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에서 두 곳만 잡으면 민주당 무너진다”
  • 엄민우 기자·조해수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4.01.14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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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알 수 없는 3대 불가사의가 있다. 김정은(북한 지도자)의 속마음, 박근혜의 창조경제 그리고 안철수의 새 정치다.”

한때 인터넷에 회자됐던 정치권 풍자 유머다. 안철수의 ‘새 정치’에는 늘 ‘물음표’가 붙었다. 정치를 하는 데 가장 중요한 조직과 인물이 보이지 않았다. 안철수 세력이 처음으로 만든 조직은 연구소였고, 그 조직이 공식적으로 모았던 인물은 이른바 실행위원들이었다. 하지만 이 조직과 인물 모두 안철수 의원이 그토록 외쳤던 ‘새 정치’를 구체적으로 펼치기에는 모자라 보였다.

그런 안철수 진영이 새해 들어 급격히 달라졌다. 안철수 의원이 직접 선두에 서서 신발 끈을 동여매자 흐릿했던 ‘새 정치’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여전히 의문형이긴 하지만, 그 의문의 내용이 달라졌다. 지금까지 안철수 정치가 ‘대체 무엇을 하려고 하는 걸까?’란 단순한 궁금증을 줬다면 이제는 ‘슬슬 뭔가 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라는 호기심을 갖게 하고 있다. 여의도 정가 주변에선 방송 프로그램 타이틀을 빗대어 “우리 철수가 달라졌어요!”란 말까지 심심찮게 나돌고 있다.

2013년 12월23일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새정치추진위원회’ 현판식에 앞서 회의를 열고 있다. ⓒ 연합뉴스
새정추 사무실은 보고서 작성 작업 중

제1야당 민주당은 이런 분위기를 우려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호기심이 만들어낼 ‘안철수 태풍’에 맥없이 휩쓸릴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다.

지난해 11월 국회의 한 토론회장에서 기자와 만난 윤여준 전 장관은 안철수 의원 진영 합류 가능성 등을 묻는 질문에 답을 피하면서도 “지켜보는 입장에서 걱정되는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라며 여운을 남겼다. 그 ‘걱정되는 부분’을 지켜만 보기 힘들어서였을까. 그로부터 두 달 후 그는 안철수 진영에 ‘새정치추진위원회(새정추) 공동위원장 겸 의장’으로 복귀했다. 복귀 이후 그는 “당을 만들려면 3월까지는 창당해야 한다”며 창당 시기를 구체적으로 거론해 이목을 끌었다. 윤 의장의 등장으로 지금 새정추 사무실은 ‘신당 창당 로드맵’ 보고서 작성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는 신당 창당 및 지방선거 전략과 관련해 어떤 내용들이 담겨지게 될까. 시사저널은 안철수 진영 내부 인사들을 다각도로 접촉하며 그 속에 담길 내용들을 미리 전망해봤다.

여야를 모두 오간 정치 전략가로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는 윤여준 의장이 창당에 대한 실질적인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게 될 것이란 전언이다. 2012년 대선 때 안철수 후보 캠프에 몸 담았던 한 내부 관계자는 “윤 전 장관은 향후 신당 창당 작업을 안에서 실무적으로 진두지휘할 것이다. 여야를 오가며 정당에 대한 이해도가 깊은 그가 당을 만드는 데 주요 자문을 하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안철수 진영은 6월 ‘지방선거 전 창당 로드맵’과 ‘지방선거 후 창당 로드맵’으로 나눠 투트랙으로 선거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우선 6월 지방선거를 치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윤 의장 말대로 3월까지 창당을 마치는 것이다. 만약 창당 없이 선거를 치를 경우, 공천을 못하고 전국 선거구 단위에서 일률적 기호도 배정받지 못하게 되는 등 세밀한 선거 전략을 짜기가 어려워진다. 이를 알기에 안철수 진영은 우선 ‘최대한 창당을 빨리하도록 노력한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창당 작업은 전국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국민추진위원’ 모집과 명망 있는 정치권 인사들이 얼마나 더 합류하느냐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내부에서는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지방선거만을 위해 준비 없이 서둘러 창당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역 실행위원 인선 사례에서 드러났듯 급하게 인물을 모을 경우 부작용이 생길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새정추 내부의 한 핵심 관계자는 “창당 준비가 충분히 안 됐는데 선거 때문에 당을 급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지방선거만 보고 정치하는 게 아닌데 선거 앞두고 창당을 위한 창당을 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전했다. 특히 안 의원은 역대 ‘제3당’들처럼 당이 유력 정치인의 ‘사당(私黨)화’가 되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자신과 함께할 ‘간판급’ 인물을 늘리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란 전망이다.

