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은 김정남 옹립하려다 처형됐다”
  • 김현일 대기자 ()
  • 승인 2013.12.17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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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체제 존속 어렵다고 보고 ‘역모’ 꾀하다 화 불러

북한은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전격 처형하면서 ‘군대를 동원해 김정은을 제거하려는 정변(政變)을 획책했다’고 발표했다. 실제 장성택은 북한 체제에 회의를 갖고 있었고, 특히 김정은 체제로는 회생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세습 왕조 체제를 더 이상 끌고 갈 수 없다는 숙고의 흔적이 군사재판 심리에서 확실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다른 어떤 사유를 언급할 필요 없이 ‘정변’ 대목은 김정은 북한 조선로동당 제1비서가 왜 고모부이자 자신의 후계 체제를 다져준 장성택을 철저하게 응징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해소시켜준다.

장성택이 실제 조카인 김정은을 제거하려 했는지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나, 시사저널이 그동안 입수한 자료들은 그럴 가능성이 충분함을 방증한다. 개혁·개방론자인 장성택은 북한이 폐쇄를 무기로 세습 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는 의중을 측근들에게 여러 차례 토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장성택은 행정부 제1부부장 리룡하, 부부장 장수길 등과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의견을 나눴고, 이들이 장성택에 앞서 일찌감치 처형당한 것도 그 때문이라는 전언이다. 단순히 김정일 비자금 유용이나 상장급 책임자의 해외 망명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 연합뉴스
장성택 비밀 회동 대화 새나가면서 급진전

‘반(反)장성택’ 그룹인 국가안전보위부와 당 조직지도부, 군 총정치국으로부터 장성택 관련 비위 보고를 받아온 김정은 제1비서는 6월에 이어 9월 초 측근 20명과의 회합 자료를 확인하곤 행동 개시에 나선 것으로 알려진다. 여기에서 북한이 처한 암담한 상황과 함께 김정은의 치기와 경망스런 처사를 비아냥거리는 대화가 오갔다는 것이다.

“모두가 내 사람들이라고 안심했다면 큰 오산이다. 어디에나 첩자는 있게 마련이다. 아무리 장성택이 권력 2인자라고는 하나 그를 벼르고 있는 무서운 ‘1인자’가 있고, 또 2인자를 저지하려는 반대 세력이 널려 있다. 당 행정부를 근거지로 한 장성택 일파에게 실권을 뺏긴 당 조직지도부나 군부, 국가안전보위부 등에는 반장성택 세력이 광범위하다. 장성택에 대한 ‘1번지’ 호칭도 유일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비치기에 충분하다.” 대북 분야에 20년 넘게 종사해온 ㄱ씨의 말이다.

김정일의 장남이자 김정은의 이복형인 김정남. ⓒ AP 연합
북한 사정에 정통한 ㅅ씨(58)는 “장성택의 ‘백두혈통을 잇는 다른 인물을 김정은의 대타로 삼을 수 있지 않은가’라는 발언이 사태를 키웠다”고 전했다. 여기서 ‘대타’란 김정일과 성혜림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 김정남을 가리킨다. 일각에서는 현재 해외를 떠돌고 있는 김정남에 대해 북한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된 아들’이 아닐뿐더러, 김정일이 후계자로 고영희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김정은을 지정했기에 김정남 옹위는 턱도 없는 추론이라고 일축하지만 ㅅ씨의 지적은 다르다.

“아직 권위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권력 기반마저 취약한 김정은으로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특히 당·내각·군 전반에 걸쳐 폭넓은 세력을 구축하고 중국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장성택에 대한 의구심이 무엇보다 크다. 중국은 김정은의 중국 공식 방문을 수락하지 않으면서 장성택을 중심으로 한 120명의 북한 요인들을 특별 관리·지원한다. 김정남도 적극 감싸며 보호 중이다. 재정 지원도 하고 있다. 그런데 ‘쿠데타’로 의심되는 장성택의 언급이 당 조직지도부와 국가안전보위부 채널을 통해 보고되니 칼을 빼든 것이다. 그게 아니어도 장성택 숙청은 언젠가는 단행할 시간문제의 사안이었지만….”

