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봉’, 모른 척하고 사란 말이야
  • 이혜리 인턴기자 ()
  • 승인 2013.12.31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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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 프로그램’의 얄팍한 상술…화장품 간접광고, 도 넘어

“여러분의 뷰티 멘토가 되어드립니다.” 케이블TV에서 방송되고 있는 한 뷰티 프로그램 진행자의 고정 멘트다. 시청자들에게 현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멘토 역할을 하겠다는 점을 방송 중 틈틈이 강조한다. 과연 이런 뷰티 프로그램들은 아름다워지고 싶어 하는 여성들에게 진정한 ‘멘토’ 역할을 하고 있을까.

2010년 7월부터 케이블 채널 On Style에서 매주 수요일 오후 9시에 방영되고 있는 <겟잇뷰티(Get it beauty)>는 뷰티 프로그램의 시초 격이다. 여성들에게 각종 메이크업 노하우와 화장품 정보를 제공한다. 이 프로는 ‘2030 여성’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믿을 만한 정보 제공 때문이다. <겟잇뷰티>를 인기 프로그램 대열에 올린 일등 공신은 ‘블라인드 테스트’다. 브랜드를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소비자들이 직접 제품을 평가하고 순위를 매긴다. 때론 저렴한 브랜드 제품이 고가 제품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기도 한다. 명품 화장품이 무조건 좋다는 여성들 사이의 절대 공식을 깬 것이다. 시청자들에게는 알짜배기 정보였다.

케이블 채널 On Style에서 매주 수요일 오후 9시에 방영되고 있는 . ⓒ On Style 제공
프로그램의 인기는 자연스럽게 방송에 등장하는 제품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방송에 노출된 제품은 다음 날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국내 한 화장품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선 아무개씨(26)는 “프로그램이 한창 인기를 끌던 당시에는 제품이 노출된 다음 날 모두 동났다. 재고가 없어 제품을 찾는 손님들을 그냥 돌려보낸 적도 많다”고 말했다. <겟잇뷰티>에 노출된 상품 정보는 삽시간에 블로그에 도배되기도 했다.

‘멘토’ 전문가, 자신이 출시한 제품 들고 나오기도

<겟잇뷰티>가 큰 반향을 일으킨 후 다른 케이블 채널에서 비슷한 프로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2012년에 시작된 JTBC의 <뷰티업>, SBS E!의 <서인영의 스타 뷰티쇼>를 비롯해 2013년에 생긴 MBC MUSIC의 <손담비의 뷰티풀 데이즈> 등이다. 뷰티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크게 두 부류다. 첫 번째는 ‘뷰티 멘토’다. 뭇 여성에게 동경의 대상인 연예인과 그들의 메이크업을 담당하는 전문가가 등장한다. 연예인들은 자신이 평소에 쓰는 화장품과 메이크업 노하우를 공개하고, 전문가들은 메이크업을 시연한다. 가수 이효리가 나와 자신이 사용하는 화장품을 공개하고, 이효리의 전담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일명 ‘이효리 메이크업’을 시연하는 식이다.

두 번째 부류는 일반인으로 구성된 패널이다. 이들은 ‘베러걸스(Better Girls)’ ‘뷰티스트(Beautist)’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뷰티 멘토들의 가르침을 받는다. 보편적인 방송 패널과 달리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주요 인물이다. 멘토들의 지시에 따라 직접 메이크업을 하고, 때론 자신들의 노하우를 공개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그들은 메이크업 시연 대상이다. ‘뷰티 멘토’들은 패널을 즉석에서 지원받아 그날 주제에 맞는 메이크업을 시연한다.

얼마 전 <겟잇뷰티>에서 방영된 ‘도화 메이크업’은 시청자들 사이에 큰 화제가 됐다. 관상 전문가들이 나와 남자를 끌어당긴다는 일명 ‘도화살’이 있는 연예인 얼굴을 분석했다. 그리고 유명 메이크업 전문가가 도화살이 부족하다고 지적받은 한 패널을 대상으로 메이크업을 시연했다. 전문가는 이 패널에게 메이크업을 하는 도중 사용한 섀도를 자신의 ‘화장 비법’이라고 강조했다. 그 제품은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네이버에 ‘도화 메이크업’을 검색하면 ‘도화 메이크업 사용 제품’이 자동 완성으로 뜰 정도였다. 그런데 그 제품이 실제로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직접 출시한 브랜드의 제품인 것으로 드러났다.

