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칼부림 대륙이 공포에 빠지다
  • 모종혁│중국 통신원 ()
  • 승인 2014.03.1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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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족과의 경제 격차로 참극 빚은 위구르 분리독립운동

3월1일 밤, 중국 서남부 윈난(雲南)성의 수도 쿤밍(昆明) 시 남쪽에 위치한 기차역. 역 광장과 1층 매표소에서 검은색 옷에 부르카 복면을 쓴 8명이 갑자기 자루에서 50~80cm 정도의 긴 칼을 꺼내들어 주변 사람들을 베기 시작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칼을 휘두른 이들로 인해 기차역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순식간에 광장의 쉼터 천막과 매표소에는 선혈이 낭자했다.

수많은 여행객이 가방과 짐을 내팽개친 채 역 밖으로 도망쳤다. 경찰 몇몇이 곤봉을 들고 저항했지만 곧 칼에 베였다. 복면인들은 광장과 매표소를 오가며 칼부림을 계속하다가 출동한 특수경찰(特警)에 의해 겨우 진압됐다. 특경은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복면인들에게 반자동 소총을 난사해 4명을 사살하고 1명을 부상 입혔다. 나머지 3명은 현장에서 도망쳤다.

3월1일 중국 쿤밍 철도역에서의 칼부림 난동으로 최소 29명이 숨지고 143명이 부상한 가운데 한 여성이 울부짖으며 전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불과 12분간의 칼부림으로 29명이 숨지고 143명이 다쳤다(3월6일 현재). 중상자 73명 중 20여 명은 생명이 위독해 사망자 수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중국 경찰은 달아난 복면인을 뒤쫓아 3월3일 3명의 용의자를 검거했다. 4일 공안 당국은 “이번 테러가 위구르족 분리독립 세력의 한 분파인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ETIM)이 저지른 조직적인 범행”이라며 “용의자들은 훈련받은 전문가들이며 그중 2명은 여성”이라고 밝혔다.

“위구르인은 암적 존재” 반감 위험수위

이번 사건은 중국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양회(兩會) 개막을 이틀 앞두고 벌어져 충격파는 더욱 컸다. 3월3일 베이징에서 열린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개막식은 평소와 달리 무거운 분위기에서 열렸다.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전원이 참석한 자리에서 정협 위원들은 국가를 부른 후 희생자의 명복을 빌며 묵념했다. 정협 개막식에서 참석자들이 묵념한 것은 1997년 2월 세상을 떠난 덩샤오핑(鄧小平)을 추모하는 의식 이래 처음이다. 중국 정부는 사건 발생 후 치안 최고 책임자인 중앙정법위원회 멍젠주(孟建柱) 서기와 궈성쿤(郭聲琨) 공안부장을 현장에 급파해 수사를 지휘토록 했다. 전국 공항·기차역·터미널·광장의 경계 등급을 격상하는 등 검문검색도 강화했다. 사건이 일어난 이후 쿤밍 시는 반(半)계엄 상황으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특히 위구르인들이 많이 사는 다수잉(大樹營)에는 특경과 무장경찰이 대규모 배치됐다.

쿤밍뿐만 아니라 중국 전역의 위구르인 거주지와 신장(新疆)자치구에서는 공안 순찰이 강화됐다. 위구르인이 3명 이상 몰려다닐 경우 가차 없는 검문과 몸수색이 이뤄졌다. 무엇보다 위구르인의 경제 활동이 크게 위축됐다. 다수잉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위구르인은 홍콩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건 발생 전 가게에 오는 손님 대다수가 한족(漢族)이었지만 지금은 발길이 뚝 끊겼다”며 “위구르인을 적대시하는 분위기가 오래갈 듯싶다”고 말했다.

