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칼 들어간 김치를 안심하고 먹으라고?”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3.11.2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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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CCP, 개구리·금속·벌레 나와도 인증 유지…사후 관리 시스템 ‘엉터리’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불량 식품을 ‘4대 사회악’ 중 하나로 지목해 퇴치 활동에 박차를 가했다. 그 일환으로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국민의 식품 건강을 책임지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청’에서 ‘처’로 격상됐다. 하지만 식약처가 공식 인증하는 해썹(HACCP; 식품 위해 요소 중점 관리 기준) 제품에서 끊임없이 위해 물질이 검출돼 도마에 오르고 있다.

해썹은 식품의 원재료 생산부터 유통까지 모든 단계에서 위해한 물질이 식품에 혼입돼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난 1995년에 도입한 위생 관리 시스템이다. 2006년부터 어묵류, 냉동식품, 냉동 수산 식품, 빙과류, 비가열 음료, 레토르트 식품이 의무 적용 품목으로 선정됐다. 2008년부터는 배추김치도 의무 대상에 추가로 포함됐다. 해썹 인증을 받으려면 오염 방지 시설을 설치하고 식품 안전관리 교육을 받아야 하는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인증을 하고 난 후에는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문제가 되고 있다. 수차례 이물질이 검출돼 행정처분을 받은 제품이 계속 해썹 인증을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목희 민주당 의원을 통해 입수한 ‘2010년 이후 해썹 지정 품목 이물질 검출 사례 조치 결과’ ‘2010년부터 현재까지 이물질 검출 사례 2회 이상 업체 내역’ 자료에 따르면 과연 해썹이 믿을 만한 인증인지 의문이 든다.

두 차례 이상 이물질이 검출돼 문제가 됐던 해썹 인증 제품들. 오른쪽은 해썹 인증 마크. ⓒ 시사저널 전영기
벌레, 비닐, 플라스틱, 금속류가 주로 검출되는 와중에 일부 제품에서 동물·식칼 같은 이물질이 나왔다. 어떻게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지 경악스러울 정도다. 이 가운데 특히 해썹 의무 적용 대상 식품인 배추김치 제품군에서 다양한 이물질이 검출되고 있다. 가령 남양농업협동조합의 ‘고랭지배추김치’, 고가네식품의 ‘배추김치’, ㈜삼전삼소스코 ‘배추김치’ 제품 등에선 청개구리가 나왔다.

동일식품의 ‘막김치’, 세광식품의 ‘해뜰찬 포기김치’, 정우식품의 ‘막김치’(군납), 대한민국상이군경회 식품사업소의 ‘배추김치’, 가나다푸드시스템의 ‘배추김치’ 제품에서는 동물이 검출됐다. 심지어 지난 5월 제품 폐기 처분을 받은 청원오가닉의 ‘(군납)배추김치’에서는 식칼이 나오기도 했다.

롯데제과·오리온 제품에서 연속 이물질 검출

굴지의 식품회사 제품이라고 사정이 다르지 않다. 롯데제과의 ‘갸또화이트’ ‘크런키’ 제품과 오리온의 ‘포카칩’, 해태 ‘바밤바’ 등에서 2010년 이후 2~3회 이상 벌레와 금속 등이 검출됐지만 해썹 인증이 유지되고 있다. 크라운제과의 ‘쵸코하임’, 농심 ‘새우깡’, 해태 ‘후렌치파이’, 오리온 ‘왕꿈틀이’에서도 벌레와 나뭇조각이 검출됐다. 최근 오뚜기SF㈜의 ‘살코기 마일드 참치’에서는 벨트 조각이 나오기도 했다.

문제는 식품에 들어가선 안 될 이물질이 여러 차례 검출돼도 인증 마크를 계속 붙이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물질 검출로 식품위생법에 따른 품목 제조정지 등의 행정처분을 받더라도 이 결과가 해썹 인증 여부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탓이다. 실제 ‘2010년 이후 해썹 지정 품목 이물질 검출 사례 조치 결과’ 자료를 살펴보면 금속·동물 등이 검출된 제품에도 ‘시정명령’을 내린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2010년 57개 업체, 2011년 53개 업체, 2012년 53개 업체, 2013년 6월까지 27개 업체의 해썹 지정 품목에서 이물질이 검출됐다. 하지만 이 가운데 해썹 규정 위반으로 인증이 취소된 사례는 11건뿐이다.

