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시하고 뜨겁지만, 건강하고 유쾌하다”
  • 조철│문화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3.18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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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주인 되는 법 담은 에세이 펴낸 뮤지컬 감독 박칼린

“본능을 건강하게 건드리는 성인 공연이 한국에는 없어서 기획한 것이다. 단, 이번 공연은 성인 여성만을 위한 공연이다.”

뮤지컬 감독 박칼린(47)이 국내 최초로 성인 여성 관객만을 위한 공연 <미스터 쇼>를 무대에 올리며 입장을 밝혔다. 여성들의 숨겨진 본능을 자극하겠다는 이 공연은 3월27일부터 석 달 동안 국내 무대를 달굴 예정이다.

‘남성은 입장 불가’라는데 무슨 사연이 있는 건 아닐까 궁금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페미니즘이라든가 내가 여성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공연의 색깔을 분명히 하다 보니 여성을 위한 성인 쇼가 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성 감독이 여성을 위해 마음속 깊숙이 감춰둔 판타지를 거침없이 분출할 섹시 버라이어티 공연을 만들었는데, 공연의 기획 의도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박 감독이 최근 펴낸 에세이집 <사는 동안 멋지게>가 이번 공연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이 책의 주제가 ‘내 삶의 주인 되기’이기 때문이다.

ⓒ 김성영 제공
사람들 속에 있되 나만의 시간 갖는다

박 감독은 책을 통해 자신의 취미가 ‘퍼즐 맞추기’라고 밝혔다. 퍼즐이란 낱말·도형 등 작은 조각으로 나뉘어 있는 것들의 아귀를 맞춰 원래의 그림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는 우리의 삶 역시 퍼즐 맞추기와 같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의 머릿속에도 수많은 퍼즐 조각이 들어차 있다. 이것은 단순히 내일 할 일일 수도 있고, 어떤 프로젝트에 대한 도전 과제일 수도 있고, 어쩌면 인생의 비밀을 푸는 열쇠일 수도 있다. 각각의 퍼즐 조각은 산란하지만 끝내 하나로 모아지고 그의 삶 순간순간을 비추는 하나의 그림으로 탄생한다.

“그렇게 조금씩 맞춰져가는 나의 퍼즐은 아주 작은 세계로 탄생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퍼즐들이 작다는 걸 생각하면 그 또한 나름대로 즐거운 일이다. 그만큼 자리를 찾지 못한 퍼즐 조각들이 많다는 뜻이니까. 풀릴 만하면 어디선가 나타나는 새로운 퍼즐 조각. 어쩌면 내 삶과 일상은 퍼즐 맞추기로 연결돼 있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사는 동안 멋지게>는 그 퍼즐 조각이 만들어낸 그림 중 하나다. 박칼린이 소개하는 잘 먹는 법, 잘 웃는 법, 잘 쉬는 법, 잘 화내는 법이 각각 하나의 퍼즐이다. 이 퍼즐에는 좀 더 건강하고 에너지 넘치는 삶의 주인이 되는 법이 담겨 있다. 이번 공연 <미스터 쇼> 또한 하나의 퍼즐인 셈이다.

 박 감독은 “어쩔 수 없이 몸 안에 쌓이는 스트레스를 잘 풀고 해독해냄으로써 앞으로 살아갈 원동력을 얻고, 사람 사이에서 이리저리 상처받고 부대끼는 와중에 나를 지켜내며 세상에 우뚝 서게 된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여러 조각의 퍼즐 중 특히 ‘사람들 속에 함께 있기, 그러면서도 나만의 시간 가지기’를 강조한다. 이는 박 감독이 여러 자리에서 누차 강조해온 말이다. ‘함께하기’와 ‘혼자 있기’ 어느 한곳에 치우쳐 매몰되어서도 안 된다고 말하는 그의 삶 역시 혼자 하는 일과 함께하는 일이 공존한다. 예컨대 혼자 요리하는 일이 취미인 여자가 혼자 요리하기 위한 ‘2박 3일’을 만들지만 결국 요리란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고 나누어 먹는 일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함께하되 혼자만의 공간을 갖는 법. 그것이 박 감독이 말하는 ‘내 삶의 주인 되기’인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어떤 문제나 상처를 한 가지씩 가지고 있다. 힘겨운 시기나 좋은 일들을 맞이하기 위해 내면에 단단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혼자서 생각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고요한 시간. 그건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공간에서 하루 종일 있었던 일들과 앞으로 일어날 일들, 그리고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순서대로 줄 세워놓고 또 새로운 것을 꾸미는 시간이다. 이건 다른 사람들과는 절대로 함께할 수 없는 보물과도 같은 일이다.”

자신의 그림 완성해가는 게 인생

박 감독의 에너지 넘치는 모습 이면에는 깊고도 그윽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고요한 시간이 있었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퍼즐 조각을 만들고 그 조각을 맞추었다 풀었다 다시 맞추는 삶. 그렇게 고민하고 사유하며 그의 단단한 시선은 완성되어갔다. 살아가는 데는 ‘왜’라는 근원적인 물음이 필요했고, 그 물음의 답을 찾고 스스로의 그림을 완성해가는 과정이 곧 삶이었다. 사는 동안 멋지게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에서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박 감독이 ‘더 이상 보여줄 게 없어서 저런 것까지 한다’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를 공연을 올리면서도 주위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한 것은 그의 실력을 믿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삶을 대하는 태도가 일관되기 때문이다.

“어느 한순간이 다른 한순간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다. 나는 열심히, 즐겁게, 어쩌면 그게 전부일 수도 있는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런 태도가 봄을 여는 이번 공연인 <미스터 쇼>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이 나라 여성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에서도 그걸 느낄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본능에 대한 이야기를 부끄러워하고, 여성의 경우는 특히 더 그렇다. 여성은 으레 아이와 가정을 지켜야 하는 존재로 국한되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즐기고 표현하는 데 더 익숙하지 못한 것 같다. 여성들이 내숭을 떨어야 하는 상황도 우습다. 그래서 여성들이 건전하고 솔직하고 신나게 욕망에 반응할 수 있는 쇼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미스터 쇼>에는 ‘식스팩’을 자랑하는 키 크고 잘생긴 남성 엔터테이너 9명이 출연해 다양한 춤과 입담, 연기 등을 선보인다. ‘성인 쇼’인 만큼 노출도 어느 정도 가미했다고 한다. “숨겨진 욕망을 잘 활용하면 오히려 더 밝고 건전한 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 이 쇼는 섹시하고 뜨겁지만, 너무도 건강하고 유쾌하며 깨끗한 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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