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길도 문재인도 다 비켜라, 우리가 나선다”
  • 이승욱·조해수·엄민우 기자 ()
  • 승인 2014.03.04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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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486 쇄신파의 반란 서로 총부리 겨누며 자중지란

#1 6·4 지방선거 분위기가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는 요즘 민주당 주변에서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다. “당 지도부에 비판적인 당내 강경파로 분류되는 한 의원이 김한길 대표와 관련된 제보를 받고 이에 대해 ‘친노(親盧)’ 진영 인사들과 논의했다”는 것이다. 지방선거 공천과 관련된 것이라는 얘기도 이어졌다. 주류인 당권파나 비주류인 강경파 모두 “출처가 불분명한 괴소문”이라며 일축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소문의 진원지로 상대방을 의심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구체적인 실명까지 거론되며 소문이 돌자 민주당 관계자들은 “당이 갈 때까지 갔다” “콩가루 집안이 다 됐다”는 등의 자조 섞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소문의 진위 여부를 떠나 자중지란에 빠진 민주당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2 얼마 전 ‘비노(非盧)’의 대표적인 인사로 분류되는 한 중진 의원은 사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음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할 생각이다. 하지만 나 혼자 출마하지 않겠다. 문재인 의원에게 출마를 요구하겠다. 내가 지면 깨끗이 물러나겠다. 반대로 문 의원이 지면, 깨끗이 대권을 포기해야 한다.” 그는 아울러 “문 의원을 이길 자신이 충분히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의 말의 핵심은 문 의원은 민주당을 대표할 자격이 없으며, 따라서 차기 대권에 또 도전하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노골적인 불신과 반감이다.

ⓒ 시사저널 이종현
“민주당이 제1야당의 자격 가지고 있나”

대한민국 제1야당이 자중지란에 빠져 있다. 야당 지지 성향이 강했던 한 정치평론가는 노기 어린 목소리로 “과연 민주당이 제1야당의 자격을 가지고 있는가”라고 일갈했다. 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을 배출해 집권 경험을 가진 정당으로서 대한민국 양당 체제의 한 축이다. 하지만 지금 민주당에서 그런 위상은 눈 씻고 찾아보려 해도 볼 수 없다. 당의 존립 기반마저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정통 야당의 명맥을 잇고 있는 126석의 제1야당 민주당은 아직 출범도 하지 않은 단 2석의 ‘새정치연합’에도 밀리고 있는 형국이다. 모태라고 할 수 있는 호남 지역 민심 이반은 물론, 전국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 한 자릿수를 기록하는 치욕을 맛보기도 했다.

그런 민주당에서 반성보다는 서로를 공격하는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밖에서는 위기감이 높은데, 정작 안에서는 이를 느낄 수 없다는 게 지금 민주당의 가장 문제라는 지적이다. 민주당 내 개혁을 주장하는 당내 한 인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당권을 안 내주면 당장 당이 망할 것처럼 아우성치며 친노를 몰아붙였던 지금의 당권파가 보여준 것은 결국 무능밖에 없다. 이런 와중에 당권파에게 빼앗긴 당내 헤게모니를 되찾기 위해 친노는 호시탐탐 상대편이 실기하길 기다리고 있다. 당 지도부의 무능과 계파 갈등이 겹쳐 민주당은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다.”

김한길 대표 체제가 들어선 후 ‘친노’와 ‘비노’의 계파 갈등은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정청래 의원이 지난 2월20일 열린 ‘민주당의 혁신 방향과 과제’ 토론회에서 “지금 당 지도부 얼굴로 선거를 치를 수 있을까 깊은 고민을 한다”며 “(지난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이 결초보은 입장으로 구원 등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의 ‘돌발’ 발언을 두고 친노 쪽 인사들조차 “전혀 사전 교감이 없었던 이야기”라고 거리를 두며 손사래를 쳤다. 결국 정 의원의 발언은 당권파(비노)와 비주류(친노) 양측 모두에게 상처만 안긴 자충수가 됐다는 평가다.  

