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가 하는 피검사에도 “특진비 내시오”
  • 노진섭 기자·이혜리 인턴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3.11.05 09:4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특진비는 알토란 같은 병원의 수입원이다. 그렇더라도 꼼수와 편법을 동원해 특진비를 챙기는 행태는 볼썽사납다. 국립대병원이 5년 동안 챙긴 특진비만 1조원을 넘는다. 당연히 이 돈의  일부는 의술이 뛰어난 의사에게 돌아가야 옳다. 그런데 진료 환자 수만 늘려 병원 수익에 일조한 의사에게 더 많이 지급된다. 본래의 의미가 퇴색된 선택진료제로 병원은 돈을 얻겠지만, 국민의 신뢰는 잃는다.

 

“기계가 하는 피검사에도 특진비가 붙는다.” 서울에 있는 한 대학병원 교수는 선택진료제의 문제점을 토로했다. 그는 “특정 의사의 의료 행위에 추가하는 특진비를 기계가 하는 것에도 붙이는 게 현실”이라며 “의사의 분석이 꼭 필요한 혈액검사에는 특진비가 붙어도 되지만 그렇지 않은 일반 피검사에까지 특진비를 부과하는 일은 도가 지나치다”고 비판했다. 한 대학병원 간호사도 “내 아이가 피검사를 받았는데 검사비 8252원에 선택진료비 5290원이 추가로 붙었다”며 높은 특진비 비율을 지적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용하다’는 의사에게는 환자가 몰리기 마련이다. 그런 의사에게 진료를 받으려면 환자가 웃돈을 내야 한다. 이것이 흔히 특진비라고 부르는 선택진료비다. 그러나 간단한 피검사에도 특진비가 붙는다는 사실에 서민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직장인 조영민씨(37)는 “특진비가 어디에 붙는지 설명을 들은 바가 없는데 피검사도 예외가 아니라니 놀랍다”고 말했다.

환자가 병원에 가면 받으라는 검사가 많다. 영상검사만 해도 X선, CT(컴퓨터단층촬영), MRI(자기공명영상) 등 다양하다. 필요에 따라 마취과, 진단과 등을 두루 거쳐야 한다. 영상의학과나 진단검사의학과 의사의 전문적 판독이 필요한 검사에는 특진비가 붙는다. 예를 들어 삼성서울병원 영상의학과에는 40명의 의사가 각각 흉부·심장·유방·뇌신경 등을 담당하는데, 이들이 선택진료 의사여서 특진비가 추가된다. 주 진료 외에 부가적인 검사에도 특진비가 줄줄이 붙는 이유다.

물론 이 진료과에는 31명의 비선택진료 의사도 있다. 그러나 환자가 검사받을 때 선택진료와 비선택진료 의사에 대해 설명하는 병원은 거의 없다. 또 환자가 선택진료와 비선택진료 의사를 선택하도록 유도하지도 않는다. 환자도 당장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선택진료와 비선택진료 의사를 따질 겨를이 없다.

몇 해 전 고려대구로병원에서 담석 제거 수술을 받은 환자는 총 진료비 45만원 중 30만원을 자신이 부담했는데 이 가운데 3만원이 특진비였다. 특히 치료 재료비 700원에 붙은 특진비는 9500원이었다. 그는 “어떤 검사에 얼마의 특진비가 붙었는지를 병원에서 설명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환자가 병원 진료 전에 작성하는 진료 신청서 하단에는 ‘선택진료를 신청한다’는 작은 문구가 있다. 본래 병원은 진료와 검사 건건이 환자에게 특진 선택 여부를 확인하고 신청을 받아야 하지만 진료 신청서 한 장으로 특진을 일괄 신청하도록 한 것이다. 이를 접수하는 순간부터 별도의 설명없이 모든 진료와 검사에 특진비가 줄줄이 붙는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진료과별 선택진료 시간표가 걸려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강사를 교수로 둔갑시켜 특진비 챙겨

특진비는 경험이 많은 의사에게 진료를 받는 대가로 환자가 추가로 부담하는 비용이라고 알려져 있다. 사실 선택진료제는 1963년 당시 공무원이던 국립대병원·국립의료원 의사의 낮은 봉급을 벌충해주기 위해 도입됐다. 그런데 이후 병원은 거의 모든 의료 행위에 특진비를 붙였고, 현재는 병원을 지탱하는 주요 수입원으로 자리 잡았다. 한 대학병원 홍보실장은 “특진비를 받지 못하게 하면 병원 문을 닫으라는 소리”라고 말했다.

