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투쟁 불붙었다, 줄을 서라
  • 감명국 기자 · 서상현 <매일신문> 기자 ()
  • 승인 2013.11.05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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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친박’ 서청원 vs ‘반박’ 김무성 힘겨루기…야권도 ‘비노 - 친노’ 분열

“사실 화성갑 재보선에 대해 걱정이 많았다. 요즘 국정원 댓글이다 뭐다 해서 워낙 여론이 안 좋으니까. 서청원 후보가 그 지역 출신도 아니고. 그런데 어제 오늘 (현지) 가보고 나서 ‘아, 이길 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우리 (서청원) 후보 때문이 아니고, 저쪽 (오일용) 후보 때문이다. 생각보다 저쪽 후보가 약하더라. 오히려 통합진보당(홍성규) 후보가 눈에 띄더라. (통합진보당 후보에 대한) 지역 분위기도 호의적이었다. 다만 ‘당만 통합진보당이 아니었어도…’ 하며 아쉬워하는 눈치더라. 만약 통합진보당 후보가 민주당으로 나왔다면 위험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10·30 재보선을 일주일여 앞두고 새누리당의 한 고위 당직자는 기자에게 경기 화성갑 지역의 민심을 이렇게 전했다. “그렇다면 만약 민주당에서 손학규 고문이 출마했다면, 결과는 예측 불허였겠다”고 하자, “그렇지. 질 수도 있지”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결과론적이지만 이 인사가 전한 지역 분위기는 적중했다. 10월30일 치러진 화성갑 재보선 결과 새누리당 서청원 후보는 62.66%의 득표율로 당선했다. 민주당 오일용 후보는 29.16%에 그쳤다. 통합진보당(통진당) 홍성규 후보가 8.16%를 얻어 의외로 선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은 충격에 빠졌다. 재보선이 있기 며칠 전,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언론에서는 화성갑에서 이변이 일어날 가능성을 얘기하지만, 현실적으로 승리하기 어렵다고 본다. 그보다는 득표율이 문제가 될 것이다. 지난해 대선 때 이 지역에서 문재인 후보가 44.0%를 얻었다. 하지만 그건 대선의 특성과 문 후보의 지명도를 감안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우리 후보가 40% 이상만 나와도 현 정부에 충분히 경종을 울릴 수 있을 것이다. 35% 이하로 나온다면 패배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안 된다면 그야말로 ‘멘붕’이다”라고 했었다.

ⓒ 시사저널 포토, ⓒ 시사저널 박은숙
이번 재보선의 최대 수혜자는 ‘안철수’

그렇다. 지금 민주당은 ‘멘붕’이다. 지난해 4월 총선 때 민주당이 새누리당에 완패하자, 당 안팎에서는 “질려야 질 수 없는 선거를 졌다”는 비판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하지만 12월 대선에서도 패했고, 올해 4월 재보선에 이어 10월 재보선에서도 완패했다. 단순히 당락의 문제가 아니라, 득표율에서 기대치를 완전히 밑돌았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10월31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아직은 총선과 대선 실패에 따른 국민들의 실망감을 회복하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34쪽 기사 참조). 당내 일각에는 “어차피 포항이나 화성갑은 이기기 어려운 지역 아니었나. 진짜 승부처는 내년 지방선거”라며 이번 재보선 의미를 애써 평가절하하는 분위기도 있다.

하지만 위의 새누리당 고위 당직자의 말처럼 민주당이 이번 선거에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했더라면, 최소한 화성갑 지역에서는 한번 자웅을 겨뤄볼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그런 점에서 당 지도부와 ‘잠룡’으로 분류되는 몇몇 유력 인사들은 비판을 면키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의 분석이다. “이번 재보선의 여파가 만만찮을 것이다. 특히 민주당의 경우, 내부 권력투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고, 외풍에도 심하게 시달릴 것이다. 우선 ‘친노’ 그룹에서 김한길 대표 등 현 지도부를 흔들 것이고, 문재인 의원 등 친노가 다시 발호하면 호남에서 민주당에 등을 돌릴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유리해지는 쪽은 자연히 안철수 의원이다. 호남을 기반으로 야권의 정통성을 안 의원 측이 거머쥐려 할 것이다. 민주당은 안팎으로 시달릴 수밖에 없다.”

