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대학언론상] 주민들의 절규 “텍사스촌 시절이 그립다”
  • 김준희 (충남대 불문과 4년)·임이슬 (배재대 공공행& ()
  • 승인 2013.09.11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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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늦어져 ‘유령도시’ 된 대전 유천동 집창촌 르포

<시사저널>은 2013년 ‘제2회 시사저널 대학언론상’ 수상작 6편을 매주 한 편씩 연재합니다. 예비 언론인들의 풋풋한 열정이 담긴 작품들입니다. 이번 호에는 우수상으로 선정된 ‘성매매 집결지 성공적 해체? “차라리 그때가 나아”’를 싣습니다.

10년 전 대전시 중구 유천동 밤거리는 지금과 많이 달랐다. 창문 밖 여성들을 구경하는 일명 ‘사파리 차’들이 줄짓는 진풍경이 연출되곤 했다. 유리문 밖으로 손짓하는 여성들과 그녀들을 훑는 차량 속 시선들이 교차되는 순간, 매춘 여성들은 유리방 밖으로 뛰어나온다. 여성의 손을 잡고 유리방 안으로 사라지는 남성들의 뒷모습에서 부끄러움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어둠이 스며들 틈 없이 빽빽한 수십 가닥의 불빛은 이곳이 그 유명한 ‘유천동 텍사스촌’이란 걸 알려줬다.

2004년 성매매 특별법 발효, 2008년 성매매 집결지 본격 해체. 유천동 텍사스촌은 2013년 현재 터만 남았다. 이곳은 성매매 집결지의 완전한 해체 사례로 꼽힌다. 2009년 당시 대전 중부경찰서장은 ‘성매매 집결지 해체,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는 제목의 논문까지 발표했다. 현장을 방문했던 변도윤 전 여성부장관은 “수많은 성매매 집결지 해체 현장을 방문했지만 유천동과 같은 성공적인 곳은 처음 본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김준희·임이슬 제공

주변 상권 두 번 죽이는 ‘텍사스촌’ 인식

행정 당국이 뽑은 집창촌 해체 모범 사례, 불 꺼진 유천동 거리는 홍등 대신 ‘명품 신도시’라는 희망의 불을 켰다. 2009년 대전시는 유천동 텍사스촌을 비롯해 주변 130만㎡를 뉴타운 방식으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도심 숲 공원, 도서관, 문화체육센터 등으로 구성된 복합커뮤니티 시설을 상상하며 유천동 사람들은 ‘장밋빛’ 꿈을 키웠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텍사스촌 일대는 어떻게 변했을까.

“그 동네 거의 빈집이고, 빈 상권이에요. 이미지 안 좋아서 팔리지도 않고, 상점들은 들어서는 족족 망하던데요. 재개발 어쩌고 하더니만 인식이 안 좋아서 살아남기 힘들어 보여요. 아가씨도 밤늦게 거기 돌아다니지 마요. 흉흉해.” 택시 운전 15년 차인 김기주씨(56)의 얘기다.

지난 7월18일 택시운전기사 아저씨의 생생한 목격담을 들으며 유천동 버드내 네거리에 위치한 대형 전자매장 앞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우측으로 돌아 짧은 횡단보도를 두 번 건너면 유천동 텍사스촌 중심부가 보인다.

차량 통행도 많지 않은 한산한 거리에 들어서니 텅 빈 점포들이 눈에 띄었다. 한 건물을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입구는 쇠사슬로 굳게 잠겨 있고, 벽면은 심하게 부식된 상태였다. 주변 다른 상가들도 비슷했다. 심지어 산산조각 난 유리문이 무방비로 방치된 곳도 보였다. ‘점포 임대’ 현수막이 곳곳에 걸린 거리는 폐허나 다름없었다. 아직까지 남아 있는 색 바랜 유흥주점 간판이 예전의 명성을 짐작케 했다.