이목희 의원실 관계자는 “규정상 원래 동물·금속 등 이물질이 검출되면 시정명령이 아니라 제조정지 15일 처분을 내리게 돼 있다. 그러나 처분 명령을 시행하는 것은 시·군·구 지자체의 권한이기 때문에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고, 인증이 취소된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처분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으면 (지자체 측에) 공문을 내려 규정대로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최소한의 조치도 하지 않았다”며 “이 와중에 식약처는 해썹 인증 제품이 가장 안전한 식품인 양 광고하는 데 매년 5억원씩 쏟아붓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 또한 해썹 인증 제도의 개선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식품 안전 문제 전문 변호사인 스카이법률특허사무소 김태민 변호사는 “해썹의 사후 관리라고 해봐야 1년에 한 차례 하는 점검 활동이 전부다. 그 또한 미리 공지를 하는 경우가 많아 제대로 이뤄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사후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없다면 차라리 한 번 부여받으면 평생 지속되는 현 규정을 바꿔 2~3년마다 갱신하는 식의 엄격한 인증 절차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재 해썹은 식약처에서 인증 업무를 맡고,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산하 해썹지원사업단에서 업체 컨설팅과 홍보·기술 지원 등을 담당한다. 또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축산물 및 도축장과 관련된 해썹 관리를 하고 있다. 중첩된 인력을 줄이고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해썹을 따로 관리하는 공공기관을 만들어 운영하는 게 대안이 될 것이다.”

사후 관리 대안 없이 해썹 대상만 대폭 늘려

식약처는 지난 7월 해썹 제도 의무 적용 대상을 대폭 확대하기 위해 식품위생법 시행 규칙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식약처는 2017년부터 연 매출 100억원 이상 식품 제조업소에서 제조한 모든 식품에 대해 해썹 의무 적용을 시행할 방침이다. 또 주문자 상표 부착(OEM) 및 위탁 생산 식품, 어린이 기호 식품 및 영유아 용품을 포함한 특수 용도 식품은 업체 규모에 따라 2014년부터 2020년까지 단계적 의무 적용 기간을 거치게 된다. 이에 따라 식약처는 2017년까지 전체 식품 제조·가공업소의 20%, 2020년까지는 50% 수준으로 해썹 지정률을 높일 방침이다.

이목희 의원은 “불량 식품을 4대악으로 지정한 현 정부가 해썹 지정 품목을 늘리는 등 전시 행정에 급급하고 있다”며 “정작 필요한 해썹 사후 관리 시스템에 대한 개선안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식약처 관계자는 “현재 전국의 3000여 개 해썹 인증 업체를 담당하는 직원이 모두 20여 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사후 관리에) 어려움이 있다”며 “게다가 행정처분을 내리는 것 또한 그 권한이 관할 지자체에 있어서 강제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해명했다. 그는 “앞으로 해썹이 더 확대되는 만큼 인력 확충이 절실하다. 사후 관리 개선안 역시 내부 검토를 거치고 있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오리온 초코파이 제품에 표기된 GH 마크. ⓒ 시사저널 전영기
준정부기관인 한국보건산업진흥원(진흥원)이 인증하는 GH(goods of health) 마크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우수 보건 제품에 부여하는 GH 마크의 인증 절차가 ‘엉터리’로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2013년 현재까지 진흥원은 총 38개 업체, 105개 제품에 GH 마크를 부여했다. 올해 신규 인증 신청 건은 총 19건으로 이 가운데 17건이 인증을 받았다. GH 인증이 지난 2007년 법제화된 것을 감안할 때 활용도나 인지도가 상당히 낮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GH 인증 절차가 ‘마크 홍보’에 치우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정록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10월29일 국정감사에서 “진흥원은 GH 마크에 대한 홍보를 위해 유명 제품에 인증을 부여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제품이 바로 ‘오리온 초코파이’”라며 “설탕과 물엿 등 정제당이 다량 함유된 초코파이에 ‘우수 보건 제품’이란 명칭을 부여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인증 적합 사유에 이를 노골적으로 표기한 경우도 있었다. 김 의원이 이날 발표한 ‘GH 품질 인증 평가보고서’ 자료에 따르면 ㈜오리온의 자일리톨 껌과 ㈜한국허벌라이프의 뉴트리셔널 쉐이크믹스 등은 각각 ‘GH 마크의 활성화 차원에서, 유명 제품의 활용을 통한 식품 산업 발전에 보탬이 되도록 운영한다는 차원에서 인증이 적합함’이라는 이유로 인증 심의를 통과한 것으로 돼 있다.

김 의원은 “이러한 인증 사유는 마치 GH 마크 홍보를 위해 마크를 부여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게다가 품질 인증 심사 항목으로 회사 이미지, 제품 이미지, 제품 시장 규모가 포함돼 있는데, 중소기업 중에 이런 기준을 충족시킬 만한 곳이 몇이나 될지 의문”이라며 “중소기업이 진입하기 어렵도록 만든 심의 기준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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