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줌주머니 안 차도 되는 시대 왔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4.01.2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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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으로 ‘인공 방광’ 만들어 흡연자의 유병 비율 2~7배 높아

김 아무개씨(55)는 지난해 붉은색 소변을 보고 깜짝 놀랐다. 처음에는 피로가 누적돼 오줌 빛이 진하고 탁한 줄로만 알고 지냈는데 붉은색이 점점 짙어졌다. 집 근처 비뇨기과를 찾은 그는 의사에게서 방광암일 수 있으니 큰 병원에서 정밀 진단을 받아보라는 말을 들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결과 방광암이었다.

흔히 오줌보라고 부르는 방광은 신장에서 내려온 오줌이 모이는 주머니다. 여기에 어느 정도 오줌이 차면 사람은 요의를 느끼고 오줌을 몸 밖으로 배출한다. 이 방광에 암이 생기면 혈뇨 증상이 나타나 병원을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40세 이상에서 혈뇨가 나오면 방광암을 의심하고 병원을 찾아 진단을 받아야 한다. 또 다른 증상은 오줌이 자주 마려운 증상(빈뇨증)과 오줌을 참지 못하는 증상(절박뇨)이다. 병이 많이 진행된 후에는 체중 감소와 함께 뼈에 통증도 생긴다. 암이 방광에서 뼈에도 전이된 때문이다. 이동현 이대목동병원 비뇨기과 교수는 “선천적으로 방광이 작거나, 방광염(오줌소태), 전립선 비대증 등 빈뇨의 원인은 다양한데 방광암은 빈뇨보다 절박뇨 증상에 더 가깝다. 물론 암이 아니라 다른 원인으로 절박뇨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병원에서 절박뇨 치료를 받아도 효과가 없다면 암을 의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신장에서 나온 오줌이 모이는 곳, 방광에 생기는 암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흡연이다. ⓒ 일러스트 정현철
이런 증상으로 병원에 가면 소변 검사(요세포 검사)를 받는다. 오줌에 암세포가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암이 초기라면 암세포가 오줌에 섞여 있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원인으로 이 검사의 정확도는 40% 아래로 떨어진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DNA(핵산)나 핵을 염색해서 암세포를 찾아내는 검사법 등이 개발됐다. 이런 검사법은 미국 FDA(식품의약국) 승인을 받았지만 아직은 검사 비용이 비싸서 보편화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현재로서는 방광경 검사가 중요한 방광암 진단법이다. 부분 마취 후에 내시경을 요도로 집어넣어 방광에 도달한 후 맨눈으로 방광 내부를 살피는 검사다. 암의 위치·모양·개수·크기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암이 보이지 않더라도 방광 내부가 정상적이지 않으면 조직 일부를 채취해 조직검사를 해서 암 여부를 알아낸다. 방광암이 진단되면 암이 얼마나 진행된 상태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CT(컴퓨터 단층촬영) 검사를 받는다. 구자현 서울대병원 비뇨기과 교수는 “방광경 검사가 표준이지만 100% 정확하지 않아 이를 보완하기 위해 요즘엔 방광에 약물을 주입하는 방법(광역동 검사)을 사용하기도 한다”며 “일반 세포와 암세포의 색깔을 다르게 보이도록 해서 감별한다”고 설명했다.

‘나쁜 암’ 찾으려는 연구 이어져

방광암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방광 내부에만 생기는 암과 방광 외부로 퍼지는 암이다. 방광 근육에 뿌리를 내리거나 방광 벽을 뚫고 외부로 퍼지는 암(침윤성 암)은 방광 자체를 제거하는 수술이 기본적인 치료법이다. 림프절이나 다른 장기로 전이된 상태라면 항암제 치료도 받게 된다. 40~70% 환자가 항암제로 효과를 본다. 암이 다른 곳으로 퍼졌는지 파악하기 위해 혈액 검사, 림프절 검사, 흉부 엑스선 검사, MRI(자기 공명 영상), 골 스캔 등 많은 검사를 받아야 한다.

