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대학언론상] “하루 콜 세 번이면 좋고 공치는 날도 많죠”
  • 원종진(서울대 사회학과 4학년)·최은국(서울대 지역& ()
  • 승인 2013.09.16 15:05
  • 호수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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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운전 기사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콜 회사’ ‘프로그램 회사’ 착취 시달려

<시사저널>은 2013년 ‘제2회 시사저널 대학언론상’ 수상작 6편을 매주 한 편씩 연재합니다. 예비 언론인들의 풋풋한 열정이 담긴 작품들입니다. 이번 호에는 장려상으로 선정된 ‘앞뒤가 똑같은 전화번호? 밤낮이 똑같은 노동 현실!’을 싣습니다.

 

난 4월3일 새벽 2시 서울시 강남구 신논현역 교보타워 앞. 모두가 잠들 시간이지만 손에 휴대 단말기 한두 개씩을 든 중년 남성이 여럿이다. 이들은 단말기와 도로를 번갈아 응시하며 배회하거나, 여기저기 통화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길가에 늘어선 택시들 사이로 25인승 혹은 15인승 승합차들이 속속 도착했다. 단말기를 든 남성들은 저마다 흩어져 승합차에 몸을 실었다. 대체 이 새벽에 어디서 와 어디로 가는 사람들일까. 단말기를 든 한 남성에게 물었다. 그는 “서울과 수도권 지역 대리 뛰는 사람들이 ‘대리셔틀’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답했다.

새벽의 신논현역 교보타워 앞은 서울과 수도권 지역 대리운전 기사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대리운전 기사들의 허브였다. 대리운전 기사들은 다음 손님을 받기 위해 대중교통이 끊긴 새벽에도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야 한다. 때문에 이들은 한 달에 일정 요금을 내고 계약한 ‘대리셔틀’ 승합차를 타고 이동한다. 

대리운전 기사들의 노동환경을 알아보기 위해 기자는 대리운전 기사와 동행했다. 수원역과 사당역을 오가는 광역버스 7770번 노선. 심야 시간대 7770번 노선을 운전하는 버스 기사 이학범씨는 “새벽 차 승객 중 절반은 대리운전 기사들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실제 4월2일 새벽 2시, 기자가 탑승한 7770번 버스에는 단말기를 손에 든 대리운전 기사가 여럿 있었다. 단말기 두 개를 번갈아 보다 잠시 눈을 붙이던 대리운전 기사 B씨는 수원종합운동장 정류장에 하차해 어딘가를 향해 바쁘게 걸어갔다. 그는 같이 내려 말을 건네는 기자에게 “손님 콜이 뜨면 바로 가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동행을 허락했다.

B씨는 대리운전 일에 뛰어든 지 반 년이 조금 넘었다고 했다. 아직 대리운전 일에 익숙하지 않은 그는 “많은 날은 하루에 세 콜 정도 받지만, 어떨 때는 공치는 날도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 대리운전의 경우 거리에 따라 다르지만, 건당 대략 2만5000원 정도인데 기사는 수수료 20%를 제외한 2만원을 가져간다. B씨는 “일주일에 하루 쉬고 매일 여덟 시간씩 꼬박 일해도 수입이 70만원 될까 말까 한다”고 말했다.

 

ⓒ 시사저널 최준필

‘500원 벌금제’, , 대리 기사의 또 다른 눈물

대리운전업계의 주체는 크게 △대리운전 프로그램 회사 △콜 접수 회사 △대리운전 기사로 나뉜다. 우선 고객이 대리운전회사에 전화를 걸면 일차적으로 ‘콜 접수 회사’를 거친다. ‘콜택시’의 경우 회사에서 기사를 연결해주지만 대리운전은 여기서 한 단계를 더 거쳐 ‘대리운전 프로그램 회사’로 고객의 콜이 전해진다. 대리운전 프로그램 회사란 고객의 콜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기지다. 기사가 가지고 있는 단말기로 콜을 전달하고 고객 위치를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복잡하게 짜인 사업 구조 속에서 ‘콜 회사’와 ‘프로그램 회사’는 기술을 활용해 수수료 20% 외에 다양한 명목으로 기사들에게서 돈을 뜯어간다.