“서청원, 청와대 만류 뿌리치고 출마 강행”

전병헌 원내대표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안철수 의원 측은 야당 텃밭인 호남을 공략할 것이 아니라, 여당 텃밭인 영남을 공략해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손학규 고문의 책임론도 불거질 전망이다. 손 고문은 당초 화성갑에서 출마할 듯하다가 막판에 포기했다. <시사저널>이 지난 10월 초 화성 현지 민심 르포를 통해 살펴본 바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 도지사까지 한 양반이니까”라며 지역 주민들은 손 고문에 대해 상당한 호감을 표시한 바 있다. 위의 새누리당 고위 당직자 역시 손 고문이 나왔더라면 위험했을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아무튼 당분간 민주당에선 김한길 대표와 손학규 고문 등을 중심으로 한 ‘신주류-중도’ 노선과 문재인 의원 등 친노를 중심으로 한 ‘구주류-진보’ 노선 간의 갈등이 첨예화될 전망이다. 여기에 최근 정세균 전 대표 측이 “민주당은 대선 불복으로 비칠까 두려워하지 말고 더 강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친노 측에 힘을 보태는 강경 발언을 하고 나선 점이 주목된다. 당내 일각에서는 향후 민주당 등 야권이 ‘김한길-손학규-안철수’ 축과 ‘문재인-정세균’ 축으로 뚜렷이 갈릴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주당보다는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승자’인 새누리당 역시 향후 당내 권력투쟁에 휩싸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박근혜의 남자’로 불리는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가 돌아왔기 때문이다. 고향인 충청도 아니고, 자신의 지역구였던 서울도 아닌, 경기도 화성에서, 그것도 ‘낙하산 인사’라는 비아냥거림과 ‘김무성 대항마’라는 의혹 속에서도 ‘예상 밖’의 압승을 했다. 국회 보좌관 생활만 20년 가까이 한 여권 관계자는 “스포츠도 비등한 경쟁이 돼야 관전자가 많아지듯, 정치도 경쟁해야 주목받을 수 있다. 서 전 대표와 김무성 의원 사이에 보이지 않는 ‘당권 경쟁’ 서막이 올랐다. 당이 시끄러워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당초 서 전 대표의 복귀를 청와대에서 강력히 원했다는 말이 많았다. 본인은 자신의 고향인 충남 서산이나 당진 등에서 재보선이 벌어지면 출마할 수 있지만, 연고가 없는 화성에 대해서는 난색을 표시했다는 것이다. 실제 여권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가 ‘김무성 독주’를 마뜩찮아 했다. 김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권위에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무성을 막을 수 있는 인물이 새누리당에 없었다. 정치 경륜이나 지략, 세력화 방법을 아는 노련한 기술자가 필요했다”는 말로 이런 분석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서 전 대표 등 여권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가 기자에게 들려준 서 전 대표의 출마 과정 뒷얘기는 이렇다.

