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들어오는 감동을 렌즈에 담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4.03.04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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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14좌 찍은 사진작가 이창수

히말라야 산맥 부근은 세계의 지붕이다. 히말라야에만 8000m 넘는 산이 14개나 있다. 8850m의 에베레스트를 비롯해 K2, 칸첸중가, 로체, 마칼루, 초오유, 다울라기리, 마나슬루, 낭가파르바트, 안나푸르나, 가셔브룸Ⅰ, 브로드피크, 가셔브룸Ⅱ, 시샤팡마이를 히말라야 14좌라고 부른다. 산악인에게 14좌 등정은 가장 큰 영광이자 이력이다. 생과 사의 길을 헤매며 얻은 결과라서 그렇다.

지리산 사진으로 이름을 얻은 사진작가 이창수씨는 최근 히말라야 14좌 사진 촬영을 끝냈다. 2011년 겨울부터 2013년 12월까지 14좌를 모두 돌며 찍었다. 해발 4000~5000m에 자리 잡고 있는 14좌의 베이스캠프까지 올라가 카메라에 지구의 지붕을 담았다.

이창수씨는 왜 히말라야까지 가서 사진을 찍은 것일까. “두 번째 갔을 때 K2 쪽에서 설산을 넘은 적이 있다. 곤도고라 패스는 낮에는 햇빛을 받아 빙하가 녹기에 밤에 얼어 있을 때 통과해야 안전하다. 밤새 5500~5600m나 되는 설산을 죽을 둥 살 둥 걷고 또 걸었다. 그다음부터 차원이 달라지게 됐다. 두려움도 사라지고, 사진보다는 걷는 것 자체에 빠졌다. 사진에 빠지면 찍을 대상을 찾아 헤매지만 걷는 것에 빠지면 스스로의 내면에 빠져들어간다. 걷다가 더러 가슴으로 들어오는 것이 있으면 찍었다. 그래서 14좌의 사진 기록은 내가 사진을 찍기 위해 덤볐다기보다는 내가 그 공간 속으로 들어갔다 온 기록이다.”

새벽녘에 초오유 베이스에서 바라본 초오유 정상. ⓒ 이창수 제공
이창수 사진작가 ⓒ 시사저널 이종현
“각자의 눈으로, 가슴으로 사진 느끼길”

그는 사진보다는 ‘걷는 경험’을 줄곧 이야기했다. “내가 히말라야에서 가장 크게 받은 것은 걷는 것의 절대성·무시간성이다. 거기서는 그저 ‘한 걸음’만 있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간다’가 아니다. 높은 곳이라 빠르게 걸을 수 없고 왼발에 들숨, 오른발에 날숨을 올려놓고 걷는다. 한 걸음 다시 한 걸음….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거기 없고, 시간의 흐름이 없어지고 ‘지금’만 있게 된다. 시간성과 현재성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

현재 그의 생업은 녹차 재배다. 지리산 자락인 경남 하동군 악양면에서 녹차와 함께하고 있다. 그 전에는 사진기자 일을 했다. ‘뿌리 깊은 나무’에서 시작해 일간지와 월간지까지 16년간 일했다. 마흔에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흙을 만지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지리산으로 향했고 그중에 차 농사를 골랐다. 덕분에 새벽마다 일어나 차를 마시며 명상을 하게 됐고 이는 히말라야 자락에서 ‘걷는 선’으로 이어졌다.

“어릴 때는 사진기를 무기 삼아 세상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보니 하나 둘 세상의 다양한 삶을 알게 됐고 지리산까지 가게 됐다. 지금도 나는 사진기를 들고 다닌다. 지금 카메라는 나의 무기가 아니다. 내면을 드러내는 수단이다. 지리산이나 히말라야나 내게는 다 그냥 산이다. 다만 크고 높은 산은 변화무쌍한 요소가 더 많아서 강력한 임팩트가 있을 뿐이다.”

그가 찍은 14좌 사진에는 에베레스트나 K2의 압도적인 위용을 보여주는 것은 없다. 백과사전에 실릴 에베레스트나 안나푸르나의 ‘증명사진’을 찍은 게 아니라 걸으면서 때때로 가슴으로 밀려오는 거대한 산이 전해주는 감정에 압도됐을 때 찍은 히말라야 산맥의 순간들이 담겨져 있을 뿐이다.

그는 요즘 자신이 기록한 순간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는 작업을 준비 중이다. 오는 6월 예술의전당에서 열릴 개인전(14좌 사진전)에 나갈 사진을 고르고 있다. “내 사진을 보러 오는 사람이 100명이라면 그 100명이 모두 각자의 눈으로, 가슴으로 느끼고 갔으면 한다. 내가 이 사진에서 제시하는 것은 없다. 찍을 때부터 가슴으로 찍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똑같이 느끼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 느끼되 가슴으로 느껴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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