천변 쪽에 위치한 서부터미널 뒤쪽은 그나마 유동 인구가 많은 편이다. 다리 건너 옆 동네와 맞닿아 있고 주택가가 인접해 있기 때문이다. 이 거리도 상권이 죽어 있기는 매한가지다. 250m쯤 되는 길가에 빼곡히 늘어선 상가는 유흥업소를 포함해 어림잡아 60개 남짓. 하지만 저녁 8시가 지나도 문을 열거나 운영 중인 곳으로 보이는 상가는 7군데에 불과했다.

12년 전 대목이라고 소문난 자리에 마트를 차렸다는 이은희씨(41)는 가게 매출이 반 토막 난 지 오래지만 힘겹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싸게 내놔도 가게가 팔리질 않으니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가게 안에 진열된 상품은 슈퍼마켓이라기보단 잡화점에 가까웠다. 욕실용품, 로션, 염색약 등 생활용품이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돼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 고객이 원하는 물건을 갖다놓다 보니 이렇게 된 거죠.” 이씨의 표정은 말하는 내내 어두웠다.

바로 맞은편이 대규모 아파트 단지인데 왜 유독 이 지역만 한산할까. 유천2동에서만 22년을 거주한 김혜린씨(24)는 “웬만하면 그 거리는 들어가고 싶지 않다. 아무래도 성매매를 하던 곳이라는 인식이 있으니 무섭다”며 하루빨리 재개발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유천동 토박이 강희준씨(26)는 “괜히 지나다니다 의심받기도 싫고, 마땅히 갈 만한 상가가 없어서 안 간다”고 밝혔다. 성매매 집결지였다는 부정적 인식이 남은 상가들의 생존마저 막고 있었다.

큰 거리 사이에는 좁은 골목이 많다. 골목 안쪽에 형성된 주택가를 따라 들어서자 주택 너머로 최신형 아파트 등 이질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좁고 복잡한 골목길에서 본 정비되지 않은 주택가는 오래전에 시간이 멈춘 듯했다. 미로 같은 골목길을 헤매다 까맣게 그을린 한 집을 발견했다. 큰 덩굴에 가려져 그만 지나칠 뻔했던 그곳엔 방화의 흔적이 뚜렷했다. 뒤따라오던 행인들은 “마치 공포영화 속 한 장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다”며 수군거렸다. 맞은편에 있는 연립주택 창문마저 뜯겨져 있어 한층 더 을씨년스러웠다.

좀도둑 기승에도 인근 지구대 ‘무관심’

“흉가야 흉가! 밤에는 얼마나 무서운데!” 30년 넘게 이곳에서 살고 있다는 이 아무개 전 부녀회장은 절반 이상이 집을 비운 주택가 밤거리에 몸서리를 쳤다. 이씨는 상권 붕괴와 재개발 바람과 함께 전체 주민 중 반 이상이 이 지역을 떠났다고 했다. 남아 있는 주민들은 대개 60대 이상 노인들로, 토박이거나 경제적 능력이 없어 이사를 갈 수 없는 형편이다. 이씨는 차라리 주변 상권도 살아 있고, 인근에 사람이 많았던 텍사스촌 시절이 낫다고 했다. 폐가가 즐비한 거리에서 주민들에겐 선택의 기회조차 없었다.

“여기요? 살기 아주 무서워요. 하루는 낯선 남자가 집 앞을 서성대더라고요. 그곳에 사는 할머니에게 누구냐고 물었더니 ‘여기 깔린 게 좀도둑’이라고 그래요.”