B씨는 거리를 걷는 중에도 단말기 여러 대를 번갈아 주시했다. 그는 “프로그램 회사들 방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러 개를 사서 가지고 다니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수도권에는 10여 곳의 프로그램 회사가 난립해 있다. 그런데 한 단말기에서 다른 회사의 프로그램은 호환되지 않는다. 프로그램 사용 수수료 때문이다. B씨는 수십만 원에 달하는 단말기 2개를 할부로 구입한 후 월 1만5000원의 프로그램 사용료를 두 곳에 내고 있다. 정보력이 곧 수입인 대리운전 기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단말기를 늘릴 수밖에 없다. 한국대리운전협동조합 이상국 사업본부장은 “요즘같이 기사들 간 경쟁이 치열할 때는 단말기를 5~6개씩 들고 다녀야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손님들의 콜을 중계하는 대리운전회사도 교묘한 수법으로 기사들의 돈을 거둬간다. 단말기에는 손님들의 콜 요청이 들어오는데 이 요청을 클릭하면 경유지를 비롯한 세부 정보를 볼 수 있다. 그런데 대리운전 기사가 이 세부 정보를 열람한 뒤 콜 승인을 하지 않으면 500원의 벌금이 부과되고 이 돈은 고스란히 대리운전회사로 들어간다. 때문에 B씨는 신호음과 함께 뜬 콜 요청을 실수로 잘못 누를까 봐 조심했다. ‘500원 벌금제’는 원래 콜 승인 속도를 높여 대리운전 서비스 질을 높이려고 만든 장치다. 과거에는 콜 승인을 하지 않아 생긴 500원 벌금은 다음에 승인을 받은 기사에게 이월됐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500원 벌금은 기사가 아닌 회사가 가져가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러자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낚시콜’이 빈번하게 나타났다. 이창수 이사장은 “낚시콜을 콜 회사가 조작했는지 밝혀진 바는 없다”면서도 “벌금을 회사가 가져가면서 ‘강남에서 하남을 거쳐 평택에 가달라’는 식의 비정상적인 콜이 빈번해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대리운전 기사들은 단말기에 나타나는 콜을 누가 빠르게 클릭하느냐에 따라 수입이 달라진다. 콜이 뜨면 확인 없이 클릭할 수밖에 없다. 낚시콜이 떠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송대성 사무처장은 “대리운전업체가 ‘낚시콜’을 통해 버는 돈은 한 달에 2억~3억원가량”이라며 “대리운전회사가 벌금을 통해 회사 임대료 등을 마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손님을 한 명이라도 더” 심야의 폭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운행 단가가 낮아진 것도 기사들에게는 큰 부담이다. ‘수도권 지역 2만5000원’이었던 대리운전 가격은 지속적으로 떨어져 이제는 1만5000원을 내건 회사도 적지 않다. 대리운전 기사들은 손님을 한 명이라도 더 받기 위해 심야의 폭주를 한다. 기자는 대리운전 기사의 심야 운행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서울시 서초구에서 수원시 영통구까지 대리운전을 이용해봤다.

3월27일 오후 10시, 서울시 서초구에서 대리운전을 요청했다. 10분도 지나지 않아 대리운전 기사가 연결됐다. 곧이어 단말기를 든 한 남성이 나타났다. 올해 대리운전을 한 지 3년째라는 C씨는 “서울 중구에서 서초구까지 손님을 태워 간 뒤 운 좋게 바로 연결됐다”며 흡족해했다. 차는 남부순환로를 따라 사당역을 경유해 과천·의왕 고속도로로 올랐다. 이 고속도로의 규정 최고속도는 시속 100km이지만 차의 계기판은 120km를 가리키고 있었다. C씨는 “경력이 좀 되니까 안심하셔도 된다. 손님은 빨리 귀가하고 저도 다음 손님을 빨리 받을 수 있으니 서로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평소 승용차로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를 주파한 시간은 40분. 노동 조건이 대리운전 기사를 위협할수록 시민들의 안전도 위협받고 있었다.

대리운전 기사는 법적으로 직업 분류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법률상 노동자의 지위를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 대리운전 기사들의 노동환경이 개선되기 어려운 이유다. 대리운전 기사들은 자신들이 ‘비정규 특수고용직 노동자’라고 주장한다. 특수고용직 노동자는 근로계약이 아닌 위임계약을 통해 노동하는 근로자를 말하는데 ‘콜 회사’와 ‘기사’의 관계가 그렇다는 것이다.

