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호와 마주한 투수는 숨이 막힌다
  • 박동희│<스포츠춘추> 기자 ()
  • 승인 2013.10.16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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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연속 정규 시즌 MVP 수상 확실시

태풍 ‘다나스’ 특보가 해제됐다. 그러나 ‘박병호 주의보’는 계속 발령 중이다. 준플레이오프 두산전에서 박병호(넥센)는 야구에서 4번 타자가 왜 중요한지 실력으로 증명했다.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홈런을 기록한 데 이어 연일 고의사구를 얻고 출루하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두산 투수들은 “타석에 선 박병호는 거대한 산처럼 느껴진다”며 “어디로 던져야 할지 난감하다”는 말로 그의 위압감을 설명했다. 따지고 보면 박병호의 존재감은 포스트시즌에서만 유별난 건 아니었다. 올 시즌 내내 박병호는 이대호(일본 오릭스)와 견줄 만한 ‘사상 최고의 오른손 강타자’란 소릴 들었다.

10월8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두산과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넥센 4번 타자 박병호는 최고의 활약을 선보였다. 박병호는 리그 홈런·타점·볼넷 1위답게 2타수 1안타(1홈런), 2볼넷, 1득점을 기록했으며 수비에서도 안정된 플레이를 선보였다.

특히 1회 말 두산 선발 더스틴 니퍼트를 상대로 날린 솔로 홈런은 압권이었다. 박병호는 양팀이 2-2로 맞선 6회 말에도 무사에 볼넷으로 출루하며 득점의 물꼬를 텄다. 이날 넥센은 박병호의 활약으로 4-3 신승을 거뒀다.

1차전이 끝나고 두산 김진욱 감독은 “박병호 공략에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막지 못해 졌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10월9일 2차전에서도 박병호는 박병호였다. 이날 두산 투수진의 집중 견제를 받은 박병호는 장타 욕심을 버리고 출루에 집중했다. 팀이 0-1로 뒤지던 8회 말 2사 1루에서 볼넷으로 출루했다. 이게 도화선이 돼 넥센은 1-1 동점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10월8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1차전 넥센과 두산의 경기 1회 말 때 넥센 박병호가 1점 홈런을 날리고 있다. ⓒ 연합뉴스
일본 야구계도 박병호에 주목

연장 10회 말에도 박병호의 가치는 빛났다. 두산 투수 오현택은 선두 타자로 나온 박병호와의 승부가 부담됐는지 갑자기 제구가 흔들렸다. 결국 박병호는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했고 투수의 견제 실책으로 3루까지 진루한 뒤 김지수의 안타 때 홈을 밟으며 팀의 끝내기 승리를 이끌었다. 2차전 종료 후 염경엽 넥센 감독은 “두산 투수들이 박병호와의 정면 승부를 꺼린 통에 두 번의 득점 찬스를 잡을 수 있었다”며 “2차전은 누가 뭐래도 박병호의 존재감 덕분에 이긴 경기”라고 밝혔다.

지난해 박병호는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133경기에 출전해 타율 2할9푼, 장타율 5할6푼1리, 출루율 3할9푼3리, 31홈런, 105타점, 20도루를 기록했다. 홈런·타점·장타율 1위, 도루도 공동 18위에 올랐다. 당연히 그해 정규 시즌 MVP는 박병호 차지였다.

올 시즌 박병호의 대활약을 기대한 야구 전문가는 많지 않았다. 한 야구해설가는 “리그 투수들이 박병호 분석을 모두 끝마친 상태”라며 “선구안이 좋지 않은 박병호가 풀타임 2년 차 징크스에서 벗어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다른 야구 관계자도 “대다수 벼락 스타들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게 마련”이라며 “2009년 정규 시즌 MVP를 차지했으나, 이듬해부터 내리막을 달린 김상현(SK)처럼 박병호도 비슷한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우였다. 박병호는 더 진화했다. 올 시즌 박병호는 128경기에 출전해 타율 3할1푼8리, 143안타, 장타율 6할2리, 출루율 4할3푼7리, 37홈런, 117타점, 10도루를 기록했다. 홈런·타점·장타율 1위, 출루율 2위, 최다 안타 4위, 타율 8위의 빼어난 성적이다.

