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절망과 분노를 파고들다
  • 김윤태│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
  • 승인 2014.01.08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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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석’은 우리 시대 자화상…한 인간의 고뇌와 투쟁 극적으로 그려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왔다. 1980년대 부산에서 활동한 ‘돈 없고, 힘없고, 배경도 없는 세무 변호사 송우석’이 바로 그다. 노 전 대통령의 인권 변호사 활동을 소재로 한 <변호인>이 최고 흥행작이 됐다. 제작 당시엔 성공할지 아무도 몰랐다. 오히려 다큐멘터리 스타일이라 염려했다고 한다. 그러나 개봉 당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노무현 대통령은 다시 정치의 한복판에 섰다. 보수 성향 네티즌은 “2014년 6월 지방선거용으로 만든 노무현 미화 영화”라고 혹평하며 “노사모 회원들에게 총동원령 내렸다”고 의혹을 제기한다. 그러나 2주 차에 더 많은 관객을 모았다. 입소문이 빨랐다. 이미 관객 600만명을 넘었다. 영화계는 1000만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한다.

영화 에서 송우석 변호사가 빨갱이로 몰린 국밥집 아들 진우에게 고문을 어떻게 당했는지 묻고 있다. ⓒ NEW제공
살아 있는 역사, 1980년대 학생운동

고려대 88학번인 양우석 감독이 전두환 시절의 대학 분위기를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필자는 고려대 83학번으로 지금도 오롯이 기억한다. 매일 닭장차를 타고 들어오는 사복 경찰은 안암동 교정에 죽치고 있었다. 존경받던 대학교수들이 해직되고 학생들은 감옥에 끌려갔다. 강제 징집으로 사라진 학생은 싸늘한 시신으로 변했다. 광복군 출신 김준엽 총장도 대학에서 쫓겨났다. 시위 학생을 끌어내고 강의실을 뒤지는 경찰 폭력에 분노하지 않는 학생은 없었다. 우리는 눈물 없이 대학에 다닐 수 없었다. 양우석 감독은 1980년대에 대한 우리의 그런 정서를 정말 잘 표현했다.

<변호인>은 ‘부림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1981년 부산지검은 공안부 검사의 지휘 아래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 교사, 회사원 등 22명이 영장 없이 체포됐다. 이들은 최소 20일부터 최장 63일 동안이나 감금돼 구타·물고문·통닭구이 고문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당시 판금 서적이었던 <전환시대의 논리> <역사란 무엇인가> 등을 읽고 토론했다는 이유로 ‘반국가 단체 고무 찬양’ 죄가 적용돼 기소됐다.

검사는 이들에게 국가보안법, 계엄법,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을 적용해 징역 3~10년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5~7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의 배석판사가 바로 현재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다. 당시 노무현 변호사는 권력의 횡포에 분노해 인권 변호사의 길로 뛰어들었다. 재판을 받았던 학생들은 1983년 11월 형집행정지로 모두 풀려났다. 그 후 부림 사건은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게 된다.

그러나 영화는 사건을 파고들지 않는다. 영화는 우리의 절망과 분노를 파고든다. 역사적 사실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실망일지 모르겠다. 필자는, 영화라는 것이 사실을 표현하는 데 적합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역사적 사실은 책에서 다룬다. 영화는 본질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변호인>은 솜씨 좋게 우리의 감정을 움직인다. 1980년대의 역사가 우리의 가슴속에 되살아난다.

30년이 지난 과거의 역사가 다시 돌아온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송우석 변호사라는 인물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오로지 돈 버는 일에만 관심을 가졌던 ‘속물’ 변호사가 힘없는 국밥집 아들에게 닥친 고통을 목격하면서 현실에 눈을 뜬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송우석이라는 인물은 바로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다. 자신만 생각하며 살아가는 자기중심주의와 냉소주의가 2014년 대한민국의 모습이지 않은가. 그러나 송강호의 열연을 통해 한 속물이 변화하는 이야기가 스크린에 감동을 가득 채운다. 고문 경찰 역할을 맡았던 곽도원과 가난한 국밥집 주인 김영애 등 배우들의 연기도 영화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필자는 김영애의 절규에서 30년 전 내 어머니를 떠올렸고, 결국 눈물을 흘렸다.

