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현 부부 갈등이 동양 사태 키웠다”
  • 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3.10.30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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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회장이 1대 주주 올라서며 처가와 마찰설 금융 당국이 손 못 댄 건 정권 실세와 친분 때문이란 얘기도

동양그룹 투자자 5만명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 가장 큰 책임은 당연히 현재현 회장에게 있다. 현 회장의 부인 이혜경 부회장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동양 사태의 본질이 한 꺼풀씩 벗겨지면서 “이 부회장이 동양그룹의 실질적인 오너”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국내 재벌 가운데 처음으로 사위가 경영권을 승계한 동양그룹. 함경남도 함흥에서 1938년 식료품 도매상(대양공사)을 열어 큰돈을 벌었던 창업주 고 이양구 회장은 교사 출신인 이관희 여사(현 서남재단 이사장)와의 사이에 딸만 둘을 낳았다. 큰딸 이혜경씨는 이화여대 미대와 대학원을 나와 1976년 현재현 회장과 결혼했다.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온 현 회장은 당시 부산지검 검사였다. 고 김옥길 이화여대 총장이 두 사람을 중매했다. 현 회장의 조부는 고 현상윤 고려대 총장, 부친은 고 현인섭 이화여대 교수다. 전형적인 재벌가와 엘리트 집안의 정략결혼이었던 셈이다.

(왼쪽부터) 이혜경 부회장 ⓒ 시사저널 포토 , 현재현 회장 ⓒ 시사저널 박은숙
현 회장 부부 100억대 부동산 등 공동 소유

창업주는 생전 두 사위(현재현 회장과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와 딸들(이혜경 부회장과 이화경 오리온 부회장)에게 혹독한 경영 수업을 시켰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 회장은 1989년 창업주가 타계한 이후 동양그룹 경영권을 승계했다. 재계의 한 인사는 “이양구 회장이 타계한 이후 경영권이 현 회장에 넘어가긴 했지만 그것은 겉모습일 뿐이다. 한동안 배후에서 장모인 이관희 이사장이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 그룹의 중대 결정 사안이 있을 때마다 현 회장이 장모인 이 이사장과 상의해서 결정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사위가 경영 전면에 나섰지만 장모가 ‘수렴청정’했다는 것이다.

이 이사장이 큰딸에게 일정 정도 ‘경영 지분’을 확보해주려 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동양그룹 3대 주요 계열사인 (주)동양의 이사는 모두 14명. 이 가운데 사내이사 10명 중 3명이 현재현 회장, 이혜경 부회장, 장녀인 현정담 동양매직 상무 등 현 회장 일가다.

부동산 등 규모가 큰 재산은 현 회장 부부가 공동 소유했다. 100억원대에 이르는 현 회장의 서울 성북동 자택도 이 부회장과 공동 소유로 돼 있다. 이 부회장의 ‘개인 재력’도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동양계열사 법정관리 신청 전에 동양증권 개인 계좌에서 6억원을 인출했던 사실이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다. 법정관리 직후인 10월1일에는 동양증권 본사를 방문해 개인 대여금고에서 금괴 등 귀중품을 빼갔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이에 대해 현 회장은 10월18일 국정감사장에서 “현금이나 금괴가 아니다. 결혼 한복의 노리개, 비녀, 마고자 단추, 애들 돌 반지와 팔찌였다”고 주장했다.

현 회장은 2조원으로 추정되는 동양증권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에 대해서는 “사재를 출연해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재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선 “이번 사태로 현재로선 평가하기 어렵게 됐다”고만 밝혔다. 동양 사태가 터진 후 현재현 일가가 보유한 자산은 부동산과 주식 등 500억원대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이 부회장은 현 회장과 결혼한 후 오랫동안 1남3녀의 교육과 가정 살림에 전념했다. 한때 재계에선 ‘내조의 여왕’으로까지 불렸다. 동양매직과 동양메이저 고문 등으로 그룹 경영에 간접 참여했지만 현 회장을 측면에서 지원하는 수준이었다. 