실제 중국인들 사이에는 반(反)위구르 감정이 고조되고 있다. 희생자들이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거나 선혈이 낭자하고 가방이 흩어진 기차역 현장 사진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끊임없이 전송되고 있다. 3월3일 저녁 광시(廣西) 자치구 구이린(桂林) 시에서는 위구르인 2명이 도로를 지나가던 승용차를 세워 여성 운전자를 흉기로 찌르고 승용차를 탈취하는 사건이 벌어졌다는 소식이 떠돌면서 감정은 더욱 격화됐다. 중국 SNS와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위구르인은 테러리스트이자 인간쓰레기’ ‘중국의 평화를 해치는 암적 존재’라는 글이 난무하고 있다. 위구르인의 피부·종교·천성 등을 비하하는 인종차별적인 글도 올라오고 있다. 다른 한편에는 이번 사건으로 희생된 사망자들의 명복을 비는 글이 채워지고 있다. 쿤밍과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 시에서는 희생자를 애도하는 촛불 집회가 열렸다.

중국인들이 받은 충격이 어느 때보다 큰 이유는 이번 사건이 신장 자치구와 전혀 무관한 윈난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윈난은 우리에게 차마고도와 푸얼(普?)차로 잘 알려진 중국 최고의 관광지다. 해발 76m에서 6740m까지 큰 표고차를 지녀 다양한 기후와 자연을 경험할 수 있다. 오직 윈난에만 사는 소수민족이 15개에 달할 정도로 소수민족의 천국이다. 쿤밍은 사시사철 봄과 같은 도시다. 해발이 1890m에 달해 연평균 기온이 15도에 불과하다. 유명 관광지가 많고 혹서와 혹한이 없어 국내외 관광객이 연중 몰린다. 중국 내 전문가들은 ETIM이 이런 쿤밍만의 조건을 이용해 테러를 벌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중국사회과학원 쉬젠잉(許建英) 연구원은 “쿤밍은 베이징·상하이 등 대도시에 비해 통제가 엄격하지 않아 테러를 감행하기 쉽다”고 말했다. 인줘(尹卓) 해군 소장은 “윈난은 관광지라서 외지인이 많은 데다 이전에 테러 사건이 발생한 적이 없는 점도 고려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과 연계

문제는 분리독립운동에 참여하는 위구르인들이 늘어나고 저항강도도 강력해졌다는 점이다. 중국 공안 당국은 위구르 분리독립 세력의 규모가 5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2005년 이래 분리독립 도모 혐의로 체포된 위구르인만 1만8000명에 달한다. 특히 신장에서는 위구르인 민가에 대한 불시 수색이 강화되면서 유혈 충돌이 더욱 늘어나는 양상이다.

일부 분리독립 조직은 신장의 경찰과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공격에서 중국 전역으로 무차별 테러를 확산하고 있다. 또한 신장과 인접한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카자흐스탄 등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과 연계를 긴밀히 하고 있다. 중국 공안 당국은 ETIM이 해외 알카에다 기지에 조직원을 보내 훈련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말 투르키스탄 이슬람당이라는 단체는 인터넷을 통해 “톈안먼 사건은 지하드(성전)였다”면서 “위구르 전사들이 공산당 회의 장소인 인민대회당을 공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 정부도 강경 일변도로 맞대응하고 있다. 지난 1월 누얼 바이커리(努爾白克力) 신장 자치구 주석은 신년사에서 “테러 범죄를 매섭게 타격하겠다”며 “불법 종교 활동도 법에 따라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뒤이어 무장경찰은 위구르인 거주지에 있는 종교·문화시설을 급습해 휴대전화, 컴퓨터, 종교 책자 등을 압수했다. 같은 달 16일에는 저명한 경제학자로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중앙민족대학 일함 토티 교수를 체포했다.

그러나 뜻있는 중국 지식인들은 깊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홍콩 링난(嶺南) 대학 한샤오룽(韓孝榮) 교수는 “위구르인의 불만은 경제적으로 한족과 평등하지 않은 데서 출발한다”며 “정부가 대화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저명한 언론인 리다퉁(李大同)도 “원주민인 위구르족의 생활수준이 외지에서 유입된 한족보다 크게 뒤떨어져 있다”며 중국 정부가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했다.

해외 이슬람 근본주의 조직과 연계된 분리독립 세력의 존재를 부정하기 어렵지만, 1000만 위구르인 중 극소수에 불과하다. 중국 정부가 한족의 대량 이주와 위구르인의 문화·종교·풍습 등을 억압하는 정책을 버리고 소통을 강화하는 것만이 문제 해결의 지름길이라고 많은 전문가가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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