미국·중국 등 외부 세계의 동향에 정통한 장성택으로서는 김정은 체제에 한계를 느꼈을 소지가 다분하다. 장성택이 총리가 된 다음 ‘거사’에 나서려 했다는 군사재판 심리 내용이 장성택 처형을 정당화하기 위해 강압으로 받아낸 허위 자백인지 여부는 미지수다. 그러나 어차피 김정은 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자신이 후견인 노릇을 했던 김정남을 내세우면 김씨 세습 왕조에 익숙한 북한 주민들을 설득할 수 있다는 가정도 성립한다.

중국이 특별 관리하는 120명 운명도 관심

‘장성택 일당’의 비밀 회합을 보고받은 김정은이 9월9일경 가족회의를 소집한 자리에서 장성택 숙청의 대강이 마련된 것으로 알려진다. 친형 김정철과 이복 누나 김설송 그리고 그녀의 남편 신봉남 등이 모인 이날 자리에 장성택의 부인이자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 당비서는 참석치 않았다. 이후 김경희에게 김정은이 장성택의 여성 편력을 소상히 전했고, 이미 장성택에게서 마음이 떠난 김경희도 수긍했다는 후문이다.

정보 당국은 이때 장성택 제거 작업이 본격화됐지만 ‘숙청 결정’은 지난해 여름에 이뤄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유일 절대 체제를 위해 장성택 거세는 불가피하다는 판단이 김정은의 마음속에 일찍부터 자리하고 있었으며, 이른바 영도 계승 문제를 방해하는 장성택의 거동이 거듭되며 확고하게 굳어졌다는 설명이다. 김정은이 현지지도에서 지원을 약속해도 장성택이 이를 뭉개버리거나, 김정은이 아닌 장성택이 배려하는 것처럼 바뀌는 경우까지 생기면서 숙청 의지를 다졌다는 얘기다. ‘실상을 잘 몰라 하는 말씀’이라며 김정은의 지시를 묵살하는 장성택의 행위는 과거 북한 체제에선 있을 수 없는 반혁명적 도전임이 분명했다.

군사재판 심리에 등장하는 “해당 일꾼들이 ‘대원수님이 작성해주신 건설법에 어긋난다’고 의견을 제시하자, ‘그러면 건설법을 뜯어고치면 되지 않는가’라고 망발했다”는 지적도 같은 맥락의 사례다.

김정은은 김정일 사망 2주기이자 자신의 집권 2년 차가 시작되는 12월17일 이전에 장성택 숙청을 마무리 짓기로 하고 비선을 가동, 관련자 체포 등의 전격 소탕 작전에 돌입했다. 김정은의 직계로 김원홍의 국가안전보위부와 조연준 제1부부장이 장악하고 있는 당 조직지도부, 최룡해의 총정치국 정예들이 대거 동원됐다. 윤정린 상장의 호위사령부가 장성택 계열의 장성들을 단속하는 등 조직적인 저항에 대비했다.

한때 김정일이 부장을 겸하던 당 조직지도부는 권력의 핵심이었으나 2010년 이래 제1부부장들이 잇달아 사망한 이후 행정부에 주요 임무를 넘겨주게 되면서 장성택에 대한 불만이 고조됐다. 2010년 4월 리용철이 심장마비로 죽은 이후 ‘숨은 실세’로 평가받던 리제강은 2개월 뒤 의문의 교통사고로, 박정순은 암으로 사망했다. 의문사 당사자인 리제강은 2004년 장성택 실각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조연준은 군수담당비서 박도춘, 부부장 민병철 등 2명과 함께 김정일이 직접 심은 핵심이다.

김정은은 11월30일 직계들을 대동하고 백두산 삼지연을 방문했는데 이때 장성택 라인에 대한 대체적 소탕 작업은 끝났다. 지금까지 전해진 것과는 달리 장성택은 이미 체포 상태에서 국가안전보위부의 엄중한 심문을 받았고, 주요 관련자에 대한 체포·조사도 상당 부분 이뤄진 즈음이라고 한다. 해외에 감춰뒀던 비자금도 상당 부분 회수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 과정에서 핵심 인물 몇몇이 망명했다고 한다.