병원은 특진비 수입을 올리기 위해 선택진료 의사 수를 늘렸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병원급 의료기관 3264곳 가운데 11.2%인 367곳이 선택진료 의사를 두고 있다. 이 367개의 병원은 대부분 대형 병원과 대학병원이다. 한 진료과 소속 의사 모두가 특진비를 받는 선택진료 의사인 병원도 생겼다. 환자가 어떤 의사를 선택하든 특진비를 강제로 내야 하는 셈이다.

환자의 불만이 커지자 정부는 특진비를 받을 수 있는 의사의 요건을 정했다. 대학병원에서는 조교수 이상이며 전문의 자격 5년 이상, 일반 병원에서는 의사 면허 취득 후 15년이 지난 치과의사와 전문의 자격을 인정받은 후 10년이 지난 의사를 말한다. 특진비가 붙지 않는 비선택진료 의사도 의무적으로 두도록 했다. 대학병원의 경우, 전체 교수급 의사 가운데 20%는 비선택진료를 담당하도록 했다. 일반적으로 후배 교수급 의사들이 비선택진료를 맡는다.

그런데 교수급 의사들 사이에 비선택진료를 차례로 맡는 풍조가 생긴 사실이 <시사저널> 취재 결과 밝혀졌다. 예를 들어 서울대병원의 ㄱ교수는 지난달에 선택진료 의사가 아니었지만 이번 달에는 선택진료 의사로 둔갑하는 것이다. 대신, 지난달에 선택진료 의사였던 ㄴ교수는 이번 달에 비선택진료 의사가 된다. 비선택진료 의사 비율을 돌려 막기 하면서 의사들이 특진비를 나눠 갖는 것이다.

환자 입장에서는 헷갈린다. 같은 의사에게 진료를 받더라도 지난달에 진료를 받은 환자는 특진비를 내지 않았지만 이번 달에 그 의사를 찾은 환자는 특진비를 내야 한다. 한 교수는 “한 의사가 선택진료와 비선택진료를 모두 담당하면 환자로서는 불합리하다고 느낄 수 있다”며 “특진비를 내지 않기 위해 일정 기간 치료를 연기하는 환자도 나올 수 있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일부 대학병원은 강사·전문의에게 형식상 조교수 명칭을 주기도 한다. 한 대학병원 원무과 관계자는 “거의 모든 대학병원에서 연차가 되지 않은 의사에게 억지로 조교수 명칭을 줘서 선택진료를 보게 한다”며 “전문의나 강사에게도 조교수 타이틀을 줘서 선택진료를 보게 하는데, 그로 인해 들어오는 특진비는 전문의나 강사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병원이 독식한다”고 털어놓았다.

서울대병원 노조는 10월 23일부터 특진비를 폐지하라며 파업에 돌입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특진비 내지 않으면 암 병원 이용 못해

직장인 김경식씨(47)는 최근 진료 예약을 변경하기 위해 삼성서울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선택진료를 비선택진료로 전환하기 위해서다. 그는 “굳이 선택진료를 받을 필요가 없는 가벼운 병이어서 전화했더니 비선택진료는 일주일에 한두 번밖에 없다는 말을 들었다”며 “지방 출장이 잦은 탓에 그 시간을 맞출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 때문에 정부는 환자가 어느 때나 비선택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법을 고쳤다. 그러나 이를 지키는 병원은 거의 없다. 예컨대 서울대병원 외과에서 간·담도·췌장을 담당하는 의사 6명 가운데 5명은 선택진료 의사이고 한 명만 비선택진료를 책임진다. 그런데 환자가 비선택진료를 받는 것은 금요일 오전에만 가능하다. 이처럼 대다수 병원의 각 진료과에 비선택진료는 일주일에 한두 번이 전부다. 그나마 오전이나 오후에만 진료하는 경우가 많다. 아예 비선택진료가 없는 진료과도 있다.

