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에게 통합을 배워라
  •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
  • 승인 2014.01.22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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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독일은 통일 후유증으로 경제가 좋지 않아 ‘유럽의 병자’라는 말까지 들었다. 2000년대 후반부터 균형 재정을 달성하고 경제도 호황을 맞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성공한 지도자로 우뚝 섰다. 메르켈 총리의 리더십이 우리나라에서 화두가 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 정치’와 비교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선거 때는 대통합을 내걸었지만 취임 후에는 비판 세력과의 대화를 거부한 박 대통령을 ‘대연정’이란 담대한 통합의 정치를 하고 있는 메르켈 총리와 비교하면서 비판하기도 한다.

동독에서 궁핍하게 살았던 메르켈은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 있지만 사회주의 경제 체제의 모순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메르켈이 우파 정당인 기민당과 인연을 맺게 된 것도 그런 면에서 당연했다. 사회주의를 혐오한 메르켈은 해방신학은 물론이고 안토니 기든스의 ‘제3의 길’도 좋아하지 않았다.

메르켈은 2003년 ‘독일은 어디로 가는가?’라는 유명한 연설을 했는데, 침체에 빠진 독일 경제를 되살릴 방안으로 경쟁과 창의성을 강조했다. 메르켈은 독일도 영미처럼 금융업의 중요성을 알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를 두고 언론은 메르켈이 영국의 대처 전 총리를 닮아간다고 비꼬았다.

메르켈이 기민당 대표가 되어서 처음 치른 2005년 총선은 메르켈의 승리라기보다는 당시 사민당 총리였던 슈뢰더의 패배였다. 슈뢰더는 총리로서 ‘어젠다 2010’이란 새로운 정책을 내걸었는데, 연금 수령 연령을 67세로 상향 조정하고 부가가치세율을 인상하는 등 사민당의 지지 기반인 노조와 근로자의 이익에 반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강력한 노조가 양보할 수밖에 없다는 용기 있는 결단이었지만 2005년 총선에서 사민당은 근소한 차이로 패배하고 말았다. 기민당과 사민당 어느 쪽도 단독으로 정부를 구성할 수 없어서 두 정당은 대연정을 수립하고 메르켈을 총리로 선출했다. 대연정이란 ‘통합’은 메르켈의 선택이 아니라 메르켈에 주어진 조건이었다.

총리로 취임한 메르켈은 자신의 정책이었던 신자유주의가 독일 국민이 원하는 바가 아님을 깨닫고 슈뢰더 전 총리가 입안한 ‘어젠더 2010’을 수용하기로 했다. 복지 혜택과 연금은 줄고, 세금은 올라가는 개혁이 실시돼 독일 경제가 다시 활력을 되찾았다. 이러한 대타협에 힘입어 메르켈은 2009년 총선에서 승리했고, 자민당과 함께 소연정 정부를 구성했다. 메르켈 정부가 사민당의 정책을 수용하는 바람에 사민당은 선거에서 내세울 만한 어젠더를 갖지 못하고 패배한 것이다.

메르켈은 원전(原電) 문제에서 실수를 범했다. 원전 사용 기간을 연장하자는 소연정 파트너 자민당의 정책 때문에 슈뢰더 정부가 약속한 원전 폐기 정책의 시행을 보류했던 것이다.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에서 원전 사고가 발생하자 대규모 원전 반대 시위가 일어났다. 당황한 메르켈은 계획대로 원전을 폐기하고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확충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곧이어 실시된 몇 군데 지방선거에서 녹색당에게 패배했다. 2013년 총선에서 자민당은 몰락했고, 메르켈은 다시 사민당과 대연정을 해야만 했다. 메르켈의 상징인 ‘대통합’도 결국은 민심을 반영해야 했던 결과였으니, 국민의 뜻을 존중하는 정부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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