현재 안철수 진영 내부에서는 창당 없이 지방선거를 치르는 방법으로 여러 가지 안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조직 안팎에서 ‘창당준비위원회(창준위)’를 만들어 선거를 치르게 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김윤태 고려대 교수는 “여러 상황과 들려오는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창준위’라는 당에 준하는 형식으로 선거를 치르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 창준위 형식으로 선거 때 등록해 기호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창당을 하지 않을 경우 예상되는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누가 안철수의 사람인지 유권자들이 혼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만약 안철수 진영이 선거 전 창당을 하지 않으면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예를 들어 과거 ‘친박연대’처럼 이 사람 저 사람 다 ‘안철수’란 이름을 이용하려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선거를 광역단체장 부문에 집중해서 치르게 된다면 기호에 집착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앞서 언급한 새정추 내부 관계자는 “6월 전 창당은 현실적으로는 힘들 것으로 보지만 (창당하지 않더라도) 어차피 광역단체장 위주로 선거를 치루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고 본다. 지방선거는 광역단체장 위주로 갈 것 같다. 전국적으로 기초단체에 숫자 다 채우려고 함량 미달 인사들을 마구잡이로 들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윤여준 새정치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사진) 합류 후 안철수 신당 창당 작업에 속도가 붙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미니 총선’ 7월 재보선이  승부처

6월 지방선거에서 안철수 신당의 성공 여부는 사실 광역단체장, 그중에서도 특히 호남과 수도권에서 얼마나 선전하느냐에 달려 있다. 복수의 정치 전문가 및 안철수 진영 내부 관계자들은 “안철수 신당은 수도권 광역단체장 세 곳 가운데 한 곳과 호남 지역 광역단체장 세 곳 가운데 두 곳 등 모두 세 곳 이상을 노리고 있다. 이런 목표가 이뤄지면 대성공이라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영남권은 상대적으로 전략 지역에서 벗어나 있는 셈이다.

이는 안철수 신당과 민주당의 물러설 수 없는 ‘정면충돌’을 예고한다. 특히 호남 세 곳 가운데 신당이 두 곳 이상을 뺏을 경우, 향후 야권 재편성의 주도권을 쥐게 된다. 대선 때부터 그와 함께했던 안철수 진영의 한 관계자는 “일단 호남 세 곳 중 두 곳만 잡으면 민주당은 크게 흔들릴 것이다. 호남의 상징인 광주 한 곳만 잡더라도 민주당은 충격에 빠진다. 민주당 내 친노와 비노 간 계파 갈등은 더욱 첨예화될 것이고, 야권의 그림이 새롭게 그려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출신의 한 내부 관계자는 “민주당은 이미 ‘한 지붕 두 가족’이다. 6월 지방선거에서 (우리가) 선전하면 7월 재보선에서도 크게 탄력을 받으면서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에서도 건너오는 의원들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지방선거 후 곧이어 펼쳐질 7월 재보선은 ‘미니 총선’으로 불릴 만큼 의미 있는 선거다. 당선무효형이 확정된 곳과 광역단체장 출마로 의원직을 내놓는 지역구까지 합치면 최소 10곳에서 최대 15곳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 광주 간담회 등 민심 다지기