방광 내부 점막에만 생기는 암은 생명에 지장을 주지 않는 ‘착한 암’이다. 전체 방광암의 70%에 달하는 이 암(표재성 암)은 수술 없이 내시경으로 치료할 수 있다. 의사가 내시경으로 암 부위를 보면서 수박을 숟가락으로 긁어내듯이 암을 제거하면 된다. 재발은 잘 되지만 그때마다 암을 떼어내면 그만이다.

문제는 이 암의 10~20%가 ‘나쁜 암’으로 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방광 점막 아래로 뿌리를 내리거나 방광 벽을 뚫고 나가서 다른 장기로 이동하는 암으로 바뀌는 것이다. 재발하거나 나쁜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큰 경우라면 약물을 방광에 주입해서 치료하는 면역요법이나 항암요법을 추가하기도 한다. 구자현 교수는 “독일의 일부 병원에서 표재성 방광암을 떼어낸 후 항암제와 방사선을 같이 사용했더니 재발 방지에 도움이 됐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초기 단계여서 조금 더 지켜볼 일이지만 효과가 좋다면 표재성 방광암 치료에 이상적인 치료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은 어떤 암이 나쁜 암으로 변할지 예측할 수 없다. 이를 찾는 연구가 국내외에서 진행 중이다. 예를 들어 같은 표재성 암이지만 특성별로 세분화해서 나쁜 암으로 변하는 암종을 찾아낸다. 그런 암을 일부 발견했지만 지금으로서는 방광을 모두 제거하는 수술 외에는 딱 부러진 치료법이 없는 게 현실이다.

이런 이유로 유전자 치료에 대한 기대가 크다. 구자현 교수는 “내시경으로 암을 직접 보면서 주사할 수 있기 때문에 방광만큼 유전자 치료에 이상적인 장기도 없다”면서도 “1990년대부터 시작한 유전자 치료에 대한 국내외 연구는 초기 단계에서 결과가 좋아 기대가 컸는데 요즘은 그 이상 연구가 진척되지 않고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환자 삶의 질 높여주는 인공 방광

나쁜 암 때문에 방광을 제거하면 오줌을 담아둘 주머니가 없어진다. 그래서 방광암 수술을 받은 환자는 복부에 방광을 대신하는 오줌주머니를 착용한다. 신장에서 나온 오줌이 이 오줌주머니에 쌓이면 환자는 이 오줌주머니를 비우는 식으로 생활한다. 자칫 오줌주머니가 새거나 냄새가 나지 않을까 환자는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다. 대중목욕탕에 가지 못하는 등 일상생활이 자유롭지 못하다. 암은 치료했지만 삶의 질은 확연히 떨어진 것이다.

암도 고치고 삶의 질도 높이는 방법은 인공 방광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연구가 진행됐고 국내에서도 1980년대 말부터 인공 방광 수술이 생겨났다. 과거에는 대장의 일부를 이용해 인공 방광을 만들었지만 1990년대 들어서는 소장의 일부를 떼어내 방광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수술법이 생겼다. 소장에서 60cm 정도 잘라낸 후 가운데를 죽 가르면 사각형 모양이 되는데 이를 공 모양으로 꿰매면 방광을 대신할 인공 방광이 된다.

소변을 예전처럼 볼 수 있는 것이 인공 방광 수술의 가장 큰 장점이다. 외모도 수술 전 그대로를 유지할 수 있다. 본래의 방광이 아니므로 인공 방광에 적응하는 데 3개월 정도 걸리고, 소변을 볼 때 아랫배를 짜듯이 눌러야 하는 불편함은 있다. 이동현 교수는 “소장 등에 문제가 있어서 인공 방광 수술을 받지 못하는 일부를 제외한 모든 환자에게 인공 방광 수술은 암 치료 후 삶의 질을 높여주는 치료법”이라고 강조했다.

매년 2000여 명이 방광암에 걸린다. 이 가운데 80%는 남성이며, 방광암의 5년 생존율은 77.4%다. 이 암의 주요 원인은 연령, 흡연, 업무, 방사선 노출이다. 이 암에 많이 걸리는 나이는 70대지만 최근에는 30대 환자도 생기는 등 방광암 발병 연령 범위가 넓어지는 추세다. 흡연자는 비흡연자에 비해 방광암 발병 위험이 2~7배 크며 금연 후 1~4년이 지나면 발병 위험이 40% 줄어든다. 전체 방광암 환자의 25%는 석유 제품이나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사람이다. 또 머리 염색약의 일부 성분도 이 암의 발생과 관련이 있다. 자궁경부암이나 전립선암 치료를 위해 골반 부위에 방사선을 쬔 사람의 방광암 발병 위험은 일반인보다 2~4배 높다. 

