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보다 10배 빠른 속도로 ‘쾅’
  • 김형자│과학 칼럼니스트 ()
  • 승인 2013.10.30 15:5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그래비티>의 우주 쓰레기 재난 현실화 지구 궤도에 2만개 넘는 파편 떠돌아

우주에 대한 사실적 묘사가 돋보이는 영화 <그래비티(Gravity)>가 최근 국내에 개봉돼 화제다. 국제우주정거장과 허블 우주망원경, 우주왕복선의 화물칸 모습이 실제와 똑같은 형태로 등장한다. 우주왕복선에 놓인 아이맥스 카메라 위치도 놀랄 만큼 똑같다. 영화는 지구 상공 600km의 우주 공간에서 허블 우주망원경(569km에 위치)을 수리하기 위해 새로운 시스템을 설치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모든 장비가 얼마나 흡사했으면 실제로 허블 우주망원경을 수리했던 미국항공우주국(NASA) 소속 마이클 마시미노가 “거의 완벽에 가까워 소름이 끼친다”고 말했겠는가. 그렇다면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상황들 또한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일까.

위성 연쇄 파괴하는 우주 쓰레기의 도미노

영화 속 주인공 라이언 스톤 공학박사(샌드라 불럭 분)와 베테랑 우주비행사 맷 코왈스키(조지 클루니 분)는 허블 우주망원경 수리를 끝낼 무렵, 러시아가 자국 스파이 위성을 미사일로 파괴하면서 위험에 빠진다. 인공위성 파편들이 총알보다 10배 이상 빠른 속도로 날아와 스톤 박사와 코왈스키를 덮친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타고 왔던 우주왕복선 ‘익스플로러’도 파괴되고 국제우주정거장(ISS)도 갈기갈기 찢어진다.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할까.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영화에서처럼 중국은 2007년 1월 자국 위성을 미사일로 요격해 파괴한 적이 있다. 이때 엄청난 우주 쓰레기가 발생하는 바람에 전 세계의 지탄을 받았다. 인공위성의 선진국인 미국과 러시아 등도 실제로 미사일을 발사해 쓸모가 없어진 자국 위성을 파괴한다. 이 때문에 인공위성이 떠다니는 우주 공간은 지상의 주말 교통만큼이나 체증이 심하다.

1957년 옛 소련의 스푸트니크 1호가 발사된 이후 우주 공간에는 지금까지 6000여 개의 위성이 발사됐고 그중 3000개 이상이 지구 위를 떠돌며 활동 중이다. NASA에 따르면 현재 지구 궤도에는 10cm 이상의 파편이 2만개 이상 떠돌고 있다. 3000개의 인공위성을 빼면 1만7000여 개의 쓰레기가 지구 주변을 오염시키고 있는 셈이다. 지름 10cm 크기의 파편 하나면 인공위성이나 국제우주정거장을 파괴하기에 충분하다고 한다. 그 충격량은 소형 자동차가 시속 50km 이상으로 달려가서 부딪치는 것과 비슷하다.

우주 쓰레기가 발생하는 주원인은 수명을 다한 인공위성의 폭발 때문이다. 인공위성에서 태양을 향하고 있는 면의 온도는 영상 120도, 그늘 쪽은 영하 180도에 달한다. 평소 인공위성은 통닭처럼 빙글빙글 돌거나 냉각수 파이프를 이용해 온도를 골고루 분산시키는데, 인공위성이 수명을 다해 가동을 멈추면 양쪽 면의 극심한 온도 차로 깨져버리고, 배터리나 남아 있는 추진체가 폭발하게 된다. 우주 쓰레기의 40%가량을 차지하는 파편들이 여기서 발생한다.

문제는 파편들의 놀라운 속도다. 영화에서처럼 총알보다 10배 빠른 초속 10km 정도로 날아다닌다. 원래 인공위성은 초속 7?8km의 속도로 지구 주변을 돈다. 지구의 중력에 못 이겨 대기권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으려면 이 정도 속도로 비행해야 한다. 그런데 인공위성이 폭발하면 이때 발생하는 힘을 받아 파편들의 운동 속도가 인공위성보다 더 빨라지게 된다. 이 파편들에 또 다른 인공위성이나 우주정거장, 우주비행사가 맞기라도 한다면 치명적인 우주 교통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

우주 쓰레기 때문에 대피 소동 벌어지기도

영화 속에서 묘사된 우주 쓰레기의 위협은 이처럼 실제 상황이다. 2009년 2월10일 러시아 시베리아 상공 790km, 서쪽에서 동쪽으로 우주 궤도를 돌던 러시아의 군사용 통신위성 코스모스 2251호가 남쪽에서 북쪽으로 비행하던 미국 상업 통신위성 이리듐 33호의 측면을 들이받는, 사상 최초의 ‘우주 교통사고’가 일어났다. 코스모스 2251호는 1995년 수명을 다해 지구 궤도에 버려진 ‘우주 쓰레기’나 다름없었다. 당시 이 충돌 사고로 약 1800개의 크고 작은 파편이 발생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실제로 우주인이 우주 쓰레기 때문에 조난된 사례는 없다.

하지만 국제우주정거장은 우주 쓰레기를 막기 위해 10여 차례 대피 기동을 한 적이 있고, 2011년 6월에는 우주 쓰레기가 접근하는 바람에 승무원들이 탈출용 우주선으로 대피하는 일도 벌어졌다. 우주 쓰레기들의 충돌이 잦아지면 파편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자칫하면 충돌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도미노 현상’이 생길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2010년부터 미국·유럽·독일 등 위성을 다수 확보하고 있는 나라들을 중심으로 우주 쓰레기 처리를 위한 연구가 본격화됐다. 2010년 7월8일 미국이 사상 처음으로 우주 공간에서 지구 주변 물체의 위치를 감시할 ‘우주 기반 위성탐사 위성’(SBSS)을 쏘아 올렸고, 2014년에는 스위스 우주센터가 우주 쓰레기 청소 위성 ‘클린스페이스원’을 쏘아 올릴 예정이다. 클린스페이스원은 장착된 갈고리로 스위스가 2009년, 2010년에 발사한 위성을 낚아채 함께 대기권으로 진입해 소각하는 것이 임무다. 유엔 또한 2020년까지 우주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 중이다. 모두가 힘을 합쳐 더 이상 우주 쓰레기를 만들지 않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