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사돈까지 파고드는 사정 칼날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3.09.11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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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조사 3개월 만에 조석래 회장 출국금지…효성 측 “국세청의 관행적 조치”

효성그룹을 세무조사 중인 국세청의 칼날이 갈수록 날카로워지고 있다. 지난 5월 세무조사에 착수한 지 2개월여 만에 조세범칙조사로 전환했다. 조세범칙조사는 검찰 고발 등을 염두에 둔 사법적 성격의 세무조사다. 최근에는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을 포함한 경영진 3명을 출국 금지시켰다. 국세청 주변에서는 “이번엔 제대로 걸린 것 같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조 회장 등에 대한 국세청의 출국 금지 조치에 대해 효성그룹 관계자는 “세무조사를 받는 기업의 대표이사를 출국 금지하는 것은 국세청의 관행적인 조치”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세청 조사에 성실히 응하고 있다”며 “언론 보도 내용 중 일부는 사실과 다르다. 조사 결과를 지켜봐 달라”고 강조했다. 국세청 역시 “법과 원칙에 따라 세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다.

지난 8월19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일경제협회 정기총회에서 조석래 회장(가운데)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조 회장 검찰 고발 여부 9월 중 결정할 듯

재계 안팎에서는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다른 시각에서 보고 있다. 효성그룹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돈 기업이다. 조석래 회장의 동생인 조양래 한국타이어그룹 회장의 아들 조현범 한국타이어 상무가 이 전 대통령의 사위다. 이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 재임 시절 적지 않은 구설에 시달려야 했다. 검찰은 2008~11년 효성그룹 오너 일가의 비자금과 관련해 여러 차례 수사를 벌였다. 2008년에는 효성 비자금과 관련된 제보를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넘겨받아 수년간 조사를 했다. 2010년에는 효성의 미국 현지 법인에서 빼낸 자금 수십억 원으로 오너 일가가 구입한 부동산도 살펴봤다. 하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2008년 사건의 경우 검찰은 효성중공업의 일부 임원이 수입 단가를 부풀려 한국전력에 사기 납품했다고 결론 내렸다. 오너 일가의 자금 흐름은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2010년에는 장남 조현준 사장과 삼남 조현상 전무를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마무리 지었다. 그럴 때마다 야당은 논평을 내 “대통령 사돈 기업에 대한 봐주기 수사가 아니냐”고 비난했다.

2011년에는 상호 출자 제한 기업집단 관련 자료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출하면서 계열사 7곳을 누락시킨 혐의로 조 회장 일가가 검찰에 고발당했다. 당시 검찰은 1년 1개월을 끌다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했다.

하지만 올해는 움직임이 달라졌다. 국세청·검찰 등 사정 당국의 행보가 빨라졌다. 조사와 수사가 속전속결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국세청은 효성그룹 세무조사를 9월 안에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이후 조세범칙심의위원회를 열고 세금 추징과 함께 조 회장 등에 대한 검찰 고발 여부를 확정할 예정이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계열사를 통한 해외 가공 거래나 조세회피 페이퍼컴퍼니를 통한 조세 포탈 등이 세무조사의 핵심일 것”이라며 “국세청 내부에서는 조 회장 등에 대해 검찰 고발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국세청 세무조사를 두고 “박근혜정부가 MB 정부와 거리 두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효성그룹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효성이 세무조사 초기에 법무법인 김앤장을 대리인으로 선임한 것도 국세청이 검찰에 고발할 것을 대비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9월 베트남 순방 때 동행하는 경제사절단에서 조석래 회장이 빠진 것도 구구한 추측을 낳고 있다. 청와대는 지난 8월 말 박 대통령 사절단을 공개 모집한다고 밝혔다. 9월2일까지 산업통상자원부를 통해 신청자를 접수한 뒤, 9월4일 명단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발표 시기를 하루 연기하는 과정에서 조석래 회장의 이름이 빠졌다. 정부는 “경제사절단이 역대 최대인 79명이다. 이 중 40명이 중소·중견 기업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재계에선 정부의 이런 설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이번 경제사절단에서 배제된 인사들은 조 회장을 비롯해 이석채 KT 회장, 정준양 포스코 회장 등이다. 조 회장과 함께 ‘MB맨’으로 분류되거나, 박근혜정부 들어 줄곧 사퇴 여부에 관심이 쏠린 인사들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효성의 베트남 매출 규모가 1조원에 달한다”며 “지난 6년간 8억4000만 달러를 투자해 타이어코드 및 스판텍스 생산기지를 건설했다. 현지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기업 총수를 사절단에서 배제한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조 회장이 현재 출국 금지됐기 때문에 사절단에 합류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동안 검찰 조사 등으로 출국 금지된 인사들이 법무부 허가를 얻어 여러 차례 해외 출장을 다녀왔던 전례가 있다. 조 회장의 사절단 불참에 대해 뒷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번 세무조사에 대해 국세청의 ‘국면 전환용’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효성그룹에 대한 일반 조사가 조세범칙조사로 전환된 때는 8월이다. 당시 국세청은 궁지에 몰린 상태였다. CJ그룹 세무조사 무마 청탁 대가로 수억 원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전군표 전 국세청장과 허병익 전 국세청 차장이 재판에 넘겨졌다. 국세청은 CJ그룹과 이재현 회장 등에 대한 세무조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회장의 차명 주식을 적발하지 못해 세액을 추징하지 않았다. 재계의 저승사자로 불리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 넉 달간 자료를 훑었지만 추징금은 ‘0원’이었다. 검찰은 전군표 전 청장이 CJ그룹 세무조사에 관여한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대가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8월13일 전 전 청장과 허 전 차장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수수와 뇌물 수수 방조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8월1일에는 송광조 서울지방국세청장이 CJ그룹으로부터 골프 접대 등을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송 청장은 이후 거취를 고민하다 사의를 표명했다. 국세청이 또다시 여론의 질타를 받았던 것이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위치한 효성 본사 건물. ⓒ 시사저널 이종현
베트남 경제사절단에서 조 회장 빠져

2008년 이재현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 과정을 둘러싼 ‘봐주기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당시 검찰은 CJ그룹의 전 재무팀장 이 아무개씨의 청부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차명계좌 400여 개와 고가 미술품 거래 내역을 확보했다. 검찰은 이 자료를 국세청에 보냈다. 횡령이나 탈세 혐의가 확인되면 고발 조치해달라는 취지였다. 그러자 이 회장은 양도소득세 체납을 자진 신고하고 1700억원의 세금을 냈다. 문제의 자금에 대해선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라고 했다. 국세청은 조세범칙조사심의위원회를 열었지만 별도로 검찰에 고발하지는 않았다.

국세청이 이런 불리한 국면에서 벗어나기 위해 효성에 대한 세무조사를 강도 높게 진행하고 있다는 시선도 적지 않다. 국세청도 세간의 곱지 않은 눈길을 의식하고 있다. 김덕중 국세청장은 최근 국장급 이상 간부들에 대해 대기업 인사 접촉 금지령을 내렸다. 세무조사 감찰 태스크포스(TF)와는 별도로 ‘고위 공직자 감찰반’ 신설을 약속했다. 그러면서도 일련의 의혹에 대해 “검찰의 고발 요청을 일방적으로 묵살한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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