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대학언론상] 불도저에 밀려 사그라드는 옹기 불길
  • 서윤경(청주대 관광경영학과) ()
  • 승인 2013.10.08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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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단지ㆍ아파트 건설 계획 따라 사라질 위기 처한 봉산리 옹기 가마

<시사저널>은 2013년 ‘제2회 시사저널 대학언론상’ 수상작 6편을 매주 한 편씩 연재합니다. 예비 언론인들의 풋풋한 열정이 담긴 작품들입니다. 이번 호에는 장려상을 받은 “생존 갈림길에 선 봉산리 옹기 가마”를 싣습니다.

“모양새가 고운, 궁에서 쓰이는 도자기만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정말 소중한 그릇은 서민의 희로애락을 함께한, 다듬어지지 않은 투박한 그릇이다.” ‘전통 도자기와 장인의 삶’이라는 주제로 주목받는 TV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 여자의 몸으로 도자기 장인을 꿈꾸는 주인공에게 스승은 빛 고운 청자, 눈부신 백자가 아니라 흔하고도 흔한 질그릇, 삶의 체취가 스민 서민들의 그릇에 주목하라고 일러준다.

옹기. 질 좋은 토양에서 난 곱고 차진 점토로 어떻게 빚어내느냐에 따라 그 쓰임새는 무궁무진하다. 된장이나 고추장을 담는 장독, 맛깔스런 김치를 두고두고 저장해두는 김칫독, 매일 상에서 마주하는 밥과 반찬 그릇까지. 수천 년 동안 우리의 생활 속에서 늘 함께해왔던 옹기. 그동안 수고한 만큼 우리에게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대접받고 있을까.

 

ⓒ 서윤경 제공

위기 맞은 오송 봉산리 옹기 마을

우리나라 대표적인 옹기 주산지 봉산리 옹기 가마터도 옹기의 쇠락과 그 흐름을 같이한다. 충북 청원군 오송읍 봉산리 미호천 유역에 자리 잡고 있는 박재환옹의 옹기 가마. 이곳 넓은 들판은 지표 1~2m 아래 점토층이 풍부하게 형성된 덕에 태토를 구하기 쉬워 옹기 만들기에 최적지다. 여기에 옹기를 빚는 장인들이 들어와 마을을 이룬 것은 6대조 박태진공이 천주교 박해를 피해 신앙촌을 형성하고 옹기를 구워 생업을 삼은 이후부터다. 옹기 마을로 번성해 마을 이름도 점촌이라 불렸다. 옹기 생산이 절정에 달했던 1970년대에는 10여 명의 인부를 두고 옹기공장을 꾸려나갔다. 밤낮 없이 옹기를 빚고 구워내느라 가마에 불이 꺼진 날이 없었다. 전국 각지 고수들에게 전수받은 기술로 만든 박재환 옹기장의 옹기는 주문이 밀려 물건이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봉산리 옹기’가 옹기 중의 ‘갑’으로 대접받던 시절이었다.

1980년대 이후 편리하고 값싼 용기가 등장했다. 옹기에 담긴 음식들이 각종 질병을 유발한다는 한 언론의 오보 때문에 옹기 수요가 줄어들었다. 가마가 하나 둘 폐쇄됐고 장인도 마을을 떠나기 시작했다. 한때 마을 가구가 100여 호에 달했지만 모두 떠나고 지금 마을에 남은 도공은 박재환 옹기장과 전수자인 아들 단둘뿐이다. 무형문화재 박재환 옹기장은 1932년 이곳 봉산리 점촌에서 태어나 현재까지 6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멀리 들판에서 바라보면 정겨운 동산처럼 보이고 가까이 다가가면 아기자기한 조각공원 같은 봉산리 옹기 가마터. 박재환 옹기장의 옹기점에 들어서자 <불의 여신, 정이>에서 보던 가마가 눈에 들어온다. 천주교 박해로 피신한 신자들이 옹기를 구워 생계를 이어온 역사도 벽면에 기록돼 있다. 문화재청에서 발행한 문화재지킴이 위촉장도 보인다. 박재환 옹기장의 4남 1녀 중 셋째인 전수자 박성일씨는 “여러 시민단체와 언론에서 봉산리 옹기 가마를 지켜야 한다고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하지만 충청북도와 충북개발공사에서는 꿈쩍도 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며 시린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오송제2생명과학단지를 조성하고 있는 충북개발공사는 보존 가치가 없고 환경오염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옹기 가마를 보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시민단체의 입장은 다르다. 송봉화 충북문화예술포럼 문화재분과위원장은 “전통식 통가마가 아니라 칸가마라는 이유로 보존 가치가 없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칸가마란 가마 전체에 불을 때야 하는 통가마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내부를 칸으로 나눠 필요한 부분만 불을 지필 수 있게 개량한 가마인데, 고려청자를 구울 때도 칸가마를 사용한 기록이 있다. 오히려 칸가마는 시대의 흐름이 반영된 근대 유적으로서의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울산 외고산에도 옹기 마을이 있다. 1950년대부터 형성된 이곳에서는 현재 지방무형문화재 옹기장 8명과 도공 40여 명이 옹기업에 종사하고 있다. 옹기 집성촌이라고도 불리는 외고산 옹기 마을은 전국 옹기의 절반가량을 생산한다. 옹기아카데미관, 옹기박물관, 옹기공원, 민속박물관, 무형문화재 공방, 마을안내센터 등 다양한 시설도 들어서 있다. 아기자기한 고샅길이 옹기장들의 삶의 현장을 이어준다. 골목마다 볼 수 있는 옹기 모양의 수도꼭지와 공공화장실, 의자들을 보면 마치 동화 속 옹기 마을에 온 것 같다. 옹기박물관은 옹기의 역사와 유래, 각 지방 옹기의 특징 등 옹기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옹기 마을에서 4대째 옹기를 만들고 있다는 신재락 전수자(지방무형문화재 신일성 옹기장의 아들)는 늘 새로운 형태의 상품을 구상한다. 그의 옹기점에는 옹기를 이용한 미니 분수대, 화분 등 갖가지 장식품부터 발효가 잘 되는 옹기의 특성을 활용한 김칫독과 쌀독까지 현대인의 욕구에 맞춘 기발한 상품들이 진열돼 있다. 효소가 유행하면서 옹기가 없어 못 팔 정도다.

