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이파니처럼 예뻐질 수 있을 거야”
  • 하재근│문화평론가 ()
  • 승인 2013.11.13 15:5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예인들 따라 하는 양악수술 열풍…수술 받다 사망하는 사고 잇따라

지난 10월27일 부산에서 한 여대생이 턱뼈와 코 성형수술을 받은 지 9일 만에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학생이 받은 턱 수술은 위아래 양쪽의 턱뼈를 모두 깎는다는 이른바 ‘양악수술’이었다. 숨진 학생은 다섯 시간에 걸쳐 수술을 받은 후 회복실에서 의식을 잃었고 결국 깨어나지 못했다.

지난 8월엔 양악수술 후유증을 비관하던 남성이 한강에 투신하기도 했다. 6월엔 서울 강남에서 양악수술을 받은 여성이 의식 불명 상태에 빠진 후 한 달 만에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해 10월에도 양악수술을 받은 여성이 후유증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일러스트 김세중
양악수술은 위턱과 아래턱을 절단한 후 입 부위를 통째로 밀어 넣으면서 위아래 턱의 교합을 새로 맞춰주는 고난도 수술이다. 잘못될 경우 수술 부위에 과다 출혈이 생기거나 기도가 부어 사망할 위험이 있다. 그래서 양악수술을 두고 요즘엔 ‘목숨 걸고 하는 수술’ ‘암보다 어려운 수술’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1091개 성형외과 중 839곳(76.9%)에 심장 전기충격기나 인공호흡 장비 등 응급 의료장비가 부족했다. 불충분한 의료 설비 속에서 위험천만한 시술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목숨을 잃는 지경까진 안 간다 하더라도 위아래 턱이 제대로 맞춰지지 않아 새로운 장애가 발생한다든가, 아래턱을 지나가는 신경을 잘못 건드려 아랫입술의 감각이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아랫입술의 감각이 떨어지면 음식물을 제대로 먹기가 어렵고, 침까지 흘리게 돼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힘들어진다. 이런 후유증 때문에 정신적으로 막대한 고통을 겪다가 우울증으로 진행돼 자살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연예인이 앞장선 양악수술 홍보

이렇게 위험한 시술이지만 수많은 사람이 양약수술을 기꺼이 받고 있다. 업계에선 전국적으로 연간 5000건 이상의 양악수술이 이루어지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온다. 원래 양악수술은 주걱턱이나 돌출입 형태로 부정 교합이 있어 음식물을 씹기 어렵거나, 선천적 기형이 있을 경우 치료 목적으로 행하는 수술법이다.

그러나 한국에선 그런 치료와 상관없이 양악수술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양악수술을 치료가 아닌 성형의 관점에서 접근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워낙 유별난 상황이라, 세계에서 양악수술을 성형으로 인식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렇게 된 데는 대중문화계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000년대 중반쯤 미스코리아 출신 오현경이 미국에서 성공리에 턱 수술을 받았다는 기사가 뜰 때까지만 해도 한국인에게 턱을 깎는 수술은 익숙한 것이 아니었다. 비록 오현경은 미용 목적이 아닌 정말 턱관절에 심각한 이상이 있어서 치료 목적으로 수술한 것이었지만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긴 것은 그 자세한 내막보다 수술 후 갸름해진 오현경의 얼굴 그 자체였다. 사람들은 턱뼈에 손을 대면 얼굴에 놀라운 변화가 생긴다는 걸 학습하기 시작했다.

그 후 양악수술을 받는 연예인들이 줄을 이었다. 먼저 개그맨 임혁필의 양악수술이 화제가 됐다. 이어 개그맨 이동윤, 방송인 이파니 등 연예인의 양악수술이 계속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양악수술을 선택한 연예인들은 미용 목적이 아닌 치료 목적임을 강조했다. 그러다 배우 신은경이나 신이에 이르러선 이미지 변신을 위해 양악수술을 하는 수준으로 발전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양악수술은 얼굴 윤곽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페이스오프, 궁극의 성형’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물론 이들이 양악수술의 아름다운 면만을 말한 것은 아니다. 토크쇼에 나와 자신들이 겪은 부작용이나 고통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신은경은 “정말 심각할 때는 3~4일 호흡곤란도 왔다”고 했고, 이파니는 “양악수술 후 부작용으로 가끔 침을 흘린 적이 있다”고 했다.

개그우먼 김지혜는 “유서를 썼을 정도로 정말 큰 수술이었다. 절대 쉽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TV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밝고 아름다울 뿐이었다. 그들이 고통을 이야기해봐야 그건 아름다워지기 위해 당연히 치러야 할 대가처럼 느껴지게 마련이다. 연예인들은 자신을 시술해준 의사들과 기념사진을 찍어 양악수술 홍보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어디에도 부작용 경고가 없다

연예인들만이 한국을 불과 몇 년 만에 양악수술 천국으로 만든 건 아니다. 연예인들의 홍보 효과를 극대화해준 것은 바로 언론의 행태였다. 언론은 연예인들의 극적인 변화를 전하며 양악수술을 마법의 성형 기법으로 인식되도록 했다. 예를 들어 탤런트 윤현숙은 ‘양악수술 후 청순 여신으로 변신’, 가수 성수진은 ‘미모가 확 바뀌어’, 가수 김지현은 ‘봄의 여신으로 변신’ 등. 이것들은 모두 매체의 기사 제목에 나온 표현들이다. 여기 어디에도 부작용에 대한 경고는 없다.

방송사는 양악수술을 통해 일반인을 미녀로 변신시켜주는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신문사는 또 그것들을 호들갑 떨며 보도한다. ‘양악수술 후 역대 최고 미녀 변신’, 이런 제목으로 말이다. 여기에 일반인 블로거들이 가세하고, 성형업계의 ‘묻지 마 성형 권유’ 상술이 더해져 한국을 양악수술 대국으로 만들었다.

한국의 양악수술 열기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해외에서까지 취재할 정도다. 올 5월 영국의 <데일리메일>은 한국 여성들이 부작용 위험이 큰 수술을 감행하고 있다며 현황을 자세히 보도했다. 바로 양악수술이었다. 이 매체는 그 원인으로 ‘V라인’과 작은 얼굴에 대한 집착을 꼽았는데, 맞는 말이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에선 갸름하고 작은 얼굴에 대한 열망이 극심해졌다. TV 예능 프로그램은 출연자의 얼굴이 조금이라도 크면 ‘얼큰이’ ‘사각턱’이라고 놀리며 그 흐름에 부채질했다.

양악수술을 한 사람들은 대체로 갸름하긴 한데 그렇다고 마르거나 뾰족한 느낌은 아니고, 동글동글하며 작은 얼굴형을 갖게 된다. 바로 ‘동안’이다. 한국에선 2000년대 이후 동안 열풍이 거세게 불었다. 나이 먹은 사람들이 퇴물 취급을 받으며 구조조정당한 다음부터다.

이때부터 동안은 절대선, 노안은 절대악이 되었다. 그런 동안을 향한 강박이, 그렇지 않아도 극심해지는 외모지상주의를 더 부채질해 양악수술 대국을 만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동안에 열광한 우리 모두가 양악수술 대국의 원인 제공자라고 할 수 있겠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