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아이 다리 휘었다며 돈벌이하는 ‘나쁜 의사’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3.09.11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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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원 넘는 보조기 팔아…전문의들 “의료 사기”

수백만 원짜리 다리 보조기를 팔아 장삿속을 채우는 의사들이 있다. 아이들의 휜 다리를 교정한다는 것인데, 사실 대부분은 정상이어서 치료가 필요 없다. 치료 효과도 없는데다 장기간 보조기 착용으로 아이가 정신 장애나 성장 장애를 겪을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이 때문에 의료계 내부에서는 의사 신분을 이용한 사기라는 말까지 나왔다. 정부 차원의 제재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주부 김송이씨(34)는 최근 서울 신사동에 있는 한 뼈 성장클리닉에 아이를 데리고 갔다. 아이의 휜 다리 교정을 잘한다고 소문난 곳이다. 4살짜리 딸아이가 안짱다리(무릎을 붙이면 정강이가 바깥쪽으로 벌어진 다리, 일명 X자 다리)로 걷는 자세를 걱정하던 터였다. 그는 “의사로부터 아이의 다리가 휘었으니 어릴 때 보조기를 채워서 교정해주지 않으면 나중에 척추까지 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보조기는 100만원이 넘고, 매달 병원에 갈 때마다 진료비도 몇만 원씩 내야 해서 경제적으로 부담이 크지만 아이를 생각해서 보조기 착용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아이의 다리 모양은 취학 전까지 계속 변한 뒤 곧게 형성된다. ⓒ 시사저널 박은숙
어느 부모라도 아이의 다리를 예쁘고 곧게 만들고 싶어 한다. 아이 다리가 휘었느니 보조기로 교정해야 한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으면 그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이런 심리에 편승한 일부 개원 의사들은 정상적인 다리 모양을 가진 아이에게조차 보조기 판매를 유도한다. 아이의 휜 다리 교정은 수술과 같은 큰 치료가 아니어서 부작용이나 의료사고가 거의 없다. 이 때문에 사회적인 관심은 적지만 의료윤리 문제인 만큼 사회적 이슈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의료계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한 대학병원 소아정형외과 교수는 “치료가 불필요한 아이에게 보조기를 파는 의사들이 있는데, 같은 의사로서 부끄러운 일이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다”며 “사회적으로 공론화해서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다수 아이의 다리는 휘어 있다. 출생 후 2년까지는 발목을 붙이고 다리를 폈을 때 무릎 사이가 벌어지는 O자 다리(내반슬)가 된다. 3~4세가 되면 다리가 X자 모습(외반슬)으로 바뀐다. 무릎을 붙이면 정강이가 바깥쪽으로 휘어지는데, 아이가 종종 W자 모양으로 다리를 구부려 앉는 이유다. 5~7세가 되면 자연스럽게 곧은 다리 모습을 갖춘다. 조태준 서울대병원 소아정형외과 교수는 “아이가 자라면서 다리 모양이 변하는 것은 정상적인 발달 과정”이라며 “병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리 보조기를 이용한 교정은 불필요하다”고 말했다.

1~7세 아이의 휜 다리는 ‘정상’

병적인 경우란 한마디로 희귀병(구루병, 경골내반, 외상, 섬유성 이형성증 등)에 의해 다리가 휜 상태를 말한다. 엑스선 촬영과 다리 각도 등을 측정해서 수술 등 치료법을 결정한다. 질병으로 뼈가 휘었더라도 보조기로 치료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박수성 서울아산병원 소아정형외과 교수는 “보조기가 필요한 치료는 10명 중 한 명이 될까 말까 할 정도로 적다”며 “특히 다리가 곧지 않은 것은 뼈가 휜 것인데, 휜 뼈는 보조기로 치료하는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성장클리닉, 뼈 교정클리닉 등의 간판을 단 의원이 어린 자녀를 둔 엄마들 사이에 인기다. 보조기 착용으로 아이의 다리가 곧게 자랐다는 부모들의 입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대학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아이가 자라면서 다리가 곧게 펴진 것인데도 마치 보조기 때문으로 오해한 것”이라며 “의사가 이 점을 교묘하게 이용했다”고 말했다.

