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자본주의에서 위험한 ‘비즈니스’
  • 김지영 기자 (abc@sisapress.com)
  • 승인 2014.03.26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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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미혼 여성 결혼관 “여자가 잃을 게 너무 많아”

지금까지 여자의 이혼을 다루는 방송 드라마는 많았지만, 두 번의 이혼을 얘기하는 드라마는 없었다. 여자의 이혼은 여전히 사회적 금기인 탓이다. 그런 점에서 SBS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이하 <세결여>)의 부진은 예상된 결과였다. ‘시청률 보증수표’ 김수현 작가도 이번만큼은 애를 먹었다. 그런데 드라마 <세결여>의 뒷심이 무섭다. 초반 10%대에 머무르던 시청률은 최근 16.7%까지 치솟았다. 동시간대 1위다. 8회 연장도 됐다. 주목할 점은 시청률 상승 시점이다. 극 주인공인 오은수(이지아 분)가 두 번째 이혼을 결심할 때 시청률은 정점을 찍었다. 남녀 주인공의 사랑이 뜨거워지면서 드라마 인기가 상승하는 것과는 반대된다.

<세결여> 시청자는 ‘결혼’보다 ‘이혼’에 더 반응한다. 주로 여성 시청자가 그렇다. 시청률 조사 회사 닐슨코리아의 분석에 따르면 <세결여>의 여성 평균 시청률은 남성보다 2배 정도 높다. 이 가운데 2030세대 여성의 평균 시청률은 15.5%로 <세결여> 평균 시청률(12.4%)을 웃돈다. TV를 좀체 보지 않는 2030세대까지 끌어당긴 것이다. 이 점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바로 20~30대 여성의 새로운 연애·결혼관을 엿볼 수 있는 까닭이다. 결혼은 자본주의에서 위험한 ‘비즈니스’다. 능력과 미모를 겸비했음에도 두 번이나 결혼에 실패한 <세결여> 주인공 오은수는 결혼이라는 비즈니스의 위험성을 잘 살린 캐릭터였던 것이다.

ⓒ 일러스트 임성구
동거가 결혼보다 안전하다?

직장생활 7년 차인 연혜진씨(32·가명)는 2년 넘게 사귄 남자친구가 있지만 아직까지 결혼할 생각이 없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취직한 덕에 모아놓은 돈도 1억원이 훌쩍 넘는다. 연소득도 3500만~4000만원대다. 10년 넘게 압구정동 2층 주택에서 살 정도로 집안도 유복하다. 딱히 유별난 독신주의자나 페미니스트도 아니다. 하지만 연씨는 결혼하면 여자가 잃을 게 너무 많다고 믿는다. 특히 출산과 육아를 인생의 무덤이라고 확신한다. 연씨는 “남자친구를 사랑하지만 그와 결혼하는 것은 무섭다”며 “결혼하고 이혼할 수도 있지만 가뜩이나 남성 중심적인 한국 사회에서 ‘돌싱녀’를 누가 곱게 봐주겠느냐”고 말했다. 동거보다 결혼이 훨씬 위험하다는 게 연씨의 생각이다.

박상희씨(24·가명)는 남자친구와 동거 중이다. 박씨의 남자친구는 미국인이다. 남자친구가 사귄 지 1년째 되는 즈음에 동거를 제안했다. 보통 한국 여성들은 “결혼은 사랑의 결실이다”고 믿는다. 하지만 박씨는 그것에 거부감이 든다. 살아보지도 않고 결혼하는 게 더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박씨의 부모는 그가 초등학생 때 이혼을 했다. 엄마·아빠를 보고 결혼이 더 싫어졌다. 박씨는 지금의 남자친구 이전에도 다른 남자와 한 달 정도 동거를 한 적이 있다. 박씨가 처음 동거를 한다고 밝혔을 때 “혼인신고라도 먼저 하라”고 친한 친구는 조언했다. 하지만 기겁한 건 박씨였다. “혼인신고는 하나의 문서에 불과하다. 속을 못 들여다보고, 겉으로만 결혼을 유지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같이 살아보니 나하고 잘 맞는 사람도 더 잘 찾게 됐다.”

연씨와 박씨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다. 현실에서 결혼의 당위성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결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여성도 늘어나고 있다. 고려대 한국사회연구소가 2011년 발표한 보고서 ‘여성의 만혼화와 결혼 의향’을 보면, 평균 결혼 적령기가 지난 29~44세 미혼 여성 750명 가운데 절반이 결혼할 필요가 없다고 응답했다.