정 의원의 발언이 알려지자 당내 ‘친노 저격수’로 통하는 조경태 최고위원(조 의원은 친노에 대해 ‘친문(親文)’이라는 표현을 쓴다)은 기다렸다는 듯 문 의원을 향해 활시위를 겨냥했다. 조 최고위원은 2월26일 민주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지금이라도 (기초선거 정당 공천 폐지) 공약 당사자였던 문재인 의원이 정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공격했다. 조 최고위원과 가까운 전 민주당 관계자는 “조 최고위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좋아하지만, 강경파인 친노 세력이 득세하는 것은 두고 볼 수 없다는 인물이다. 비노가 주축인 당권파가 물러가고 친노가 다시 당권을 잡으면 민주당은 평지풍파에 휩싸일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기자와 만난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민주당이 지금처럼 자중지란을 겪으면서 유지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이대로라면 집권은 고사하고 지방선거도 제대로 치르지 못할 판이다. 이럴 바에야 아예 헤쳐 모여 식으로 판을 다 뒤엎고 완전히 새롭게 다시 짜야 다음의 희망이라도 엿볼 수 있다.”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2월20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조희대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를 위해 일어나고 있다. ⓒ 연합뉴스
“현 지도부 교체” 쇄신파의 반란

그 조짐은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본격화되고 있다. 최근 민주당 초·재선 의원 22명은 탈계파 행동 그룹인 ‘더좋은미래’를 결성했다. 이인영·우상호 의원 등 이른바 ‘486’ 리더들과 시민사회 진영 출신 의원들이 주축이 된 이 그룹이 내세운 기조는 ‘계파주의 극복을 통한 쇄신’이다. 이들은 출범 초기부터 심상찮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더좋은미래는 출범한 지 불과 16일 만에 ‘조기 선대위 구성’과 함께 ‘원내 사령탑 교체’를 주장하고 나서 민주당을 발칵 뒤집었다. 이 모임은 지난 2월26일 “5월로 예정된 차기 원내대표 선출 시기를 3월로 앞당겨 원내대표를 빨리 선출해야 한다”며 당을 압박했다. 이에 대해 전병헌 원내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당권파로 분류되는 관계자들은 더좋은미래에 대해 “그들도 다 의원들인데 자기 목소리를 왜 못 내겠나. 하지만 몇몇 의원들의 움직임으로 크게 걱정하고 있지는 않다”고 밝혔다.

더좋은미래가 주장하는 것은 단순히 특정 계파를 타파하자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기존의 주류·비주류를 넘어서 계파주의 자체를 극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 모임의 주요 멤버 중 한 명인 이인영 의원은 2월28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이제 기존 계파들이 물러나고 새롭고 참신한 인물들이 나서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지금의 주류나 비주류가 아닌 새로운 세력이 당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당내 한 486 인사는 “2017년 대선에 또 문재인·손학규·정동영·정세균 같은 인사들을 내세워야 하나. 그래서는 미래가 없다. 대한민국 정치의 지형 변화를 몰고 왔던 1970년대 ‘40대 기수론’과 같이 젊은 세대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권파를 비롯한 일각에서는 ‘더좋은미래’가 원내대표 조기 선출을 주장하고 나선 것에 대해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민주당 한 고위 당직자는 “조기 선대위를 구성하는 것과 원내대표를 일찍 뽑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원내대표 선거를 당기는 것은 절차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라며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더좋은미래 일각에서도 “과연 원내대표에게만 책임을 묻는 게 맞는 것인가”라는 의견이 나왔으나, 모임 내 규칙에 따라 3분의 2 이상 찬성이 나와 공식 의견으로 공표했다는 후문이다.

