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NGO / 옥중에서 1위 오른 환경운동 대부 최열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3.09.16 14:26
  • 호수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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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태·최정표·송상현 순…보선 스님 8위, 한비야 9위

환경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최열 전 환경재단 대표가 가장 영향력 있는 NGO(비정부기구) 지도자 부문에서 처음으로 1위를 차지했다. 매년 1위를 독차지해온 박원순 서울시장은 공동 5위에 머물렀다. 두 가지 해석이 나온다.

먼저 박 시장이 이제는 NGO 지도자보다 정치인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서울시장에 당선된 후 처음 실시된 2012년 조사에서는 여전히 1위를 차지했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박 시장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도전할 계획이다. 야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정치적 위상이 높아졌다.

최열 전 환경재단 대표 ⓒ 시사저널 이종현
MB 정권 ‘표적 수사’ 논란 일어

다음으로 최 전 대표의 구속을 부당하다고 보는 이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최 전 대표의 지목률이 두 자릿수로 올라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명박(MB) 정권 내내 검찰 수사 대상이 된 그는 박근혜 정권 출범 직전인 2월15일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아 구속 수감됐다. 죄목은 ‘알선 수재’다. 하지만 최 전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는 ‘표적 수사’ 논란을 불러왔다. 민주당은 6월18일 “최 전 대표 사건은 지난 정부가 4대강 사업 반대 세력을 억압하고 실체적 진실을 호도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에서 기획됐다”며 소속 의원 126명 전원의 서명을 받아 청와대를 방문해 최 전 대표의 석방을 청원했다.

최 전 대표는 최근 세계적인 환경운동단체 시에라 클럽이 주는 2013년 ‘치코멘데스상’을 수상했다. 클럽은 선정 이유로 ‘한국의 환경 보호를 위한 헌신’을 꼽았다. 또 ‘환경단체의 4대강 사업 반대 저지 과정에서 이명박 정부의 탄압에 대한 그의 고통을 인정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시민·사회단체의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참여연대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의 영향력은 여전했다. 이석태 참여연대 공동대표와 최정표 경실련 공동대표가 나란히 2, 3위에 이름을 올렸다. 법무법인 덕수의 대표변호사인 이 대표는 노무현 정권 초기인 2003년 청와대에서 공직기강비서관을 지냈고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회장을 맡았다. 2012년 조사에서는 4위였다. 경제학자이자 건국대 교수인 최 대표는 경실련 정책협의회 의장을 거쳐 2012년 2월부터 경실련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처음으로 10위권에 이름이 올랐다. 최 대표와 함께 경실련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보선 스님도 8위를 차지했다.

이들 외에도 새로운 인물이 대거 10위권 내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국제 아동 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는 NGO 수장들이 높은 순위에 올랐다. 유엔 산하 국제연합아동기금인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송상현 회장이 4위, 긴급 구호 활동과 개발 사업을 하는 민간 구호 단체 월드비전의 양호승 회장이 5위를 차지했다.

서울대 법학부 교수를 지낸 송 회장은 현재 국제형사재판소(ICC) 소장을 맡고 있다. SK와 CJ 등에서 최고위직 임원을 지낸 양 회장은 2012년 1월부터 한국월드비전을 이끌고 있다. 2011년 10월 취임한 유중근 대한적십자사 총재도 10위로 첫 진입에 성공했다.

반면, 2012년 조사에서 박원순 시장보다 불과 2.3%포인트 낮아 2위를 차지했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박 시장과 함께 공동 6위에 머물렀다. 당시 반 총장에 이어 3위에 올랐던 한비야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 교장도 9위로 순위가 여섯 계단 하락했다. 2016년 12월31일 임기가 끝나는 반 총장은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벌써부터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고 있다. 국제 구호 활동 전문가인 한 교장은 유엔 중앙긴급대응기금 자문위원도 맡고 있다.

