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짜’ 항만 면세점도 민영화 논란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4.01.08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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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청, 공공기관 참여 배제…기존 사업자인 한국관광공사 노조 강력 반발

지난해 12월 정국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갔던 철도노조 파업이 겨우 수습됐으나 ‘공기업 민영화’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수서발 KTX’ 설립으로 촉발된 철도 민영화 논란의 불씨가 한국관광공사 면세점 민영화 문제로 옮겨 붙을 전망이다. 관세청은 지난해 12월24일 인천항 등 면세점 특허(특별허가) 신청 공고를 내면서 기존에 면세점을 운영하던 한국관광공사를 배제하고, 면세점 부문 민영화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업체 자격에서 공기업을 제외한 것이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2012년 대선 후보 시절 ‘공기업정책연대’에 전달했던 입장과 배치되는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지난해 12월24일 관세청은 ‘인천항, 평택항 및 군산항 출국장 면세점 특허 신청 공고’를 냈다.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해오던 인천항 등 항만 출국장 면세점의 허가 기간 만료를 앞두고 새롭게 사업자를 모집한다는 공고였다. 이 내용에 따르면 관광공사는 지원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관세청은 특허 신청 업체 자격을 ‘기획재정부장관이 지정한 공공기관(공기업·준정부기관·기타 공공기관)이 아닌 법인’과 ‘지방 공기업이 아닌 법인’으로 명시했다. 공공기관의 면세점 운영 자체를 봉쇄한 것이다.

인천항 내에 있는 관광공사 면세점. ⓒ 시사저널 포토
그동안 이곳 항만에 들어선 면세점은 관광공사가 운영했다. 그런데 공고대로라면 공기업에 해당하는 관광공사는 특허 신청을 할 수 없게 되고, 기존에 운영하던 항만 면세점 사업을 접어야 한다. 이는 곧 관광공사가 운영하던 면세점이 민영화된다는 의미다. 항만 면세점은 인천공항 면세점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주류와 담배를 판매할 수 있고 임대료가 공항에 비해 저렴한 편이라 알짜 사업으로 알려져 있다. 관광공사가 운영하는 인천공항 면세점에서는 담배 및 주류를 팔 수 없도록 돼 있다.

관광공사 노조 측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노조는 공고가 나자 곧바로 관광공사 건물 1층에 성명서를 걸었다. “명분 없는 면세점 민영화를 막고 공사 재원과 고용 안전을 지키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성명서를 통해 노조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이후 약속을 저버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2012년 12월 공기업정책연대의 질의에 대한 박근혜 당시 대선 후보 측의 답변서.
대선 때 박근혜 캠프 답변서 문건 입수

이러한 노조 주장의 근거는 시사저널이 입수한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의 ‘공기업 정책 질의에 대한 답변서’에도 나와 있다. 해당 문건은 대선 열기가 고조되던 2012년 12월4일 공기업정책연대가 박 후보 측에 전달했던 것으로, 여기에는 박 후보 측의 답변이 담겨 있다. 이 답변서에는 관광공사가 운영하던 인천공항 면세점 존치에 관한 질의 내용도 나와 있다. 인천공항 면세점은 이명박(MB) 정권이 공기업 선진화 정책의 일환으로 철수를 잠정 결정해둔 상황이었다. 관광공사 노조 측은 ‘국산품 보호 및 육성을 위해 한국관광공사 인천공항 면세점의 존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 후보 측은 관광공사 면세점 철수 시 발생할 문제점에 대해 ‘대기업 독과점 운영으로 시장경제가 왜곡될 수 있다’ ‘외국산 명품 위주 진열로 국산 브랜드 소외 및 육성 어려움’ ‘공사 자체 수익 재원 감소분 150억원 국고 지원 필요’ 등을 지적했다. 인천공항 면세점이 민영화될 경우 이와 같은 문제점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관광공사 노조 측은 “대선 당시 박 후보 측이 이러한 문제점을 근거로 관광공사의 인천공항 면세점 존치 요구를 보완·수용하겠다고 해놓고 항만 면세점에서 관광공사를 내보내려 하는 것은 선거가 끝나자 입장을 180도 바꾼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당시 공기업정책연대는 ‘대선 후보 선택의 중요한 근거로 삼고자 한다’며 해당 질의서를 후보 측에 전달했다. 관광공사 노조 측은 “지금 정부에서 진행하는 내용을 보면 당시 보완·수용하겠다는 입장과 큰 차이가 있다. 면세점 민영화의 망령이 대물림해서 이어져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관세청 “MB 정책 계승” 기재부 “현 정부 정책”

이에 대해 관세청과 기획재정부는 서로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관세청은 관광공사의 면세점 참여를 배제시킨 이번 공고에 대해 “2008년도 기획재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방안에 의해 어차피 관광공사는 사업에서 철수하게 돼 있다. 인천공항과 부산항은 아직 계약 기간도 있고 해서 한시적으로 하도록 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인천공항과 부산항의 관광공사 면세점에 대해서도 “향후 이곳 면세점 공고에서도 관광공사가 배제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MB 정권 시절의 ‘공기업 선진화 방안’을 현 정권에서 계속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획재정부(기재부)의 이야기는 달랐다. 공공기관 선진화 등을 담당하는 기재부 주무 부처 관계자는 “예전 (MB 정권 때의) 공기업 선진화 정책은 ‘무조건 나가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기재부의 입장은 과거 공기업 선진화의 일환이나 그 개념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관광공사가 중소·중견 기업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라는 취지”라고 말했다. 즉, 지금의 관광공사 면세점 참여 배제는 MB 정권 정책의 연속선상이 아니라 현 정부에서 추진하는 정책이라는 것이다. 기재부 측은 “이는 절대 민영화가 아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업계 주변에서는 사실상 면세점의 민영화와 다름없다고 보고 있다.

관광공사는 현재 인천공항과 인천1항·인천2항·평택항·부산항·군산항 등 출국장 5곳에서 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다. 롯데·신라 등이 운영하는 면세점에 비해 국산품 비중이 45%로 높은 편이다. 2012년 기준 관광공사 면세점 5곳의 총 매출은 약 2064억원, 영업이익은 151억원 정도다. 공사는 면세점 수익 전액을 국내외 관광 활성을 위한 홍보마케팅 사업 비용으로 사용해왔다. 노조 측은 “우리가 면세점에서 수익을 내면 대주주인 기재부 등 국가에 배당을 하고 관광 사업에 재투자하는데, 민간이나 해외 기업이 들어오면 기업이나 다른 국가로 그 수익이 넘어가는 것이다. 대기업을 배제하겠다고 하지만 해외 대형 면세점 기업들이 국내 법인을 만들어 ‘중견 기업’으로 참여하면 막을 길이 없다”고 주장했다.

관광공사가 운영하는 면세점을 민영화하게 될 경우 공사의 주요 재원이 없어지게 되고 결국 수익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는 현재 정부가 공기업 정상화를 외치며 공기업 부채 비율 감소를 주장하고 있는 것과 배치된다는 게 관광공사 노조의 설명이다. 노조 관계자는 “관광공사 면세 사업을 민영화하면 ‘관광진흥개발기금’을 받아야 하는 등 국고 의존도가 심화될 것이다. 부채 비율을 낮추라면서 오히려 부채 비율을 높이려고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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