민주당은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특히 안철수 신당의 표적이 된 호남 지역의 불만이 크다. 민주당 광주시당 핵심 관계자는 “5개 시·도당 1000명씩 모으고, 중앙당 200명만 있으면 당장 (신당을) 창당할 수 있는데 왜 안 하겠느냐. 자신이 없으니까 못하는 거다. 말로는 새 정치 한다면서 실제 호남 지역 민주당 기초의원·시의원·중진들에게 기웃대며 사람을 빼가려 하고 있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실제로 민주당 소속 광주시 시의원 중 일부는 이미 안철수 의원 쪽으로 둥지를 옮겼다. 스스로를 ‘민주당 귀신’이라고 한 천정배 전 장관 역시 지난해 11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안철수 세력이 민주당과 연대 없이 경쟁하려 하는 것은 결국 새누리당에만 좋은 일 하는 격”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민주당은 광주 지역에서 국회의원들이 하루에 한 명씩 ‘일일시민고충상담센터장’을 맡아 운영하고 매주 2회 이상 정책간담회를 갖는 등 민심 다지기에 주력하고 있다.

안철수 신당의 호남 지역 선거에는 윤장현 새정추 공동위원장이 키를 잡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YMCA 이사장을 지냈던 그는 시민사회와 호남 지역을 아우르는 인물로 평가된다. 서울에서는 다소 생소한 인물이지만 광주에서는 꽤 명망 있는 인사로 알려져 있어 강력한 광주시장 후보로 거론되기도 한다. 윤 위원장은 광주와 서울을 오가며 지역 일정과 이틀에 한 번꼴인 중앙회의를 소화하고 있다.

안철수 신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창당과 관계없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윤태 교수는 “인물도 중요하지만 우선 가치나 구체적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안철수의 새 정치는 그게 아직 모호하다. 추구하는 핵심적 어젠다가 무엇인지, 새 정치가 무엇인지 구체적인 것을 제시해야 세력 확장도 힘을 받는다”고 강조했다. 내부적으로도 이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새정추는 1월 설 연휴 이전에 새 정치에 대한 구체적이고 체계화된 방향을 발표하기 위해 내용을 정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여러모로 민주당에게 이번 설은 맘 편히 보낼 수만은 없는 명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8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국민동행’ 개소식. ⓒ 시사저널 박은숙
‘안철수 신당’을 지지하는 외곽 조직으로는 ‘민주와 평화를 위한 국민동행’(국민동행)과 ‘복지국가정치추진위원회’(복정추)를 꼽을 수 있다. 이 중 복정추는 지난해 12월 출범 당시 안철수 의원과 연대하거나 정치적 동맹을 맺겠다는 방침을 공식 발표했다.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후보 단일화에 합의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반면 국민동행과 안철수 신당과의 관계는 예상만큼 긴밀하지 않은 듯 보인다. 지난해 11월 안 의원은 야권 지도부 자격으로 국민동행 출범식에 참여했다. 특히 국민동행 서울사무소가 새정추 바로 옆 건물에 입주하면서 갖가지 얘기들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국민동행 관계자는 “우리 사무실은 새정추 옆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새누리당사와 민주당사 옆에 있기도 하다. 보고 싶은 대로 보이는 것 아니겠는가. 국민동행은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을 유지하는 국민운동체로 남을 것이다. 지방선거에서 특정 세력을 지지하는 일은 결코 없다. 다만 개인적 자격으로 (안철수 신당에) 참여한다면 그것까지 막을 이유는 없다”고 일축했다. 안철수 의원 측 관계자 역시 “(안철수 신당과) 국민동행과의 관계는 과장된 면이 있다. 안철수 신당에 입당할 것이라고 거론되는 국민동행 측 원로 인사가 있다는 말이 나오는데,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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