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 여왕’, 가슴 뭉클한 전설이 되다
  • 조영준│엑스포츠뉴스 기자 ()
  • 승인 2014.02.26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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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가 17년 7개월 동안 선물한 베스트 5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 경기에서 김연아(24)의 올림픽 2연패는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김연아는 쇼트프로그램(74.92)과 프리스케이팅(144.19) 점수를 합산한 총점 219.11을 받았다. 심판진은 김연아에게 아델리나 소트니코바(18·러시아, 224.59점)보다 5.48점을 덜 줬다. 하지만 김연아의 연기는 누구보다도 빛났다. 스스로도 “후회 없이 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쇼트프로그램 =김연아는 출전 선수 30명 중 17번째로 등장했다. <어릿광대를 보내주오>에 맞춰 연기를 시작한 그는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를 깨끗하게 성공시켰다. 남은 점프인 트리플 플립과 더블 악셀도 가볍게 처리했다. 전매특허나 다름없는 유나 카멜 스핀과 체인지 콤비네이션 스핀에서는 레벨 4를 기록했다. 아쉬운 것은 직선 스텝이었다. 김연아는 부드럽게 빙판을 차며 흔들림 없는 스핀을 구사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레벨 4를 받지 못했다. 반면 소트니코바는 스텝에서 레벨 4를 받았다. 또한 가산점(GOE)에서도 1.07점 차로 김연아를 추월했다. 김연아는 소트니코바를 0.28점 차로 앞서며 쇼트 1위에 올랐다.

2월21일 김연아가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 은메달을 땄다. 김연아가 플라워 세리머니를 마친 뒤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관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프리스케이팅 =김연아에 앞서 출전한 소트니코바는 트리플 플립+더블 토루프+더블 루프 세 번째 점프 착지에서 흔들렸다. 하지만 나머지 점프를 무난하게 소화했다. 관중의 탄성이 터졌고 소트니코바는 눈물을 쏟았다. 전광판에 찍힌 최종 합계 점수는 무려 224.59점. 김연아가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세운 228.56점에서 3.97점 모자란 점수였다. 러시아 홈 텃세가 현실화된 것이다. 하지만 김연아는 이를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프로그램을 깨끗하게 연기했다. 김연아는 역전을 노렸지만 심판은 김연아에게 219.11이란 점수를 매겼다. ‘피겨의 여왕’은 이 점수에 대해 “점수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점수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과는 받아들여야 한다”며 오히려 팬들을 다독였다. 그가 “후회 없이 연기를 펼쳤다”고 했으니, “고생한 만큼 보여드릴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하니 우리는 17년 7개월 동안 그가 보여준 피겨가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 2006년, 아사다 마오를 넘다

김연아는 1990년 9월5일 경기도 부천에서 태어났다. 20일 후 일본 아이치 현 나고야 시에서는 아사다 마오(24)가 출생했다. 둘은 공통점이 많다. 같은 해 같은 달에 태어났고 위로 언니가 있는 차녀라는 점, 피겨스케이팅에 특별한 재능을 가졌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부터 두 소녀는 ‘천재’ 소리를 들었다. 김연아는 10대 초반 트리플 5종 점프(토루프·살코·루프·플립·러츠)를 모두 완성했다. 반면 아사다는 10대 초반 트리플 악셀(3회전 반)을 성공시켜 일본 열도를 흥분시켰다. 일본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아사다는 2004~05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주니어 세계선수권을 비롯한 각종 대회를 휩쓸었다.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과 세계선수권에서 아사다가 우승을 차지할 때 김연아는 2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1년 뒤 상황은 역전된다. 2006년 3월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에서 열린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177.54점을 받은 김연아는 153.35점에 그친 아사다를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당시 주니어의 절대 강자로 군림했던 아사다를 처음으로 꺾는 순간이었다.

■ <록산느의 탱고>로 세계에 ‘유나 킴’ 알리다

2007년 3월23일. 김연아가 세계에 자신의 존재를 알린 날이다. 그는 일본 도쿄에서 열린 2007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피겨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쇼트프로그램 <록산느의 탱고>를 통해 김연아는 17세의 어린 소녀답지 않게 고혹적이면서도 강렬한 연기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새로운 지도자인 브라이언 오서(53)와 함께한 첫 대회이기도 했다. 당시 김연아는 극심한 허리 부상으로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니었다.

연습 과정은 힘들었지만 김연아는 실전 경기에서 강한 면모를 보였다. 트리플 플립+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를 비롯한 모든 과제를 완벽하게 수행했다. 전광판에 찍힌 점수는 71.95점.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 최고 점수가 새롭게 작성되는 순간이었다.

■ 2009년, 한국인 최초의 세계 챔피언

김연아는 2007년과 2008년 세계선수권에서 모두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극심한 부상 때문이었다. 시즌 초반에는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다가 가장 중요한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허리와 고관절에 극심한 통증을 느껴 진통제를 맞아가며 스케이트를 타야만 했다.

하지만 2008~09시즌에서는 지긋지긋했던 부상을 털어냈다. 캐나다 토론토에 훈련 캠프를 잡은 후 몸 관리도 한층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 가장 무서운 적인 부상을 떨쳐버리자 김연아는 압도적인 강자로 우뚝 섰다.

2009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결국 김연아는 여자 싱글 사상 최초로 200점을 돌파(207.71)하며 세계 챔피언에 등극했다.

■ 올림픽 피겨 사상 최고 점수로 금메달

2010년 2월24일 밴쿠버올림픽이 열리는 퍼시픽 콜리세움에 김연아가 등장했다. ‘007 제임스 본드 메들리’에 맞춰 연기를 시작한 그는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와 더블 악셀을 모두 깨끗하게 소화했다. ‘본드걸’이란 독창적인 캐릭터로 관중을 사로잡은 김연아는 역대 쇼트프로그램 최고 점수인 78.50점을 받았다.

73.78점을 기록한 아사다 마오와의 점수 차는 4.72점이었다. 2월26일 열린 프리스케이팅에서 김연아는 생애 최고의 연기를 펼쳤다. 빙판 위로 뛰어오른 7개의 점프는 빛났고 깨끗이 떨어졌다. 안무와 기술의 조화는 흠잡을 데가 없었고 다양한 표정 연기와 표현력은 관중들을 매료시켰다. 경기를 마친 김연아는 곧바로 눈물을 터뜨렸다. 승리를 확신한 듯 감격에 겨워했다. 전광판에 찍힌 총점은 228.56점. 김연아는 마침내 올림픽 챔피언에 등극했다. 이 점수는 4년이 흐른 지금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 여왕의 귀환, 2013 세계선수권 우승

김연아는 2011년 4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이후 잠정적 휴식기에 들어갔다. 현역 선수 유지와 은퇴 사이의 갈림길에서 고민했다. 김연아는 2012년 7월 기자회견을 통해 “나의 은퇴 무대는 2014 소치올림픽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역 선수 복귀를 선언하는 순간이었다.

2013년 3월 김연아는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한다. 이때 프로그램은 <뱀파이어의 키스>(쇼트)와 <레미제라블>(프리)이었다. 특히 <레미제라블>은 한 편의 스토리가 담긴 뮤지컬 같은 작품이다. 김연아의 깊이 있는 표현력을 볼 수 있는 <레미제라블>은 3년 전 밴쿠버 때의 영광을 재현해준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이 대회에서 김연아는 218.31점으로 여자 싱글 정상에 등극했다. 2009년 세계선수권 이후 4년 만에 월드챔피언 자리를 탈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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