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 갈등에 애꿎은 국민 머리 아프다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4.03.1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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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 14년 만에 총파업 돌입…정부, 형사처벌 등 강경 대응

의사들이 총파업에 돌입했다. 지난 2000년 의약 분업 사태 이후 14년 만이다. 그때처럼 또 한 번 ‘의료 대란’이 오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의사들이 어떠한 이유에서든 일손을 놓게 되면 애꿎은 환자들만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정부의 대응은 강경하다. 보건복지부는 “의사협회의 집단 휴진은 불법적인 행위”라며 “참여한 의료인과 의료기관은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은 상태다.

의사협회는 3월10일 하루 파업을 한 뒤 11~23일은 정상 근무를 하고 24~29일에 전면 파업에 나서기로 했다. 파업을 계속 이어갈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징검다리 파업’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의료계 내부에서도 이견이 나오는 상황이라 의약 분업 사태 때처럼 파업에 힘이 실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렇다면 의사들의 총파업이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치면 모든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되는 것일까. 이번 사태를 의료계의 ‘밥그릇 싸움’으로만 여긴다면 그렇게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파업에 이르게 한 원인 제공을 정부가 했다는 점에서 의사협회가 반대하고 있는 정부 정책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한의사협회 사무실에 의사들의 주장이 담긴 포스터가 붙어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쟁점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원격 진료’가 있다. 병원에 직접 가지 않고도 인터넷 등을 이용해 진료나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 서비스다. 정부는 도서·벽지에 사는 환자들의 의료 접근성이 향상될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의사협회는 오진을 할 가능성이 큰 만큼 안전성에 대한 검증 절차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다음으로 ‘의료법인의 영리 자회사 설립’이 있다. 의료법인이 자회사를 만들어 부대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의사협회는 영리 병원을 편법으로 허용하는 조치로서 ‘의료 민영화’로 가는 수순이라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정부는 병원의 경영 효율성과 수익성 확보를 위한 방안으로 의료 민영화와는 무관하다고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건강보험 제도 개혁’이 있다. 우선 ‘건강보험 수가 인상’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의사협회는 건강보험 수가를 정상화하는 것은 환자의 부담을 줄이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정부는 수가 조정의 경우 고려할 사항이 여러 가지라며 한 발짝 물러난 상태다. 시사저널은 파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노환규 대한의사협회장과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 주무 국장인 권덕철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을 통해 이번 파업의 쟁점을 따져봤다.

 

노환규 대한의사협회장 ⓒ 시사저널 이종현
노환규 대한의사협회장

"정부는 거짓말 말고 진정성 갖고 나서라"

노환규 대한의사협회장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우리가 먼저 요구해서 생긴 일이 아니다. 정부가 잘못된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시작된 것이다”고 밝혔다. 노 회장은 3월5일 시사저널과 가진 인터뷰에서 ‘의사협회가 합의를 깼다’는 정부의 주장에 대해 “협상을 시작할 때부터 협상 결과물에 대해 회원 투표를 갖고 총파업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 조건이었다. 다 알고 있으면서 딴소리를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보건복지부는 의사협회가 파업 결정을 내리자 “정부와 의사협회가 의료발전협의회를 구성해 도출한 협의 결과를 부정하는 것이다”고 몰아세웠다. 노 회장은 “정부가 국민을 속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합의가 안 됐는데 됐다고 했다. 정부가 더는 기만하지 말고 진정성을 갖고 임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원격 진료를 시행하면 도서·벽지에 사는 환자들의 의료 접근성이 향상될 것이라고 말한다. 단순히 약 처방전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는 환자 입장에서도 더 편리해지는 것 아닌가.

섬에 있는 환자가 원격 진료를 통해 처방전을 받았다고 치자. 그 다음에는 배를 타고 나가서 약을 사 와야 한다. 약국은 보통 병원 옆에 있다. 그런 만큼 실효성이 없다. 알면서 거짓말하는 것이다. 또 정부가 말하는 원격 진료라는 게 화상을 통해 하는 것만이 아니라 채팅이나 이메일로도 가능하다. 그렇게 해서 오진이 생기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피해는 환자 몫이다. 책임은 의사가 져야 한다. 당연히 안전한지에 대한 검증을 해야 하는데 정부는 법부터 먼저 만들자고 한다.