대학병원에서는 선택진료를 교수급 의사가, 비선택진료는 전문의(전공의·강사 포함)가 담당하기도 한다. 전문의·전공의·강사 모두 의사이기는 하지만 교수급 의사는 아니다. 즉, 이들을 비선택진료 의사로 두는 것은 편법이다.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 이비인후과에는 12명의 의사가 있다. 이들 가운데 41%인 5명이 비선택진료 의사이고 매일 진료를 본다. 모범적인 진료과로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비선택진료 의사 가운데 3명만 교수급 의사다. 이들에게 진료를 받을 기회는 화요일·수요일·금요일인데 그나마 반나절(오전 또는 오후)뿐이다. 나머지 요일에는 강사와 전공의가 비선택진료 의사로 진료를 담당한다. 한마디로 비선택진료는 의료의 질이 부실하니 특진비를 내고 교수급 의사의 진료를 받으라는 얘기다.

사립대 병원의 대표 격인 삼성서울병원도 마찬가지다. 삼성서울병원 심장외과에는 교수가 7명이 있지만 비선택진료 의사는 한 명도 없다. 정형외과에는 12명의 의사 중 한 명을 비선택진료로 뒀다. 또한 환자가 입원하거나 중증 질환을 치료하려면 선택진료 의사를 택할 수밖에 없다. 한 환자가 서울대병원 암병원에서 특진비 부담 없이 대장암 진료를 받으려고 해도 소화기내과에 비선택진료 의사는 한 명도 없다. 삼성서울병원 암센터에서 위암 진료를 받기 위해 소화기내과나 외과를 가도 모두 선택진료 의사뿐이다.

국민건강보험 실태 조사에 따르면 2011년 암, 심장 및 뇌혈관, 희귀 난치성 질환 등 4대 중증 질환자가 부담한 진료비(비급여 비용) 가운데 25.7%가 특진비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일반 환자가 20.8%인 것과 비교할 때 부담이 큰 편이다.

병원이 특진비 수입을 올리기 위해 꼼수를 부리는 것이다. 정부는 이런 행태를 알면서도 모르쇠로 일관한다. 해당 부처는 비선택진료 의사 비율인 20%만 강조했다. 감독 기관인 보건복지부의 정책과 사무관은 “어떤 의사가 선택진료를 보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300개가 넘는 대형 병원을 일일이 조사할 수 없다”며 “전문의든 비전문의든 의사만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국립대병원, 지난해 특진비 수입 2602억원

선택진료 의사를 선택하면 20~100%의 특진비가 붙는다. 진료비나 검사비가 1만원이면 환자는 특진비로 2000원에서 1만원을 따로 내야 하는 셈이다. 특진비를 매기는 기준과 단가는 병원과 진료과마다 천차만별이다. 환자가 병원비를 사전에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서울대병원·삼성서울병원 등 서울 시내 주요 대학병원을 확인한 결과 선택진료 의사에게 진료를 받을 때 진찰료의 50% 이내, 입원료의 20% 이내, 검사료의 50% 이내에서 특진비가 추가된다.

상당수 국립대병원은 생계가 곤란한 기초생활보장수급자에게도 특진비를 부과해 논란이 일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박성호 새누리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병원 등 전국 국립대병원의 5년간 특진비 수입은 1조2071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기초생활보장수급자(약 276만명)가 낸 돈은 602억원(5%)이다.

국립대병원들은 지난 한 해에만 특진비로 2602억원을 벌었다. 이 가운데 793억원은 의사들에게 수당으로 지급됐다. 국립대병원이 거둬들인 특진비 가운데 의사들에게 수당으로 지급한 금액은 전체의 19~66%에 이른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전국 국립대병원의 고액 연봉 의사 현황 자료를 보면, 서울대병원에서 2억원 이상 고액 연봉자는 5년 동안 58.2% 증가했다. 2008년 79명에서 2012년 125명으로 늘었다.

