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벅지’가 아니라 ‘금벅지’라 불러줘
  • 홍재현│스포츠동아 기자 ()
  • 승인 2013.12.11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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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화, 10개월 동안 4번 세계신기록 소치 올림픽 금메달 유력

‘빙상 여제’ 이상화(24·서울시청)가 동계올림픽 2연패를 향해 순항하고 있다. 이상화는 올해에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6연속으로 월드컵대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 시즌(2012~13시즌) 월드컵 1차 대회부터 올림픽이 포함된 올 시즌(2013~14시즌)까지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10개월 사이 무려 4번이나 세계신기록을 경신했다.

올 1월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2012~13시즌 ISU 월드컵 6차 대회에서는 36초80으로 위징(중국)이 2012년 1월에 세운 기록을 갈아치우더니, 2013~14시즌이 시작된 11월에는 일주일 새(10일 1차 대회 2차 레이스 36초74→16일 2차 대회 1차 레이스 36초57→17일 2차 레이스 36초36) 3차례나 역사를 다시 썼다. “500m에서 완벽한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이상화의 쾌속 질주 비결은 과연 뭘까.

ⓒ EPA 연합
이상화 “자신감이 신기록 원동력”

스포츠계에는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이상화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혹독하게 스스로를 단련한다. 호성적의 비결에 대해 “열심히 훈련한 덕분”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이유다. 실제 그는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딴 이후에도 약점으로 꼽혔던 첫 100m 기록을 보완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 왕베이싱(28·중국)을 세계적인 스케이터로 키워낸 케빈 오벌랜드(캐나다) 코치의 지도 아래 추진력을 키우는 데 집중했고 완전체로 거듭났다.

지난 시즌부터는 꾸준한 식단 조절로 몸무게를 5㎏ 감량하고 근력 운동으로 내실을 다진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김관규 대한빙상경기연맹 전무이사는 “자동차로 비유하면 중형차에서 경차가 됐는데 배기량은 커졌다고 보면 된다. 체중이 가벼워진 상태에서 근력을 키우면서 몸을 밀어내는 힘이 좋아졌다. 덕분에 약점으로 꼽혔던 첫 100m 랩타임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타트도 좋지만 마지막 400~500m 구간에서도 힘이 떨어지지 않고 속도를 유지하고 있다. 김 전무이사는 “요즘 상화의 레이스를 보면 마지막 100m에서 속도가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더 붙는 느낌이 난다”며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레이스를 펼치기 때문에 세계신기록이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극찬했다.

이상화의 폭발적인 막판 스퍼트의 비결은 1000m다. 이상화는 케빈 코치의 권유로 500m와 더불어 1000m 경기에도 꾸준히 출전하고 있다. 그는 “코치님이 1000m를 완주하면 체력적인 부분에서 도움이 된다고 추천해주셨다”며 “효과가 확실하다. 덕분에 500m에서 마지막까지 속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만족스러워했다.

스포츠에서 기술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정신력이다. 큰 대회를 앞두고 긴장하지 않는 선수는 없다. 누가 더 부담감을 떨쳐내고 제 실력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판이하게 달라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상화는 뛰어난 실력만큼 좋은 ‘멘탈’을 지니고 있다.

실제 이상화는 3연속 신기록 달성 비결로 자신감을 꼽았다. 그는 신기록을 세운 뒤 “특별한 것은 없다. 난 평소와 같이 운동하고 있다”며 “지난 시즌 성적이 좋아서 자신감에 차 있었다. 자신감이 신기록의 원동력인 것 같다”고 말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는 얘기다.

물론 자신감은 있되 자만하지는 않는다. 현재 세계 여자 스피드스케이팅계에서 이상화를 위협할 적수는 딱히 보이지 않는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부터 제1호 경계 대상이었던 예니 볼프(34·독일)는 전성기가 지나 하락세를 보이고 있고, 위징(28·중국)이나 왕베이싱도 지난 시즌부터 이상화라는 큰 산에 막혀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상화는 “모든 선수가 라이벌이다. 방심하면 안 된다”며 긴장의 끈을 바짝 조였다. ‘방심하지 말자’는 스케이트화를 신은 순간부터 지켜온 그의 신념이다. 김 전무이사도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 한 수 위”라고 칭찬하면서도 “주위에서 너무 잘한다고만 하면 선수 스스로 자만할 수 있다. 지금 상화에게 중요한 것은 올림픽이다. 월드컵대회에서 성적이 좋아도 방심하면 안 된다. 기록경기는 상대가 아닌 자신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고 애정 어린 충고를 건넸다.

ⓒ 연합뉴스
역대 세 번째 올림픽 500m 2연패 노려

이상화는 이미 세계 스피드스케이팅사에 한 획을 그었다. 역대 여자 500m에서 4번 이상 세계기록을 바꾼 선수는 카트리오나 르메이돈(캐나다·7번), 보니 블레어(미국), 크리스티나 로텐버거(독일), 이상화(이상 4번) 등 4명밖에 없다. 10개월 만에 4연속으로 기록을 경신한 것은 이상화뿐이다. 르메이돈이 2001년 12월 세운 세계신기록(37초22)을 2007년 3월 예니 볼프(독일)가 깨기까지는 5년 3개월이 걸린 것에서도 이상화의 위대함을 가늠해볼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상화는 11월30일(한국 시각)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린 2013?14 ISU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3차 대회 여자 500m 디비전A(1부 리그) 2차 레이스에서 37초32로 1위를 거머쥐었다. 사실 아스타나로 출국하기 전 그의 몸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현지에서도 감기 몸살로 컨디션을 유지하기 쉽지 않았지만 현지에서 몸을 추슬렀고,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번 대회가 의미 있었던 이유는 올림픽 2연패의 가능성을 높였기 때문이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올림픽이다. 큰 대회에서 핵심은 당일 컨디션. 즉, 올림픽 리허설 무대 격인 월드컵에서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닌 가운데 좋은 기록을 냈다는 것은 레벨이 어느 수준 이상으로 올라섰다는 뜻이 된다. 김 전무도 “세계신기록을 냈던 그 감각을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상화에게는 그게 중요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화가 만약 밴쿠버에 이어 소치에서도 챔피언이 된다면, 보니 블레어(미국·1988년 캘거리?1992년 알베르빌?1994년 릴레함메르 3연패)와 카트리오나 르메이돈(캐나다·1998년 나가노?2002년 솔트레이크 2연패)에 이어 역대 3번째로 여자 500m에서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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