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동·김성주 ‘예능하자는 거야?’
  • 정덕현│대중문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2.26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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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MBC 소치 중계에 투입…화제 모았지만 알맹이는 없어

소치 동계올림픽에 간 KBS <우리동네 예체능>의 한 장면. 일일 해설자로 나선 강호동은 잔뜩 긴장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고 중계석에 나란히 앉게 된 김성주와 어색한 인사를 나눴다. 두 사람은 평소 형·동생 하는 친한 사이지만 강호동이 KBS 중계를, 김성주가 MBC 중계를 맡게 되었다는 점 때문에 약간의 긴장감이 흐르기도 했다. 물론 강호동은 일일 해설자로 나선 깜짝 출연자이기 때문에 MBC의 정식 스포츠 캐스터를 맡은 김성주와 역할이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어쨌든 같은 경기에 대한 중계로 경쟁하는 관계라는 게 현실이었다.

물론 중계방송만이 아니라 그 방송을 하는 모습을 찍은 <우리동네 예체능>은 예능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방송사 간의 경쟁보다는 하나로 응원하는 모습을 고루 포착해주었다. 이상화 선수가 금메달을 땄을 때는 강호동이 김성주와 하이파이브를 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중계가 끝나고 나서는 KBS의 서기철 캐스터가 김성주에게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왼쪽부터 김성주·강호동. ⓒ 김성주 트위터
서기철 “동시간대 시청률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현장에서 뛰는 스포츠 캐스터와 해설위원이 갖기 마련인 방송사 간의 경쟁의식은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KBS의 서기철 캐스터는 “동시간대 시청률로 평가받는다”는 압박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실제로 2월11일에 강호동과 김성주가 각각 나서 펼친 이상화 선수의 경기 중계 대결은 대중에게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 강호동은 바로 전날인 10일 모태범 선수가 출전한 경기의 중계방송에도 투입됐다. 이날은 MBC 중계방송에서 아예 모태범 선수의 경기가 빠져 있었는데(방송 3사가 추첨을 통해 하루에 한 방송사씩 중계에서 빠지게 돼 있다) KBS는 3부 13%(AGB닐슨), 4부 15%의 괜찮은 시청률을 냈다. 물론 이것이 ‘강호동 효과’라고 볼 수는 없지만 강호동이 중계방송에 나온다는 사실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대중의 관심을 끌어모은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SBS가 쉬는 다음 날 이상화 선수의 경기 중계에서 김성주가 캐스터로 투입된 MBC는 18.7%를, 강호동이 투입됐던 KBS는 16.1%의 시청률을 각각 기록했다.

흥미로운 건 김성주와 강호동의 대결 구도가 만들어지면서 상대적으로 김성주의 주가가 뛰었다는 점이다. 사실 김성주는 이번 소치 동계올림픽에 MBC 스포츠 캐스터로 투입되기 전까지 대중에게 그다지 호감을 주지는 못했다. 그것은 그가 2년 전 올림픽 방송을 위해 MBC에 복귀했던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 파업 중이던 MBC에서 동료의 빈자리를 채웠다는 사실이 구설에 오른 것. 하지만 2년 만에 김성주는 MBC의 에이스가 되어 돌아왔다. <아빠! 어디가?>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민국이·민율이 아빠’로 대중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전해줬기 때문이다. 이번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대중이 그의 중계에 더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여러모로 <아빠! 어디가?>라는 예능 프로그램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실제로는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는 강호동과 김성주의 중계 대결 구도가 만들어지면서 김성주의 주가가 더 올라간 것이다. 친정이나 다름없는 스포츠 중계에서 김성주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게 된 건 당연한 결과. 김성주는 본래 <아빠! 어디가?> 촬영을 위해 2월15일 귀국하기로 돼 있었지만 갑작스럽게 받게 된 관심에 힘입어 18일 다시 소치로 날아갔다. 김연아 선수가 출전하는 피겨스케이팅의 중계까지 그가 떠맡았기 때문이다. 결국 MBC로서는 김성주라는 베테랑 스포츠 캐스터를 앞세워 이번 소치 동계올림픽 중계의 헤게모니를 잡겠다는 심산이었다.

한편 추첨에서 떨어져 이상화 선수의 금빛 질주를 중계하지 못한 SBS는 초반 소치올림픽 중계의 주도권을 가질 수 없었다. 여기에 MBC 김성주와 KBS 강호동의 대결 구도는 그 자체로 SBS 중계방송이 소외되는 인상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를 그냥 넘길 SBS가 아니었다. 김성주를 내세운 MBC와 강호동을 앞세운 KBS에 맞불을 놓듯 소치에서 직접 촬영한 <힐링캠프>에서는 금메달을 딴 이상화 선수를 초대하고 부랴부랴 SBS의 간판 캐스터인 배성재 아나운서를 출연시켰다.