2월27일 ‘더좋은미래’의 유은혜·김기식·은수미 의원(왼쪽부터)이 기자간담회에서 원내대표 조기 경선을 주장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당권파 일각에서는 구체적 이름을 거론하며 의구심을 제기하기도 한다. 당 쇄신과 직접 관련이 없는, 뭔가 의도가 있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민주당 당권파의 한 핵심 관계자는 “저들이 원내대표 조기 경선을 주장하고 나온 이유는 빤하다. 현재 원내대표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 중 박영선 의원을 지지하기 위한 움직임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더좋은미래의 배후에 강경파로 통하는 박 의원이 있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하지만 당내 극히 소수 의원의 의사 표명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며 의미를 축소했다.

현재 국회 법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영선 의원은 더좋은미래 모임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고 있지는 않지만, 모임에 참여하는 신경민 의원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MBC 기자 출신이다. 박 의원은 특정 계파로 분류하기 힘든 당내 강경파로 온건한 지금의 당 지도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왔다. 박 의원은 김한길 대표 체제의 부족한 점으로 꼽히는 이슈 파이팅을 잘하는 인물로 꼽힌다. 법사위 소속인 한 민주당 관계자는 “지금 지도부가 욕을 먹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이슈를 끌고 나갈 기회가 계속 오고 있는데도 이를 제대로 못 살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박 의원이 아니었으면 국정원 관련 논란 등 그동안 몇 가지 굵직한 이슈들이 아무 논의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선거 후 새 판 짜기 포석?

더좋은미래의 등장과 함께 당내 쇄신파들의 움직임도 활발해지는 분위기다. 특히 ‘주류 대 비주류’ 구도에 밀려 수면 아래 있었던 486 그룹의 전진이 주목된다. 대구시장 출마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진 김부겸 전 최고위원도 그중 하나다. 그는 최근 문재인 의원 체제로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정청래 의원의 주장에 대해 “뻔뻔한 발상”이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김 전 최고위원은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국민들에게 정치적 환멸을 느끼게 하거나 당을 전멸로 이끄는 행동을 삼가야 한다”며 선거를 앞두고 계파 싸움으로 보여지는 듯한 행동을 자제할 것을 촉구했다.

김 전 최고의원뿐만 아니라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하는 김영춘 전 의원, 현역 광역단체장인 송영길 인천시장, 안희정 충남도지사 등도 모두 486 인사들이다. 특히 송 시장과 안 지사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하면 당장 차기 대권 주자로 발돋움할 수 있는 ‘잠룡’들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더좋은미래를 비롯해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전면에 나서기 시작하는 486 인사들이 쇄신을 명분으로 전면에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 집안싸움 즐기는 안철수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이 사분오열하고 있다. 새누리당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호재다. 그러나 민주당의 분란을 가장 반가워할 쪽은 어쩌면 안철수 의원일지 모른다. 6·4 지방선거는 야권 재편의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만약 안 의원의 신당인 새정치연합이 가시적인 성과를 이뤄낸다면, 민주당에서는 ‘탈당 엑소더스’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지방선거가 끝나면 여의도 시계는 2016년 총선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 이런 와중에 호남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민주당을 버리고 새정치연합으로 배를 갈아타는 의원이 대거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탈당 수준을 넘어 분당 사태까지 일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 친노가 그 책임을 물어 자신들이 당권을 장악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친노의 재집권을 바라는 의원이 몇이나 되겠는가. 현 주류 세력과 초·재선을 중심으로 한 소장파들은 친노보다는 차라리 안철수 쪽을 택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설령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더라도 안 의원의 몸값은 높을 수밖에 없다. 당권을 유지하게 된 신주류가 친노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새정치연합을 파트너로 삼을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486 중심의 쇄신파 역시 안 의원에게 호의적이다. 쇄신파는 이번 6·4 지방선거를 계기로 민주당 내 세대교체를 꾀하고 있다. 세대교체에 실패하고 기존 프레임이 유지될 경우 쇄신파의 탈당도 가능한 시나리오다. 안 의원에게 민주당의 사분오열은 꽃놀이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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