다음 호에는 치주염 편이 이어집니다.


ⓒ 시사저널 구윤성
인공 방광 수술의 장점은 무엇인가.

방광 제거 수술을 받은 환자는 평생 배에 오줌주머니를 부착한 채 살아야 한다. 심적인 부담이 얼마나 크겠나. 수술 후 3개월 동안 집을 나서지 않으려고 할 정도다. 자칫 오줌주머니가 새거나 냄새가 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다. 암으로부터 자유로워졌지만 삶의 질은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말이다. 인공 방광 수술을 받은 환자는 오줌주머니를 차지 않아도 된다. 소장으로 만든 인공 방광이 몸속에 있기 때문이다. 오줌도 요도를 통해 몸 밖으로 배출하므로 예전과 다를 바가 없다. 옛날에 대장으로 인공 방광을 만들었을 때는 방광의 오줌이 신장으로 역류하는 문제가 생겼다. 소장으로 만든 인공 방광에선 그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게 좋은 치료법이 보편화되지 않은 이유는.

수술이 어렵다. 오줌이 새지 않도록 소장을 잘 꿰매야 하고 거기에는 의사의 노하우와 경험이 필요하다. 따라서 의사들이 그 기술을 좀처럼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국내에 이 수술을 제대로 해낼 의사는 몇 명 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8시간이나 걸리는 대수술이었다. 그러니 70대 노인 중에서 수술 잘 받아놓고 수술 후의 부담을 견디지 못해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지금은 수술 시간이 4시간으로 줄어들었다. 출혈이 없으니 수혈도 필요 없어서 고혈압이나 당뇨 환자, 고령자도 수술을 받을 수 있다. 나는 거의 모든 환자에게 오줌주머니를 착용하는 수술은 권하지 않는다.

이 수술을 받을 수 없는 환자는.

방광에서 오줌이 나오는 첫 부분, 즉 요도가 시작되는 전립선 부위에 암이 있으면 이 수술을 받기가 어렵다. 또 간이나 신장 기능에 이상이 있는 사람도 곤란하다. 그러나 요도가 짧아서 이 수술에 적합하지 않았던 여성 환자도 이제는 수술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발전했다.

본래의 방광을 살릴 방법은 없는가.

방광보존요법이 있다. 방광 근육에 뿌리를 내린 나쁜 암이지만 작고 한 곳에만 있는데 방광 전체를 떼어내면 아깝지 않은가. 그런 경우 내시경으로 그 암을 뿌리까지 긁어내고 방사선과 항암제로 치료한다. 그러나 신장에서 방광까지 이어진 요관이 굳어버리는 등 방사선 폐해가 심해서 요즘은 이 치료법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

물을 많이 마시면 방광암 예방에 좋다는 얘기가 있다. 오줌에 있는 발암물질이 방광을 자극하기 전에 배출된다는 것이다. 과학적 근거가 있나.

의사들도 그렇게 추정한다. 그렇지만 그것을 입증하는 연구 결과를 얻기가 쉽지 않다. 물을 많이 마셨더라도 오줌뿐만 아니라 땀으로도 배출되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 땀을 흘리는 정도와 오줌을 누는 양도 달라서 연구를 진행하기가 어렵다.

암환자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은.

두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암에 걸리면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런데 그 반대다. 특히 항암 치료를 받으면 암세포는 물론 정상세포도 죽는다. 정상세포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양질의 단백질이 절대로 필요하다. 즉, 기름기 없는 살코기를 많이 먹어야 하는데 환자들은 고기를 아예 입에도 대지 않는다. 또 노인은 암에 걸려도 젊은 사람에 비해 신진대사가 느려 암 진행 속도도 더딜 것으로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암 진행 속도는 나이와 관계가 없다. 노인이라도 치료를 늦춰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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