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옛날이여!” KBS는 배 아프다
  • 정덕현│문화평론가 ()
  • 승인 2013.11.13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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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PD들 tvN으로 옮겨 맹활약…비슷한 코드 반복하는 지상파엔 식상

최근 케이블 채널 tvN의 상승 기류가 심상치 않다. <꽃보다 할배>가 케이블 채널로서는 대박 중의 대박인 무려 7%의 시청률을 냈고, <응답하라 1997>에 이어 새롭게 시작한 <응답하라 1994>도 이미 5%를 돌파해 회를 거듭할수록 더 높은 시청률도 기대된다.

시청률보다 더 주목되는 것은 이 콘텐츠들이 가진 파급력과 화제성이다. <꽃보다 할배>는 갑자기 실버 붐을 일으켰다. 여기 출연한 이순재·신구·박근형·백일섭, 네 명의 배우는 70대임에도 광고계에서까지 핫한 인물이 됐다. 광고 모델이 된다는 것은 주 구매층인 젊은 세대에도 이들이 어필한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이들 배우에 대한 재조명보다 더 의미 있는 건 이 예능 프로그램이 가진 트렌드 세터로서의 기능이다. <꽃보다 할배>가 말 그대로 대박을 치자 지상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른바 ‘실버 예능’에 손을 뻗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신호탄은 아이러니하게도 KBS에서부터 비롯됐다. 할배가 아닌 할매를 내세워 <마마도>라는 프로그램을 파일럿으로 띄웠고, 베끼기 논란이 나왔지만 결국 정규 편성해버렸다.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SBS에서는 <오 마이 베이비>라는 프로그램을 편성했다. 노년 육아라는 트렌드에 맞춰져 있지만 달리 바라보면 <아빠! 어디가?>와 <꽃보다 할배>를 이어 붙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꽃보다 할배>는 아무도 시작하지 않던 예능의 신천지를 열어젖혔고 타 방송사들은 뒤늦게 이 신천지를 기웃대는 형국이다.

지난 6월28일 열린 tvN 예능프로그램 제작발표회에서 나영석 PD(맨 오른쪽)가 소감을 말하고 있다. ⓒ 뉴시스
tvN 화제 예능 프로그램은 KBS 출신들 작품

예능에서 <꽃보다 할배>가 새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다면 드라마에서는 <응답하라 1994>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이 드라마는 우리가 지금껏 봐왔던 드라마와는 제작부터 스토리텔링 방식까지 완전히 다르다. 예능 작가와 PD가 만든 드라마이기 때문에 예능식의 접근 방식이 드라마에 접목된 형태다.

어찌 보면 드라마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예능 같기도 한 이 새로운 형식의 드라마는 그러나 의외의 열풍을 만들고 있다. 이른바 1990년대를 복고 문화의 핵으로 떠오르게 한 장본인이면서 동시에 예능과 드라마의 접목을 성공적으로 실험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꽃보다 할배>를 만든 나영석 PD와 <응답하라 1994>를 만든 신원호 PD, 이 두 프로그램을 모두 집필한 이우정 작가와 이 프로그램들의 CP인 이명한 PD가 모두 KBS <해피선데이>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인물들이란 점이다. <1박2일>과 <남자의 자격> 전성기에도 이들이 있었다.

그들이 모두 CJ로 이적하고 난 지 어언 2년. KBS와 tvN은 정반대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잘나가던 <1박2일>은 현재 몇몇 새로운 PD의 손을 거쳤지만 계속 추락해 현재 또 다른 변혁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개그콘서트>를 진두지휘했던 서수민 PD가 다시 맡아 중흥을 꿈꾸고 있지만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남자의 자격>은 새로운 PD를 맞으며 추락하다가 끝내는 폐지되고 말았다. 반면 tvN의 콘텐츠들은 위에서 열거한 것처럼 승승장구하며 오히려 지상파를 압도하고 있다. 결국 방송사의 힘을 만들어주는 것은 콘텐츠이고 그 콘텐츠의 힘을 만드는 건 훌륭한 제작진임을 보여준 단적인 사례다.