주택가에서 작은 음식점을 운영하던 임민자씨(70)는 주택가 중심부에 위치한 이층집에 살고 있다. 1층에 걸린 빨간색 칼국수집 간판 때문인지 인근 주택 중 유별나게 눈에 띄었다. 임씨 집에는 한 달 전에도 도둑이 들어 경찰이 출동하는 소란이 일어났다. “2층에서 내려오는데 1층 식당에서 누가 자고 있는 거예요. 난리가 났죠. 냄비, 그릇 등 자잘한 세간을 챙겨가려 했는지 한쪽에 쌓아두곤 여유롭게 라면까지 끓여먹고 자더라고요.” 임씨는 그때 상황이 생생한지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 이후로 치안은 좀 나아졌냐는 물음에 “그냥 큰길가에 순찰차만 몇 번 돌아다닐 뿐”이라고 말했다.

그 동네에서 반평생을 지낸 이은숙씨(68)는 차라리 텍사스촌 시절이 나았다고 했다. 그때는 주변 상권도 살아 있었고, 인근에 사람이 많아서 덜 위험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드문 인기척이 오히려 주민들에겐 공포로 다가온다. “노숙자 같은 사람들이 빈집에 몰래 가서 자고 가거든요. 밤에는 그런 사람이 너무 많이 돌아다녀서 밖에 나가지도 못해요. 너무 불안하고 불편하죠.” 이씨는 잠재적 범죄를 예방하려면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게 상책이라고 강조했다.

방범용 CCTV 하나 없는 유천1동 주택가. 방범 활동에 관해 문의하기 위해 인근 지구대를 찾았다. 지구대원들은 텍사스촌 뒤쪽 주택가 사정에 대해선 잘 모르는 눈치였다. “여기는 유동 인구만 있지 상주인구는 없다. 가져갈 물건이 있어야 도둑이 들 텐데 아무것도 없다”고 한 지구대원이 말했다. 방범용 CCTV에 대해 중구청에 문의한 결과 “그쪽 주민들의 민원이 많은 편은 아니다. 예산이 부족해 우선순위를 두고 설치하고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절반 이상의 인구가 빠져나간 유천1동은 민원이 많지 않아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지역, 아직도 레드존인가요?” “글쎄요. 우리는 해제됐단 통보는 못 받았으니 아직 그런가보죠.”

 

ⓒ 김준희·임이슬 제공

반쪽짜리 레드존, 청소년들 다 드나들어

유천동 텍사스촌은 1999년 이후로 쭉 ‘레드존’이었다. 레드존(Red Zone)이란 유해 환경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청소년의 통행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구역이다. 10년 전만 해도 유천동에 들어서면 ‘청소년 통행금지 구역’을 알리는 표시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관리하는 이가 없어 거리 위 색 바랜 페인트 흔적만 남아 있다. 밤 시간대엔 유심히 보지 않으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였다.

“여기 청소년 출입 통제 풀린 거 아니에요? 떡볶이 먹으러 자주 오는데.” 7월19일 금요일 밤 10시가 넘은 시각, 모텔과 나이트클럽이 늘어선 2차선 도로 옆 포장마차에서 고등학생 김선일군(18)과 진은호군(18)을 만났다. 이곳은 대전에서 유명한 나이트클럽이 있어 그나마 상권이 살아 있는 텍사스촌 골목이다. 10년째 옆 동네에서 살고 있다는 김군은 “친구들도 다 이 거리를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닌다. 잡는 사람도 없다”며 의아해했다.

인근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한 상인은 “아직도 여기는 암암리에 불법 매춘이 일어나고 있다. 방범도 잘 안 되는 곳인데 아이들이 지나다니는 것을 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밤 11시쯤, 텍사스촌 일대를 둘러봤더니 간간히 호객 행위를 하는 노래주점 아가씨들이 눈에 띄었다.

유해 환경에 무방비로 노출된 청소년들, 이대로 괜찮을까. 청소년 문제 전문가인 박철웅 백석대 청소년학과 교수는 “청소년기에는 다른 연령집단에 비해 시각적·청각적으로 민감해 환경적 요인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유해 환경에 노출된 청소년들은 올바른 인격을 형성하기가 어렵고 왜곡된 시선을 갖기 쉽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유흥가 밀집 지역에는 ‘청소년 보호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정된 레드존조차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박 교수는 “청소년을 보호하는 것이 공공기관의 사명이고, 유해 환경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이는 부분은 정부나 지자체에서 적극 관리해야 한다”며 강력한 보호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천동 텍사스촌의 레드존 관리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관할 경찰서를 찾았다.

