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낳았다고 마을에서 내쫓고 아이 몸에 바늘 집어넣고
  • 모종혁│중국통신원 ()
  • 승인 2014.03.26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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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신 의존 심각한 중국 사회…공직자들은 점쟁이 말 듣고 일 처리

지난해 8월5일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 아동병원에 태어난 지 불과 한 달 반밖에 지나지 않은 여자 아기 인궈궈(殷國國)가 긴급 이송됐다. 심한 경련 증세를 보이는 아이를 검사한 의료진은 체내에서 5cm 길이의 바늘 하나를 찾아내 제거했다. 보름 뒤 인궈궈가 똑같은 증세를 보이자, 가족들은 또 그 병원을 찾았다. 놀랍게도 아기의 간·신장 등에서 무려 3개의 바늘이 발견됐다.

별다른 도구 없이 바늘을 아기 몸에 밀어 넣은 듯한 증세에 주목한 의료진은 수술 후 경찰에 신고했다. 일주일 후 초동수사를 마친 공안 당국은 “범인은 아버지인 인즈허(殷志賀)”라며 “8월4일과 14일, 17일 등 모두 세 차례에 걸쳐 바늘 4개를 딸 아이 몸속에 밀어 넣었다”고 발표했다. 인씨도 이를 인정해 고의 살인 혐의로 구속됐다. 인씨는 경찰 조사에서 “첫 아기가 딸이라 무척 실망했다”며 “아기의 몸에 바늘을 꽂으면 다음에 태어날 아기는 남자 아이가 될 거라는 민간 무술(巫術)을 믿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정부 청사 자리 봐주고 수백만 위안 챙겨”

옛날 중국 동북 3성과 산둥(山東) 일대에는 그와 같은 미신이 만연했다. 중졸 학력에 내성적인 성격의 인씨는 이웃 주민이 알려준 미신에 따라 자신의 딸을 죽음으로 몰고 갈 뻔했던 것이다.

ⓒ 일러스트 김세중
이 엽기적인 사건은 오늘날 중국에 광풍처럼 불고 있는 미신 숭배 풍조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13억 중국인 중 몇몇 개인의 일탈로 치부할 수 있겠지만, 이처럼 어이없는 사건은 해마다 수차례 중국 언론에 등장한다. 지난해 9월 윈난(雲南)성 멍하이(?海) 현 하니(哈尼)족 마을에서 일어난 소동도 그중 하나다. 24세와 22세인 주볜(朱邊)과 장셴어(張仙娥) 부부는 건강한 쌍둥이 남자 아이를 출산했다. 부부가 병원에서 쌍둥이를 품에 안고 산골로 되돌아오자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쌍둥이의 출생은 마을에 흉사를 일으킬 징조라며, 주씨에게 부인과 이혼해 아이들을 포기하거나 부모와의 연을 끊고 외지로 나가라고 강요했던 것. 예부터 하니족은 쌍둥이를 키우지 않는 풍습이 있었다. 20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쌍둥이가 태어나면 바로 죽여버리는 일이 허다했다. 혼이 나뉘어 불길하다는 이유에서다. 주씨 부부는 이웃을 달래기 위해 1만5000위안(약 261만원)이란 거액을 들여 산짐승 10마리를 사서 불에 태우는 의식을 거행했다. 어떻게든 마을 주민들을 설득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자 결국 공안 당국을 찾아가 호소했다. 지방정부의 간섭과 중재로 아내와의 이혼은 피했지만, 지금도 이웃들의 냉대에 시달리고 있다.