동양그룹 사태와 관련해 새로운 얘기가 나오고 있다. “현재현 회장과 이혜경 부회장이 경영권 다툼을 벌이다 동양 사태가 악화됐다”는 것이다. 부부가 갈등을 빚기 시작한 시점은 2006년쯤으로 추정된다.

현 회장이 2006년 동양레저를 활용해 (주)동양과 동양증권 지분을 대거 매입하면서 동양그룹을 사실상 지배했던 시점이다. 현 회장이 1대 주주로 올라선 때이기도 하다. 이전까지 이관희 이사장과 이혜경 부회장에게 지분율에서 밀렸던 현 회장이 이를 뒤집은 것이다. 이 이사장과 이 부회장 모녀는 2대 주주로 내려앉았다. 이 무렵부터 현재현·이혜경 부부 사이에 미묘한 갈등이 생겼다고 한다.

이 부회장이 동양네트웍스 등기 임원으로 등재된 시점도 2006년이다. 동양그룹 집안과 교류를 가졌던 한 중견 기업 대표는 “현 회장이 1대 주주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장모인 이관희 이사장과 갈등을 빚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집안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백년지객 사위와 장모가 경영권 분쟁을 빚었고 그 과정에서 현재현·이혜경 부부 사이에도 금이 갔다는 것이다.

ⓒ 시사저널 박은숙
부부가 최수현 금감원장 따로 만나

동양그룹 5개 계열사 법정관리 신청 전에 현 회장과 이 부회장이 각자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을 만났던 사실이 국정감사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부부가 따로따로 최 원장을 만나 ‘구원 요청’을 했다는 것이다. 송호창 의원은 금감원 자료를 근거로 현 회장은 6월13일과 9월5일, 이 부회장은 9월3일과 9월17일 각각 최 원장을 면담했다고 공개했다. 이에 대해 동양그룹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인사는 “동양그룹 회장과 부회장이 굳이 따로 금감원장을 만날 필요가 있겠느냐”며 “오래전부터 현 회장과 이 부회장 사이가 벌어졌다는 정황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재계 인사는 “현 회장과 이 부회장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겉으로만 ‘부부’일 뿐 실제로는 ‘남남’이나 마찬가지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까지 말했다. 동양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른 데는 ‘보이지 않는’ 부부 갈등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다.

현재현 부부의 갈등설과 맞물려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김철 동양네트웍스 대표다. 동양 사태가 터진 이후 김 대표가 ‘숨은 실세’라는 말이 적지 않다. ‘실권자’인 이혜경 부회장은 2008년 최고디자인경영자(CDO)로 나서면서 김철 대표를 발탁했다. 불과 33세에 전무급 임원으로 동양에 입사한 김 대표는 동양그룹 자재 구매를 통합한 미러스 설립을 주도했다. 미러스는 이 부회장과 자녀 네 명이 지분 100%를 소유한 회사다. 이 회사는 설립 1년  만에 매출이 9배나 뛰었다. 이 부회장의 신임이 더욱 두터워진 계기였다고 한다.

김철 대표의 이력뿐 아니라 동양에서의 역할 등에 대해선 여전히 베일에 가려진 부분이 많다. 10월18일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장에 현 회장과 김 대표가 나란히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 자리에서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졸업’으로 공시된 김 대표가 한예종을 1학기 중퇴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이날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은 현 회장에게 “동양 사태와 관련해 의사결정에 관여해 법적 책임을 질 사람이 현 회장밖에 없느냐”고 따졌다. 김 대표를 암시한 질의였다. 하지만 현 회장은 “김 대표가 그룹의 다른 일을 좌지우지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고 답했다. 모든 게 자신의 결정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법원은 동양그룹 계열사 다섯 곳의 기존 경영진 가운데 김 대표만 법정관리인에서 제외했다. 김 대표에게도 동양 사태의 책임이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현재현 회장이 ‘여권 최고 실세’와 가깝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금융 당국에서 동양그룹의 유동성 위기를 일찍 감지하고서도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않고 머뭇거렸던 것도 ‘여권 실세’와 현 회장 간 관계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자칫 잘못 건드렸다가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봐 감독 당국 관계자들이 몸을 사리다 동양 사태를 걷잡을 수 없이 키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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