ⓒ 시사저널 포토·연합뉴스·청와대사진기자단
시민단체 집단, ‘박원순 시장’ 1위 꼽아

10위권 밖에도 유력 시민단체의 수장들이 이름을 올렸다. 이석태 공동대표와 함께 참여연대를 이끌고 있는 김균·정현백 공동대표가 나란히 11위와 12위를 차지했다. 2003년부터 2011년까지 한국월드비전을 이끌었던 박종삼 전 회장과 시민사회에서 차세대 리더로 부상하고 있는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이 공동 13위에 올랐다.

가톨릭대 교수인 이시재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가 15위, 국제 어린이 양육 기구인 한국컴패션 대표를 맡고 있는 서정인 목사와 국제 구호 단체인 기아대책의 정정섭 회장이 공동 16위, 유니세프 대사를 맡고 있는 배우 안성기씨가 18위, 홍명희 아름다운가게 이사장과 박경조 녹색연합 상임대표가 공동 19위를 차지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각 집단별로 1위 결과가 서로 다르게 나타났다. 행정 관료·교수·금융인·문화예술인 집단에서는 최열 전 대표가 1위를 차지한 반면, 언론인·정치인 집단에서는 이석태 공동대표, 법조인 집단에서는 양호승 회장, 기업인 집단에서는 반기문 총장, 시민단체 집단에서는 박원순 시장, 종교인 집단에서는 송상현 회장이 각각 1위에 올랐다.  


환경운동을 대중운동으로 확산시킨 주역 

최열 전 환경재단 대표는 30년 넘게 환경운동에 매진했다. 그의 발자취는 곧 한국 환경운동의 역사나 다름없다. 전두환 정권 시절이던 1982년 최 전 대표는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국내 최초의 민간 환경단체인 한국공해문제연구소를 설립했다. 이 연구소는 1988년 공해추방운동연합으로 이어졌고, 1993년 8개 환경단체가 통합한 환경운동연합으로 진화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환경운동은 대중운동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그 중심에 최 전 대표가 있었다.

하지만 MB 정권이 출범하면서 최 전 대표는 수난을 맞게 된다.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촛불 집회로 홍역을 치른 MB 정권은 그 배후에 시민단체들이 있다고 보고 이들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했다. 때마침 환경운동연합의 한 활동가가 공금을 유용한 사건이 포착됐다. 검찰은 이 사건을 빌미로 환경운동연합을 수색해 모든 자료를 압수해 갔다. 곧이어 환경재단도 압수수색을 당했다.

수사의 최종 대상은 누가 봐도 최 전 대표였다. 이 수사는 주로 권력형 비리를 담당하는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에 배당됐고 7명의 검사와 40여 명의 수사관이 투입됐다. 당시 부장검사가 바로 대기업 회장과 다단계 사기범으로부터 10억원대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 기소돼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은 김광준 전 검사다. 검찰이 구속영장 청구를 두 번이나 했지만 모두 기각돼 최 전 대표는 불구속 상태로 수사와 재판을 받았다.

최 전 대표에게 씌워진 혐의는 세 가지였다. 환경운동연합 공금 횡령, 환경재단 공금 횡령, 알선 수재다. 이 중에서 공금 횡령 혐의는 무죄 판결이 났다. 그런데 알선 수재 혐의의 경우 1심에서는 무죄였지만, 2심에서 징역 1년의 유죄가 선고됐다. 이후 대법원으로부터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그는 곧바로 구속 수감됐다. 최 전 대표가 영어의 몸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대 젊은 시절 두 차례 옥고를 치렀다. 1975년 5월 명동성당 전국대학생연맹 사건에 연루된 그는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수감됐다. 또 1979년 YWCA 위장 결혼식 사건으로 씌워진 계엄포고령 위반죄로 구속됐다. 지난 4월2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긴급조치 9호 위반 사건 재심 공판에서 검사는 무죄를 구형했고, 판사도 무죄를 선고했다. 38년 만에 누명을 벗게 된 법정에 최 전 대표는 수의를 입은 채 참석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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