그를 출연시킨 데는 스케줄 때문에 소치에 가지 못한 김제동의 빈자리를 채운다는 명분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배성재 아나운서의 대중적인 이미지를 확보하려는 의도도 들어 있었다.

실제로 이날 방송에서는 배성재 특유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디테일한 내용이 언급되면서 스포츠 아나운서로서의 전문성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그는 이상화 선수의 이번 기록이 단일 기록으로는 물론 합계 기록으로도 올림픽 신기록이며, 이것이 12년 전의 기록을 깬 것이라고 말하는 등 디테일한 설명을 덧붙였다. “12년 전 기록은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나온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빙판으로 부르는 데가 두 군데 있는데 바로 캘거리와 솔트레이크다. 고지대와 좋은 빙질에서 탔을 땐 항상 기록이 좋게 나온다. 근데 이상화 선수의 기록은 그냥 해발고도 4m인 소치에서 깬 것이다.” 배성재 아나운서의 이 말에 이상화 선수는 “어떻게 저보다 더 잘 아세요?”라며 놀라기도 했다. 또 이날 배성재 아나운서는 스포츠 중계에서는 보기 힘든 예능감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상화 선수 앞에서 조금은 주눅 들고 순수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고, 자신이 길게 질문하면 단 한마디로 똑 부러지게 답하는 이상화 선수의 시크함 앞에서 어색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강호동과 김성주가 귀국한 이후 판도는 다시 SBS 쪽으로 기울었다. 특히 2월18일 여자 1000m, 남자 500m, 여자 계주 결승전이 있었던 쇼트트랙 경기 중계에서 SBS는 각각 16.2%와 11.0%를 기록하며, 15.1%와 10.1%를 기록한 MBC를 제쳤다. 주목되는 건 이 경기 중계에서 배기완 캐스터와 안상미 해설위원 콤비가 돋보였다는 점이다. 예능의 이미지가 과도하게 덧붙여진 MBC와 KBS의 대결 구도에 일부 대중은 피로감을 느끼기도 했다. 스포츠 중계에 좀 더 집중하고자 하는 대중은 SBS를 선택했던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배성재 캐스터가 중계했던 이승훈 선수의 1만m 경기에서도 SBS는 14.4%를 기록해 12.8%에 그친 KBS를 앞질렀다.

ⓒ SBS 제공
소치 중계는 예능 프로와 합작품

<우리동네 예체능>을 통해 스포츠 중계에 강호동을 합류시킨 KBS, <아빠! 어디가?>를 통해 친숙한 이미지를 쌓은 김성주를 스포츠 캐스터로 투입시킨 MBC, 현지에서 바로 찍은 <힐링캠프>를 통해 배성재 아나운서의 대중적인 이미지를 만들려 노력한 SBS. 이번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방송 3사가 벌이고 있는 스포츠 중계 레이스의 특이한 점은 예능과의 시너지를 노렸다는 점이다. 똑같은 중계방송이라도 좀 더 친숙한 이미지의 스포츠 캐스터와 해설자가 등장하는 것이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묘수처럼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능의 과도한 개입에 대해서 대중은 불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특히 강호동이 투입된 스포츠 중계에 몰입을 방해한다며 쏟아진 불만은 KBS 중계방송에 대한 기대감을 떨어뜨렸다.

이번 올림픽의 최대 이슈인 김연아 선수의 경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MBC가 김성주를 굳이 다시 소치로 보내 김연아 선수의 경기 중계를 맡기자, 전통적으로 피겨스케이팅 중계에서 강점을 보이는 SBS는 배기완-방상아 콤비를 내세웠다. 결과는 12.2%(AGB닐슨)를 차지한 SBS의 압승. MBC는 9.6%의 시청률에 머물렀다. 이렇게 된 데는 2007년부터 피겨스케이팅 중계를 거의 독점적으로 해온 SBS의 노하우가 돋보였기 때문이다. 이날 SBS 방송은 독점적으로 확보한 김연아 선수의 리허설 장면을 공개하면서 전설적인 피겨 스타들, 이를 테면 카타리나 비트 같은 선수의 평을 달아 이목을 끌었다. 무엇보다 김연아 선수의 시작부터 이번 마지막 경기까지 교감하며 중계해온 배기완-방상아 콤비는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결국 이번 소치올림픽 중계방송의 특징인 예능 프로그램까지 동원된 스포츠 중계 레이스는 화제몰이는 했지만 실질적인 성과를 내지는 못한 것이다. 그래서 역시 스포츠 중계는 스포츠 자체에 몰입시킬 수 있는 전문적인 식견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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