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문, 더 활짝 열자”
  • 모종혁│중국 통신원 ()
  • 승인 2013.10.23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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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하이 자유무역시험구 가동…‘제2 홍콩’ 전략으로 투자 유치

10월14일 중국 상하이 푸둥(浦東) 신구 와이가오차오(外高橋)에 있는 상하이 자유무역시험구(시험구) 관리위원회는 각지에서 몰려든 언론사 기자들로 북적였다. 이날 외국인 투자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오리얼(阿禮爾) 인터넷이 영업 허가증을 수령했기 때문이다. 타 지역에서 보통 20일 걸리는 외국인 투자 심사가 시험구에서는 서류 신청 후 불과 6일 만에 완료됐다. 오리얼의 모기업인 다자바오(大家保)보험 CEO 방위수(方玉書)는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시험구에서는 과감한 금융 영업이 가능한 만큼 앞으로의 사업 성공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10월8일부터 정식 업무를 시작한 이래 관리위원회에는 시험구에 입주하려는 기업들의 문의가 폭주하고 있다. 날마다 2000명의 방문객이 관리위원회를 찾고, 600건의 신청서가 접수되고 있다. 젠다녠(簡大年) 관리위원회 부주임은 “예상과 달리 외자 기업보다는 중국 민영기업과 대형 국영기업의 입주 신청이 쇄도하고 있다”며 “외자 기업의 영업 허가 문의도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라고 밝혔다.

10월14일 상하이 자유무역시범구에 등기 등록을 신청한 기업 관계자들이 사업자등록증을 발급받기 위해 줄을 섰다. ⓒ Imaginechina
다시 ‘상전벽해의 기적’ 꿈꾸는 상하이

지난 9월29일 정식으로 문을 연 시험구는 중국 최초의 자유무역구(Free Trade Zone)다. 시험구로 지정된 와이가오차오 보세구 등 4개 지역의 총면적은 28.78㎢에 불과하지만 지난해 무역 규모는 1130억 달러, 입주 기업은 1만2000개에 달한다. 중국 정부가 이곳에 시험구를 개설한 이유는 기존 경제 개방 정책의 한계에서 비롯됐다.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이 주창한 개혁·개방 정책이 시행된 이후 중국에서 이뤄진 첫 실험은 경제특구였다. 경제특구 설립은 외국으로부터 자본과 기술을 도입해 대외 무역을 촉진하고 고용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1980년 광둥(廣東)성 선전(深?), 주하이(珠海), 산터우(汕頭)와 푸젠성 샤먼(廈門)을 먼저 개방했다. 1988년 성으로 승격된 하이난다오(海南島), 2010년 신장(新疆) 위구르 자치구의 카슈가르(喀什)가 추가로 지정되면서 그 수는 6개로 늘어났다.

경제특구에서 실행된 자본주의 실험은 역사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성공적이었다. 특히 선전은 상전벽해의 기적을 이뤄냈다. 1980년 선전은 인구 3만명, GRDP(지역내총생산) 1억760만 위안(약 188억원), 1인당 GDP(국내총생산) 762위안(약 13만원)에 불과했던 작은 농어촌 도시였다. 30년이 지난 2012년 현재 선전은 유동 인구까지 포함해 인구 1300만명, GRDP 2000억 달러, 1인당 GDP 2만 달러에 달하는 메트로폴리스로 거듭났다.

리커창, 주먹으로 책상 내리치며 추진

최근 5분기 동안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연속 7%대에 머물렀다. 이에 반해 중국이 직면한 경제 구조 문제와 사회 불균형은 개선이 어려울 정도다. 과도한 투자 위주의 성장으로 제조업의 과잉 생산이 지속되고 있고, 지역과 계층 간 빈부 격차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자원 소비형 산업 구조로 인해 환경오염이 심각해 중국인 스스로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 여기에 ‘한 가정 한 자녀’로 상징되는 산아 제한 정책으로 중국은 한국과 같은 해인 2000년 노령화 사회에 진입했고, 지난해에는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선 이래 처음으로 노동력이 345만명이나 감소했다.