이들 중 16명은 특진비 수당으로만 1억원 이상을 받았다. 예를 들어 마취통증의학과 ㄷ교수는 지난해 의과대학 급여와 병원 급여를 합쳐 3억6558만원을 받았다. 이 가운데 56.1%인 2억544만원을 특진 수당으로 받았다. 병원 급여만 따지면 이 비율은 더 높아진다. 병원 급여(2억6356만원)의 약 78%에 달한다. 본봉보다 특진비 수당이 더 많은 것이다.

일부 병원과 의사는 특진비로 의사 배를 불린다는 시각에 반발하기도 한다. 실제로 대학병원 교수들은 연구·진료·교육 등 많은 일을 동시에 해결해야 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런 의사에게는 억대 연봉이 어울리지만 그렇지 않은 교수들이 문제다. 연구 성과도 없이 진료 환자 수만 늘려 자신의 수당을 챙기는 의사의 연봉에는 특진비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국회의원들도 고액 연봉 의사가 급격히 늘어난 배경이 특진비 수입이라고 본다. 박성호 의원은 “서울대병원 의료진은 우수하다. 특진비는 뛰어난 의료 서비스를 받는 대가이지만 국립대병원마저 선택진료 수당을 과도하게 받는 것은 국립대병원으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대학병원은 이런 사실을 숨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가 김춘진 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전북대병원과 제주대병원은 특진비 수당을 의사에게 제공하지 않는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시사저널>이 두 병원에 사실 여부를 확인한 결과는 달랐다. 선택진료비 일부가 의사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이 사실은 국회에서도 밝혀졌다. 국회 정진후 정의당 의원이 조사한 바로는, 제주대병원은 지난해 특진비로 43억원을 벌어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선택진료 의사 52명에게 지급된 수당은 29억원에 달한다. 평균 5500만원씩 지급된 것이다. 제주대병원 관계자는 “특진비의 일정 비율을 선택진료 의사에게 수당으로 지급하지 않고 전체 병원 진료 수익으로 합산해 운용하므로 의사에게 지급된 특진비 수당은 산출하기 어렵다”며 “대신 의사 개인의 진료 수익에 따라 일정액의 진료 수당을 지급한다”고 해명했다.

이러한 국립대병원의 허위 자료 제출 행위에 대해 국회는 국민을 속이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배재정 민주당 의원은 “국립대병원의 총 진료 건수 중 98%를 선택진료 의사가 담당하는데도 서울대병원은 66%, 경상대병원은 58%로 보고하고 부산대병원(양산 분원)·전북대병원·강원대병원은 중환자의 선택진료 건수 공개 자체를 거부했다”며 “국립대병원이 실상을 은폐하기 위해 국회에 제출한 자료마저 왜곡하고 있다는 의심을 들게 해 감사원 특별감사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근 의사에게 특진비 수당이 과하게 지급된다는 보도가 끊이지 않자 서울대병원은 지난 10월부터 선택진료 수당을 30% 차감하기로 했다. 이 병원 관계자는 “경영난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27억원의 당기순손실이 발생했고 올해는 680억원의 손실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특진비 돌려 먹기 행태도 확인돼

