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인 나, 당신 그리고 사랑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3.10.02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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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시집 <눈사람 여관> 펴낸 시인 이병률

그는 ‘끌림’을 이야기했다. 먼 곳 여행지에서, 자신의 시선과 마음을 끌어당긴 것들을 산문으로 옮겼다. 섬세하게 세공한 문장이 그의 무기였다. 사소한 풍경과 평범한 사람들로부터 독창적인 감성을 길어 올렸다. 호응은 뜨거웠다. 2005년 발표한 산문집 <끌림>은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작가 이병률(46)이 여행 에세이스트로 대중에 각인된 계기다.

그러나 그의 본업은 시인(詩人)이다. 1995년 등단한 이래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왔다. 최근 그가 새 시집 <눈사람 여관>을 펴냈다. 그는 2003년 첫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를 낸 이후 3년에 한 번꼴로 시집을 냈다. 어느덧 네 번째 시집이다.

ⓒ 시사저널 박은숙
‘나’와 ‘당신’의 노래

이병률은 시집을 낼 때마다 “삶의 한 시기를 닫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각 시집에는 그 시집을 발표하기까지 약 3년간의 일상이 담겨 있다”고 했다. 그에게 시와 일상의 거리는 이토록 가깝다. 이병률은 일상에 스미는 감각을 자연스럽게 포착해 언어로 옮기는 시인이다.

이병률의 새 시집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어휘를 꼽자면 아마 ‘나’와 ‘당신’일 것이다. 물론 모든 서정시의 중심에는 ‘나’가 있다. 시인이란 자기 내면에 스치는 감상을 낯선 언어로 포착해 드러내는 사람인 까닭이다. 하지만 이병률의 시에서 ‘나’의 의미는 더욱 특별하다. 이병률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하는 동력은 바로 ‘나’를 발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끔 시를 쓰고 나서 ‘이게 과연 나였나. 이게 과연 이병률인가’ 싶을 때가 있다. 평소에는 발현되지 못하다가 시를 통해서야 표출되는 스스로가 있다. 내면이 바깥으로 확장되는 느낌이다. 물론 이것을 문장으로 잘 잡아채야 한다는 부담은 있지만, 시 쓰기를 통해 내가 인간으로 계속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여럿이 아니라 하나 / 나무 이파리처럼 한 몸에 돋은 수백 수천이 아니라 하나’(<혼자>)라는 구절이 대표적이다. 이병률의 시에서 시인은 항상 혼자다. 단 하나의 ‘나’다. 그런데 혼자인 그는 시집 전반에서 ‘당신’ ‘너’ ‘그대’를 수없이 언급한다. 시인 자신이 좋아하고 관심을 품는 대상인 ‘당신’과의 관계, 거기서 받은 ‘나’의 감상. <눈사람 여관>에 실린 많은 작품이 이를 다룬다.

나와 당신의 사이에는 ‘사랑’이 있다. 그 사랑은 애틋하고 가슴 아프다. 어느덧 40대 중반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그의 노래는 절절하고 감각적이다.

‘사랑을 하여서 나는 다리를 잘렸다 / 나를 사랑을 하여서 당신은 돌화살을 맞았다’(<사람의 정처>)

‘모두 베어다오 / 나와 당신이 / 죽도록 가까웠던 기억들을 마침내 거둬 가다오’(<맨발의 여관>)

시집에는 시인이 일상 속에서 ‘당신’과 겪은 일들도 자주 등장한다. 이를 통해 이병률은 사람을 사랑하는 일의 행복과 고통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려 한다. “과거에는 지금보다 미적인 욕구가 더 강했다. 비유나 표현에 더 신경을 썼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내가 겪고 느낀 것을 흘러나오는 대로 표출하고 싶어진다.”

“사람에게서 삶의 의미와 에너지 얻는다”

이병률은 “일상 속에서도 항상 여행자의 정서를 기본으로 갖고 있다”고 말한다. 독특한 감수성의 여행 산문을 쓰는 시인답다. 이병률은 여행하듯 일상을 살고, 여행자의 자의식으로 세상을 관찰한다. 일상에서 포착한 소소한 장면들이 시의 소재로 자주 쓰이는 이유다.

이번 시집에서도 마찬가지다. 몸이 불편해 항상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의지하는 50대 여성, 도시락을 신문지에 쏟아 보퉁이에 챙기는 남루한 사내, 추운 날 큰 짐을 들고 걸어가는 노인이 등장한다. 이병률은 그 일상적인 풍경을 관찰하며 얻은 감상을 바탕으로 시 한 편, 한 편을 완성한다.

‘사람’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이병률은 스스로 “사람을 많이 타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드는 풍경에 항상 눈길이 간다. 그의 시와 산문을 함께 관통하는 핵심 정서다. “사람만이 줄 수 있는 힘이 있다. 사람에게서 살아가야 할 의미를 찾는다거나 글을 쓰는 에너지를 얻을 때가 많다. 모든 사람은 서로 다른 질감을 가졌다. 그것을 발견하고 발굴하는 일을 놓을 수가 없다.”

이병률의 다음 관심은 ‘섬’이다. 지금까지 두 차례 발표한 여행 산문집은 모두 해외에서 머무른 경험이 토대가 됐다. 이번에는 국내로 눈을 돌려 남해안의 섬들을 방문해볼 계획이다. 물론 앞으로의 여행과 일상 속에서 그의 시 쓰기도 계속될 것이다. 이병률은 ‘시인의 말’에 이렇게 적었다. ‘삶과 죄를 비벼 먹을 것이다. 세월이 나의 뺨을 후려치더라도 나는 건달이며 전속 시인으로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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