시험구는 한계에 봉착한 과거의 성장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꾸기 위한 시도다. 노수연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시진핑 정부는 경제 발전 방식의 전환을 시도 중”이라며 “전략적 중요도가 높은 상하이를 선택해 파급 효과를 극대화하고, 성공할 경우에는 시험구 모델을 전국적으로 확대하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중국 최고 지도부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시험구를 추진하고 있다. 총대를 멘 이는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리커창(李克强) 총리다. 리 총리는 지난 3월 말 와이가오차오 보세구를 찾아 “현재의 종합보세구를 자유무역구로 확대하는 것을 적극 연구하라”고 지시했다. 상하이 시정부는 2011년 11월 자유무역구 설립 구상을 발표하고 준비해왔다. 하지만 톈진(天津)·광둥·충칭(重慶) 등 다른 경쟁 지역의 견제로 전망이 불투명했다.

리 총리의 적극적인 지원 의사 표명으로 상하이는 설립 페달을 더욱 세게 밟았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진통이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중앙정부 내에서조차 시험구 설립에 반대하는 의견이 많았다. 특히 지난 7월 베이징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는 은행·증권 등 금융감독관리위원회 관료들이 금융 서비스 개방에 극력 반대하면서 이견을 노출했다. 이에 분노한 리 총리가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면서 설립 안건을 통과시키는 난산 끝에 시험구는 겨우 태어날 수 있었다.

내부의 극렬한 저항에도 리 총리가 시험구 설립을 밀어붙인 이유는 자신의 경제 철학인 ‘리커노믹스(Likonokics)’를 연착륙시키기 위해서다. 수출에서 소비, 제조업에서 서비스업, 저부가가치 산업에서 고부가가치 사업, 지역 및 계층 간 격차 해소 등을 골자로 한 새 성장 모델로의 전환을 성공시키려면 제2의 발전 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중국 삼성경제연구원은 지난 8월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2001년 안팎의 우려에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해 10년의 발전 기회를 얻은 것처럼, 시험구는 앞으로 10년간 한층 업그레이드된 대외 개방과 발전의 동력을 중국에 제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위기감 높아진 홍콩 


중국의 시험구 출범에 대해 홍콩을 비롯한 주변 국가는 위기의식을 갖고 바라보고 있다. 특히 시험구에서 추진될 위안화 자유 태환, 금리·환율 자유화, 물류 운송 시장 개방 등은 자유무역항인 홍콩에게 위협적이다. 상하이는 이미 GRDP에서 홍콩을 앞질렀고 항만의 물동 처리량에서도 우위를 점하고 있다. 지난 9월17일 리카싱(李嘉誠) 청쿵(長江)그룹 회장은 “시험구가 홍콩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대다수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빨리 홍콩을 추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리 회장의 발언은 다음 날 모든 홍콩 신문의 1면을 장식하며 홍콩인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시험구의 본격 가동은 우리에게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아시아 허브 항구를 두고 양산항과 경쟁하는 부산항, 외자 유치에 힘써왔던 송도 경제자유구역 등에는 직접적인 피해가 예상된다. KOTRA 상하이무역관 김명신 차장은 “기존에는 외국 운송사들이 칭다오(?島)·다롄(大連)에서 실은 화물을 상하이에 환적하지 못해 부산항을 주로 이용했다”며 “국제 환적 업무로 재미를 봤던 부산·홍콩·싱가포르가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부에서는 시험구의 영향력이 과대평가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험구 규모가 너무 작은 데다 금융 혁신과 자본 자유화가 난제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논의됐던 현행 25%의 법인세율을 15%로 낮추는 방안도 빠져 대다수 외자 기업이 관망만 하고 있다. ‘혜택은 별로 없지만 강력한 개방(無優惠 重開放)’을 실험하는 시험구. 제2의 경제특구 신화를 재현해 중국을 업그레이드시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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