무엇보다 박병호의 단점이던 선구안이 좋아졌다는 게 고무적이다. 지난해 박병호는 73개의 볼넷을 얻었다. 하지만 올 시즌엔 92개로 20개 가까이 늘어났다. 그만큼 나쁜 공에 배트를 대지 않았다는 뜻이다. 볼넷 증가에 힘입어 박병호는 지난해보다 4푼 이상 높은 출루율을 기록했고 출루율이 높았던 전 메이저리그 강타자 배리 본즈에 빗댄 ‘목동 본즈’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야구계는 박병호의 2년 연속 정규 시즌 MVP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9월 말 일본 도쿄 메이지 진구 구장을 찾았다. 야쿠르트 스왈로스 강타자 블라디미르 발렌틴을 취재하기 위해서다. 그즈음 발렌틴은 오 사다하루가 보유하고 있던 일본 프로야구 한 시즌 최다 홈런 55개를 깨뜨리며 60홈런 고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기자는 ‘한국통’으로 유명한 야쿠르트 운영팀 관계자에게 “저런 타자가 팀에 있다니 얼마나 행복하겠느냐”고 덕담을 던졌다. 돌아온 답은 “한국에도 저런 타자가 있지 않으냐”는 것이었다. 박병호를 두고 하는 소리였다. 그 관계자는 “두 타자 모두 장타, 타점 능력, 위압감에선 최고”라면서도 “팀 기여도와 클러치 능력은 박병호가 다소 우세한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이었다. 발렌틴은 최고의 시즌을 보냈지만, 소속팀 야쿠르트는 센트럴리그 꼴찌에 머물렀다. 반면 박병호는 넥센을 시즌 3위로 이끌며 팀과 함께 마지막까지 웃을 수 있었다. 홈런 순도도 박병호가 다소 앞섰다.

“박병호 홈런은 ‘순도 100%’”

발렌틴은 48경기에서 홈런을 쳤다. 그가 홈런을 기록한 날 야쿠르트는 24승24패를 기록했다. 60홈런 가운데 팀 승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20개였다.

하지만 박병호는 달랐다. 그가 홈런을 기록한 32경기에서 넥센은 27승1무4패를 기록했다. 승률이 무려 8할4푼에 달한다. 여기다 37홈런 가운데 1점 차 이내 박빙의 승부에서 나온 홈런이 무려 22개였다. 야구계에서 ‘언제든 뒤집어질 수 있는 점수 차’라고 불리는 2점 이내까지 시선을 넓힌다면 무려 27개의 홈런이 이 상황에서 나왔다. 야구계에서 박병호의 홈런을 가리켜 ‘순도 100%’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선 팀에서 가장 강한 타자가 3번 타순에 배치된다. 일본은 다르다. 4번 타순이다. 이는 한국도 같아 리그를 대표하는 강타자는 대개 4번을 친다. 그렇다면 어째서 미국과 한국, 일본은 타순 배치가 다른 것일까.

신시내티 레즈에서 뛰는 한국인 메이저리거 추신수는 “팬 서비스 차원”이라고 말했다. “최고 강타자를 보려고 많은 팬이 구장을 찾는다. 구단은 팬들이 한 번이라도 더 그 선수를 볼 수 있도록 최고 강타자를 4번보다 타석수가 많은 3번에 배치한다. 그거 말고는 특별한 이유는 없는 것 같다.”

사실 최강 타자가 3번이냐, 4번이냐의 논쟁은 일본에서 시작했다. 1960년 일본 프로야구엔 역사상 가장 위대한 3, 4번 타자가 한 팀에서 뛰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3번 오 사다하루와 4번 나가시마 시게오였다. 오는 리그를 대표하는 홈런왕이었고, 나가시마는 타격 정확성과 장타력 그리고 스타성까지 겸비한 선수였다.

일본 야구계는 그때부터 오와 나가시마를 비교하며 누가 최고의 강타자인지 논쟁을 벌였고, 어느 타순이 가장 위력적인지를 놓고 갑론을박했다. 이 논쟁은 한국으로까지 전해졌고, 미국에선 생소한 ‘최강 타순론’이 한때 유행처럼 번졌다.

박병호의 타순은 4번이다. 2년 연속 전 경기에 4번 타자로 나섰다. 박병호와 비교할 수 있는 3번 타자는 고사하고, 라이벌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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