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몸 약 믿었다가 더 큰 고생 한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4.03.18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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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인 치료제 될 수 없어…치주염, 당뇨·뇌졸중·암 발병과 연관성

직장인 박상돈씨(48)는 찬물을 마시다가 이가 참기 어려울 정도로 시려 치과를 찾았다. 충치는 없었지만 잇몸이 부었고 잇몸 색깔도 분홍빛이 아니라 검게 변했다. 전형적인 잇몸 질환인 치주염으로 진단받았다.

대한치주과학회가 몇 해 전 일반 시민들을 상대로 설문조사와 잇몸 진단을 해봤더니, 자신은 증상을 느끼지 못하지만 잇몸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10명 가운데 5명 이상으로 나타났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조사에 따르면 20세 이상은 50%, 35세 이상은 70%, 40세 이후는 80% 이상이 잇몸 질환에 걸린 상태로 밝혀졌다.

김태일 서울대 치과병원 치주과 교수는 “예전보다 칫솔질도 잘하고 구강 위생에 신경 쓰는 사람이 많아졌지만 잇몸 질환이 늘어나는 이유는 사람 수명이 길어졌기 때문”이라며 “잇몸 질환도 다른 성인병처럼 궤를 같이해 증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치과 질환은 치아가 썩는 충치와 잇몸에 문제가 생기는 잇몸 질환으로 나눌 수 있다. 잇몸 질환은 또 치은염과 치주염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치은염은 잇몸 표면에 염증이 생긴 것이고 치주염은 잇몸은 물론 치아 뿌리를 붙잡고 있는 잇몸 뼈(치조골), 치아와 잇몸 뼈를 연결하는 얇은 끈(치주 인대)에도 이상이 생긴 상태다.

치주염 치료 목적은 세균 제거

두 가지 모두 치태가 직접적인 원인이다. 음식물 찌꺼기와 입속 세균이 섞이면서 치태를 만든다. 사람 입안에는 300여 종의 세균 1억 마리 이상이 존재한다. 칫솔질로 대부분 제거되지만 칫솔이 닿지 않는 부위에는 치태가 낀다. 예를 들어 치아와 치아 사이의 잇몸에 치태가 끼면 칫솔질도 효과가 없다. 또 사람마다 자신만의 습관대로 치아를 닦으므로 평생 닦지 않는 부위가 생길 수 있고 그 부위에 치태가 잘 생긴다.

치태가 쌓이면 딱딱한 치석이 된다. 치석은 치아와 잇몸 사이의 틈인 치주낭에 자리 잡는다. 이 과정이 반복될수록 치아와 잇몸 사이가 벌어지고 치아와 치아의 간격도 벌어진다. 그래서 한방에서는 치주염을 치아 사이로 바람이 숭숭 분다는 풍치(風齒)라고 표현한다.

정상 치주낭의 깊이는 3㎜다. 치주염이 진행되면 그 깊이가 6㎜까지 깊어지는데, 이때는 잇몸 뼈가 녹아내린 경우가 많아 치아를 뽑을 수밖에 없다. 치과에 가면 의사가 치주낭 깊이를 잰다. 육안으로는 잇몸이 건강하게 보이지만 치주낭에 이쑤시개와 같은 기구(치주낭 탐침기)를 가볍게 삽입하면 피나 고름이 나오는 경우가 흔하다. 출혈이나 고름이 나오는 증상은 잇몸 안쪽에 염증이 있다는 신호다. 방사선 촬영, 특수 현미경 등으로 치주염 진행 정도를 확인하기도 한다.

문제는 치석에 있는 세균이다. 이 세균은 치주낭을 통해 잇몸으로 침투해 염증을 일으킨다. 잇몸 표면에만 염증이 생긴 경우(치은염)라면 스케일링으로 치석을 제거하고 양치질만 잘하면 문제가 없다. 잇몸 뼈가 상하지 않았으므로 치아를 사용할 수 있다.