이처럼 어이없는 미신 숭배는 일반인들 사이에만 만연한 것이 아니다. 중국의 상당수 공직자들도 사회주의 이념보다는 미신에 의존해 정무를 처리하고 있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장시(江西)성 싱궈(興國) 현 싼랴오(三僚)촌은 성도인 난창(南昌)에서 남쪽으로 300㎞ 떨어져 있지만,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마을 중 하나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싼랴오촌은 중국 칸위(堪?) 문화의 발상지이자 풍수제일촌으로 손꼽힌다. 싼랴오촌 주민 5000여 명 중 3000명은 지관(地官)으로 일한다. 200여 명은 거의 1년 내내 외지로 출장 다니며 돈을 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마을을 찾는 주 고객이 공직자라는 것이다. 올해 76세인 한 지관은 “정부 간부의 초청으로 멀리 상하이·광둥(廣東)·푸젠(福建) 등지로 출장을 가서 정부 청사 설계와 사무실 배치, 정문 위치 등을 봐주고 많게는 수백만 위안을 받는다”고 말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이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지적했다. 후난(湖南)성 창사(長沙) 시의 한 점쟁이는 “주요 고객이 공직자와 기업인인데 점을 쳐주거나 풍수지리로 위치를 조정해주고 3만3000위안(약 674만원)까지 받는다”고 밝혔다. 중국 국가행정대학 위청핑(于程萍) 교수가 전국 현장(縣長)·처장(處長)급 간부 9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미신을 믿지 않는 비율은 47.6%에 불과했다. 절반 이상은 관상·해몽·별자리점·제비뽑기점 등의 점괘를 믿는 것으로 조사됐다

인민일보는 미신을 믿고 신봉하는 관료들의 행태를 고발한 적이 있다. 전통 의식을 빌미로 제사를 지내는 것은 기본이고, 공금을 들여 향을 피우거나 연수를 핑계로 사찰을 찾아 예불을 올리는 공직자가 가장 많았다. 정부 청사를 신축하거나 개축할 때 지관을 부르는 것은 이미 보편화됐다. 이에 그치지 않고 사무실에 부적을 걸거나 청사 바닥에 대형 팔괘(八卦)를 새기는 것도 유행이다.

공직자 미신 숭배, 양회에서 주요 안건 올라

사회주의 사상을 신봉하고 전파해야 할 공직자들이 미신과 기복(祈福)신앙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 전문가들은 비합리적인 관료 시스템과 부패 관료의 보신주의를 꼽고 있다. 중국에서는 열심히 일한 공직자가 인정받기보다는 연줄을 잘 타거나 청탁을 해야 승진할 수 있다. 이런 관시(關係)문화 속에서 인맥을 동원하거나 기복신앙에 기대 살길을 모색한다. 부패한 관료들은 언제 죄가 발각될지 모르는 불안감에 심리적 안정을 찾기 위해 미신에 몰입한다. 인민일보는 “한구이즈(韓桂枝) 헤이룽장성 정협 주석, 충푸쿠이(叢福奎) 허베이(河北)성 부성장 등 부정부패로 옷을 벗은 고위 공직자들이 미신이나 풍수에 빠졌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주간지 ‘남방주말’도 “전통 사상의 부흥이라는 미명 아래 마르크스·레닌보다 귀신을 믿는 공직자가 급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3월13일 폐막한 양회(兩會)에서도 공직자들의 미신 숭배가 주요 안건으로 논의되며 질타가 쏟아졌다. 거젠슝(葛劍雄) 인민정치협상회의 위원은 “정부 예산 가운데 계획비·자문료 등의 항목이 점쟁이나 지관의 수중에 들어가고 풍수공정에 따른 신청사 건립으로 예산과 인력이 낭비되는 일이 허다하다”고 지적했다. 판이핑(樊一平)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는 “과거 풍수는 일정한 과학적 가치가 있었지만 개인의 출세를 위해 풍수와 미신을 맹신하는 것은 공직자 신분에 맞지 않고 풍수를 모독하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중국 정부는 뒤늦게야 미신 타파에 나섰다. 지난해 12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와 국무원은 “최근 미신을 숭배하는 사람이 증가해 호화로운 무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낭비가 심각하다”며 호화 무덤 철폐를 지시했다. 올해 들어서는 공직자가 점이나 운세를 보는 행위를 엄금했다. 당국의 엄격한 단속에 서점 판매대를 점령했던 운세나 풍수 관련 서적이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노력이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다. 퇴치됐던 미신이 개혁·개방 이후 급속히 부활한 데다 관료들이 앞장서 신봉하기 때문이다. 21세기에 부활한 중국인의 미신 사랑, 경제 성장의 붐을 타고 더욱 기승을 부릴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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