그런 의원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나온 ‘아이 성장의 기본은 뼈의 정렬’이라는 홍보 문구는 그럴듯하게 들린다. 몇몇 의원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살펴본 한 대학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일부 의원은 인터넷 홈페이지에 ‘아이의 발을 모으고도 무릎이 5cm 이상 벌어지면 보조기 착용으로 교정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는 성인 기준이며 아이들은 나이에 따라 그 간격이 변하므로 엑스선 촬영 등으로 뼈의 모습을 보고 치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의원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보조기를 착용하기 전과 후의 사진도 있다. 휜 다리가 보조기로 바르게 정렬됐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 사진들을 살펴본 한 대학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아이의 다리는 어떻게 놓느냐에 따라 O자 다리, X자 다리, 곧은 다리로 만들 수 있다”며 “따라서 보조기 착용 전후 사진은 아무나 찍을 수 있는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대학병원 교수도 “다리가 휜 성인도 엉덩이에 힘을 주고 무릎을 붙이면 곧은 다리처럼 보인다”며 “이런 사진은 의료 지식이 없는 소비자를 현혹하는 일종의 사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제는 치료가 필요 없는 정상적인 아이에게 보조기 착용을 강요하는 행태다. 한 뼈 교정클리닉 관계자는 “병적으로 휜 다리만 보조기를 착용하도록 한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달랐다. 이 클리닉에서 보조기 착용을 권유받은 아이가 최근 한 대학병원을 찾아 재검사를 받았다. 이 아이의 다리를 검사한 정형외과 교수는 “그 아이의 다리는 정상이어서 아무런 치료가 필요 없다”고 잘라 말했다. 또 “그 클리닉에 다녀온 아이 부모들에게 들어보니, 그 의원은 거의 모든 아이에게 보조기 착용을 강요했다”며 “정상인데도 ‘아이의 다리가 휘었는데 방치하면 척추도 휘어서 자세가 나빠져 공부에도 지장이 생긴다’는 말로 과도한 공포심을 일으켜 아이가 보조기를 착용하도록 유도한 것 같다”고 전했다.

일부 개원의들은 아이가 보조기를 보통 1~2년 동안 착용하도록 권한다. 무릎을 90도로 굽힌 상태로 무릎 아래 부위를 철제 보조기로 고정한다. 아이들에게 보조기는 족쇄와 같다. 한 대학병원 소아정형외과 교수는 “아이가 그런 보조기를 몇 개월 착용하기도 어려워서 대부분은 중도에 포기한다”며 “대학병원에서는 20만원 정도인 보조기를 일부 클리닉에서는 자체적으로 특수 제작한 보조기라며 100만원 이상을 받고 팔고 있다”고 비판했다.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는 다리 보조기들. ⓒ 서울아산병원 제공
장시간 보조기 착용하면 부작용

교정 효과도 없는 보조기 착용으로 아이가 성장 장애나 정신적 외상을 입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한 대학병원 소아정형외과 교수는 “아이가 온종일 또는 잘 때만 보조기를 착용하더라도 한창 뛰어놀 시기에 활동할 수 없어서 정신적 외상을 입을 수 있다”면서 “오랜 기간 보조기를 착용해서 다리 움직임이 둔해지면 성장 장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아이의 휜 다리 교정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서울 신사동에 있는 한 뼈 성장클리닉 원장은 소아과 전문의다. 소아과 전문의가 정형외과 치료를 해도 될까. 한 대학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수술과 같은 큰 치료가 아니라서 소아과 전문의의 (정형외과) 진료는 가능한 것으로 안다”면서도 “다른 소아과와 재활의학과 전문의에게 물어보니 의과대학에서 뼈 교정 등에 대한 구체적인 교육을 받지는 않는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의료법상으로는 문제없지만 소아과 의사는 뼈 교정에 비전문가라는 얘기다.

이와 같은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일부 소아과 개원의들은 외국에서 그럴 듯한 증명서를 따와 홍보 수단으로 삼는다. 한 소아과 의사는 미국에서 받은 신발 치료 관련 자격증과 수료증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렸다. 이를 본 대학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정형외과 학계에서 인정하지 않는, 처음 보는 증명서”라고 말했다.

비전문가가 뼈 교정을 하며 소비자에게 치료 근거도 없는 보조기 착용을 유도하는 행태로 인해 의료계는 머리가 아프다. 그러나 의료법상 의사가 자신의 진료 과목 외의 진료를 했다고 해서 제재할 수단은 마땅치 않다. 한 대학병원 소아정형외과 교수는 “학회 차원에서 대응을 고려했지만 의료법상 어쩔 도리가 없었다”며 “정부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사기 의사’에 속지 않는 법 


아이의 다리가 휘어 보여도 대부분은 정상적인 성장 과정의 일부이므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검사를 받고 싶다면 정형외과 전문의를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 동네 소아과에서 보조기 치료를 권유받았다면 대학병원이나 정형외과를 찾아 재검사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

● 보조기 교정과 함께 물리치료나 재활치료를 권유받는 경우도 흔한데, 치료 효과가 의심스럽다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민원을 접수할 수 있다. 근거 없는 치료에 대해 치료비를 되돌려 받은 사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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