이들이 시너지를 내게 된 것은 KBS 시절부터 맞춰온 팀워크가 그대로 tvN에서도 힘을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 얼굴만 봐도 뭘 원하는지 아는 PD와 작가의 협업 시스템은 케이블이라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오히려 더 강력해졌다. 그것은 KBS라는 방송사의 문화와 tvN의 문화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KBS가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아이템들에 대해 주저하는 대신 안정적인 것만을 오래 끌고 가려는 분위기라면, tvN은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을 마음껏 풀어낼 수 있는 분위기다. 이것은 <남자의 자격>을 연출했던 신원호 PD가 갑자기 <응답하라 1997> 같은 드라마를 연출한 것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KBS라면 이런 도전을 과연 허락했을까.

KBS <해피선데이>의 주역들이 CJ로 이적하게 된 것이 단지 돈 문제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젊은 PD들은 계속 새로운 형식에 도전하고 싶어 하지만 KBS 조직은 그런 바탕을 제공해주지 못했다. 의욕 있는 PD들의 엑소더스가 유독 KBS에 많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나영석 PD나 신원호 PD만큼은 아니어도 일찌감치 KBS에서 tvN으로 자리를 옮긴 <코미디 빅리그>의 김석현 PD도 케이블에 잘 정착한 사례다. <개그콘서트>를 진두지휘했던 그는 케이블에 적합한 개그 소재나 시스템을 고민했고 그 결과물로 <코미디 빅리그>를 성공시켰다. 사실상 <개그콘서트>를 제외하고 다른 지상파들의 무대 개그 프로그램들이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는 걸 생각해보면, <코미디 빅리그>가 케이블에서도 확실한 지지층을 갖고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시사저널 임준선·시사저널 포토
드라마에서도 KBS 이적 PD들 눈부신 활약

최근에는 예능뿐 아니라 본격 드라마에서도 KBS에서 이적한 PD들의 활약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얼마 전 젊은 층으로부터 폭발적인 열광을 이끌어냈던 <몬스타>를 연출한 김원석 PD가 대표적이다. 그는 KBS에서도 <신데렐라 언니> <성균관 스캔들> 같이 좋은 작품을 연출한 경력을 갖고 있다. 그는 최근 국민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윤태호 작가의 웹툰 <미생>을 드라마로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이 드라마는 2014년의 화제작이 될 가능성이 크다. <추노>와 <도망자 PLAN B>로 KBS에서 주목받았던 곽정환 PD도 최근 tvN <빠스껫 볼>로 돌아왔다. 이 드라마는 구한말이라는 상황에 농구를 소재로 넣어 색다른 화제가 되고 있다. 액션 연출에 일가견이 있는 곽정환 PD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KBS 출신 PD가 최근 tvN 프로그램의 전면에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개국 7년을 맞고 있는 tvN이 이미 몇 년 전부터 세대교체를 준비해왔고 그것이 지금에 이르러 완성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초창기 케이블 채널이라는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tvN은 훨씬 자극적인 프로그램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송창의 PD를 본부장으로 세우고 어떻게든 시선을 끌 만한 것들을 우선적으로 배치했던 것이다.

그 결과 논란도 많았지만 tvN의 지명도가 높아진 게 사실이다. 그렇게 2, 3년이 지난 후 tvN은 좀 더 방송국으로서의 면모를 갖기 위해 변신을 거듭했다. 그때 KBS 출신 PD들이 대거 영입됐던 것은 이런 변화의 일환이었다. 이른바 케이블 라이크(cable-like)한 프로그램에서 벗어나 지상파가 갖는, 좀 더 폭넓은 세대를 끌어안을 수 있는 아이템들을 기대했던 것이다.

그 씨앗들은 최근 여러 결실로 나타나고 있고, 이것은 또한 tvN이 7주년을 맞아 기치로 내건 ‘패밀리 중심’이라는 과제와도 맞아떨어진다. 시청층을 10대부터 60대까지 넓히겠다는 포부다.

tvN의 약진과 KBS PD들의 엑소더스는 최근 지상파와 비지상파(케이블, 종편) 사이에 생겨나는 새로운 기류를 감지하게 한다. 어딘지 보수화되어가고 노회한 느낌을 주는 지상파들은 새로움에 대한 도전을 멈춤으로써 제작자들의 의욕을 꺾고 있다. 반면 케이블이나 몇몇 종편에서는 도전을 계속하며 참신한 프로그램들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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