뷰티 프로그램들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출연하는 전문가들은 ‘멘토’의 역할에서 멀어지고 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은 종종 메이크업 시연 때 자신이 소속된 브랜드의 화장품을 사용하거나, 자신이 출시한 제품을 쓴다. 그 사실을 모르는 시청자들은 이를 전문가들이 제공하는 순수한 정보로 믿는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제품 구매로 이어진다. 연예인들이 매일 사용한다고 공개한 화장품 역시 자신이 광고 모델을 하는 브랜드의 제품인 경우가 많다. 순수한 정보로 받아들일 수만은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연예인들의 메이크업 시연과 화장품 정보는 블로그를 통해 삽시간에 퍼져나가고 시청자들의 구매로 이어진다. 한 화장품 업체 관계자는 “유명 뷰티 프로그램에 제품이 한 번이라도 비치면 매출이 급신장한다. 한 번은 40~50대를 타깃으로 하는 브랜드의 화장품이 프로그램에 나간 적이 있다. 그 후 매출이 엄청나게 뛰었다. 지금은 2030세대에게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 말했다.

패널로 참여했던 윤 아무개씨(26)에 따르면 패널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과정도 순수하지 못하다. 윤씨는 “TV에서 보이듯 패널들이 자발적으로 메이크업 시연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 제작진 측에서 그날 선보일 메이크업에 알맞은 대상을 미리 정한다. 짜고 치는 고스톱 같아 실망이 컸다”고 말했다.

시청자들의 의구심은 커지고 있다. 뷰티 프로그램을 즐겨 봤다는 지희선씨(26·학생)는 “제품이 제대로 기능을 하는지가 궁금한데 썩 신뢰가 안 간다. 연예인들이 사용하는 화장품을 공개하는 코너에서도 다들 자기가 모델로 활동하는 화장품만 챙겨가지고 나온다. 시청자를 바보로 보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고 밝혔다.

파워 블로거 이단비씨(25)는 “뷰티프로그램은 메이크업 기술 같은 것만 참고하기 위해 본다. 화장품을 구매할 땐 본인이 직접 사용해 보는 게 현명한 방법이다. 요즘은 매장에서 화장품 테스트가 가능하고 화장품 샘플도 많이 제공한다”고 말했다.

케이블 방송의 뷰티 프로그램에서 유명 연예인들이 자신이 사용한다는 화장품을 테스트하고 있다. ⓒ SBS E! 제공
뷰티 프로그램 PPL 단가, 지상파보다 비싸

그렇다면 뷰티 프로그램의 간접광고(PPL) 비용은 어느 정도일까. 2012년 공개된 <겟잇뷰티> PPL 제안서를 보면, PPL 단가는 최저 1600만원에서 최고 7600만원이다. 업계 주변에서는 현재 <겟잇뷰티>의 회당 PPL 비용은 브랜드 10분 노출에 7000만원에서 1억5000만원 수준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관계자는 “시청률이 15~20% 정도 나오는 지상파 드라마의 경우 PPL 비용은 2500만원 정도”라고 말했다. 이에 비하면 <겟잇뷰티>의 PPL 단가는 굉장히 높은 수준인 것이다. 한 화장품 업체 홍보팀 관계자는 “다른 뷰티 프로그램도 PPL 제안서는 비슷하다. <겟잇뷰티>가 인기가 있어서 주목받는 것일 뿐, 실상은 다른 데도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케이블 방송은 기본적으로 상업성을 추구한다. 하지만 ‘멘토’를 자처하며 정보를 제공하는 방송의 과도한 PPL은 시청자를 우롱하고 헷갈리게 한다. 방송의 질을 떨어뜨리고 시청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서인영의 스타 뷰티쇼2>는 지나친 PPL로 지난 3월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경고’를 받았고, 9월에는 ‘관계자에 대한 징계’ 및 ‘경고’를 받았다. <겟잇뷰티>는 2011년 방송통신심의위로부터 ‘시청자 사과 및 관계자 징계’ 조치를 받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관계자는 “케이블 방송의 지나친 PPL을 감시하기 위해 시청자들의 민원을 받고, 직원들이 매번 방송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뷰티 프로그램은 PPL이 지나쳐 모니터 요원들의 지적이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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