실제로 결혼하지 않는 여성도 급증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2012 한국의 성 인지 통계’ 보고서를 보면 25~39세 중 결혼하지 않은 여성의 비율은 2000년 18.3%에서 2010년 35.5%로 치솟았다. 결혼도 하지 않고 애도 낳지 않는 여성이 10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결혼의 목적은 ‘가족’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불공정의 씨앗을 담고 있다. 가족을 뜻하는 영어 단어 family는 라틴어 famulus와 famila에서 유래했다. famulus는 가내 노예를, famila는 한 사람에게 종속된 노예 집단을 뜻한다. 즉 결혼 목적에서 이미 남성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여성의 삶을 내포하고 있다. 결혼 전 능력 있는 남자를 갈망하고, 결혼 후에는 남편의 바람은 한번쯤 못 본 척하고, 사랑받는 며느리가 되기 위해 이를 악물고 가사노동을 인내한다. ‘현모양처 신사임당’이 5만원 지폐에만 살아 있는 게 아니다. 각 가정에 여전히 유효하다. 잘난 남자를 만나기 위한 신데렐라가 결혼 후 신사임당으로 나이 들어갈 뿐, 이 둘의 본질은 같다. 

결혼을 더 무서워지게 하는 세상

자본주의에서 결혼에 대한 여성의 공포심은 더 커진다. 독일 출신 여성학자 마리아 미즈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에서 지적했다. 남성에 비해 임금이 낮은 여성에게 결혼과 자동으로 딸려오는 시댁 부양, 남편의 경제적 무능 등은 호환마마보다 더 두렵다.

국립대학병원에서 일하는 정은영씨(30·가명)는 9급 공무원 남편과 지난해 결혼했다. 남들은 안정된 정씨 부부를 부러워하지만 정씨는 남편과의 결혼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시댁 때문이다. 정씨의 시아버지는 비정규직 경비 일을 하고 있는데 이게 시댁 수입의 전부다. 정씨는 “남편이 장남인데 시부모를 모실 자신이 없어서 신혼집 구할 때도 시댁에 일절 손을 벌리지 않았다”며 “시댁에서 아직까지 돈을 요구한 적은 없지만 혹시나 아프실까 봐 걱정이다”고 솔직한 마음을 토로했다.

서울 마포에 25평대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는 골드미스 장영지씨(40·가명)는 이젠 연하가 싫다. 예전에 연하에게 한번 데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누나라서 처음엔 챙겨줬는데 점점 상대가 경제적으로 의지하는 게 느껴졌다. “너무 부담스러웠다. 직장생활을 하며 내 몸 건사하기도 버거운데 이 친구와 결혼하면 두 배로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이 이기적인 게 아니다. 경제력은 결혼하는 데 필요충분조건이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2013년 발표한 ‘이상적 배우자’ 보고서에서는 경제력이 두 번째로 중요한 결혼 조건에 올랐다. 성격이 중요하다고 응답한 미혼 남녀는 2012년 59.6%에서 2013년 36%로 줄어들었다. 반면 경제력은 2012년 9.3%에서 2013년 14.9%로 증가했다. 전체 한국 사회에서 이혼하는 이유 2위가 경제력이다. 2011년 통계청 자료를 보면, 전체 이혼 건수 12만3999건 중 1위는 성격차이, 2위 경제 문제, 3위 배우자 부정, 4위 가족 간 불화, 5위 정신적·육체적 학대로 나타났다.

이시연씨(31·가명)는 친한 친구를 통해 여성 경제력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이씨의 친구는 지난해 결혼한 지 3년 만에 이혼했다. 친구는 남편이 이혼하자고 했을 때 수면제 한 통을 먹고 응급실에 실려 가고 우울증으로 심리치료를 받았다. 이씨는 “친구가 전업주부였는데 이혼으로 수입이 끊기고 결혼 기간이 길지 않아 위자료도 많이 못 받은 데다 이혼녀 딱지가 붙어 취업도 힘들었다”며 “결혼하면 가사와 일을 함께 하기 어려운데 친구를 보니 결혼하기가 더욱 조심스러워진다”고 말했다.

서울대 여성복지 분야 박사과정에 있는 유자영씨(32)는 “평소 여성학에 관심이 많은 나조차 결혼을 결심할 때는 무서웠다. 진취적이고 당당한 여성 시대라는 사회적 이미지는 결혼을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여성들의 진짜 속마음을 감추기 위한 포장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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