이 병원은 최근 직원 임금도 동결했고, 노조는 10월23일부터 파업에 들어갔다. 노조는 의사들에 대한 성과급이 특진비에서 지급되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노조 관계자는 “공공병원으로써 적정 진료를 통해 다른 병원의 모범이 돼야 마땅한 서울대병원은 국공립병원 중 가장 먼저 의사 성과급제를 도입했다”며 “이 정책 때문에 환자와 의사 사이의 신뢰 관계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으며, 이는 치료에 대한 신뢰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는 특진비를 폐지하거나 축소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박근혜 대통령의 ‘4대 중증 질환 100% 보장’ 공약 이행을 위해서라도 선택진료제에 손을 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 부작용이 생길 것이 우려된다. 2015년 2조원에 달할 전망인 병원의 특진비 수입을 대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대학병원 관계자는 “선택진료제를 폐지하면 특진비로 버텨온 병원들이 살아남지 못한다”며 “건강보험료가 올라가고 병원도 불필요한 검사를 대폭 늘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특진비를 폐지하기보다는 축소하고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 대학병원 의사는 “20년 경험이 있는 의사나 1년 차 의사나 모두 같은 비율의 특진비를 받기 때문에 서로 많은 환자를 진료해서 수입을 늘리려고 한다”며 “연구·진료·수술 등 모든 면에서 우수한 의사에게 특진비 수당을 더 주고 그렇지 않은 의사에게는 수당을 주지 않는 식으로 차등을 둬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선택진료제를 폐지하면 대학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이 심각해질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이 제도가 폐지되면 특정 의사에게 환자들이 몰릴 것”이라며 “대학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이 심해질 게 불을 보듯 뻔하다”고 주장했다.

영국은 무상의료 제도를 펴고 있다. 그러나 런던의 대형 병원으로 환자가 쏠리는 일은 없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교수는 “영국에서는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옮기거나 퇴원하라고 결정할 권한이 의사에게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입원 환자가 버티면 도리가 없다”며 “의료 공공성만 말할 게 아니라 그 의료 서비스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먼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의료 행위를 많이 한 의사에게 돈을 많이 주기 때문에 의사는 환자만 많이 보려고 하는데, 사실 진료보다 중요한 것은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가 무엇인지 결정하는 것”이라며 “이런 결정을 내리려면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이 경험에 대한 기술료를 지불하는 데 인색하기 때문에 특진비 문제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병원은 특진비 수익을 올리기 위해 온갖 꼼수를 쓰고 있다. 물론 의료 수가가 낮은 탓에 경영난에 시달리는 병원이 있다. 그러나 의사들 사이에서도 특진비에 문제가 있다는 의식이 퍼지고 있는 만큼 대안이 필요하다. 이를 관리하고 개선해야 할 정부는 모른 척하며 병원의 꼼수를 방치하고 있다. 호주머니를 털어 병원비를 내는 서민들만 병원 경영난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매출 압력 견디는 것도 한계에 이르렀다” 
한 연구중심병원 교수의 하소연

한 대학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최근 <시사저널>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병원이 의사에게 진료를 강요한다는 것이다. 한 명의 의사라도 더 진료를 봐야 병원 수입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 의사는 미국에서 신경계를 연구했다. 진료도 중요하지만 연구로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의사다. 의학 발전에 공헌할 연구 성과를 한국에서 내고 싶어서 몇 년 전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러나 국내 대학병원의 현실은 그의 생각과 달랐다. 연구하는 의가사 되고 싶었던 그는 “개인적으로 다른 의사보다 월급을 400만원가량 덜 받아 자괴감도 들지만, 그것보다 진료로 매출을 올리라는 병원의 압력을 견디는 것이 한계에 달했다”고 밝혔다.

이 교수가 재직하는 병원은 연구중심병원이다. 연구중심병원은 진료를 통해 축적된 지식을 기반으로 첨단 의료 기술을 개발하고 사업화해서 보건의료 산업 발전을 선도하는 세계적 수준의 병원을 말한다. 올해 초 정부가 25개 의료기관으로부터 신청을 받아 그 가운데 10곳을 연구중심병원으로 선정했다.

대형 병원들이 연구중심병원에 선정되려는 이유는 그만큼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개발비를 인건비에 사용할 수 있고 의료 목적에 투입하던 비용을 연구비로 지출할 수도 있다. 또 정부의 예산도 지원받을 수 있다. 정부는 연구중심병원에 10년간 6240억원을 투자한다. 내년 예산은 100억원으로 편성됐다. 이 밖에 연구 인력 개발비의 세액 공제와 법인세·지방세 감면 등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연구중심병원은 무엇보다 진료 중심인 일반 병원과 달리 병원 내 인력 중 상당수가 연구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이들 병원은 3년 후 재평가를 받아 적정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연구중심병원 지정이 취소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