벌 프로젝트가 만들어지기까지는 꽤 오랜 동안의 방송 노하우 축적이 필요했다. “방송사는 나에게 끝없이 공부를 하게 만든 곳이었다.”

스스로가 피규어 마니아인 신형관 상무는 요즘 트렌드에는 마니아적인 열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마니아가 될 수 있다는 것은 그 분야가 그만큼 좋고 매력적이라는 뜻이다. 뭐든 오래 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 분야에서 마니아가 되는 게 성공의 관건이다.” 이것은 최근 프로그램이 보편적 시청층에서 점점 분화돼 자신에게 맞는 최적화된 콘텐츠를 요구하는 대중의 트렌드와도 맞닿아 있다. “대중의 시선은 전문가보다 날카롭다. 그러니 제작자는 항상 그 이상일 필요가 있다.” 그는 이러한 마니아적 열정이 경쟁적인 조직 내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라고 했다.

김용범 PD와 Mnet . ⓒ 시사저널 포토·Mnet제공
천재의 시대 가고 관리자 시대로

바야흐로 스타 예능 PD 전성시대다. 한때 예능 PD는 주목받지도, 대접받지도 못하는 존재였다. 김종학 PD나 이병훈 PD 같은 드라마 PD가 스타로 자리매김할 때도 예능 PD는 늘 뒷전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그래서인지 예능 PD가 되려는 지망생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한때는 방송 PD의 서열이 다큐-드라마-예능 순이었지만 요즘은 그 순서가 거꾸로 돼가고 있다. 이렇게 된 것은 교양의 시대에서 재미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예능이 방송 프로그램의 중심축이 됐기 때문이다. 교양도 예능화되고(리얼리티 프로그램), 드라마도 예능과 손을 잡는 추세(시트콤 같은 드라마, 예능 작가가 쓴 드라마)다. 그래서 예능은 교양과 드라마가 가진 요소를 넉넉히 끌어안는 열린 분야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방송 PD에게 관리자로서의 능력은 어느 분야건 중요한 덕목이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 특히 예능 PD의 조직관리 능력이 주목되는 것은 최근 변해가고 있는 트렌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저자 개념이 점점 사라지고 협업이 하나의 대안으로 자리하는 요즘, 프로그램의 성패는 단지 몇몇 천재의 아이디어에만 달려 있지 않다. 많은 인원이 머리를 함께할수록 더 폭넓은 공감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신원호 PD의 협업 사례가 보여주었다. “흔히들 천재라고 말하지만 사실 천재가 아니라 좀 더 많은 머리와 노력이 모여서 가능했던 것이다.” 신원호 PD의 이 한마디는 방송뿐만 아니라 무수한 아이디어를 요구하는 산업 전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천재의 시대는 가고 관리자의 시대가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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