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리 갈 테니, 네가 이리 와”
  • 양정대│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3.11.27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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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박준영, 김문수-원유철 등 지방선거 앞두고 ‘빅딜설’ 잇따라

“최근 들어 김문수 경기도지사 측과 원유철 의원 측이 자주 접촉한다는 얘기가 있어요. 김 지사 쪽과 정병국 의원 쪽이 만난다는 얘기도 나와요. 물론 구체적으로 확인되기는 어렵겠지만, 내년 지방선거에서 뭔가 도움을 주고받을 게 있기 때문이겠죠?” 새누리당 조직국의 한 핵심 당직자에게 내년 경기도지사 선거와 관련한 당내 움직임을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3선 도전에 나서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김 지사 측과 내년 지방선거 출마를 준비 중인 현역 의원 사이에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대목이란 대체 뭘까. 이 당직자는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현역 의원의 지역구가 비지 않느냐”고 했다. 지방선거 후에 치러질 7·30 재·보궐 선거를 염두에 둔 얘기였다.

왼쪽 사진은 2010년 1월7일 한나라당 경기도당 신년인사회 당시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원유철 의원(왼쪽부터), 오른쪽 사진은 지난해 6월13일 민주당 전남도당 회의실에서 만난 박지원 의원(왼쪽)과 박준영 전남도지사. ⓒ 뉴스뱅크이미지
전남·경기·울산 등에서 잇따른 ‘빅딜설’

내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빅딜설’이 잇따라 나오고 있어 관심이 집중된다. 빅딜설의 요지는 국회의원 배지를 포기하고서라도 광역단체장에 도전하겠다는 현역 의원들과 국회 입성을 구상하고 있는 현직 광역단체장들이 의기투합하고 있다는 것. 6월 지방선거에서는 현직 단체장들이 출마 의원들을 적극 돕고, 해당 의원들의 본선 출마로 공석이 된 지역구는 도움을 준 단체장들이 꿰차는 이른바 ‘윈윈 동맹’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빅딜설의 최초 진원지는 전남이다. 올 상반기부터 민주당 안팎에선 전남 목포를 지역구로 둔 박지원 의원과 현재 3선 임기 막바지인 박준영 전남도지사가 내년에 자리를 맞바꿀 것이란 얘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왔다. 박 지사는 현행법상 내년에 4선 도전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고, 70대인 박 의원도 국회의원 선수 하나 더 늘리는 것보다는 전남도지사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두 사람은 김대중(DJ) 정권 당시 청와대에서 DJ를 보좌했던 정치적 동지이기도 하다.

박 의원은 아직까지 전남도지사 선거 출마를 공식화하진 않았지만,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로 출마 가능성을 열어뒀다. 특히 지난 9월에는 “전남을 동서로 구분해 작은 싸움을 하는 것보다 전국적 차원에서 심각한 예산 차별을 시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미 예선에 뛰어든 4선의 이낙연(담양·함평·영광·장성) 의원과 3선의 주승용(여수을) 의원을 겨냥한 비판이었다. 전남 지역의 한 의원은 “인지도가 높은 박 의원이 선거전에 본격적으로 가세하면 판이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며 “박 지사 입장에선 친밀도나 정치 지형 측면에서 박 의원과 손잡을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빅딜설에 대한 주목도가 가장 높은 곳은 경기도다. 지방선거의 분수령이 될 수도권이란 점, 김문수 지사가 차기 대권 후보로 거론된다는 점, 여권 내 주류·비주류 간 격돌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 휘발성 강한 요소들이 중첩돼 있기 때문이다. 현재 새누리당에서 출마를 공식화한 후보는 원유철(평택갑) 의원과 정병국(여주·양평·가평) 의원이다. 두 사람 모두 4선 의원이면서, 김 지사와 더불어 이명박 정부 때 친이계로 분류됐고, 지금도 친박계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비주류들이다.

관심거리는 김 지사가 원 의원이나 정 의원과 실제로 손을 잡느냐다. 김 지사 입장에서 보면, 차기 대권 준비를 위해선 국회 재입성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두 의원 중 가능성이 좀 더 큰 쪽과 힘을 합쳐 7월 재보선 기회를 확보해야 한다. 실제로 최근 당내에선 김 지사가 원 의원 쪽에 무게를 더 두면서 일부 의원들이 원 의원 캠프 합류 의사를 밝혔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만약 이런 기류가 현실화하면 여권은 혼란에 휩싸일 수도 있다. 차기 대권을 노리는 김 지사가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경기도지사 출마설이 꾸준히 나오고 있는 유정복(김포) 안전행정부장관을 외면할 경우, 자칫 친박 주류와 정면 대결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지사와 손잡은 후보의 본선 승리 여부에 따라 김 지사의 향후 정치 보폭도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한 수도권 중진 의원은 “김 지사로서는 여권 내 비주류의 구심이 되면서 이명박 정부 내내 박근혜 대통령이 걸었던 ‘여당 내 야당’의 길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얼마 전부터는 울산 정가에서도 빅딜설이 나돌고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 거론되는 설(說)은 무려 세 가지나 된다. 하나는 3선 연임 제한에 걸린 박맹우 울산시장과 시장직에 애착을 보여온 4선의 정갑윤 의원(중)이 손을 맞잡을 것이란 예상이다. 다른 하나는 3선의 김기현 의원(남을)이 울산시장에 도전할 경우, 일찌감치 출사표를 던진 김두겸 남구청장이 재보선으로 돌아설 것이란 추측이다. 세 번째는 차차기 시장직을 노리는 울산 지역 초·재선 의원들이 지역 내 최연장자인 강길부 의원(울주)으로 하여금 ‘원포인트 시장’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빅딜설이 실제로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여러 변수들이 고려돼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해당 단체장 선거와 재보선 모두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커야 한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윈윈’ 할 수 있어야 양측 모두 총력전에 나설 수 있는 것이다. 전남과 울산처럼 특정 정당이 깃발만 꽂으면 당선된다는 지역에서 빅딜설이 훨씬 힘을 갖는 이유다. 경기에서도 평택갑, 여주·양평·가평 등은 새누리당의 세가 강한 곳이다.

구태 정치로 비치는 것에 대해선 ‘고민’

정치인 입장에선 빅딜설이 자칫 당선만을 목표로 한 ‘정치적 꼼수’로 비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우려가 특히 클 수밖에 없다. 빅딜설의 당사자로 거론된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정치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비슷하다면 서로에게 득이 되는 방안이지만, 솔직히 상대 후보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선 과도하게 비난을 받을 수도 있어 고민”이라고 털어놓았다. 김문수 지사의 한 측근도 “대권까지 가는 과정에선 국회의원 배지를 달아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대권을 염두에 두고 있는 입장에선 쉽게 어떤 결정을 내리고 행동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빅딜설이 실제로 현실화할지 여부는 속단하기 어렵다는 얘기가 나온다. 광역단체장을 노리는 쪽이나 국회 입성을 원하는 쪽이나 하나같이 일정한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울산 출신의 한 의원은 “지역구에 가보면 시장 선거뿐 아니라 구청장과 지방의원 선거까지 포함해 이런저런 시나리오가 10여 가지는 되더라”며 “그림 그리는 거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아니냐”고 반문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어느 선거든 정치적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정치인들이 손잡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면서도 “그러나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명분임을 감안할 때 빅딜설은 가장 위험한 도박이라는 점도 분명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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