염증이 잇몸 뼈까지 진행한 상태(치주염)라면 염증으로 고름이 생기고, 심하면 이가 흔들리다가 저절로 빠지기도 한다. 이미 골격 구조에 변화가 생기고 잇몸이 내려앉은 경우가 많아서 100% 완치가 불가능하다. 김 교수는 “치태와 치석 1g에는 수억 마리의 세균이 들어 있다”며 “세균이 잇몸 안쪽으로 파고들어 염증을 일으키며 잇몸, 잇몸 뼈, 치아와 잇몸 뼈를 연결하는 치주인대를 녹인다”고 설명했다.

치주염 치료의 목적은 세균을 제거하는 것이다. 세균을 제거하는 방법에는 물리적 치료와 약을 사용하는 화학적 치료가 있다. 물리적 치료가 주된 방법이고 약이나 가글 등을 이용한 화학적 치료는 부가적인 방법이다. 물리적 치료의 첫 단계는 스케일링(치석 제거술)이다. 한번 생긴 치태나 치석은 칫솔질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치주염이 잇몸 아래까지 진행된 경우에는 잇몸을 부분 마취한 후 조직을 긁어내고 잇몸 속에 낀 치석까지 제거하는 치료가 필요하다.

스케일링 치료를 받은 뒤에 치아가 더 나빠졌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가 시리거나 흔들리기도 하는데 염증이 가라앉으면서 잇몸이 치료받기 전보다 내려간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방은경 이대목동병원 치주과 교수는 “이런 불편감 때문에 스케일링 치료를 받지 않으면 입안에 치태 세균을 키우는 것”이라며 “치주염이 더욱 심해져서 치아를 잃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치주염이 진행될수록 치아를 잡아주는 주변 조직(잇몸 뼈와 치주인대 등)이 많이 파괴된다. 처음에는 크게 아프지 않지만 증상을 느껴 병원에 갈 정도면 이미 잇몸 뼈가 많이 없어진 상태다. 치주염이 심한 경우에는 스케일링만으로는 효과가 없어서 수술 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다. 예컨대 녹아내린 잇몸 뼈를 제거하고 인공 뼈를 이식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전의 건강했던 상태로 되돌릴 수는 없다. 치아를 뽑았다면 치아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인공 치아(임플란트)를 잇몸 뼈에 심는 치료가 필요하다.

10여 년 전에는 성장 인자를 이용한 치료법도 나왔다. 성장 인자는 뼈 조직 내의 줄기세포를 자극해 뼈 조직이 신생아 때처럼 활발히 생성되도록 한다. 김 교수는 “앞으로 5년 내에는 3D(3차원) 프린팅을 이용해 지금보다 정교한 치료가 가능해질 전망”이라며 “로봇을 이용한 치료도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잇몸 세균이 당뇨 악화시킨다”

시중에서 잇몸 약을 사서 먹는 사람이 많다. 이와 같은 약을 먹으면 출혈이나 염증이 가라앉는다. 그러나 치주염의 원인균을 제거하는 것은 아니므로 근본적인 치료제가 될 수는 없다. 약을 먹고 증상이 가라앉으니 치과 치료를 받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게 문제다. 치주염이 심해서 잇몸 뼈가 없어지고 치아도 빠지면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 또 잇몸 뼈를 추가로 이식해야 하므로 시간과 비용 부담이 커지고 치료도 복잡하고 어려워진다.