“우리 소관 아냐” 한마디로 묵살된 책임

“우리 소관이 아닌데요, 다른 곳에서 알아보세요.” 관할서 관계자로부터 돌아온 대답이었다. 그는 청소년 통행 지정은 교육청 담당이라고 귀띔했다. 다음 날 대전 교육청 행정지원과에 연락을 했다. 그곳에서도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는 말이 돌아왔다. 취재팀은 중구청을 방문해 민원 문의, 총무과, 행정과를 돌고 돌아 유해업소 관리 담당 직원을 만날 수 있었다. 한참 자료를 뒤적이던 담당 직원은 아직 레드존이 유효하다고 밝혔다. ‘청소년 통행금지’ 표시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냐는 물음에 그는 ‘금시초문’이라고 했다.

만드는 사람은 있어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우리 행정 당국이 늘 보여준 모습이다. 유천동 텍사스촌은 현재 반쪽짜리 레드존이었다. 거대한 성매매 집결지는 해체됐지만 사실상 모든 유흥업소가 사라진 것은 아닌데도 말이다. 주민들 말에 의하면 여전히 음지에서 성매매가 일어나고, 불법 시설물도 흔히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레드존은 있으나 마나였다. 지역 관청 간에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해 레드존 관리가 소홀하고, 그 폐해로 청소년들은 유해 환경에 그대로 노출됐다.

“환락가로 먹고살던 곳을 해체해 놓고 아무런 대책이 없으니 이 사단이 났지.” 텍사스촌 일대 주택가 주민들의 푸념이다. 무대책·무책임·무관심이 유천1동의 암울한 현실을 만들어 왔다고 그들은 입을 모았다.

‘유천동 텍사스촌’ 일대를 돌아보니 ‘깨진 유리창 법칙’이 떠올랐다. 깨진 유리창을 수리하지 않고 방치하면 건물 관리가 소홀한 것으로 알고 절도, 건물 파괴 등 강력 범죄가 기승을 부린다. 유천1동 일대의 재개발이 시급했던 것은 그곳이 ‘레드존’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천동 일대는 지금 더 몸살을 앓고 있다. 유천동 사람들은 당국의 대책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한숨으로 보내고 있다.

※ 다음 호에는 장려상 ‘앞뒤가 똑같은 전화번호? 밤낮이 똑같은 노동 현실!’이 이어집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유천동 텍사스촌’은 대전시 중구에 위치한 대규모 홍등가였다. 지금은 철저히 방치된 채 도시 기능이 죽어서 ‘버려진 동네’가 됐다. 우리는 취재를 하면서 “왜 재개발이 되지 않는지” “이곳엔 누가 살고 있는지” 등 많은 의문을 가졌다. 유리창이 깨져 외관이 흉측한 상가들은 그곳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유천1동은 대대적인 변화 없이는 회생 불가능한 곳으로 느껴졌다. 행정 당국, 주민 등 여러 사람이 유천동의 현실에 관심을 갖고 바라볼 때 변화가 시작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언론이 관심을 갖지 않은 주민들과 상인, 청소년이 겪는 고통에 주목했다. 유천1동은 집창촌이라는 멍에를 안고 있다. 여기에 더해 행정 당국은 무관심으로 주민들의 삶을 힘겹게 하고 있다. 우리가 쓴 기사가 유천1동의 실상을 알리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이번 공모전은 평소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아이템을 취재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유천1동의 많은 주민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아픔을 공유하면서 세상에 대한 안목이 조금은 높아진 것 같다.

부족한 글인데 이런 큰 상을 수상하게 돼 영광이다. 이번 취재 결과물이 폐허가 된 동네에 희망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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