정부에서는 ‘의료 민영화는 있을 수 없다’고 말하는데 왜 의료 민영화 문제를 계속 거론하고 있나.

의료 민영화 얘기를 처음 꺼낸 게 현오석 부총리다. 현 부총리가 지난해 8월 중국에서도 영리 병원을 하고 있는데 우리도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했다. 민영화에 대한 국민의 저항이 크니까 아니라고 하는데 차라리 의료 민영화를 하자고 말하는 게 더 솔직하다.

건강보험 수가를 인상하면 건강보험료가 올라 결국 국민 부담이 커지는 것 아닌가.

보험 수가라고 하면 환자가 내는 의료비로 아는데 그렇지 않다. 물론 본인 부담률이 포함되지만 정확히 하면 건강보험공단이 내는 비용이다. 그런데 공단에서 적게 내면 결과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환자가 지불하게 된다. 그게 비급여다. 100% 환자 부담이다. 의료비를 내느라 재정 파탄에 빠지는 가구 발생률을 ‘재난적 의료비 발생률’이라고 하는데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에서 한국이 1위다. 최근 세 모녀 자살 사건도 의료비를 내느라 재정이 파탄 나서 생긴 일이다. 그래서 건강보험 이외에 민간 보험까지 이중으로 가입할 수밖에 없다. 민간 보험은 사업비가 건강보험에 비해 7배 이상 많이 든다. 가입한 국민이 그만큼 손해를 보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그대로 두는 이유는 보험료를 세금처럼 거두니까 조금만 걷는 것처럼 생색을 내려는 것이다. 정부가 환자를 속이고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수가 인상은 그냥 올리자는 게 아니라 민간 보험으로 이중 지출되는 것을 건강보험 쪽으로 돌리자는 것이다.

최근 정부가 비급여 부문 개선안을 내놓지 않았나.

비급여 부문을 급여화해서 국민 부담을 줄인다는 큰 방향은 맞다고 본다. 그런데 정부 안대로 가면 민간 보험사가 제일 큰 수혜자가 될 것이다. 지출이 감소하니까 이익이 올라갈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얘기가 없다.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한 계획도 발표하지 않았다. 현재 건강보험공단에 10조원의 돈이 쌓여 있는데, 경제 불황으로 환자가 병원에 가지 않아서 생긴 일시적 현상이다. 이 돈을 가지고 선시행하겠다는 것인데, 그렇게 졸속으로 시행하면 환자만 희생된다.

이번 사태를 의사들의 ‘밥그릇 싸움’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밥그릇 싸움이면 영리 자회사 설립에 찬성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정부가 그쪽(밥그릇 싸움)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번만큼 의사들이 국민 편에서 목소리를 낸 적이 없다.

그렇다고 해도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의사들이 파업까지 해야 하나.

제도가 하나 바뀌면 모든 환자에게 영향을 미친다. 원격 진료가 시행되면 얼마나 많은 오진 피해를 입겠나. 영리 병원이 돈 벌려고 과잉 진료를 해서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겠나. 제도는 길이다. 한번 만들면 바꾸기 어렵다. 파업을 통해 잘못된 제도를 막을 수 있다면 의사들이 잠깐 욕먹어도 어쩔 수 없다고 본다.

의사협회 내에서도 파업에 대한 이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당연히 있다. 의사들이 파업을 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결정이다. 직업윤리와도 부딪친다. 또 정부로부터 보복당할 수도 있다. 세무조사도 그중 하나다. 그래서 의료계 리더급에서 이견이 나온다고 본다.

의료 대란이 일어나면 의사들의 입지가 더 좁아질 수도 있지 않나.

정부를 이해할 수가 없다. 의료 대란을 막으려면 모든 보건의료단체가 반대하는 일에 대해 신중하게 대처하겠다고 하면 된다. 국민의 생명이 중요한가, 대통령의 지시가 중요한가.

 

권덕철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 ⓒ 보건복지부 제공
권덕철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

"의사협회가 협의 결과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의사협회 집단 휴진 결정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단호하다. 정부와 협회가 합의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파업에 나선 것이기 때문에 협상의 여지가 없다는 입장이다. 권덕철 보건의료정책관은 “불법 휴진이 실시되더라도 진료를 받는 데 큰 불편이 없도록 모든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관련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 의사들의 견해가 잘 반영되지 않았다는 주장이 있다.