영화의 힘, 세상의 울림

<변호인>의 진정한 매력은 스토리텔링이다. 단지 한 인물을 미화한 추모 영화였다면 큰 감동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의 내용이 관객을 움직인다. 영화는 정치를 떠나 한 인간이 권력에 의해 짓밟힌 현실을 폭로한다. 그리고 불의에 맞서는 한 인간의 고뇌와 투쟁을 극적으로 그려낸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 무엇이 있다. 그것은 사람에 대한 애정이다. 불의에 대한 분노다. 정의를 위해 싸우는 용기다. 이 모든 것을 우리가 잊고 사는 것은 아니었는지….

영화에는 두 종류가 있다. ‘보는 영화’와 ‘느끼는 영화’다. 할리우드 액션 영화는 그야말로 ‘보는 영화’다. 반면에 ‘느끼는 영화’는 우리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브레히트의 ‘소격 효과’를 거론하지 않아도 <변호인>은 관객들에게 최근 한국의 정치적 분위기를 돌아보게 만든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이자 <변호인>의 대사인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은 오늘날 현실에서 더욱 울림이 크다. 국정원 댓글 직원을 체포한 검찰총장이 쫓겨나고, 공권력 집행이라는 이름 아래 경찰 5000명이 법원의 압수수색 영장도 없이 민주노총 사무실에 강제 진입하는 대한민국에서 더욱 그렇다.

도대체 공권력이란 무엇인가. 공권력이란 국가나 공공 단체가 국민에 대해 우월한 의사를 가진 주체로서 명령하고 강제하는 권력을 가리킨다. 그런데 권력은 누가 만드는가.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국가를 ‘정당한 물리적 폭력 행사의 독점을 실효적으로 요구하는 인간 공동체’라고 정의했다. 중국 공산당 마오쩌둥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느 권력도 국민의 동의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 폭력은 일시적으로 국민을 이길 수 있어도, 영원히 이길 수는 없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법치란 법 준수를 국민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공권력의 남용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바위는 아무리 강해도 죽은 기고, 계란은 아무리 약해도 산 기라, 언젠가는 계란이 바위를 살아서 넘을 기다.”

모두 <변호인>에서 대사로 나오는 말이다. 군부 통치의 잔재가 남아 있는 지금, 시대정신은 더욱 빛을 발한다. 모두 ‘슝’ 소리와 함께 화살처럼 가슴속에 박힌다. <변호인>은 30년 전 이야기지만 우리가 결핍과 상실을 느끼게끔 하는 말이기에 더욱 감동적으로 되살아난다. 무너진 민주주의의 원칙, 국가 권력의 폭력이 사람의 마음 밑바닥에 있는 정서를 자극했다.

그러면 ‘변호인 현상’을 정치적 박탈의 문화적 승화라고 볼 수 있을까. 관객은 단지 과거의 인물을 추모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의 없는 세상에 정의를 주러 오는 누군가를 열망한다. 왜냐하면 아직도 현실 속에 정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림 사건의 담당 검사 최병국 전 새누리당 의원은 “어떤 사과도 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들이 고문당했다고 주장하는데, 자기들 행동을 미화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배석판사였던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도 사과하지 않았다. 왜냐고 묻지 않아도, 우리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영화 <변호인>은 2012년 대선 1년 후에 등장하면서 우리에게 한국 사회를 돌아보게 만든다. 공권력을 사유화해 국민의 정당한 요구를 가로막는 시대가 바로 지금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모두가 말해야 할 차례다. “할게요. 변호인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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