“서 전 대표의 출마 의지가 확고했다. 오히려 청와대에서는 당초 서 전 대표에게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 비정치적인 자리를 권유했다. 그런데 서 전 대표가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예상과는 달리 10월 재보선 지역에 자신이 염두에 뒀던 충남·인천 등이 포함되지 않아 고민에 빠졌으나, 지난 8월 말 고희선 의원이 갑자기 별세하면서 화성갑이 궐위 지역이 되자 여기에 출마하기로 마음을 굳히고 주변 인물 각개격파에 나섰다. 이번에 당선되면 7선이 되는 그는 당내 친박의 중심축 내지는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면서 차기 국회의장(2014년 6월~2016년 5월)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향후 서청원 당선자의 행보에 대한 관측은 다소 엇갈린다. 대구·경북 지역의 한 새누리당 중진 의원은 “앞으로 (당내에서) ‘줄을 서이소’라는 말이 들릴 것이다. 서 전 대표와 함께 박근혜정부의 성공적 국정 운영을 도울 것이냐, 김 의원과 함께 현 정부와 각을 세우고 정권 재창출을 도모할 것이냐는 선택의 줄이다. 아마 ‘주서야김(晝徐夜金)’ ‘주김야서’(晝金夜徐) 하는 이들도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세력화에선 김무성 의원이 앞서 있다. 소수의 동료 의원들과 중국 등을 들락거리면서 친밀감을 한껏 높여놓은 상태다. 자신이 만든 공부 모임인 ‘근현대역사교실’에 당의 반수 이상 의원을 회원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김 의원을 두고는 “YS(김영삼) 밑에서 정치를 배웠다. 밑에 있는 사람을 키운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과 다르다”는 평가가 있다.

김 의원을 견제하는 당 지도부 등 친박의 움직임은 이미 포착되고 있다. 친박 주류들을 중심으로 한 ‘국가경쟁력강화모임’(가칭)이 그것이다. 또 한 명의 차기 당권 주자로 거론되는 이완구 의원이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최경환 원내대표, 홍문종 사무총장, 김기현 정책위의장,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 등 당 지도부 핵심 인사들이 참여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윤 수석부대표는 11월1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현 정부의 성공을 위해 공부하려고 만든 모임이며, 물론 나도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서청원 전 대표가 앞으로 당의 중심축에 서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야 한다”며 서 전 대표의 역할론을 직설적으로 말하기도 했다(32쪽 기사 참조). 사실상 김무성과 서청원의 힘겨루기가 시작된 셈이다.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9월12일 서울광장 민주당 천막 당사에서 김한길 대표(오른쪽)와 대화하고 있다. ⓒ 시사저널 구윤성
“박 대통령과 김무성 의원 절대 같이 못 가”

일각에서는 “지난해 대선 때 박근혜 후보 캠프의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으며 대선 승리에 공을 세운 김무성 의원이 꼭 서청원 당선자와 각을 세우며 ‘반박(反朴)’ 전선에 설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박 대통령과 김 의원의 관계를 잘 아는 인사들은 이 의문에 단호히 고개를 젓는다. 익명을 요구한 친박계 의원은 “김 의원이 18대 국회에서 ‘탈박(脫朴)’했던 데는 박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모욕감’이 컸다”며 “김 의원이 MB 정권 당시 원내대표를 하고 싶었을 때도, 또 장관 제의가 들어왔을 때도 박 대통령은 ‘왜 그런 일을 하려고 그러세요’라며 반대 의견을 냈다. ‘친박계엔 좌장이 없다’며 공개적으로 김 의원에게 망신을 준 일도 있다. 박 대통령은 그런 김 의원이 권력을 쥐게 되면 보복할 수 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역시 친박으로 분류되는 새누리당의 고위 당직자 역시 “지난해에야 박 대통령이 대선에서 이겨야 하니까 필요에 의해서 김 의원을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이젠 박 대통령이 대선을 치를 일이 없지 않은가”라는 말로 두 사람이 함께하기 어려운 관계임을 강조했다.

서청원 당선자가 직접 나서기보다는 대리인을 내세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그런 면에서 주목받는 이는 최경환 원내대표다. 서 당선자의 국회 입성 후 당이 상하 구도로 뚜렷이 양분될 것이란 관측도 있다. 황우여 대표, 최경환 원내대표,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 등 친박계 지도부가 서 당선자와 함께할 가능성이 크지만, 지도부가 아닌 초선들은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서청원과 운명 공동체로 묶일 수 없다”고 말하는 초선들이 생각 외로 많다는 이야기가 있다. 한 비례대표 초선 의원은 “서청원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아무리 ‘박근혜의 남자’라도 우리가 그 밑에 줄을 서겠는가. 새누리당에 그렇게 사람이 없냐는 이야기를 듣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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