정부는 의료 현안과 관련해 폭넓은 대화를 하기 위해 복지부장관이 의료계 신년인사회에 직접 방문해 민관 협의체를 제의했다. 그러나 의사협회는 정부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협회에서 구상한 협의체를 정부에 제안했다. 정부가 이것을 전격 수용함으로써 의료발전협의회가 구성됐다. 의료발전협의회를 통해 의료 현안에 대해 협의 결과를 마련하고, 2월18일 공동으로 발표까지 했다. 의사협회가 정부에 요구해온 거의 모든 사항에 대한 추진 원칙과 방향이 담겨 있다. 그럼에도 의사협회는 협의 결과를 파기하고, 집단 휴진을 하겠다고 결정했다.

의사협회가 집단 휴진을 결정한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최근 의료계에서는 의료기관 간 경쟁 강화, 경기 침체 등으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원격 의료, 건강보험 등 다양한 의료 현안에 대해 의견을 제기했다. 이러한 외부적 여건 외에 의사협회 내부적 여건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집단 휴진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의료계에서 정부와의 대화보다 불법 집단 휴진이라는 잘못된 선택을 해서 국민에게 지탄받는 상황은 결코 의료계의 어려움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원격 진료의 경우 오진 가능성이 큰데도 안전성에 대한 검증 절차 없이 시행하려 한다는 우려가 있다.

현재 정부에서 추진하고자 하는 원격 의료는 대면 진료를 보완하는 형태다. 중증 질환 진료가 아닌 비교적 가벼운 경증 질환에 한정하고, 재진 원칙과 주기적 대면 진료를 의무화하는 등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정부에서는 ‘의료 민영화는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의료법인의 영리 자회사 설립 허용은 결국 의료 민영화의 편법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자법인은 말 그대로 부대사업 수행을 위한 것으로, 의료업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서 의료 민영화와 무관하다. 자법인 설립 허용 목적은 의료법인의 영리 추구가 아닌 의료기관 운영의 건전성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 자법인 설립은 대부분 중소 병원을 운영하는 의료법인의 경영 여건 개선과 이미 허용돼 있는 학교법인 등과의 형평성 문제 해소 차원이다. 의료법인도 다양한 부대사업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그 수익을 의료업에 재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이번 정책이 시행되면 의료계 양극화를 심화시켜 결국 국민이 피해를 입게 되는 것 아닌가.

원격 의료는 기본적으로 동네 의원 중심으로 한다. 만성질환자 등을 대상으로 의료기관 이용 편의를 제고하는 방안이며, 1차 의료 활성화 방안의 일환이다. 자법인 설립은 지방 중소 병원을 운영 중인 의료법인의 자생력을 키우기 위한 조치로 이를 통해 중소 병원이 겪는 어려움이 다소나마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따라서 원격 의료나 의료법인의 자법인 설립 등 정부 정책이 의료계 양극화를 심화시키거나 국민이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는 주장은 기우에 불과하다. 그러한 우려에 대해서도 충분한 보완 장치를 마련하도록 검토하겠다.

의사협회에서는 현재 건강보험 수가가 너무 낮다 보니 병원이 비급여 항목을 늘리게 되고 결국 환자의 의료비 지출이 많아진다고 말한다.

원가 보전 수준에 대해서는 원가를 어떤 개념으로 보는가에 따라 다양한 연구 결과들이 존재해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 부문 이외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부문을 포함해 의료 원가를 분석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다만 여러 연구들에서 공통적으로 급여 부문보다 비급여의 수익이 높다고 분석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에 따라 의료기관도 급여 행위보다 비급여를 통한 수익 보전에 치중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비급여는 줄여나가면서 건강보험 급여 수가 수준은 상향화하는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의료 대란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국민의 불안감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이번 집단 휴진은 명백한 불법 휴진으로서 동네 의원급 의료기관 중심으로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의사협회의 불법 휴진이 실시되더라도 보건소·병원·대학병원 등에서 진료를 받는 데 큰 불편이 없도록 관계 부처와 기관이 합동으로 모든 조치를 강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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