장성택이 12월8일 열린 정치국 확대회의에 나왔다가 연행되는 장면은 당·내각·군 간부들에게 공포를 극대화하기 위한 연출에 지나지 않는다는 전언이다. 삼지연을 수행한 간부들 가운데 박태성·황병서·김병오·마건춘·홍영칠 등 5명의 부부장은 향후 김정은 체제의 조직·군사·선전·건설·기계 부분의 실무 중추를 맡을 인물로 알려진다.

장성택 총살을 신호탄으로 북한 전역에 피바람이 몰아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장성택 일당’은 3만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고위 간부들에게는 총살형이 기다린다. 대상자는 최소 수백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 생존 당시인 1980년대 그가 탄 특별열차를 폭파하려던 군부 일각의 쿠데타가 사전 발각됐을 때 해당 군단 장교 거의가 처형됐다는 후문은 이번 숙청이 얼마나 광범위하고 험악하게 전개될지를 시사한다. 공개적으로 총살을 시키면서, 그것도 소총이 아닌 기관총을 난사하는 방식은 공포를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역시 장성택 일당으로 찍힌 당·내각·군 하급 간부 등은 정치범 교화소 등에 수용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좌천 및 오지 추방 등의 직접적인 처분을 받는 인원은 최소 수만명이 넘을 게 분명하다. 때문에 아무리 서두른다 해도 숙청의 여진은 1년 넘게 지속될 듯하다. 당 행정부는 물론이고, 청년사업부, 제2·제3 경제위원회 등에 숙청 바람이 휘몰아칠 전망이다.

특히 이미 공개 총살된 리룡하 제1부부장과 장수길 부부장이 속했던 행정부는 피바다를 이룰 게 뻔하다. 아예 조직 자체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문경덕 평양시당 책임비서, 리영수 당 근로단체부장 등의 운명도 심상치 않다. 이들은 이미 국가안전보위부의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성택은 김일성의 딸 김경희와 결혼(1972년)한 뒤 1982년 청년사업부 부부장으로 노동당에 첫발을 디딘 이래 1995년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옮기기까지 줄곧 청소년사업부장으로 일했고, 이들과는 호형호제하던 사이였다. 김양건 당 통일전선부장, 박봉주 내각총리, 노두철·리무영 부총리, 리종무 체육상, 오금철 군 총참모부 부참모장, 최부일 인민보안부장 등도 위태롭다. 벌써 노두철·리무영 부총리에 대해서는 망명설과 함께 중국 정부 보호설이 나돈다. 장성택의 조카인 장용철 말레이시아 대사와 매형인 전영진 쿠바 대사는 이미 본국에 소환돼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12월8일 북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장성택이 국가안전보위부에 체포되고 있다. ⓒ 연합뉴스
북한발 ‘급변 사태’ 상황도 배제 못해

숙청의 또 다른 1순위는 ‘부패’ 혐의를 함께 받는 외화벌이꾼 등 대외 무역과 경협 부문 관계자들이다. 자원을 팔아넘기지 말라는 수령의 유훈을 어기고, 그것도 헐값에 판 것으로 돼 있으니 가해질 조치는 뻔하다. 이들 가운데는 중국이 특별 관리하던 인물 120명의 상당수가 포함돼 있어 대중(對中) 관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북한이 어떻게 처리할지 주목된다. 그러나 친중파의 핵심인 장성택 처형 전말이 말해주듯 북한이 별도의 배려를 할 리가 없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그저 ‘장성택 일당’의 일원이 확실하지만 중국의 각별한 보호 대상인 지재룡 주중 대사의 처리 정도가 가변적일 따름이다.

숙청의 피바람과 대대적인 세대교체가 어우러질 북한 사회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내부의 불안·불만 해소를 위해 대남 도발 가능성도 다분하다. 공포정치로 김정은 체제가 외견상 안정을 찾는 듯 보일지 모르나 실은 미봉에 불과할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장성택을 매도하기 위해 특별군사재판이 적시한 내용들에는 북한의 급박한 처지가 낱낱이 담겨 있다. 한 꺼풀만 벗기면 근본부터 흔들리는 북한 체제의 취약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어쩌면 김정은 체제가 뿌리째 흔들리는 ‘급변(急變) 사태’를 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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