낮아진 단가가 속도 경쟁 내몰아

고용노동부는 대리운전 기사를 ‘노동자’가 아닌 ‘자영업자’로 규정하고 있다. 회사로부터 콜 중개를 받은 뒤 수수료를 지불할 뿐 회사로부터 급여를 받지 않기 때문에 고용 관계가 아닌 중개 관계로 보고 있다. 하지만 송대성 사무처장은 “대리운전 기사와 근무 형태가 유사한 퀵서비스 기사는 판결에서 특수고용 노동자로 분류됐다. 두 직업의 근로 체계가 비슷하기 때문에 특수고용직 노동자로 인정하는 데 무리가 없다”고 반박했다.

이용우 변호사(민변 노동위원회) 역시 “회사가 기사들의 업무에 제한을 거는 ‘락(Lock)’ 등의 방침을 볼 때 회사와 기사의 관계를 ‘고용-피고용’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락’이란 프로그램 회사 및 콜 회사가 대리운전 기사의 단말기에 콜 정보가 가지 않도록 하는 조치다. ‘락’이 걸리면 수입을 올릴 수 없게 된다. 만약 대리운전 기사가 중개업체를 교체하거나 ‘낚시콜’을 취소하는 경우 회사 측이 ‘보복성 락’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점은 문제다. ‘락’을 통해 회사는 기사들의 이탈을 막을 수 있고 대리운전 기사들의 실질적 고용주로 군림할 수 있다.

처우 개선을 위한 대리운전 기사들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비록 고용노동부는 인정하지 않아도 그들은 노동조합 설립을 시도 중이다. 2006년 ‘대전 대리운전 노동조합’이 설립된 이후 대구와 서울에서 노조 설립이 추진되고 있다. 자체적인 ‘협동조합’도 만들어졌다. 서울특별시 제1호 협동조합으로 등록된 ‘한국대리운전협동조합’은 독자적인 ‘콜 중계 프로그램’을 개발해 대리운전 기사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이를 바탕으로 회원 수를 늘려갈 계획이다. 이창수 이사장은 “대리운전 기사는 어떻게 보면 음주운전을 방지하는 공익 서비스의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처우 개선을 통한 안전과 서비스 질 향상이 사회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전국에서 활동 중인 대리운전 기사의 수는 30만명에 달한다. 이는 공인중개사, 택시 종사자 수와 비슷하고 제주특별자치구의 경제활동인구와 맞먹는다. 끝없이 이어지는 이들의 밤에도 새벽 해가 뜰 수 있을까.

※ 다음 호에는 장려상 ‘“파룬따파 하오(파룬궁 좋아요).” “하오 하오(좋아요)!”’가 이어집니다.

 

 

어느 ‘불금’(불타는 금요일을 뜻하는 신조어), 밤늦게 술을 마시고 신논현역 앞을 걸어가고 있었다. 새벽이었지만 거리는 무척이나 붐볐다. “금요일이라 그런지 밤늦게까지 노는 사람이 많구나.”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많은 사람이 단말기를 손에 쥐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정체 모를 승합차 여러 대가 도착했고, 단말기를 든 사내들은 차를 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대체 뭐하는 사람들일까? 그들 중 한 사람에게 물어봤다. “뭐하시는 분들이세요?”

이번 기사는 주변에 대한 사소한 호기심에서 시작됐다. 대리운전 광고는 도처에 널려 있다. 자가용이 있는 사람이라면 음주 후 대리운전을 이용한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차 운전석과 광고에 존재하는 대리운전 기사들은 그 외의 곳에서는 우리의 관심 저편으로 사라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어떤 처우를 받고 있는지 자세히 알아보고 싶었다. 현장 이야기를 생생히 담고자 대리운전 기사에게 동행 취재를 요청하기도 했고, 여러 대리운전 기사 단체와 대리운전 회사를 돌아다녔다. 취재를 하면서 회의감도 들었다. 분초를 다투면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누를 끼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 취재를 하는 것인가.

다행히 <시사저널> 지면을 통해 대리운전 기사들의 속사정이 알려질 수 있게 돼 조금이나마 위안이 된다. 촌각을 다투는 무한 경쟁의 노동 현장 속에서도 취재에 도움을 주신 대리운전 기사들께 감사드리며, 이 기사가 대리운전 기사들의 노동환경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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