옹기를 현대화해 생산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또 다른 지역은 충남 예산이다. 외고산 마을에 비하면 작지만 이 곳에서도 매일 옹기를 생산해내느라 공장 돌아가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예산 옹기장으로 들어서는 마을 입구에는 처음 찾는 외지인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그림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길을 조금 올라가면 바로 옹기공장이 나온다. 여러 명의 도공이 땀을 흘리며 일하는 곳이다. 한 도공은 “현대 생활에 필요한 김치통, 반찬통, 밥공기 같은 것들을 생산하고 있다. 통가마는 지난해까지 사용했다. 요즘은 거의 가스 가마를 쓴다. 옹기장 어르신은 공장 맞은편 작업실에서 지금도 손수 옹기를 만드신다”고 말했다.

도자기와 옹기, 그 기막힌 조합

예산 옹기는 집에서 직접 장을 담그는 주부들에게 인기가 높다. 공장 위층에는 전시장이 따로 있다. 가정에서 많이 쓰이는 반찬통, 김칫독, 쌀독부터 주전자까지 다양한 생활용 옹기들을 볼 수 있다.

봉산리 옹기 가마뿐만이 아니다. 충북은 한국 도자기의 발원지나 다름없다. 청주에는 세계 5대 도자기 브랜드이자 본차이나 분야 세계 3위인 한국도자기의 아트센터가 있다. 역대 대통령이 사용하는 그릇을 만들고, 세계 여러 나라에 도자기를 수출하는 기업이다. 고급 그릇으로서의 도자기는 청주의 자랑이자 명물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청주시는 이런 특색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봉산리 옹기 가마 보존을 위해 애쓰고 있는 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연규민 운영위원은 “상류층이 사용하던 도자기와 서민들이 사용하던 옹기, 이 대비되는 두 가지 그릇을 지역의 대표 상품으로 만들면 청주시는 그릇의 성지가 될 수 있다.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도자기 창업주의 이야기와 천주교 박해를 피해 숨어 살며 옹기를 구워 팔았던 봉산리 옹기 교우촌 스토리는 드라마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다. 이게 얼마나 기막힌 조합인가”라고 강조했다.

“젊은 세대가 미래의 주인이다. 개발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인지 물어야 한다. 전통과 문화를 살린 한옥 호텔 객실료가 일반 호텔보다 훨씬 비싸다. 젊은 세대도 역사와 전통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젊은이들의 감성을 잘 살려 성공한 ㈜야놀자닷컴 이수진 대표는 미래를 주도하는 상징은 전통과 문화라고 단언했다.

충북개발공사는 문화유산인 옹기 가마터를 밀어버리고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려고 한다. 이게 주민과 지역의 미래를 위하는 것일까. 박재환 옹기장은 미래 세대에게 옹기에 관해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사기 장사 4금 남고 옹기 장사 5금 남고 유기 장사 6금 남고 칠기 장사 7금 남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옹기가 대접받는 시절이 있었는데 다시 옹기 기술자가 귀하게 대접받는 날이 올 거라고 믿는다. 옛날에는 옹기가 가난한 사람의 식탁에 올랐지만, 지금은 부유한 집의 식탁에 오르는 귀한 그릇이 되었다. 최근 전국 200여 개 대학에 도자기 관련 학과가 생겼다는데 나보다 젊은이들이 더 좋은 옹기를 만들기를 기대한다.”

 

ⓒ 시사저널 최준필

우리의 관심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홀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을 따뜻한 사랑으로 치유해주는 언론인이 되고 싶습니다. 그들이 가려워하는 곳, 아파하는 곳을 찾아내 잔잔히 어루만져주고 그들의 처진 어깨를 감싸주는 그런 언론인 말입니다.

우연히 페이스북을 통해 오송제2생명과학단지 개발 때문에 헐릴 위기에 처한 봉산리 옹기 가마에 대한 이야기가 뜨거운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일부 언론이 여러 번 보도하고, 시민단체와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공동으로 이 문제와 관련해 논의했지만, 지방정부의 힘을 업은 충북개발공사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은 마음에 봉산리 옹기에 대해 취재에 나섰습니다. 옹기 산업이 활성화돼 있는 울산 외고산 마을과 경북 상주, 충남 예산, 충남 아산 등지를 탐방하고 박재환 옹기장을 비롯해 여러 옹기업 종사자들을 만났습니다. 옹기의 가치를 인식하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도 들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봉산리 옹기가 가지고 있는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새삼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역 내 도자기 산업과 결합하면 청주를 그릇의 성지로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분이 오송 봉산리 옹기 가마터의 보존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이 글이 봉산리 옹기 가마터 보존을 위한 목소리를 들불처럼 번지게 할 불쏘시개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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