치주염을 방치하면 안 되는 더 큰 이유가 있다. 잇몸 질환은 전신 질환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증거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치아와 잇몸은 혈관과 맞닿아 있어 잇몸 틈새로 세균과 염증 물질이 침투하면 곧바로 혈관을 따라 온몸으로 이동해 전신  질환을 일으킨다. 이 세균이 당뇨를 악화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가 하면, 심장 질환과 폐렴을 일으킨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세균과 염증 물질로 혈관 내벽이 손상을 입으면서 혈관이 부풀어 오르거나 막히는 증상이 생겨 동맥경화의 원인이 된다는 연구 결과는 이미 학계에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이 세균이 뇌로 이동해 뇌혈관을 손상시켜 뇌졸중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는 충격적이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2008년 삼성서울병원 김영호 교수팀이 연구해보니, 치주염 등으로 치아를 많이 잃을수록 뇌졸중에 걸릴 확률이 높게 나타났다. 심지어 치매 환자의 뇌에서 치주염 세균이 많이 발견되기도 했다. 미국 연구팀은 실제로 치주염이 알츠하이머 질환 발병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결과를 장기간의 실험 끝에 발표한 바 있다.

ⓒ 일러스트 정현철
치주염 예방·치료는 전신질환 예방하는 길

치주염으로 생긴 염증 물질이 암 유발과 관련 있다는 연구 결과도 속속 전해지고 있다. 미국 로스웰파크 암연구소가 1999~2005년 266명의 두경부암 환자를 조사한 결과 암세포가 자라는 것과 잇몸 뼈 손실이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하버드 대학 연구팀도 1986~2002년 40~75세 남녀 4만8000명을 대상으로 연구했더니, 잇몸 질환 환자는 췌장암 발병 위험이 일반인보다 63%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방 교수는 “치주염이 생겼을 때 발생하는 염증성 인자들에 의해 암이 발생하고 가속화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덧붙였다.

치주염 예방과 치료는 단순히 치아 손실을 막는 정도를 넘어 전신 질환을 예방하는 방법으로 통한다. 일반인에게는 치주염에 걸리지 않도록 노력하는 생활습관이 필요하다. 칫솔 외에 치간 칫솔, 치실을 사용해야 하고, 이쑤시개는 치아 사이를 벌어지게 하고 잇몸 조직을 약하게 만들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칫솔질을 할 때는 약 3분에 걸쳐 하되 특히 치태가 잘 생기는 치아와 잇몸이 닿는 부위를 세심하게 닦아야 한다. 양치 후 혀와 입천장을 청소하는 순서로 마무리하면 좋다. 특히 혀는 주름이 있어서 세균이 증식하기 좋은 환경이다. 구강 세포, 세균, 음식 찌꺼기 등이 엉겨 붙어 설태(하얀 막)가 낀다. 입을 크게 벌리고 혀를 길게 내밀어 혀뿌리 쪽에 칫솔 뒷부분에 있는 혀 세정기를 살짝 올린 후 짧고 가볍게 3~5회 혀 앞쪽으로 쓸어내리듯이 닦는다. 반사적인 구역질이 나면 1~2초 정도 멈춘 후 다시 닦는다.

칫솔질은 치석이 쌓이는 시기를 늦출 수 있지만, 치석이 쌓이는 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따라서 정기적인 스케일링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다. 그 효과는 3~6개월이므로 1년에 적어도 2회 스케일링을 하라는 것이 치과 의사들의 권고다.

김 교수는 “바쁜 현대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흡연·음주·스트레스가 늘어 젊은 사람들 사이에 치주염 환자가 증가하고 있다”며 “이런 것들이 치주염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세균에 대한 몸 저항력을 떨어뜨려 세균이 활동하기 좋은 환경이 된다”고 강조했다.

 

치주염 의심 증상은?  

● 칫솔질할 때 잇몸에서 피가 난다

● 잇몸 색이 벌겋게 변하고, 부은 느낌이 들거나 건드리면 아프다

● 잇몸이 치아와 뜬 느낌이 든다

● 입냄새가 계속된다

● 치아와 잇몸 사이로 고름이 나온다

● 치아가 흔들리는 느낌이 든다

● 씹을 때마다 치아 위치가 변하는 느낌이 든다

● 이 사이가 점점 벌어진다

자료: 서울대치과병원 치주과, 이대목동병원 치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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